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034화 (1,034/1,497)

EP.1034 3부 3장 21

"얘들아, 이거 어떻게 하면 좋지?"

"운명이에요. 받아들이세요."

"오빠야가 성주가 되는 게 더 낫지 않나? 그짝 애들도 그렇게 생각할걸?"

"......."

신라와 하랑은 암흑여신의 생각에 적극적으로 찬동했다.

그러니까.

내가 테라의 주인이 된다?

"???"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적인 이야기지만, 지금 상황이 아예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현재 원래 '성주'라고 불러야 할 존재는 없다.

대신 어둠의 존재가 자신이 성주의 역할을 대신하겠다는 식으로 테라를 오염시키고 있다.

지금은 아마도 초기 단계.

당장은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위험한 요소는 크게 없다.

솔직히 위험한 건 20년의 지구 쪽이 더 위험하다.

거기서 어떤 변수가 이쪽으로 넘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변수가 가득가득한 그게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20년의 지구에서 일어나는 변수를 차단하기 위해 내가 성주가 된다고?"

"네. 물론 '창염의 피닉스'였던 건 숨겨야 하겠지만, 그래도 20년의 지구가 계속 이대로 오염되는 걸 방치하는 것보다는 나아요."

"내도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 테라를 이상하게 만드는 건 솔직히 시꺼먼 놈들보다 지구 사람들아이가."

"나치즘을 퍼뜨리기도 했죠."

"......."

그런가?

진짜 안 좋은 영향은 지구 사람들이 퍼뜨리는 건가?

"음.... 그렇다고 내가 성주가 되는 건...."

"성주가 되라는 게 꼭 그 '성주'가 되라는 건 아니에요. 말 그대로 테라의 지배자이자 관리인이 되라는 거죠."

"아무리 테라가 조금 많이 이상하다고 해도, 그래도 한 세계의 주인이 되는 게 꼭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닐 꺼 아이가."

"......."

테라의 사람들을 지구로부터 구한다.

딱히 이상한 말은 아니다.

지금 상황이 그러니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있어요. 만약에 우리가 테라로 넘어간다면...."

"오빠야, 거기는 중혼이 범죄가가 아니다. 그체?"

"......!"

아.

그렇구나.

신라나 하랑, 유나가 기를 쓰고 테라로 넘어가고 싶어 하는 이유.

"...너무 나만 생각한 건가."

이들은 나의 여자이기 전에, 한 아이의 어머니로서 판단을 내린 것이다.

지금 이 나라, 이 세계는 우리들의 아이를 키우기에 그다지 좋은 곳이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건 어찌 보면 테라 쪽이 더 낫다고 볼 수 있다.

그곳에서는 아이들이 이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도 마음껏 사용할 수 있고, 또 이곳보다도 더 자유롭게 지낼 수 있으니까.

"그걸 생각 못 했어."

육아 환경이라는 요소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자꾸만 늘어나는 여신들에 대한 부담감만 생각했지, 우리가 키워나갈 아이들이 자랄 환경에 대해서는 잊고 있었다.

나는 일반인이니까.

일반인이 지구에서 자라는 건 크게 부담이 없지만, 반인반신의 아이들이 한 명의 아버지를 두고 자라는 건 분명 교육 여건상 좋지 않다.

어쩌면 이게 그거 아닐까.

자녀를 위해 자신이 바라는 걸 포기하는 부모의 마음.

한 개인으로서, 남자로서 창염을 위한 피닉스로서의 삶을 이전에 살았다면.

신라가 이 세계로 넘어온 이후.

나는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살아야 함을 다시금 깨달았다.

"...이미 충분히 마음먹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네."

짝.

손으로 뺨을 강하게 두드리고 나니 정신이 확 든다.

아직 아이는 태어나지 않았지만, 아이들을 위해-아버지로서 미리 아이들을 위한 준비를 하자.

그래.

그거다.

"테라를 아이들을 기르기 위한 환경으로 바꾸어나가겠어."

