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6화 〉 1036.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죽음 저항이 발동했습니다. 앞으로 15초간 죽지 않습니다.]
[완전 회복을 사용합니다.]
결국, 한 번 죽었다.
나는 완전 회복을 사용해 다시 살아났다.
몸이 멀쩡해졌다. 흑백의 세계도 원래의 컬러풀한 세계로 돌아왔다.
내 주위에 암살자 4명이 그림자에 묶여 있었다. 단검을 앞으로 내민 자세를 보아하니 나를 죽이려다가 도리어 유리아에게 당한 모양이다.
주위를 둘러봤다. 나머지 31명은 시체가 되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대부분 칼에 베여 죽었으나, 감전당해 죽은 놈들도 있었다.
“너는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거냐!”
“전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습니다.”
암살단 리더는 유리아를 지긋이 바라봤다. 그리고 침을 꼴깍 삼켰다. 그의 눈이 파르르 떨린다.
“…누구냐. 너 같은 괴물 같은 여자가 있다는 말은 못 들었다.”
“…….”
유리아는 할 말 따윈 없다는 듯이 입을 다물고 묵묵히 단검을 들어 올렸다. 단검이 향하는 곳은 목이 아니라 팔 쪽이었다. 죽이지 않고 생포한 뒤에 고문으로 정보를 뜯어낼 것이다.
서거억!
암살자들의 팔다리를 자르는 유리아를 보며 내가 대신 암살자 리더에게 말했다.
“왜 모르는 척 하고 그래. 너희도 그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잖아.”
“모른다…! 이런 괴물 같은 여자 따윈…! 소문으로도 들은 적 없다!”
“아니, 너도 알고 있잖아. 소문도 들었을 거 아니야.”
“…소문?”
암살단 리더는 팔다리가 잘린 채로 침착함을 유지했다. 어처구니없지만, 이놈들은 일류 암살자다. 실력만큼은 진짜다. 특히 암살단 리더의 경우 미쳐 날뛰는 상태일 때의 내 공격을 무려 4번이나 막아냈다. 익스퍼트 최상급의 실력자다.
“그녀를 잘 봐. 은발하고 푸른 눈. 뭐 생각나는 거 없냐? 어떤 귀족의 특징이지 않아?”
나는 유리아를 가리켰다. 메이드복을 입은 그녀의 은발이 달빛을 받아 반짝인다. 푸른색의 서늘한 눈동자는 아름다우면서도 자비가 없다. 정신적 충격이 올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였다.
그리고 유리아의 주위. 그림자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암살단 리더는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 경악했다.
“설마, 암제…! 진짜 암제가 바로 저 여자냐?!”
“잘 알고 있네. 진짜를 앞에 두고 암제를 운운하길래 좀 당황했다고.”
나는 암살단 리더의 복면을 벗겼다. 평범한 아저씨의 얼굴이다. 거기에 의외로 좋은 인상이다. 집 근처에 살고 있을 것 같은 아저씨 인상.
“모르는 얼굴이군.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 의뢰주는 젠트지?”
“나는 암살자다. 실패한 이상 침묵할 뿐이다. 네가 무슨 짓을 하든 나는 입을 열지 않는다. 고문을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고문에 대한 대비까지 완벽하다. 물론, 고문받을 생각도 없다.”
콰직.
암살단 리더에게서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뻔하다. 어금니 안쪽에 숨겨둔 독단이겠지.
나는 느긋하게 손을 뻗었다. 아무리 극독이라도 바로 즉사하지 않는다. 몇 초, 혹은 수 십초의 여유가 있었다.
우선 점혈로 몸에 독기가 퍼지는 것을 막고 손을 뻗어 암살단 리더의 머리를 잡았다. 뇌기를 흘려보내 독기를 태운다. [광명승천도] 세계에서 몇 번 해본적 있기에 그 감각은 안다. 그래도 여전히 서툴다.
‘뭐, 실패하면 내가 죽는 것도 아니고.’
