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021화 (1,021/1,497)

EP.1021 3부 3장 08 성전

어느 날.

세계가 멈췄다.

물론 거창한 말은 아니고, 네트워크상에서 여신이 야짤을 올리는 걸 잠시 멈췄다.

"......."

매일같이, 하루에도 몇 차례나 올라오던 야짤이 올라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저 업로드가 늦겠거니, 이번에는 얼마나 개쩌는 야짤을 가지고 올까 기대하고 또 기대했다.

그러나 한 시간이 지나고, 세 시간이 지나고, 반 나절이 지난 순간.

어라?

혹시, 여신께서 야짤 제작에 질린 건가?

라는 생각에 팬티를 내렸던 이들은 바지를 올리고 진지하게 고뇌하기 시작했다.

-신께서 우리의 간증을 시험하고 계신 건가?

-신께서 우리를 버린 건가?

네트워크라는 것이 만들어진 이래, 가장 먼저 올라온 건 여신이 자기 흉부를 가리키며 팔로 중요 부위만 가린 짤이었다.

아그라마인의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조금이라도 더 많이 야짤을 보기 위해 네트워크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처음에는 사진이었던 것이 어느덧 사진을 연속으로 이어 붙인 움짤이 되고, 텍스트와 음성 파일을 넘어 이제는 짧은 영상까지도 전송할 수 있을 만큼 발전했다.

다만.

여신은 지금까지 그 어떤 남자와도 섹스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오직 자위하는 게 끝이었고, 기껏해야 집어넣는 건 손가락 정도가 전부였다.

자신의 음란함으로, 음탕함으로 나라를 발전시킨 여신이 이제 와서 야짤 업로드를 그만둔다?

이는 아그라마인 전체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중대한 문제.

"신이시여…!"

아그라마인의 신관, '느와르'는 정말 오랜만에 신전의 여신상을 찾았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드레스는커녕 전라에 모자이크조차 없는 몸을 볼 수 있지만, 눈앞의 여신은 드레스에 면사포까지 두른 경건하고 성스러운 여신 그 자체였다.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저기 대지모신의 나라처럼, 당신께서 저희를 버린 게 아닌가 걱정하고 있습니다. 저희의 신앙을 시험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저희라는 존재에 대해 신물이 나신 건가요?"

대답은 없다.

하지만 신관인 이상, 유일하게 신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존재인 이상 대답은 반드시 들어야 한다.

"당신의 나라가 지금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불안감은 증폭될 것이고, 시민들은 밖으로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고통스러워할 것입니다. 여신이시여, 부디 대답을…!"

아그라마인의 존속을 위해, 대답은 꼭 필요했다.

그리고.

[나의 신관이여.]

"!!"

여신상에서 전해지는 익숙한 목소리.

사실 신관으로서 대화한 것보다 자위 영상에서 들린 신음으로 더 익숙한 목소리였지만, 신관은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전능하신 어둠의 여제시여, 부디 제게 길을 내려주소서."

[나의 신도들에게 말한다. 세계는 위기에 처해있다.]

"!!"

이것은, 신탁이다.

[출산율 저하. 테라 평균 출산율의 평균에도 미치지 않는 이 아그라마인은 약 100년 뒤, 한 해 출산율이 1% 아래로 떨어지는 미래에 닿게 될 것이다.]

"...예?"

[그렇게 되면 노인인구만 많아질 것이며, 젊은 층은 노인을 부양하기 위해 막대한 세금과 노동력을 내야 하겠지.]

"......."

신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신관은 신탁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고민했다.

"그러니까...하시고 싶은 말씀이…?"

[답은 섹스다.]

"예?"

[출산율 상승을 통한 인구 증가를 위하여, 내 너희들에게 섹스를 직접 전파하고자 한다.]

두근.

순간, 신관은 등허리에 전율이 일었다.

"설마…!"

[이것을 널리 배포하라.]

툭.

신관의 앞, 검은 안개가 순간 나타났다 사라졌다.

검은 안개가 사라진 곳에는 얇은 8gb USB가 하나 놓여있었다.

