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027화 (1,027/1,497)

EP.1027 3부 3장 14

"유나야, 네 도움이 필요해."

현실로 돌아온 나는 회사 소속의 스트리머, 내팬티보라색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너의 계정명으로 앙그와의 떡신을 모으는 거야. 공모전이지."

"떡신 공모전이라니, 그건 좀 충격적이네요."

유나는 떫은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대상은 앙그로 한정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렇지. 그리고 검수는 저기 직원들에게 맡기고, 시상도 직원들에게 맡기는 거야."

"그럼 저희의 역할은 뭐죠?"

"그걸 테라에 중계하는 거?"

"과연."

현실 플레이어들이 앙그와 섹스를 한 걸 모집하여 테라에 투하한다.

당연히 앙그의 외형을 하고 있기에 아그라마인 사람들은 여러 발을 뺄 터.

"한 번 로맨섹스 판타지에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을 거야. 공모전을 준비하는 자들 전부 음습한 생각 때문에 엄청 많이 참여할걸?"

"정말요?"

"그래. 너한테 자기 섹스 동영상을 보여주겠다는 생각 때문에."

"와...."

유나는 질색을 했지만, 실제로 그런 이유로 공모전에 참가하는 자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대부분은 관리 직원에 의해 검열되겠지만, 그들의 음습한 욕망이 담긴 파일은 테라에서 어둠의 세력을 없애는 데 큰 도움으로 승화될 예정이다.

"어차피 방송에서 떡신 스트리밍을 할 것도 아니니까 큰 부담은 없겠...지?"

"네. 부담 없어요. 공모전의 주제도 어차피 섹스가 중심이 아니라면, 어떻게 섹스까지 이어 나가는가가 핵심이잖아요."

"그렇지."

성애씬의 화려한 테크닉을 바라는 게 아니다.

그런 건 이미 나의 데이터베이스에 차고 넘친다.

내가 바라는 건 연애초보들, 혹은 연예에 있어서 숙맥이거나 이제 막 연애를 본격적으로 하는 자들의 데이터.

게임에 엔드 컨텐츠가 있으면, 뉴비나 초보자들이 게임에 적응하고 성장해나가는 단계도 필요한 법.

그게 바로 공모전을 통해서 얻어낼 수많은 자료다.

비록 유나에게 자신과 앙그의 섹스를 보여줘서 부끄럽게 만들겠다는 이도 존재하겠지만, 그런 부작용을 감수하고서라도 충분히 긍정적인 자료를 뽑아낼 수 있을 터.

"유나야, 도와줄래?"

"저야 당연히 오빠 계획인데 찬성이죠. 그런데...이왕 하는 거 이렇게 하는 건 어때요?"

"어떻게?"

"공모전을 세 개 주제로 여는 거예요."

"세 개나?"

조금 힘들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어차피 힘든 일은 회사에 있는 유나전담팀이 도와주는 거니까 딱히 상관은 없을 듯했다.

"어떤 건데?"

"아지다하카를 대상으로 하는 씬, 앙그를 대상으로 하는 씬, 그리고...."

사아악.

유나는 자신의 머리와 눈을 검은색으로 만들었다.

"이유나와 싱크로한 앙그를 대상으로 하는 데이트씬."

"...역시 유나는 천재야."

아지다하카를 상대로는 경험 있는 누나계열의 여자와.

앙그를 상대로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찐따계열의 여자와.

그리고 암속성 퍼펙트 유나를 상대로는 하라구로인 유나와.

아, 하라구로는 아닌가?

원래 유나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좋다고 생각해."

"그렇죠? 후후."

유나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간단한 기획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옆에서 기획서에 들어갈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큥기옥' 투하를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그런데 오빠, 이거 어떻게 올릴 거예요?"

"응?"

"오빠랑 저희랑 데이트하는 건 길게 스토리라인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저건 너무 스토리가 중구난방이잖아요."

"그거라면 방법이 있지."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어떤 어플 하나를 가리켰다.

유나는 그걸 보자마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랐고, 나는 그런 유나를 향해 가볍게 볼에 키스했다.

"큥플릭스. 공모전으로 올라올 큥큥 영상들은 모두 여기에 단편으로 올라갈 거야."

"...오빠, 진짜 좋은 생각이에요."

유나는 내 볼에 키스하며 배시시 웃었다.

"그럼 저희, 아이 만들기 다큐멘터리 한 번 찍어볼까요?"

"잠깐만, 유나야?"

"자, 먼저 남자의 자지를 발기시키고...."

큥큥.

* * *

이곳은, 한국 어딘가.

대외적으로 출입 금지로 지정된 섬, 모래사장에 검은 한복을 입은 여인이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을 감았다.

여인은 마치 죽은 자를 애도하듯, 모래사장 중에서도 유독 주변에 푸른빛이 감도는 곳 위에서 홀로 조용히 주저앉았다.

"......."

올려다보는 밤하늘은 언제나처럼 평화로웠다.

부서진 달은 여신의 힘으로 새롭게 재창조되어 밤하늘에 다시 영롱히 반짝이고 있었고, 세계는 평화를 되찾았다.

하지만 그녀가 이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아남은, 이 나라를 강하게 만들어준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그는 어디론가로 홀연히 사라졌고, 남은 거라고는 오직 그가 남긴 파편뿐.

"10호."

"예, 아가씨."

"회장으로부터 뭔가 특별한 움직임이 있었나요?"

"없습니다."

"...있을 겁니다. 분명. 분명히 자기만 알고 공유하지 않으려고 하는 아주 영악한 짓을 하나 하는 게 틀림없어요."

