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043화 (1,043/1,497)

〈 1043화 〉 1043. 신위

6월 25일 금요일.

소파에 앉은 내 앞에는 아마츠카 코요리와 이어진 섹스돌이 알몸으로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 있었다.

“풍신님이 지시하신 대로 홋카이도에 나타난 침식 던전, 일본 협회와 한국의 수월 길드를 조사했습니다.”

발을 뻗었다. 코요리의 하얀 허벅지를 문지르다가 점점 위로 올라가 발로 젖가슴을 희롱했다. 발에 밟힌 그녀의 젖가슴이 일그러진다. 발가락으로 젖꼭지를 꼬집어 비틀었다.

“흐으읏, 보고… 하겠습니다. 수월 길드의 1차 공략대가 파견된 침식 던전에 새로운 던전 게이트가 나타났습니다. 1차 공략대는 던전 게이트에 휘말려 전멸한 상황입니다.”

“전멸? 실종이 아니라 전멸이라고?”

나는 그녀의 젖꼭지를 희롱하던 걸 멈추고 그녀의 몸에 글자를 써서 내 뜻을 전했다. 공략대의 시체가 발견되었냐는 물음이었다.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정확하게는 수월 길드의 개입으로 인해 일본 협회 홋카이도 지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다만, 일본 협회는 수월 길드의 1차 공략대의 전멸을 추측하고 있습니다.”

“…….”

나는 침묵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일본 협회의 추측은 거의 확실했다. 나는 침식 던전에 나타난 던전에 대해 물었다.

“A급 개방형 던전입니다. 현재 수월 길드의 2차 공략대가 파견된 상태로… 일본 협회 홋카이도 지부는 지켜보고만 있습니다.”

“왜 지켜보고만 있는 거지? 홋카이도에 일어난 일이니 남 일이 아닐 텐데?”

“계약 문제로 인해 그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월 길드는 자신들이 갑인 계약을 한 모양이다.

지부에 불과하다고 해도 협회다. 여간한 길드는 갑의 위치를 잡기 힘들었다. 역시 수월 길드라고 해야 했다.

“2차 공략대가 공략 중이라 했지. 현재 진행 상황은 어떻지?”

“침식 던전을 정리 중이며 오늘 오후에 개방형 던전을 공략할 예정입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그러하듯 수월 길드도 한하린이 살아 있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 가능성은 한없이 낮다. 그리고 나는 수월 길드의 2차 공략대가 영 미덥지 못했다.

“코요리. 네가 직접 나설 수는 없나?”

S등급인 코요리가 직접 나서면 수월 길드가 나서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던전이 정리될 것이다.

“제가 활동하는 지방이 다르고, 이미 그 던전에 관해선 수월 길드와 계약되었기에 불가능합니다. 억지로 제가 나선다면… 국제적인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맞다.

그리고 이건 수월 길드의 자존심이 걸린 일이기도 했다.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력으로 수습하려 할 것이다.

거기에 코요리가 억지로 나선다면 그 영향력이 흔들릴 수도 있다. 이미 계약된 일이니 일본 협회 홋카이도 지부도 반대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나는 심란한 마음에 밤새도록 코요리를 가지고 놀았다.

•••

6월 26일 토요일.

한국 헌터 협회에 대한 여론은 갈수록 좋지 않았다. 학살을 저지른 가시 가면을 아직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선 협회의 무능함을 욕하며, 과거에 협회가 잘못했던 것까지 찾아내 욕하기 시작했다.

기자는 신나게 협회를 까는 기사를 쓰기 시작했고, 공중파 뉴스에서도 협회를 비난한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이상할 정도였다.

‘누군가 언론을 이용해 헌터 협회를 견제하는 건가?’

생각나는 건 정부와 정치인들이었다. 최근 몇 년 동안 헌터 협회의 권위는 갈수록 높아져만 갔다. 정부의 입장에서도 위협을 느낄 만큼 충분했다. 평소에 벼르고 있다가 지금 타이밍을 노려 협회를 견제하는 것이다.

‘꽤 가능성 있는데? …근데 내 알 바 아니잖아.’

협회는 곤혹스럽겠지만, 협회 소속이 아닌 나는 강 건너 불구경하는 수준이었다. 언론은 헌터가 아닌 협회만을 물어뜯고 있으니까.

‘바쁘게 돌아다니는 백지은이 좀 불쌍하긴 하네.’

나는 현재 KTX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백지은이 도와 달라고 했으나 거절하고 박수호를 만나기 위해 기차를 탔다. 박수호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걸리는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부산역에 도착했다.

