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041화 (1,041/1,497)

〈 1041화 〉 1041. 신위

6월 21일 월요일

박수호: 형. 저 여자친구 생겼어요.

박수호: (사진)

박수호: 예쁘죠?

“이 모아이 석상 닮은 여자는 뭐야.”

잠깐 어이가 없었다. 내가 알기로 박수호는 여자의 얼굴을 굉장히 따지는 편이었다. 박수호와 나란히 찍힌 모아이 닮은 여자는 아무리 봐도 미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머리만 짧았으면 남자로 착각했을 거야.’

그럼 몸매가 뛰어나나?

아니었다. 박수호와 같이 웬 수련복 같은 걸 입고 있는데 두 사람의 몸매 차이가 거의 없었다. 가슴은 절벽이고 허리는 굴곡은커녕 통나무처럼 굵다. 드러난 팔과 손도 큼직했다. 여자로서의 매력이 전혀 없었다.

나: 진짜 여자친구야?

박수호: 오늘부터 사귀기로 했어요. 오늘 점심 먹고 난 뒤에 갑자기 고백하더라고요. ㅎㅎ.

나: 야. 저 여자는 진짜 아니야. 무슨 모아이 같은 년이랑 사겨?

나는 박수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여자가 못생겨도 너무 못생겼었다. 저번에 박수호가 클럽에서 만난 오크는 여자처럼 보이기라도 했지. 이 모아이는 아무리 봐도 아니었다.

박수호: …형. 아무리 그래도 말이 좀 심하시네요.

박수호: 사진이 잘 안 나와서 그렇지. 실제로 보면 엄청 예뻐요. 목소리도 좋고요. 무엇보다 우리 춘희는 마음이 예쁜 여자예요.

나: …미안하다. 네가 그렇게 저 여자를 좋아하는지 몰랐다.

나: 근데 갑자기 사귀는 건 이상하잖아. 혹시 저 여자랑 잤냐?

박수호: 사실 형한테만 말해주는 거예요. 어젯밤에 몇몇 신도랑 같이 부산 오션부 해산물 가게에서 술 먹고 놀았어요. 춘희는 그때 만났고… 같이 잤어요.

나: 어, 그러냐. 난 네 선택을 존중해.

“이 새끼. 동정 뗀 지 얼마나 됐다고 함부로 좆질 하네.”

근데 왜 이런 여자한테 좆질 하는 거지? 못생긴 년 페티쉬라도 생긴 건가. 아니면 여자면 다 좋은 건가.

‘이 여자랑 사귀는 이유는 책임지기 위해서인가? 그게 아니면 보지가 개쩌는 명기인 건가? 생긴 건 저래도 보슐랭 3스타 정도 되나?’

아무 조건 없이 공짜로 다리를 벌리고 보지를 대준다고 해도 따먹고 싶은 욕구는 전혀 없었다.

‘공짜로 대준다고? 아, 혹시 이거 그건가. 섹스 포교.’

섹스 포교.

미인계다. 여자와 섹스하게 해주면서 포교하는 일.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섹스 포교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사이비 주제에 이쁜 여자가 많다는 말을 듣고 여름 방학 동안 사이비가 가장 많이 출몰하는 곳을 어슬렁거렸다. 근데 꼬이는 여자가 대부분 아줌마라 빡쳤던 기억이 났다.

나: 근데 진짜 사귀는 거 맞지? 나 속이는 거 아니지? 광원교인가 뭔가에 들어가려고 연기하는 거 아니고?

박수호: 에이. 이런 거로 형을 왜 속여요. 못 믿는 것 같으니 증거 사진 보내드릴게요. ㅎㅎ 우리 진짜 사겨요.

박수호: (사진)

“우웩.”

박수호와 모아이가 키스하는 사진이 왔다.

박수호. 이 자식은 기어코 내게 이런 혐짤을 보내는가. 나는 이 사진을 인터넷에 퍼트려 조리돌림 할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박수호: 그리고 유진 형. 광원교는 좋은 곳이에요.

박수호: 세간에서는 광원교를 사이비 취급하는데, 제대로 살펴보면 사이비적인 느낌은 하나도 없어요.

박수호: 오늘만 해도 신도들과 같이 정신 수양을 했죠.

박수호: 이참에 형도 광원교에 입교해보시는 게 어때요? 신앙을 가지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에요.

나: 미안. 내가 지금 좀 바빠서.

박수호: 많아 바빠요?

나: 협회 일을 돕고 있거든. 던전 게이트 관리랑 각성 범죄자 추적…. 바쁘다 바빠. 지금도 겨우 짬내서 너한테 연락하는 거야. 아, 이만 가봐야겠다. 나중에 또 연락할게.

왠지 박수호와 더 길게 얘기하면 귀찮아질 것 같았다.

‘박수호가 이렇게까지 변하다니…. 역시 섹스 포교는 대단해.’

•••

6월 23일 수요일.

나는 오늘도 백지은을 돕기로 했다. 본래는 그녀의 다친 부하 직원을 대신해 일주일 동안만 돕기로 했는데, 그 부하 직원의 회복이 예상보다 더뎠기에 좀 더 그녀를 돕기로 했다.