암살단 리더가 죽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놈들의 의뢰주는 젠트일게 분명하니까.
“크헉…! 죽지 않았다고? 설마 해독제를 가지고 있었던 거냐!”
암살단 리더가 숨을 헐떡이며 소리쳤다.
독기를 태우는 데 성공했다. 부작용으로 얼굴에 흉터가 생기고 머리카락이 홀라당 빠졌지만, 내 알바 아니다.
다른 암살자들을 쳐다봤다. 모두 자결하지 못했다. 유리아가 호락호락할 리가 없었다.
“넌 내 허락 없이 못 죽어.”
암살단 리더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는 이를 악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말했을 터다…. 너희가 무슨 짓을 하든… 우리는 어떠한 정보도 발설하지 않을 것이다.”
“하루 버티면 칭찬해줄게.”
나는 그를 비웃어 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리아. 부탁할게.”
“네. 내일 아침 해가 뜨기 전까지 정보를 알아내겠습니다. 그런데… 방금 그 기술은 너무 위험합니다. 다시는 사용하지 마십시오.”
“…그건 내가 너무 미숙해서 그래. 다시 사용해보라고 한다면… 솔직히 자신이 없어.”
그래도 약간의 실마리는 잡았다. 연습을 좀 하다 보면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영천류의 기술은 아닌 것 같더군요.”
“나도 자세히는 몰라. 다만 짐작 가는 게 하나 있긴 해.”
[아카데미의 구원자] 세계의 성하리가 사용하는 기술. 뇌전을 이용해 일시적인 신체 가속 기술. 섬뢰(閃雷)가 거의 확실하다.
나는 유리아에게 뒤처리를 부탁하고 마차 쪽으로 돌아갔다. 가는 와중에 카일과 플로이와 마주쳤다.
“유진아! 몬스터라도 나왔어?”
“주군. 괜찮나?”
좀 요란하게 싸우긴 했다. 그들 정도 실력이면 전투를 알아차리는 게 이상하지 않다.
“이미 끝났어. 가서 쉬자.”
•••
다음날, 새벽.
유리아는 스스로가 내뱉은 말을 지켰다.
생포된 암살자들은 멍청한 얼굴을 해서는 해가 뜨기 전에 정보를 죄다 나불나불 뱉었다. 암살자들은 유아퇴행 증상까지 있었다. 나는 유리아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물어볼까 하다가 관뒀다.
우선 그들을 고용한 의뢰주는 젠트가 맞았다. 300억 네르라는 어마어마한 의뢰비로 나와 카일의 죽음을 의뢰했다.
‘전쟁에서 승승장구 한 건 젠트도 마찬가지이니…. 그 정도의 금액을 거는 건 무리도 아니겠지.’
다만, 혼자서 부담하기엔 큰 액수다. 젠트 뿐만이 아니라 가신 중에서도 몇 명이 연관된 것 같다.
암살단은 선수금으로 60억을 먼저 받았다.
‘그 60억 자금을 추적해보면 젠트가 나오겠지. 이게 곧 확실한 증거야.’
안 그래도 가망 없던 젠트는 이것으로 끝났다.
‘젠트. 네놈도 카일처럼 팔 병신으로 만들어 주지.’
죽이지는 않는다.
그 대신 젠트의 아내인 비비와 밀회를 계속 가질 것이다. 제 아내가 내 자식을 낳을 거라곤 꿈에도 모르겠지.
“크크.”
•••
영지민과 병사들, 기사단의 환대를 받으며 본가에 들어섰다. 그들도 누가 프루커스 가문의 주인이 될 것인지 아는 것이다.
나는 마차 위에서 검을 들고 흔들었다. 푸른 오러 블레이드가 번뜩일 때마다 시민들은 함성을 내질렀다.
‘이럴 때 광고해야지. 내가 최연소 오러 마스터임을.’
프루커스 백작가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돌아온 본가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다만, 평소보다 떠들썩한 분위기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본가에는 프루커스 백작인 엔티온이 귀환한 상태다.
