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15 3부 3장 02
이곳은 가이아나 왕국의 국경 지대.
가이아나치의 몰락과 함께, 대규모 혼란을 겪은 사람들은 조용히 다시 가이아나 왕국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여신의 아래에 있던 군부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키가 140cm가 넘는 자들을 모조리 죽이려고 했다!
-아이들을 감옥에 가둔 다음, 아이들의 생식 기능을 없애려고 했다!
그야말로 충격적인 실태.
많은 가이아나 국민들이 왕국 내 군부 세력에 환멸을 느꼈고, 일부 사람들은 왕국을 떠나기로 했다.
비록 자신이 땅의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이지만,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계속 살아갈 수 있겠냐며.
차라리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곳으로 떠나겠다며, 적어도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그런 위험한 짓을 한 나라에서 살아갈 수는 없다며 강경하게 움직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고향 떠나서 새로운 곳에서 살아가기로 마음먹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애초에 땅속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땅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아가기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은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면 익숙한 장소에서 살아가게 되어있다.
특히 이 테라의 세계처럼 언어는 전부 공통으로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믿는 신이 다르고 생활하는 양식이 확연히 다르다면, 쉽게 땅의 나라를 떠나갈 수는 없다.
-우리가 어디로 가겠는가? 왕국에서는 지내지 못해도, 국경에서 그냥 늙어 죽어야지.
-혹시나 왕국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국외로 도망칠 생각입니다. 왜요? 매국노 같습니까? 국가에서 국민들을 상대로 그런 미친 짓을 벌인 건 괜찮고?
-저는 혼혈입니다. 저 멀리 우리의 친척이 사는 곳으로 가서 몸을 의탁할 겁니다. 그리고 가이아나 왕국의 실상을 알릴 겁니다.
-신관조차도 군부 세력과 한패였다고요? 심지어 신관이 감금되었어요? 신관 없는 국가를 어떻게 대지모신께서 보살펴주시겠습니까. 이번 사건은 대지모신이 가이아나를 등진 증거입니다.
많은 이들은 가이아나 왕국에 대한 실망감을 크게 드러냈다.
그들은 분명 가이아나 왕국의 패악질로 왕국 자체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자들이리라.
설령 왕국을 다시 위대하게, 가이아나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아직 왕도에 있다고 한들, 그들조차 쉽게 믿을 수 없으리라.
시간이 지나고, 다시 가이아나가 위대해지는 걸 직접 보고 듣는 게 아니라면.
-가이아나가 뭐 바뀌겠어요?
-대지모신께서 우리를 굽어살펴주시지만, 그 개 같은 놈들도 함께 굽어살피시니....
'어째 가는 곳마다 다 부정적이라서 조금 그렇군.'
나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들었고, 이제는 기어이 국경 지대 너머, 천막을 치고 노숙을 하는 이들과 만났다.
이들은 가이아나 왕국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이었다.
"여기, 코코아 한 잔 마시게."
"감사합니다, 어르신."
키가 그다지 크다고는 할 수 없는, 나보다는 작지만 가이아나 왕국의 평균 키보다는 훨씬 큰 남자는 내게 따듯한 코코아를 건네며 나와 마주 앉았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자네 이야기나 한번 들어보세."
보통이라면 굳이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무방했지만, 내게는 여러모로 정보가 필요했다.
"자네는 여행자인가?"
"예. 가이아나 왕국에 관광을 하러 왔다가, 나라가 하도 어수선한 와중에 인제야 밖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가. 왕도 쪽의 혼란은 정리됐고?"
"예. 다행히 '이단자'들은 청화단에 의해 정리되었습니다."
이단자.
가이아나치를 지칭하는 단어이며, 이들은 대지모신의 뜻을 왜곡하여 부당한 이득을 취하려고 했던 자들을 일컫는다.
"그럼 청화단이 다시 가이아나 왕국을 지배하게 되는 건가?"
"그들은 그저 혁명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혼란을 잠재우고 이단자들을 물리치고자 한 사람들일 뿐이었습니다."
"그런가.... 믿을 수가 있어야지. 오는 길에 소문이야 어느 정도 들었지만, 결국 권력을 잡은 자들은 나중에 달라지는 법이야."
