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31 3부 3장 18
좆됐다.아무리 생각해도 좆됐다.
왜 좆됐는가 하면,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튀어나오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내가 20년의 지구에서 얼마나 위통을 앓으면서 싸웠는데.'
20년의 지구에서는 변수가 너무 많았다.
내게 주어진 기회는 단 한 번뿐이었고, 그 한 번의 기회 속에서 신라를 살리는 트루-엔딩으로 나아가기 위해 나는 모든 변수를 차단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변수는 발생하고, 나는 그 상황에 맞게 대응해야 했다.
이번에는 그래도 조금 유연하게, 또는 느긋하게 대처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천가을 무조건 여기 와있겠네.'
단언할 수 있다.
이건 내가 천가을에 대한 불평불만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천가을과 함께 하는 자가 두 명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
'만약 천가을이 환룡이랑 싱크로를 했다면?'
어떤 특정한 조건이나 제약 같은 건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나마저도 세계를 뚫고 나와서 새로운 엔딩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석하랑과 이유나도 세계를 뚫고 나왔는데, 천가을이라고 불가능할 이유는 없다.
비록 인간의 성격이 조금 그렇다고 할지언정, 환룡과 싱크로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천가을이나 샤오린이나 조건은 같았다.
둘 다 한 번씩 죽어서 괴인이 된 자들이었고, 단지 당시 피닉스였던 내가 주인이었느냐 환룡이 주인이었느냐 하는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내가 20년의 지구에서 증발하며 모든 괴인과의 연결이 끊긴 이후.
괴인으로서의 계약을 환룡이 이어받았다면 환룡과 천가을이 하나가 되지 못할 것도 없다.
"...아니지."
천가을은 일단 변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거라고 생각을 하고 넘어간다면, 진짜 위험한 변수는 따로 있다.
"........"
나의 이미지.
피닉스로서 쌓아온 이미지.
창염의 피닉스로서 누리가 말한 대로 '푸흐흐'하던 건 아무래도 좋다.
지금 중요한 건 당장의 이미지다.
'야동이나 뿌리는 남자가 될 수는 없어.'
나는 현재 암흑여신을 통해 이 세계의 사람들에게 19금 야동을 뿌렸다.
애초에 이 세계에서 혼자 방에 틀어박혀서 여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것도, 그걸 또 좋다고 마음껏 벗어서 자신의 몸 안에 있는 점까지 보여주는 여신도 문제지만.
그런 이들의 상황에 맞게 대응하겠다고 야동을 뿌린 나도 지금 문제가 된다.
전후사정을 파악하지 못하고 이런 상황을 본다면, 나라는 존재가 하드 업로더가 되어버린 셈이니까.
이쪽에 있는 이들, 신라나 하랑이나 유나와는 충분한 이야기가 된 뒤에 저지른 일이다.
그러나 과연 저들이 이해할까?
내가 이런 짓을 저지르기 전에 이미 아그라마인은 이런 상태였다고 강변을 하면 믿어줄까?
전혀.
믿지 않을 것이다.
나라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당장 조처를 해야 한다.
"잠깐 이쪽의 일을 처리하도록 하지. 그쪽도 그쪽 나름대로 정리가 필요할 테니, 세 시간 뒤에 연락할 수 있도록."
[알겠어요. 그, 주변에 알리는 건….]
"그러지 마. 그러다 다 죽어. 이세계가 있다는 걸 알면 넘어오려고 할 자들이 한둘이 아닐 거다."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려고 했거든요?]
은유하는 볼을 부풀리며 대놓고 불만을 드러냈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도 않았어요. 누리에 대한 것도 저희가 지금 확인을 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알렸거든요.]
[이능력으로 인해 지금 다른 공간에 있다고 했습니다, 단장님!]
"...역시. 빈틈이 없어. 그쪽으로는 잘 부탁한다. 그럼."
나는 마도기어를 벗은 뒤, 대지의 마력과 창염의 마력을 이중으로 감싼 구체를 만들어 봉인했다.
정확히 세 시간 뒤에 다시 연결을 하면….
아니, 변수를 차단한 뒤에 바로 연결한다.
나는 바로 날개를 펼쳐 암흑여신의 신전으로 향했다.