요즘 백지은은 A급 각성 범죄자인 가시 가면을 쫓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가시 가면을 쫓기 위해 자신의 능력과 인맥을 전부 사용하고 있다.

‘백지은 개인적으로 가시 가면을 싫어하기도 하고, 지금 한국의 시선이 모두 가시 가면에게 몰려 있으니까.’

한국에도 유명한 각성 범죄자는 몇 있었다. 허나 이렇게 시선을 끄는 각성 범죄자는 오랜만이었다. 일반인을 학살하는 각성 범죄자는 한국에서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가시 가면은 고문하고 죽였다. 일부러 어린 여자아이를 살려두기까지 했다.

‘협회는 가시 가면을 잡지 못해서 비난받고 있지. 사람들은 각성자를 두려워하게 되고.’

이건 나한테도 좋지 않은 일이었다.

각성자 차별이 늘어나면 헌터의 입지도 줄어든다. 헌터 협회가 미친 듯이 이미지 메이킹 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렇다고 가시 가면만 쫓고 있을 수는 없어. 백지은의 업무는 그것뿐만이 아니니까.’

한 가지 일에만 매달리기에는 그녀의 직급이 너무 높았다.

“유진아! 놈이 그쪽으로 갈 거야!”

귀에 꽂은 이어폰을 통해 백지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봇대에 기대어 있던 나는 몸을 바로 잡았다.

5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팔에 상처를 입고 식은땀을 흘리며 미친 듯이 달리고 있는 중년 남자. B급 각성 범죄자인 고필수다. 이놈은 간 크게도 헌터 협회의 물건을 훔쳐 팔았다고 한다.

“생포가 우선이야! 생포!”

백지은이 거듭 말했다. 그녀와 함께 일하며 각성 범죄자를 상대하는 건 처음이 아니었다. 대부분이 A~B급 범죄자들이다. 혼자 상대하는 것도 아닌지라 위험한 순간도 없었다. 나는 공격할 기회가 있으면 망설임 없이 각성 범죄자의 목숨을 끊었다.

상대가 각성 범죄자인 순간 정당방위가 되니까. 생포보다 죽이는 게 더 쉽기도 했다.

‘이번엔 백지은의 말을 들어줘야지.’

파지지직.

화련비도에서 붉은 뇌전이 꿈틀거렸다.

“비켜!!”

성난 소리를 지르는 고필수를 향해 화련비도를 휘둘렀다. 번개를 휘감은 참격이 놈에게 날아간다. 상대는 B급. 겨우 이 정도로 죽진 않을 것이다.

‘죽으면 어쩔 수 없고.’

고필수가 기겁하며 서둘러 능력을 사용했다. 반투명한 배리어가 그의 몸을 감쌌다. 배리어에 닿은 참격은 방향이 바뀌어 내 쪽으로 날아온다.

반사 배리어.

고필수의 능력이었다.

참격은 날아오는 도중에 사라지고 붉은 번개가 내게 온다.

‘오랜만에 그걸 써볼까. 뇌반!’

번개 받아치기!

이젠 점프할 필요도 없다. 나는 그대로 칼을 휘둘러 적뢰를 받아쳤다.

“이 미친놈이!!”

고필수의 반사배리어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내 쪽이 아닌 하늘 쪽으로 적뢰를 반사했다.

‘어디까지 반사할 수 있나 볼까.’

왼손을 들어 올렸다. 파지직. 손 주위로 번갯불이 튀었다. 주변 공기가 위로 붕뜨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직후, 고필수에게 벼락이 떨어졌다. 문자 그대로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다.

콰콰콰쾅! 콰르르르릉! 쾅!

고필수가 번개를 반사한다. 허나 번개는 하나가 아니다. 나는 배리어가 부서질 때까지 벼락을 떨어뜨렸다.

쾅쾅쾅쾅!

반사 배리어는 무적이 아니다. 한계는 있다. 한계가 없었다면 B급이 아니라 S급이었겠지.

반사 배리어는 총 6번의 번개를 반사하고 부서졌다. 7번째 벼락을 맞은 고필수가 몸이 그을린 채로 바닥에 쓰러졌다.

‘죽었나?’

가까이 다가가 신발 끝으로 놈의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크윽… 크으윽….”

반응한다. 죽지 않았다.

나는 팔짱을 끼고 기다렸다. 백지은과 협회 직원이 나타났다.

“성유진! 죽인거 아니지?!”

“안 죽였어.”

백지은은 능력을 사용해 속박했다. 그녀의 손에서 빛의 끈 같은 게 나타나 칭칭 묶은 것이다. 백지은의 능력이었다.

고필수는 사형당할 정도로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건 아니니 각성자 전용 특수 교도소에서 몇십 년은 썩겠지. 원래 도둑질은 그 정도가 아닌데 협회의 물건을 훔친 것과 각성자 범죄라 가중 처벌이다.