백희아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제가 나랏일을 신경 쓰는 사이, 분명 교수님이랑 짝짜꿍해서 그 사람의 흔적을 찾고 있을 거예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당신도 당신 나름의 사정과 위치가 있는 걸 알아요. 호문클루스를 제작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건 은유하와 히카리니까. 하지만 나만을 위한 사람이라면, 적어도 조금은 저를 위해서 알려주세요."

"......저도 아가씨를 위해서, 알고 있는 바를 모두 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10호는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게 주어지는 정보 중에는 그런 쪽에 대한 정보가 원천 차단되어있습니다. 알게 된다면 바로 아가씨께 말씀드릴 겁니다. 무조건."

"고마워요. 정말."

백희아는 고개를 돌렸다.

바람이 그녀의 머리를 흔들었고, 어느덧 어깨까지 자란 검은 머리칼이 옆으로 흩날리며 백희아의 얼굴을 가렸다.

"...나쁜 사람, 정말."

아마, 바람이 그녀의 우울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이곳에 당신을 위한 섬을 마련했는데, 정작 사람이 없네요."

"아가씨."

"...법도 바꾸고, 정말 모든 준비를 다 했는데."

"긴급 연락입니다. 유성입니다."

"...연결하세요."

백희아는 순식간에 표정을 바꿨다.

냉철하고 차가운 얼굴로 마도기어를 두드린 백희아는 화상 너머에 있는 금빛 존재에 다소 당황했다.

"회장님?"

[VIP, 혹시 누리 데리고 있어요?]

"누리 양이요?"

백희아는 김누리와 친하다.

그가 어둠의 정령 앙그를 과연 누구와 싱크로시킬까 고민했을 때 비록 백희아가 이순위였지만, 김누리는 흔쾌히 그 자리를 양보한 뒤로 백희아는 김누리를 상당히 신경 쓰게 되었다.

비록 나이가 많이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마음이 잘 맞는 친구.

...누군가가 '친구없는 찐따들끼리 어울려서 단짝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건 결코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오롯이 중상모략이며, 한 인격체에 대한 음해 그 자체다.

분명 백희아와 친한 건 사실이고, 자주 연락을 주고받기는 하지만....

"저랑 지금 같이 안 있어요. 왜요? 누리한테 무슨 일 있어요?"

[누리의 마도기어가 지금 연락이 안 돼요.]

"...그게 무슨."

[갑자기 실종되었다고요. 하랑이가, 유나가 그랬던 것처럼.]

"......."

백희아는 갑자기 숨이 막혔다.

-석하랑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이유나는 어디로 사라진 거죠?

-두 명의 여신이 사라진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루에도 수십 번 듣는 이야기.

다른 정상들과 통화를 하면 언제나 비공식 채널로 둘의 행방에 대해 묻는 자들이 수두룩했고, 그럴 때마다 백희아는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모른다!

실제로 몰랐다.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존재가 사라졌는데, 백희아라고 그 행방을 찾을 수 있으랴.

다른 간부들이 그 행방을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간부들도 그들의 행방을 전혀 알지 못했다.

"혹시 누리 말고 사라진 사람 중에 또 다른 사람 없어요? 주변에 친한 사람들 있잖아요."

[딱 한 명, 연락이 안 되는 사람이 있는데.]

은유하는 창백한 얼굴로 누군가의 얼굴 사진을 찍었다.

[흑염룡도 사라졌어요. 둘 다, 같은 시간에.]

"......."

둘이 동시에 사라졌다.

그렇다면 가능한 이야기는....

"일단 사랑의 도피는 아닐 거고."

[그렇죠?]

"그럼...혹시 하랑 씨랑 유나 씨처럼 된 거 아닐까요?"

[누리가요?]

"또 모르잖아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아직 중3인데?]

"......."

백희아.

그녀는 성인이기에, 굳이 법을 바꿀 이유가 없었다.

"...그걸 찾아봐야겠네요. 회장님, 혹시 S급 코어 한 2000개 정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만들려면 만들 수 있는데, 어디에 쓰려고 그러시죠?]

"...얼마 전에 저기 중동에서 연락이 왔거든요. '그 물건'을 찾았는데, 거래하겠냐고. 어쩌면 그 물건의 힘을 사용하면 누리의 행방을 좀 더 쉽게 알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건 그렇지만.]

"히카리 양에게 맡겨서, 한 번 분석해봐요. 그 물건의...큐브의 힘을 빌리면."

백희아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누리를 분명 찾을 수 있을 테니까."

마도기어.

개인 연락처에 저장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아마 '유이'한 친구.

김누리.

그리고 비록 싱크로는 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앙그에게도 한 번 연락해볼게요."

아직.

정령으로서의 힘은 여전히 그녀에게 남아있으니까.

* * *

그 시각, 테라 어딘가.

"......."

단정한 옷차림의 소녀는 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이게 머임?"

주변은 온통 녹음이 우거진 나무 뿐.

보이는 것은 생전 처음 보는 형태의 나무뿐이었고, 메타세쿼이아 뺨치는 높이로 우뚝 솟아오른, 지구에서는 볼 수 없을 것 같은 환경이었다.

"헐."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소녀는 청화단의 간부로서, 침착하게 자신의 마력을 일으켰다.

"...힘은 아직 살아있는 것 같은데."

다행히 마력은 남아있다.

진짜 문제는 마도기어가 먹통이라는 것.

"위성 안 잡힌다는 건 말이 안 되는데...."

교수, 히카리가 달 속에 함께 넣어둔 위성 덕분에 인류는 언제 어디서든 마도기어의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신호가 잡히지 않는다?

인터넷이 잡히지 않는다?

이건 심각한 문제가 있다.

"......혹시."

누는 얼마 전, 백희아가 추천해준 소설이 떠올랐다.

"......나 이세계 트립 당한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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