신전이라고 해야 할 지 집이라고 해야 할 지, 앙그는 여전히 방에서 19금 영상을 편집하고 있….
"아, 하앙…."
정정.
자위하고 있었다.
나는 이 광경과 조금 전 유하나 히카리와 이야기를 나눴던 장면이 눈앞에서 오버랩되며 눈앞이 아찔해졌다.
'이건 안 돼.'
당장 누리에게도 보여줄 수 없다.
나는 암흑여신의 방문을 열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계획은 중지다."
"뭐…?"
"부작용이 예상되는 이상, 더 쓸 이유는 없어. 더 이상의 공급은 없다."
"자, 잠깐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업로드를 중지...하겠다고?"
"그래."
내 말에 암흑여신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가기 시작했다.
"일단 거기 넣고 있는 손은 빼지?"
"...싫은데."
"뭐?"
"내가 왜 빼고 있어야 하는데?"
암흑여신은 아무렇지 않게 내 앞에서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가기 전까지는 다음 시즌은 어떤 씬으로 하겠다고 다 구상을 해놓고, 이제와서 이러면 내가 뭐가 돼? 내 신도들은? 네가 시즌2올린다고 해서 지금 '시즌2를 기대해주세요'라고 언급까지 했다고. 그런데 이제와서 공급을 중단…?"
암흑여신의 머리칼이 위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림자는 마치 칼날처럼 나를 향해 날을 세웠다.
"이거, 드리프트야."
"......."
"이걸로 친구 먹어놓고 이제와서 딴 소리를 한다고…? 너, 지금 다른 친구 생겼지?"
뜨끔.
"나 말고 다른 친구가 생긴 거야. 이런 취미를 들키면 안 될 사람들과 인연이 생긴 거지. 그래, 인싸가 되시겠다…? 아니면 아싸의 문화권에 들어와서 아싸들 엿 한 번 제대로 먹였으니까, '잘 놀다갑니다'하면서 떠나가려고? 안 돼."
앙그가 이렇게 말을 청산유수로 잘 하던 여자였던가.
"갈 거면 로맨섹스 판타지 드라마 10만개 다 내놓고 가."
"잠깐 기다려. 지금 이 세계는 미증유의 위험에 놓여있다."
"내 세계는, 아그라마인 사람들은 큥플릭스 폭파라는 미증유의 위험에 처해있어."
"아니, 고작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잖아?"
"그 한 달 동안 있었던 센세이션을 누구보다도 더 격렬하게 폭발시킨 건 너야, 이방인."
사락.
앙그의 머리칼 끝이 내 목젖을 겨눴다.
대지모신의 신격, 유나가 지금 누리를 가르치고 있는 이상 나는 S급 피닉스의 아바타로 암흑여신을 상대해야 한다.
"선택해. 나랑 계속 친구인 상태로 지내든가, 아니면 나한테 십만 비디오 넘기고 절교하든가."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결국, 내게는 지금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다.
"우리, 사업의 방향성을 바꿔보자고. 친구."
"방향성…?"
"그래. 배가 고픈 자에게 물고기를 주기보다는 물고기를 낚는 법을 가르쳐주는 게 더 좋은 거 아니겠어?"
"그 말은…."
"그래."
나는 아그라마인의 전자 세계를 가리켰다.
"이들이 직접 만들어내게 하는 거야. 적어도 100명 중에 한 명은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로서 새로운 걸 만들어내겠지. 아니면...이미 그러고 있을지도 모르고."
"......방법은?"
"간단해."
앙그를 향한 신앙이 무너지지 않게 하면서 동시에 더 이상 나를 헤비 업로더로 만들지 않는 기책.
"...오덕코인이다."
* * *
여신의 로맨섹스 판타지 드라마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여신을 향해 기도하고-집에서는 한 발 빼겠지만-절까지 하는 이들은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고, 여신상이 있는 신전의 사제들도 나날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암흑여신 만세."
암흑여신을 따르는 신관이자 대사제, 암흑여신의 대리인인 '느와르'는 매일같이 몰려드는 신도들 덕분에 오늘도 밤잠을 설쳤다.
-다음 화는요?
-여신께서 다음 화는 언제 보내주시는 겁니까?