"청화단은 다를 겁니다."
"글쎄. 모든 집단은 결국 부패하기 마련이지."
"그 부패를 없애기 위해 만들어진 집단입니다."
"...그대가 그렇게까지 이야기를 한다면. 한 번 믿어보도록 하지."
지난날 동안, 우리는 최대한 청화단에 대한 정보를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게 좋게좋게 선전했다.
-청화단은 사실 좋은 사람들이었어!
-가이아나 왕국을 혼란에 빠뜨린 건 사실 가이아나치라는 놈들이라며?
-그럼 청화단이 좋은 사람들이야?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지 않게 청화단을 소개하며, 동시에 이단자들이 얼마나 나쁜 자들인지 마구 떠들고 다녔다.
이단자들의 행위가 널리 퍼지는 만큼, 그들을 물리친 청화단에 대한 것도 널리 퍼지게 되리라.
"그런데 자네, '아그라마인'에 갈 생각이지?"
"예, 그렇습니다."
아그라마인.
빛이국과 대지모신의 나라에 더불어, 어둠의 신이 존재하는 나라다.
판타지적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이 대지모신의 나라, 가이아나가 드워프의 나라라고 한다면 아그라마인은 마족의 나라.
온갖 악마와 마족, 마인을 비롯하여 다양한 종족이 섞여 사는 곳이다.
그래서 가이아나 사람들도 빛이국 보다는 아그라마인으로 거주지를 옮길, 소위 망명을 하려고 생각 중인 거고.
"음...오지랖일 수도 있겠지만, 그곳에 가려면 혼자 가는 건 위험하네."
"혼자가 위험한 거야 어디를 가든...."
"아그라마인은 달라, 이 사람아. 자네, 혹시 아그라마인이 어떤 곳인지 모르나?"
"......구체적으로는 잘 모릅니다. 제가 기억을 잃어버려서."
"뭐라?"
청년설명 중.
"그러니까 기억을 잃었는데, 아내의 흔적을 찾아서 세계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는 중이라고?"
"예. 여러 신께 제 아내가 어디에 있는지 여쭙고,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대지모신께서는 뭐라고 하시던가? 아, 아닐세. 왕도가 그 상황이 되었는데...."
"대지모신께서는 남쪽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남쪽이라, 확실히 아그라마인 방면이기는 하군."
거짓말이다.
내 아내는 남쪽이 아니라 세계의 바깥쪽에 있지만, 정보를 캐내기 위한 거짓말은 선한 거짓말이다.
"알겠네. 자네에게 간단히 설명해주지. 아그라마인은 말이야...."
노인은 질색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나라일세. 그 나라에 있는 사람들, 심지어 신관마저도."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아그라마인의 가장 대표적인 문물이라고 하면, '단말'과 '마도 네트워크'가 있지.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공간을 초월하여 서로의 화상으로 만날 수 있는 곳."
"......."
설마.
"아그라마인의 '어비스'에 너무 심취하지 말게. 그곳은 좋게 말하면 정보의 바다지만, 실상은 온갖 악의와 음습함이 넘쳐나는 곳이니."
어둠의 나라.
그곳의 이면은 딥 다크 웹이었다.
* * *
현실로 돌아온 뒤.
나는 아그라마인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기 전, 어둠의 여신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기 위해 현실로 돌아와 신라를 찾았다.
"신라. 앙그의 과거에 대한 거 혹시 잘 아는 거 있어?"
"음.... 딱히 없는 것 같아요. 신들이 서로 만날 때도 항상 나오지 않았고."
"아싸였다는 거지?"
"네."
어둠의 여신은 내향적인 성향이 극한을 달리는 존재이며, 그 성향의 발호는 우리가 '어떤 존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어둠의 간부, 아지다하카.
어둠의 정령, 앙그라 마이뉴.
"걔들을 바탕으로 어둠의 여신이 어떤 존재인지 생각해봐도 될까?"
"음.... 어렵네요. 다른 애들보다 훨씬 어렵네요."