협회 직원들은 고필수를 데리고 사라졌다. 백지은은 홀가분한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를 두 들겼다.

“잘했어. 요즘 상태가 안 좋아서 걱정했는데 멀쩡하네. 이 누나가 상을 줄게. 차로 가자.”

백지은의 숨결에서 색향이 느껴졌다.

그녀가 준다는 상이 무엇인지는 뻔하다. 요 일주일 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받았는데 모를 리가 없었다.

“상태가 안 좋다고? 난 언제나 베스트야.”

주위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백지은의 상의 속에 손을 넣었다. 브래지어를 살짝 내리고 가슴을 쥐었다. 그녀의 뾰족한 유두가 손가락을 쿡쿡 찌른다.

“무슨 소리야. 아주 죽상이던데. 오늘은 잘했으니 이 누나가 서비스해줄게.”

백지은은 내 바지 속으로 손을 넣었다. 기온에 비해 서늘한 손이 불알을 주무른다. 기분 좋다.

우리는 차에 들어가자마자 알몸이 되어 서로의 몸을 탐했다. 나는 그녀의 보지를 자지로 쑤시며 뾰족 젖꼭지를 쪽쪽 빨았다.

열락의 폭풍이 한차례 지나가고 의자에 나른한 몸을 파묻었다.

“그래서 진짜 무슨 일인데? 이 누나한테 말해봐.”

“한하린이라고 알아?”

“알지. 한아영의 여동생이고… 너랑 친하게 지내는 여자잖아. 애인이야?”

“비슷해. 하린이가 이번에 수월 길드원들과 함께 일본으로 침식 던전을 공략하러 갔는데… 소식이 전혀 없어. 좀 알아봐 줘.”

“던전 공략이라면 길어져도 이상하지 않아. 며칠 동안 연락이 없었는데?”

“12일 새벽에 일본 홋카이도로 떠났으니까…. 11일 전인가?”

“거의 2주잖아. 수월 길드의 저력을 생각하면 확실히 이상하긴 하네…. 소문이라도 들려야 정상인데… 뭔가 숨기고 있나? 오케이. 한 번 알아볼게.”

“고마워, 지은아.”

“네가 나를 도와줬으니 나도 널 돕는 거야.”

눈이 마주쳤다. 땀에 젖은 그녀의 얼굴이 섹시했다. 나는 참지 못하고 그녀의 위에 올라탔다.

“아아아아아앙!”

흔들흔들.

자동차가 흔들렸다.

•••

그날 저녁,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정시에 퇴근했다. 백지은의 부하 직원이 왜 회복이 더딘지 알겠다. 일 중독인 그녀를 상대하다 보면 피로가 엄청 쌓인다. 완전 회복이 있는 나와는 다르게 그 부하 직원은 완전 회복도 없으니까.

‘백지은도 완전 회복이 없는데…. 피가 철로 되어 있나.’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평소같았으면 한하린의 집에 처들어가서 놀았을 테지만, 지금 한하린은 없었다.

유리아가 만들어준 도시락으로 저녁을 챙겨 먹었다.

우우우우우우웅.

스마트폰이 울린다. 발신자는 백지은이었다.

“어. 지은아. 가시 가면의 흔적이라도 찾았어?”

“그 빌어먹을 가시 가면 놈은! …아니지. 그것 때문에 전화한 거 아니야. 네가 낮에 말했던 한하린과 수월 길드에 관해서 조사해봤어.”

“…….”

나는 몸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백지은이 벌써 조사했을 줄은 몰랐다.

조용히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아무래도 공략에 실패한 것 같아. 수월 길드에 쳐들어가서 윽박지르니 그제야 말하더라고.”

“…실패했다고? 그걸 왜 공표 안한거야? 협회는 왜 모르고 있었고?”

“국내가 아니라 일본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수월 길드는 아직 실패가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내가 볼 땐 실패 확정이야. 수월 길드는 어떻게든 자신들이 수습하려 하고 있어.”

“말도 안 돼. 수월 길드가 A급 침식 던전 따위를 공략하지 못할 리가 없잖아.”

수월 길드가 어떤 곳인가. 한국 10대 길드 중 2위에 속하는 거대 길드다. S급 헌터인 한아영도 속해있는 곳이다. 다만, 지금 한아영은 호주의 S급 던전을 공략하는 중이라 연락이 되지 않는다.

“들어보니 이중 던전 현상이 발생했어. 침식 던전을 공략하다가 휘말린 모양이야.”

이중 던전.

최근에 만들어진 단어로 침식형 던전에 새로운 던전이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즉, 한하린은 실종 상태다?”

“맞아. 정확하게는 한하린을 비롯한 수월 길드원 65명 전원이 실종상태야. 수월 길드는 어떻게든 수습하겠다고 선언했어. 2차 공략대를 파견할 모양이야. 일본 협회랑도 이미 말을 맞춘 것 같고.”

“…….”

초조함이 밀려왔다.

실종.

희망을 주는 말이지만, 헌터계에선 사망을 뜻하는 말이었다. 실종된 헌터 중에서 돌아온 헌터는 1%도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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