-1시즌의 추가 촬영은 있습니까? 당연히 섹스의, 섹스를 위한, 섹스에 의한 촬영이겠지요?
그녀를 찾는 신도들은 대부분 여신의 뜻을 물었다.
이전에도 여신의 뜻을 묻는 이들이 있었지만, 로맨섹스 판타지 드라마의 도입 이후 여신의 드라마를 찾는 이들은 나날이 늘어만 갔다.
물론, 그들 중에는 신을 믿기를 포기한 자들도 있었다.
-신께서는 왜 남자와 섹스를 하신 겁니까?
-여신께서 다른 남자의 자지에 더럽혀지셨어…!
-나만의 여신님이…! 다른 남자와 섹스나 하는 걸레가 되었다고!
신성모독이다!
신관과 사제들은 급히 암흑여신을 음해하는 이들을 잡아 감옥에 가뒀다.
뭐?
암흑여신이 비처녀 개걸레?
어찌 아그라마인에서 살아가면서 여신을 상대로 그런 험한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남자면 남자를 자신으로 투영해서 섹스하는 감각을 느껴보라는 암흑여신님의 배려도 모르는 불경한 자들이…."
이단자들을 생각할 때마다 화가 치밀었다.
그들도 앞에서는 그렇게 난리를 피워놓고 정작 뒤에서는 '암흑여신_뒷치기_모음집'이라고 편집 영상을 모아 한 발 빼지 않았는가.
앞뒤가 다른 모습에 느와르는 어처구니가 없을 뿐.
"하아…."
느와르는 한탄했다.
"암흑여신께서 이렇게 열심히 사람들에게 직접 신앙을 전파해주고 계신데, 왜 사람들은 이러는 걸까."
왜 세상 사람들은 몰라주는 걸까.
암흑여신께서 직접 남자와 섹스를 하는 장면까지 찍으면서 서로 섹스하고 화목하게 지내라고 알려주는 것을.
"암흑여신이시여, 부디 당신의 뜻이 세상에 널리 퍼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느와르는 여신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뒤로 다른 사제들도 함께 무릎을 꿇고 여신상에 기도했다.
사아아.
여신상이 또 빛나기 시작했고, 느와르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나의 신관이여.]
"아아, 암흑여신이시여…!!"
그림자 속에서 나타난 암흑여신은 느와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다음 화는 없다.]
"엣…."
자신도 모르게 암흑여신에게 바라는 것이 들킨 것 같아 느와르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하지만 나의 아이야. 나는 너희들의 가능성을 보고 싶구나.]
"가능성...이요?"
[그래.]
사아아.
여신을 중심으로 무언가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시, 소설, 노래, 이야기, 그림, 영상, 무엇이든 좋다. 너희가 진정으로 나를 믿는다면, 여신에 대한 신앙을 보여라.]
"그 말씀은…."
[언젠가 너희들의 신앙이 내게 닿는 날, 나는 다음 신앙으로 너희들에게 다시 나타날 테니.]
"여, 여신이시여…!!"
사아아.
암흑여신은 사라졌다.
느와르는 허탈함에 무릎을 꿇었지만, 신관들은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무언가에 비명을 지를 듯이 기뻐했다.
"아, 아아…! 글이, 생동감 넘치는 글이…!"
"나의 손이 펜을 쥐라고 소리 지르고 있다…! 야짤! 더 많은 야짤!"
"3D 모델링으로 팬메이드 영상을 만들어도 된다고…? 크흑, 여신이시여…!!"
"......."
신관들은 급히 손목의 기기를 두드려 신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다.
느와르 또한 마음을 다잡고 자신에게 주어진 계시를 모든 신도들에게, 아그라마인 전체에 알렸다.
"신께서는 자신을 모티브로 한 코스프레 야동을 원하신다."
아그라마인.
대 야짤시대의 개막이었다.
"오빠야, 그칸다고 오빠가 포르노 업로더가 아니게 된 건 아니데이?"
"나는 모르는 일이다. 저 영상이 내가 퍼트렸다는 증거 있나?"
"자지가 오빠야 거랑 똑같다 아이가?"
"내 자지를 다른 사람들이 본 적이 없는데 무슨?"
"피닉스로이드 자지랑 똑 닮았구먼 무슨."
"......."
"......아무튼, 난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