절대왕정에 문란하기 짝이 없는 빛이국.

지하에서 나오지 않는 가이아나치.

그리고 아그라마인.

그 외에 아직 보지 못한 곳들이 많지만, 그곳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많은 악으로 가득 차 있을 터.

"내가 테라를 새롭게 바꾸어나가겠어."

테라의 주인, 피닉스로서.

"네오 청화단, 새롭게 시작이다."

우리의 플랜을 하나.

"건전 테라포밍."

22금의 세계를 전연령의 세계로 바꾼다.

자라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하여.

* * *

호기롭게 진정한 의미에서의 테라포밍을 선언한 지도 어느덧 닷새째.

나는 신라와 하랑, 그리고 마도기어를 통해 이야기를 나눈 유하나 히카리를 통해 모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지금.

대지의 장막이 열리고, 나는 그 안에서 나올 여인을 맞이했다.

"많이 컸네."

"...이제 안 올려봐도 되겠다, 단장님."

안에 나타난 이는 정말 여신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미인이었다.

상스럽게 표현하면 성인용 잡지 화보는 물론이거니와 인터넷에서 '레전드'라고 표현할 몸매의 미녀.

다소 천박하고 상스러운 표현이었지만, 이것만큼 누리를 확실하게 표현하는 비유법이 없었다.

'공식 사이트에서 그렇게 설명하는 걸 어떡해.'

19금 미연시에서 이렇게 설명하는 걸 그대로 읊었을 뿐이다.

좀 더 플레이어답게 이야기를 하자면....

"단장님. 나 지금 딱 그 모습 아님?"

"뭐?"

"일진 여고생이 생각보다 엄청 좋은 대학 들어가서 과거 세탁한다고 운동 엄청 하고 여신포스 내는 거."

설마 당사자가 이렇게 말할 줄이야.

하긴 매번 누리의 진화를 게임으로 봤던 나도 볼 때마다 감회가 새로운데, 당사자인 누리는 기분이 어떨까.

"새롭게 태어난 기분이 어때?"

"기모링."

"......."

"뭐, 뭐."

5년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급식은 급식이었다.

"유나야...."

"누리의 아이덴티티잖아요."

정령에서 인간의 형태를 갖춘 유나는 누리의 옆에 서며 배시시 웃었다.

5년의 시간 경과-진화에 따라 누리는 유나보다 키가 커졌고, 가슴도 상당히 커졌다.

그래.

이제는 완벽한 성인이다.

"단장님."

"응."

"이야기는 들었어. 단장님에 대한 모든 걸."

누리는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고생한 기념으로 내가 한 번 안아줌?"

"나는 외간 여자에게 함부로 안기지 않는다."

"와, 철벽 오지네. 언니들이 느낀 게 이런 기분인가?"

"너...."

"으히힛."

누리는 어깨를 으쓱이며 내게 팔을 뻗었다.

"고생했어요, 단장님. 지구에서도, 그곳에서도. 청화단의 일원이자 당신에게 구원받은 지구의 사람으로서, 당신의 노고에 정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김누리답지 않게 진지한 태도에 나는 괜히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김누리라면....

"응, 이 정도 했으면 된 거 아님?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자, 단장님."

"본론?"

"청화단 업무지! 슉슉, 슉슉슉."

누리는 주먹을 앞으로 내질렀다.

"빨리 껌둥이 놈들을 처리하고-"

"그건 인종차별적인 발언 같으니까 정정하자."

"와, 단장님 칼같이 교정하네. 근데 나도 어른인데 이런 거 쓰면 안 됨? 나...."

누리는 히죽거리며 두 손을 허리에 올렸다.

마치 뭔가를 터뜨리기 전에 일 발 장전을 하는 듯한-

"나 김누리! 드디어 당당히 섹스를 입에 담을 수 있는 성인이 되었다 이 말씀!"

"......."

그래.

이게 김누리긴 하지.