거기에 프루커스 백작가는 라펠리 왕국 내에서 가장 많은 전공을 세운 귀족가다. 프루커스 영지민들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가득하다. 분위기가 나쁘면 더 이상한 일이었다.
여독을 풀 틈도 없이 곧바로 그레이트 홀로 불려갔다.
그레이트 홀에 모두가 모여 있었다.
가주인 엔티온과 그 아내인 엘라인.
젠트 푸르커스와 그를 따르는 신하들.
카일 푸르커스의 신하들과 카일을 따르는 부하들.
나를 따르는 신하들과 끝까지 중립의 자리를 고수한 귀족들.
그레이트 홀에 모인 사람들은 약 천 명이 넘는다. 이게 모두 프루커스 가문의 세력이다. 원래는 이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번 전쟁을 통해 영지의 크기를 대폭 늘렸고, 복속한 가문이 제법 있었다.
전쟁에서 승승장구하며 그 전리품도 확실하게 챙긴 것이다. 프루커스 백작가는 작은 공국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나는 유리아와 함께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붉은 융단을 걸었다. 유리아는 메이드복이 아닌 파란색의 드레스를 입었다. 그 누구도 그녀가 메이드라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대단한 기품이었다.
일부러 걸음 속도를 늦추었다.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저분이 유진 프루커스…. 불패의 영웅이자, 라펠리 왕국의 황금손이며, 최연소 오러 마스터인가…. 바다까지 지배했다지? 역사에 나올 대업적을 두루 갖추었군…. 장남인 젠트 프루커스가 상대가 되지 않는 것도 당연하지.”
“그나마 대적하고 있던 게 차남인 카일 프루커스 아니었나? 최연소 오러 마스터였던 그는 자기 동생에게 뒤처졌군.”
“저 여인은 누구지? 무척… 아름답군. 시선을 떼기 힘들 정도다.”
“은발의 푸른 눈…. 설마…. 아니, 우연인가…?”
“놀랍군, 놀라워.”
“새로운 바람이 부는가.”
“부인, 저분을 잘 보시오. 아들아, 저분의 얼굴을 잘 기억하거라. 저분이야 말로 차기 프루커스 백작가를 이끌어갈 영웅이니.”
“…빌어먹을. 줄을 잘못 섰어. 자네, 혹시 유진 남작님이 좋아하시는 물건이 뭔지 알고 있나?”
“내 여식을 추천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군. 내 여식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사랑스럽지만… 저 옆에 있는 여자는 격이 다르다.”
“앞으로 그의 시대가 열리겠구나.”
붉은 융단의 끝에는 엔티온과 엘라인이 앉아 있었다.
나와 유리아는 그들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 귀환했습니다.”
“유리아 그레이스…. 아니, 유리아 헬브리트가 가주님께 인사 올립니다.”
“…….”
엔티온은 입을 다물고 침묵했다. 주변의 사람들도 엔티온의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허나 그들은 경악의 기색까지 완전히 숨기지 못했다.
유리아 헬브리트.
유리아의 출신에 이런저런 트집을 잡는 놈들이 있을 수 있기에 헬브리트 공작가의 이름을 쓰기로 했다.
이건 유리아의 의견이었다. 유리아는 아직 힘을 숨기고 싶어 했다. 그 이유는 판테움. 아직 놈들은 유리아의 힘에 대해 정확히 모른다. 이 이점은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들었다. 헬브리트 공작가의 유일한 생존자라지.”
“예. 저는 사생아입니다. 저도 그 사실을 최근까지 몰랐으나, 우연히 연이 닿아 알게 되었습니다.”
“…됐다. 자세히 묻지는 않겠다.”
엔티온의 입가가 떨린다. 그가 유리아를 상대로 긴장하고 있었다. 미리 언질을 해놓긴 했지만…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유리아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차린 모양이다.
‘유리아가 알아차릴 수 있도록 기세를 내보였겠지. 그 편이 더 편하니까.’