역앞에 서 있는 박수호와 광원교 신도들을 볼 수 있었다. 하나같이 수련복인가 뭔가 하는 촌스러운 옷을 입고 있었기에 눈에 띈다. 그리고 사이비 분위기가 물씬 풍겨서 주위 사람들은 최대한 멀찍이 떨어졌다.

“유진 형! 여기예요!”

“성유진 씨! 부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저희 광원교는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습니다!”

박수호를 비롯한 광원교 신도들이 소란을 떨었다. 주위가 웅성거린다. 광원교. 사이비 등의 단어가 오간다. 몇몇은 아예 날 알아본 모양이다.

‘얼마 후면 내가 사이비에 빠졌다는 소문까지 돌겠네.’

짜증이 났다.

고함이라도 한 번 칠까. 그렇게 고민할 때, 강지우가 눈에 들어왔다. 촌스러운 수련복으로도 숨길 수 없는 청초한 미모.

‘실제로 보니 더 예쁘군.’

예쁜 것을 보니 짜증이 저절로 참아졌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형! 어서 와요! 형은 광원교가 처음이라 좀 낯설겠지만, 광원교를 체험하면 분명 신앙심을 가지게 될 거예요.”

나는 박수호를 빤히 쳐다봤다.

전에 봤을 때보다 훨씬 생기 있는 얼굴이었다. 눈동자도 반짝반짝 빛난다. 연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세뇌 당했나? 그게 아니면 진짜 광원교라는 사이비에 빠진 거야?’

아마도 세뇌일 가능성이 높다. 저번에 나한테 도와달라는 문자를 괜히 보낸게 아닐 테니까.

“성유진 씨. 유명한 헌터와 만나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강지우가 내게 말을 걸었다. 박수호를 보던 나는 시선을 돌려 그녀를 봤다. 박수호를 보다 미녀를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가 싱긋 웃는다. 뺨에 파이는 보조개가 귀엽다.

“네. 성유진입니다. 강지우 씨죠?”

“광원교의 일곱 번째 인도자인 강지우예요.”

광원교의 지배층은 총 8명이다. 교주와 일곱 명의 인도자들. 교주가 가장 높고 그 아래에 일곱 명의 인도자가 있다.

교주와 다른 인도자들은 모두 해외에 있다. 광원교는 그 모태가 한국이 아니라 중국이었고, 미국과 영국을 포함해 서방에서도 세력을 넓히고 있었다. 말하자면, 한국 광원교의 지부장이 바로 강지우인 것이다.

강지우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악수의 뜻이었다. 손을 맞잡았다. 보드라운 감촉이 느껴진다.

통성명을 한 다음에는 곧바로 광원교가 준비한 대형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옆면에 ‘믿으면 복이 옵니다! 광원교!’라는 지독히 사이비스러운 광고 문구가 적혀 있었다.

보통 사이비는 자신이 사이비라는 것을 티 내지 않는다. 사이비에 대한 인식이 안 좋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허나 광원교는 달랐다. 자신들의 종교를 숨기지 않는다. 사이비 중에서도 꽤 위험한 쪽이었다.

“유진 씨. 유진 씨가 저희 광원교에 오신다고 들었을 때 엄청 기뻤어요.”

내 옆에 앉은 강지우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거리가 가까웠다. 그녀의 향긋한 냄새가 느껴졌다.

“…솔직히 말해서 전 종교에 관심 없어요. 수호 녀석이 워낙 극성이라 한 번 찾아온 거에 불과해요.”

“네. 알고 있어요. 유진 씨는 어떤 종교도 믿지 않는 무교시죠?”

“수호가 말했나 보군요.”

“아니에요. 제가 따로 조사했어요. 유진 씨는 유명하셔서 인터넷에 검색하니 바로 나오던 걸요? 방송에도 나오셨고 인터뷰 기사도 몇 개나 있던데요.”

“하하. 그것들을 다 보셨나 보네요. 괜히 부끄럽네.”

씨익 웃었다. 말과 달리 나는 부끄러움 따윈 전혀 느끼지 않았다. 미녀가 알아봐 주니 오히려 기분 좋았다. 사람들이 왜 연예인이 되고 싶어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사람들은 저희 광원교를 사이비라고 불러요. 하지만 저희는 맹세컨대 사람들에게 억지로 신앙을 강요하지 않아요. 그저 광원교의 교리를 알리고 설득할 뿐이죠. 설령, 유진 씨가 광원교에 입교하지 않더라도 저희는 유진 씨를 싫어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아요.”

목소리, 표정, 눈빛. 그 모든 게 매력적이었다.

‘이런 여자가 섹스 포교를 하면 사이비에 들어가는 것도 어쩔 수 없지….’

박수호가 왜 광원교같은 사이비 종교에 들어갔는지 알 것 같았다.