[그 안에는 내가 너희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섹스'가 담겨있다. 그것은 너희들을 위해 내리는 나의 '성전'이니라.]

"......."

사락.

여신상에 스며들어있던 검은 눈빛이 사라졌다.

신관은 조용히 성전을 집어 들었다.

"이것은…."

"우, 우오오!!!"

신관의 뒤.

신관을 따르는 사제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여신께서 직접 내려주신 성전이라니! 분명 엄청난 게 있을 거야!"

"섹스! 섹스! 섹스! 여신님의 섹스!!"

"......."

사제들이 열광하는 가운데, 신관은 걱정이 눈 앞을 가리기 시작했다.

만약.

여신에게 흠뻑 빠진 누군가가 '잘못된 생각'을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만의 여신은 처녀여야 하는데, '섹스'로 다른 남자와 정사를 주고받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신관! 공개합시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공개 상영회를 가지는 겁니다!"

"뭐, 뭐라고…?"

"신관께서 받은 그 성전은 모두가 함께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옳소! 옳은 말이오! 신관은 성전을 독점하여 잘못된 교리를 설파할 수 있는 위험이 있소!"

"함께 봅시다! 네트워크에 올려 모두가 볼 수 있게 하는 것이오!"

"...진정하시오. 모두에게 보여주기 전에, 일단 내용을 검토할 필요가 있소."

막을 수 없다.

고작 며칠 야짤이 올라오지 않았을 뿐인데, 눈이 돌아간 사제들의 광기는 신관으로서는 도저히 막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검토를 위해 우리가 먼저 같이 봅시다. 어떻소?"

"우오오오오!!!"

잠시 뒤.

여신상의 아래, 대형 스크린이 하나 놓였다.

신관을 비롯한 사제들은 반원을 그리듯 의자를 놓고 조용히 바지를 벗었다.

"....그러면, 지금부터 재생하겠소."

치지직.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 * *

치직, 치지직.

회색으로 가득 찬 방 안.

을씨년스러운 기운만 가득한 방 안에서, 남자는 잠에서 깨어났다.

목 늘어난 티.

더벅진 머리카락.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아무렇게나 자란 수염.

이대로 밖으로 나가면 폐인이 아닐까 싶은 모습의 남자는 커튼을 펼치며 창밖을 바라봤다.

삐이이ㅡㅡㅡ

야!! 운전 똑바로 안 해!!

투둑, 투두둑.

자동차 달리는 소리.

사람들의 험악한 목소리.

추적이는 빗소리.

온통 회색빛으로 물든 세상은 우울함으로 가득 물들어있었고, 남자는 고개를 푹 떨구었다.

마치 어둠에 잠식되어가는 듯한 기분.

세상의 어둠 속에 동화되어, 물속에 잠기는 듯 가라앉는 기분.

이 세상이라는 넓은 공간에서 모두가 똑같은 검은색을 가진 채,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ㅡ

끼이익.

문이 열렸다.

낡은 경첩 소리와 함께, 따스한 주황빛이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오빠?"

문밖에서 들려오는 상냥한 목소리.

문을 반쯤 연 채, 고개만 빼꼼 내민 여인은 맑은 미소로 남자에게 손을 뻗었다.

"죄송해요. 주무시는 줄 알고."

"아니야. 방금 일어났는걸."

노크하지 않고 조심스레 문을 열었던 건 남자를 깨우지 않으려던 배려일까.

남자는 회색의 숲을 등진 채, 따스한 빛이 가득한 방문 밖으로 나갔다.

"오늘 아침은 뭐야?"

"오빠 제일 좋아하는 거. 씻고 와요. 이제 금방 끝나니까."

코를 자극하는 고소한 냄새에 남자는 바로 식탁으로 향하고 싶었지만,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이 괜히 신경 쓰였다.

행여나 눈곱이라도 낀 건 아닐까.

행여나 입에서 냄새라도 나는 게 아닐까.

여인은 전혀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았지만-않은 척 한 걸지도 모른다-, 자신에 비해 말끔하게 머리를 하나로 묶고 앞치마를 두른 채 요리하는 여인을 보니 조금은, 자괴감이 들었다.