그 엔티온이 사자 앞에 선 하룻강아지처럼 보였다.
“아버지. 두 가지의 청이 있습니다.”
“…말해 보라.”
엔티온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그의 안색이 한결 편안해진 것 같았다.
“유리아와 결혼하고 싶습니다.”
“…허락한다. 헬브리트 공작가가 명문 귀족 가문이었음을 모르는 이가 없다. 그녀는 비록 사생아라고 하나, 그 혈통을 이었으니 자격이 있다. 또한, 내 듣기로는 헬브리트 공작의 유산을 그녀가 이어받았다고 들었다.”
“네. 그러합니다.”
유리아가 차분히 대답했다. 사방의 귀족들이 숨을 들이켰다. 헬브리트 공작은 한때 재상이었으며, 실질적인 왕국의 주인이 헬브리트 공작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던 인물이다. 그런 이의 유산이니 얼마나 대단할지 대략적이나마 짐작하는 것이다.
“허나, 지금은 전시.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식을 올리기엔 마땅치 않으니, 지금은 약혼으로 끝내고 전쟁이 끝난 뒤에 길일을 잡아 식을 올려라.”
“네. 아버지. 따르겠습니다.”
“두 번째 청은 무엇이냐?”
“아버지는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전쟁에서 공을 가장 많이 세운 형제에게 작위를 물려주겠다고. 저는 형제 중에서 가장 많은 공을 세웠습니다. 카일 형은 저를 지지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세운 공적은 아버지의 공적보다 더 높다고 확신합니다. 아버지, 제게 작위를 물려주십시오.”
“유진 남작!!”
노성이 터졌다.
엔티온이 아니다. 그의 주위에 서 있는 늙은 가신들이다.
“이게 무슨 무례요!”
“유진 남작! 예를 갖추시오!”
“그 발언은 가주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발언이오!”
나와 유리아는 엔티온의 허락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주위를 빙 둘러 소리 친 가신들을 천천히 둘러봤다. 그 얼굴들을 빠짐없이 기억한다. 살생부는 이미 작성되고 있었다.
“저! 저! 저…!!”
“유진 남작!! 무슨 짓이오!”
“무릎 꿇으시오, 유진 남작!! 가주님의 앞이오!!”
“아버지! 유진은 프루커스의 권위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유진에게 벌을 내리십시오!!”
늙은 가신들과 젠트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발악했다.
엔티온이 눈살을 찌푸리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는 노골적으로 기세를 퍼뜨렸다. 오러 마스터의 위압에 가신들과 귀족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나는 물러서지 않고 맞대응했다. 나 또한 오러 마스터다.
기세 싸움이 일어났다. 내가 좀 밀린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오러 마스터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반면 엔티온은 오러 마스터로서의 경력이 길었다.
허나 나는 그의 기운을 담담하게 받아냈다. 그의 매서운 눈길도 전혀 피하지 않았다.
엔티온은 한숨을 내쉬며 기세를 거둬들였다.
“유진. 네 말이 옳다. 이 자리에 어울리는 주인은 네가 되었구나. …이 자리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
“감당하고도 남습니다.”
“마음에 드는 대답이다. 오늘 네게 이 가주 자리를 양도하겠다. 단, 조건이 있다.”
치솟는 짜증을 누르고 최대한 차분하게 물었다.
“……어떤 조건입니까?”
“형제 사이에 있었던 일은 묻어라.”
“어제 있었던 일도 말입니까?”
“……그렇다.”
“그러겠습니다.”
“좋다, 유진. 이제 네가 프루커스의 주인이다. 계승식은 전시이니 약식으로 진행하겠다. 네가 원한다면, 따로 날을 잡아 계승식을 시행하겠다.”
“약식으로 충분합니다.”
나는 웃었다.
카일과 젠트? 원래 계획대로 살려는 준다. 살려는 둘 것이다.
이날, 나는 프루커스 가문의 주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