아그라마인의 여신, 그러니까 내가 알고 있는 '앙그'라는 여신은 20년의 지구에서 여러모로 '윽 이게 여신'이라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 정도로 충격적인 존재였다.
"앙그, 20년의 지구에서 가장 인터넷 많이 하던 애잖아요."
"그건 그렇지."
아싸. 찐따.
히키코모리.
인터넷 중독자.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그녀는 은둔형 외톨이의 표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도 20년의 지구에서는 나로 인한, 창염의 피닉스로 인한 스노우볼 때문에 간부 아지다하카에게 20년 동안 성적 괴롭힘을 받았던 존재.
아지다하카가 앙그를 복속시키기 위해, 그녀는 감각 연동을 통해 앙그를 테크닉은 걸레지만 몸은 처녀라는 말도 안 되는 여자로 만들어버렸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앙그가 상당히 망가진 존재라고 씁쓸히 넘어갈 수 있다.
"그래. 오죽하면 누리한테 내가 대신 친구비 입금해주고 친구 하라고 하니까 그렇게 좋아했겠어."
"누리는 반 정도는 진심으로 친하게 지내려고 했을걸요?"
"그것도 그렇지만...."
"앙그랑 어울리는 히로인들을 생각해봐요. 누구누구 있나."
"......."
어둠 속성 싱크로를 일으키기 쉬운 가장 대표적인 히로인.
1위. 김누리.
2위. 백희아.
3위. 히카리.
4위. 샤오린.
5위. 천가을.
6위. 아르엘.
7위. 은유하.
"...어째 순위가 영."
"내향적인 사람들부터 1등 먹잖아요. 성향을 생각하면 답이 나오죠. 어둠의 여신은...."
신라는 기어이 단언하고 말았다.
"음습한 찐따에요."
"너무 노골적으로 말하는 거 아냐?"
"분명 그럴 거예요. 국가 전체가 찐따국일 확률이 높다고요. 여신이 찐인데 그 나라나 국민이나 다 그렇겠죠."
"음...."
걱정되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 명의 경우로 전체를 그렇게 매도할 수 있겠는가.
"일단 이것만큼은 확실해요. 당신이 가져온 정보들, 그리고 우리가 아는 여러 가지 정보들. 그 모든 것을 종합해볼 때...."
신라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어둠의 여신은 찐따에, 변태에, 히키코모리에, 어, 음, 그리고...."
"그리고 뭐?"
"......성주에 의하면, 어둠의 여신이 바라던 자신이 아지다하카였잖아요. 인싸."
"그냥 보통 인싸가 아니었지."
"네. 그걸 바라는 여자가 정상이겠어요?"
"......."
그런가?
* * *
사각, 사각.
어둠 속.
투명한 판처럼 깎아 만든 마석 위에, 여인은 조용히 펜을 움직이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찌걱, 찌걱, 찌걱.
그녀가 그리는 그림 속에는 정체불명의 효과음이 들어갔다.
주변에는 온갖 남자들이 가득했고, 그림 속에는 여인을 쏙 빼닮은 여인이 여러 남자의 자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으흐, 으흐흥...."
사락, 사락.
여인은 기지개를 켜며 휴식을 취했다.
두 손은 양옆으로 뻗은 자지를 움켜쥐며, 아래로는 남자를 깔고 앉아 자지를 삼키고, 뒤로 올라탄 남자가 엉덩이를 쑤시고, 심지어 입으로는 또 다른 자지를 삼키고 정면을 바라보는 모습.
"태그...갱뱅...."
여인은, 자기 자신을 그림 속 남자들에게 강간시키고 있었다.
"흐흥...."
여인은 뿔테안경을 치켜올리며 헤실거렸다.
그림 속 자신이 범해지고 있는 모습을 마치 상상이라도 하듯, 실실 웃기만 했다.
"......후후. 이거 업로드하면 다들 몇 발이나 뺄까...."
할짝.
"고마워해라, 나의 닝겐들아.... 여신께서 직접 그려주시는 셀프 야짤이다.... 후후후."
딸칵, 딸칵.
업로드.
"조회 수가...2k를 돌파해버렷...!!"
신앙이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