"......."

화장실로 들어가 세면대 앞에 서서, 괜히 물로 얼굴을 씻어 앞머리를 넘긴다.

이미 못난 모습을 보였지만, 몸단장하고 나면 확연히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남자는 몸을 씻기 시작했다.

쏴아아.

평소에는 제대로 씻지도 않지만, 몸 구석구석을 씻으며 몸단장을 마친다.

인터넷에서 들리는 썰을 바탕으로, 여자들이 불쾌할지도 모르는 귀 뒤나 사타구니 안쪽까지 확실히 거품으로 씻어내며 완전히 몸을 따뜻한 물로 씻어내린다.

"아."

자연스레 틀어져 있던 온수.

하지만 갈아입을 옷을 잊고 들어왔다.

어떻게 하지?

샤워하고 전날에 입은 옷을 다시 입을 수는 없지만, 이런 것까지 칠칠찮게 여인을 불러서 해결해야 할까?

싶었지만.

"......."

세면대 위.

선반에는 여인이 미리 준비해놓은 듯한 속옷이 놓여있었다.

티셔츠야 그렇다 쳐도, 수많은 속옷 중에서도 이런 속옷을 '선택'한 건 그녀다.

어쩌면….

피식.

남자는 자신감을 얻었다.

수건으로 몸을 닦고 머리를 말리고, 모든 단장을 마친 뒤 여인이 준비해 준 옷으로 갈아입고 당당히 밖으로 나섰다.

"오빠, 와서 먹어요."

여인은 모든 식사를 준비해놓고 남자를 기다렸다.

남자는 여인의 맞은편에 앉아 식기를 들었고, 여인은 남자가 식기를 들고 난 뒤에야 함께 식기를 들며 식사를 시작했다.

조용히, 음식을 음미했다.

혼자 살 때와는 다른, 공산품과 냉동으로 가득했던 식단이 이제는 한 여인의 정성이 담긴 요리가 되었다.

구워진 걸 여러 개 사다가 데워먹었던 빵은 새벽부터 갓 구웠는지 김이 모락모락 흘러나왔고, 스프 속 채소는 건조된 건더기와는 다른 아삭한 식감이 담겨있었다.

식사가 끝난 뒤.

남자는 어색함을 느꼈다.

뭔가 밖으로 나가야만 할 것 같은데, 정장을 입고 저 회색지대로 나가야 할 것 같은데.

군청색 넥타이로 스스로 목을 졸라, 저 칙칙하고 삭막한 회색의 지대에 굽은 어깨로 나아가ㅡ

"주말인데 일하러 갈 거예요?"

"...아."

여인은 뒤에서 남자의 목을 두 팔로 끌어안았다.

"오빠, 하루에 일당, 이 정도잖아요."

"그렇지…?"

"그럼 오빠의 하루, 오늘은 저한테 파시면 안 될까요?"

"......."

여인은 남자의 눈치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눈치를 볼 게 뭐가 있을까 싶었지만, 남자는 여인이 무슨 꿍꿍이를 생각하고 있나 궁금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어떻게 할 건데?"

"우웅...일단 소파로 와주세요."

여인은 남자를 소파로 이끌었다.

자신의 방과는 달리, 여인의 따스함을 담은 듯한 따스한 햇볕이 소파에 서려 있었다.

"흐흥."

여인은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남자를 소파에 앉혔다.

그리고는 남자의 두 다리를 벌리며, 다소곳이 남자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오빠, 저 간식 먹어도 돼요?"

"간식?"

"네."

여인은 남자의 허벅지에 얼굴을 묻었다.

따스한 숨결이 섬유를 타고 안으로 스며들었고, 남자는 여인이 초롱초롱한 눈을 반짝이는 걸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히힛."

여인은 조용히 두 손을 바지 허리끈으로 옮기며.

"잘 먹겠습니다…오빠."

사락.

천천히, 남자의 바지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커 쥬 올 마이 걸ㅡ

"갸아아아아아아악!!!"

"다음화아아아아!!"

내일 이 시간에 만나요.

"끼에에에에에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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