"아, 쎅쓰! 나도 드디어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마음껏 섹스할 수 있게 되었지롱! 이예에에!!"

"유나야?"

"좀 더 자세히 들어봐요, 오빠."

누리의 교육을 책임진 유나는 누리의 폭주에 너무나도 담담했다.

"누리가 그냥 섹스하고 싶어 하는 건 아니니까."

"뭐라고?"

"단장님."

누리는 진지한 얼굴로 내게 손을 뻗었다.

"나랑 섹스해보쉴?"

"얘가 미쳤나."

"아얏!"

나는 바로 누리의 정수리에 주먹을, 다소 세게 내리쳤다.

"이거 폭력임!! 와 씨, 진짜로 때렸어!!"

"여기 지구 아니다. 고소할 수도 없지."

"와, 나는 뭐 섹스하고 싶다고 말하면 안 되나?!"

"나는 유부남이다."

"아, 거, 섹스 좀 해보겠다는데."

누리는 입술을 삐쭉 내밀며 유나와 팔짱을 꼈다.

"언니. 어떻게 하지?"

"괜찮아. 그럴 때를 대비해서 미리 플랜 Z9까지 준비해놨으니까."

"유나야?"

"오빠. 누리가 섹스하고 싶다고 말하는 건 단순히 섹스 자체에 흥미가 있다는 게 아니에요."

유나의 눈은 나를 향했다.

"오빠랑 섹스하는 거에 흥미가 있지."

"......왜?"

"나, 그거 봤음. 성교육으로. 로맨섹스 판타지 드라마."

"......."

성교육이라고 하니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아니, 너는 애한테 그런 걸...."

"뭐 어때요? 요즘은 어린 애들도 큥플릭스로 19금 컨텐츠 막 보고 그러는데."

"아니, 잔인해서 19금이 아니라 그 씬도 나오는 거 잖아."

"호기심 많은 애들은 여러 번 돌려서 보고, 관심 없는 애들은 그냥 '섹스씬인가보다'하고 넘긴다고 하던데요."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는 건 난가? 아니, 그렇다고 해도 누리야. 그건 아니지."

"왜요?"

"왜긴 왜야?"

"단장님, 뭔가 오해를 하는 것 같은데."

김누리는 너무나도 당당한 얼굴로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섹스하고 싶어서 단장님이랑 하겠다는 게 아니라, 섹스를 한다면 단장님이랑 하는 게 좋겠다는 거예요."

"응?"

"인생에 있어서 단 한 번 섹스한다면, 그건 단장님이랑. 오케이?"

"......."

누리의 단언에 나는 뒷골이 당겼다.

"이게...젊음인가."

"단장님 은근히 보수적이네요. 혹시 우파에요?"

"아니, 그게 무슨 저세상 개소리야?"

"키히힛, 재밌네요. 단장님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분인 줄 알았으면 진작에 개드립치는 건데."

"그래, 개드립으로 끝내자...."

"근데 섹스는 진담임."

"......."

눈앞이 아득해진다.

옆에서 유나가 나를 부축했지만,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다.

"그럼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단장님. 이제 나는 뭐하면 됨? 개인적으로 그 사람 찾고 싶은데."

"흑염룡?"

"응. 아영 언니."

"왜 아영 언니야?"

"그야 단장님 떠나고 단 뒤로 남자로 못 돌아와서?"

"......."

아아.

그렇구나.

그는 그녀가 되었구나.

"새로 주민등록증 파서 진짜 여자 됐음."

"끝이네, 그러면."

진정한 의미에서 TS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흑염룡은 지금 위치를 찾고 있다. 반드시 구할 거니까, 안심해."

"휴, 다행이다. 그래도 나 구하려고 했는데."

"구할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럼 이제...본격적으로 건전한 테라포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까."

"뭔데?"

"간단해."

너무나도 간단한 일이다.

"이 세계의 인터넷을 모두 끊어버린다."

이 모든 건 성주의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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