‘…아니. 잠깐. 박수호 이 새끼는 모아이 같은 여자랑 잤잖아. 박수호는 병신인가? 병신이군.’

힐끗 뒷자리에 앉은 박수호를 확인했다. 모아이 닮은 여자친구랑 손을 잡고 스킨십을 하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대화가 즐거운지 입이 헤벌쭉 벌어진다.

‘실제로 보니 진짜 기괴하네. 박수호, 이 자식은 여자 얼굴 엄청 따지는 놈이었는데….’

설마 모아이 같은 여자랑 사귈 줄이야.

“유진 씨. 혹시 사인 한 장 부탁해도 될까요?”

“제 사인이요? 지우 씨. 제가 방송에 몇 번 출연했어도 연예인은 아니에요.”

“꼭 연예인에게만 사인 받나요? 스포츠 스타에게서도 사인받잖아요. 그리고 유진 씨는 앞으로 S급 헌터가 될지도 모르는 슈퍼 루키잖아요. 미리 사인을 받아두고 싶어요.”

“…그렇게 말하니 어쩔 수 없네요. 알았어요. 사인해 드릴게요.”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사진도 같이 찍을 수 있을까요?”

사진이란 말에 잠깐 멈칫했다.

사진이 퍼졌다가 내가 사이비 종교에 심취했다는 헛소문이 돌지도 몰랐다.

하지만 내 매력에 반한 강지우가 눈을 빛내며 나와 사진찍기를 바라고 있었다. 팬의 요청을 무시하기 힘들다.

‘뭐, 문제가 생기면 해킹으로 해결하면 되겠지. 아예 청문회를 열어서 해명하면 되고.’

“지우 씨가 원하는데 사진이 대수겠습니까. 하하.”

“와! 신난다. 거절하면 어쩌나 싶었어요. 자, 이렇게….”

스마트폰을 셀카모드로 바꾼 강지우가 내 몸에 바짝 붙었다. 그녀의 몸이 내 몸에 닿는다. 그녀의 향기가 느껴졌다. 참고로 그녀가 입은 수련복은 옷감이 얇은 편이었다.

“조금 더 붙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네요. 미안해요.”

“아뇨. 전 괜찮습니다.”

강지우의 가슴이 내 팔에 닿았다. 말랑하다. 슬랜더한 몸매라고 해도 최소한의 가슴은 있었다. A컵이지만.

‘이 여자…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군. 섹스 포교로 날 사이비에 입교 시키려는 속셈이 확실해. 제법이야…. 지금 30% 정도는 광원교에 입교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

“아이참. 각도가 잘 안 나오네요.”

강지우가 더 달라붙어 왔다. 5% 올라 35%가 되었다.

찰칵, 찰칵!

강지우는 찍은 셀카 사진을 확인하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미간을 좁혔다.

“여기 보세요. 사진이 좀 흐릿하게 나왔어요. 유진 씨. 죄송하지만 다시 찍어도 될까요?”

“이거 참. 셀카 찍는 게 영 쉽지 않죠. 얼마든지 찍으셔도 됩니다.”

박수호나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서 찍어달라고 하면 되지 않는가. 라는 말이 목에 차올랐지만, 애써 집어삼키며 강지우와 셀카를 찍었다.

만족스러운 셀카를 찍었을 때는 이미 목적지에 도착했다. 도심에서 떨어진 외곽 쪽인 모양인데 3층짜리 숙소 건물 3채와 운동장과 강당 등의 건물들이 보였다. 건물 주위는 숲으로 빼곡하다.

‘예상은 했는데 진짜 교회 수련회 느낌이군.’

근처에 편의점 같은 곳도 없었다. 물어보니 가장 가까운 편의점이 자동차로 5분 정도 나가야 한단다.

‘사이비답군.’

숨을 들이켰다. 공기하나만큼은 좋다.

“유진 씨. 이쪽으로 와주세요.”

강지우가 웃으며 내게 말했다.

“어? 지우 씨가 절 안내해주시나요? 지우 씨는 바쁘지 않아요? 여기 책임자가 지우 씨 라면서요.”

“유진 씨는 특별한 손님이니 제가 안내해야죠. 그리고 딱히 바쁘지는 않아요. 절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고, 신도분들도 좋으신 분들이거든요.”

박수호를 힐끗 바라봤다.

“형은 운이 좋네요. 지우 누나가 직접 상대하는 경우는 진짜 드물어요. 하긴, 형은 B급 헌터에다가 장래도 유망하니까.”

박수호는 알아서 이해하고 있었다.

나도 이해했다.

‘강지우 같은 미녀가 날 상대해야지. 박수호 같은 떨거지가 날 상대할 급은 아니지.’

나는 박수호에게서 고개를 획 돌리고 강지우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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