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011화 (1,011/1,497)

EP.1011 2(-1)부 10장 24 개진

2021년, 개마고원 인근.

이세계에 대한 연구는 언제 어디서나 진행 중이다.

차원을 넘어가는 것.

다른 세계에서 무언가 넘어온다는 개념은 이미 지구 상에 나타난 '차원문'을 통해 인류가 이미 숱하게 겪어왔다.

그렇다면 이쪽 세상에서도 저쪽 세상으로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전 세계의 사람들은 구원 이후 차원이동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솔까 그게 말이나 됨? 중2병 망상 오졌구요."

여중생, 김누리는 팩에 든 딸기우유를 쪽쪽 빨아마시며 쇼츠 영상을 넘겼다.

구원 이후, 세상에는 정말 수상할 정도로 많은 이들이 '차원이동'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20년 동안 인류가 이세계에서 넘어온 괴수들에게 시달린 것에 대한 복수를 하겠다는 건지, 인류는 이세계로 통하는 문을 찾고 있었다.

코어 자원에 대한 갈망.

괴수에 대한 복수심.

그리고 이세계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

그 모든 것들은 이제 무려 '중3'이 된 김누리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내용이 아니었다.

설령 코어가 아무리 많다고 한들.

괴수가 이제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한들.

이세계의 존재가 실제로 증명되고 사람들이 그곳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된다고 한들.

이제 중3인 김누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녀에게 닥친 현실적인 문제니까.

"...아무리 내가 청화단이라도 '창피고'를 들어갈 수는 없는데."

2021년.

구원 이후, 한국에는 이능력자들을 육성하기 위한 특수목적고등학교가 만들어졌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아카데미와는 달리, 20세 성인이 되기 전의 미성년자인 이들에게 정규 교육과정과 더불어 이능력자로서 가져야 할 덕목을 가르치기 위한 교육의 장.

-미성년자 이능력자들은 일단 기본적으로 인성 교육을 받아야 한다.

라는, 명예 교장 창염의 피닉스가 남긴 지론에 따라 국가와 협회는 청화단의 지원을 받아 서울에 이능력자를 위한 특목고를 설립했다.

현재 그곳에는 수많은 이능력자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고 있다.

당장은 일반 학교처럼 운영되고 있지만, 급하게 개발된 커리큘럼에 따라 이능력자를 위한 능력 양성 과정 또한 존재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평균적으로 C급.

이미 A급인 학생도 존재하지만, 내년이면 고등학교 진학을 생각해야 할 김누리에게는 여러모로 생각할 것이 많았다.

"학교 생활 하는 것보다 그냥 헌터로 사는 게 더 이득 아닌가…."

아직 중3인 김누리에게는 미래에 대한 고민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건 그녀가 평범한 중3과 달리, 중2시절에 너무나 많은 경험을 했기 때문.

S급 이능력자.

청화단 최연소 능력자.

'여신'의 자리에 오를 수도 있었던 자.

김누리라는 존재는 10대 이능력자들 사이에서 '전설'이다.

청화단 소속이라는 것도 상당한 인기 요소지만, S급으로 각성하며 이미 성인과 같은 모습으로 성장하여 마치 10대들의 '아이돌'과 같은 입지에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고등학교에 진학한다고 한들, 과연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누릴 수 있을까?

"...단장님이 그랬는데. 꽃 주변에는 꽃가루를 노리는 벌레들이 가득하다고. 꽃가루면 다행이고, 줄기와 잎을 뜯어먹는 놈들도 가득하다고."

한 해가 지난 지금.

김누리는 피닉스가 자신에게 해준 말들의 뜻을 잘 이해하고 있다.

힘이 있는 자를 이용하려는 자는 주변에 수두룩하다.

설령 그것이 피를 나눈 혈육이라고 할지라도.

청화단의 간부들이 사회적 경제적 보호자의 역할을 해주고 있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김누리는 어려서부터 어깨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짐덩어리를 두 개 달고 사회에 나갔어야 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김누리는 고민이다.

아직은 '학생'이지만, 내년에는 학생이라는 사회적 굴레를 벗어던질 수 있으니까.

결코 '창염의 피닉스 고등학교'-소위 '창피고'가 부끄러워서 그런 건 아니다.

그곳에서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을 것 같아, 김누리는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끼요오오오오옷.

벨소리가 울린다.

김누리는 조용히 벨소리를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창! 염! 개! 진!

이상한 벨소리.

하지만 구원 이후, 청화단에서 판매한 창염개진의 벨소리는 판매율 1위라는 정체불명의 기염을 토해냈다.

이게 왜 1위, 라는 소리가 퍼지고 있지만, 누리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는 더 들을 수 없으니까.

광기가 가득하지만, 활약을 지켜보며 짜릿했던 순간들은 다시금 지켜보고 싶으니까.

그 때의 광경을, 조금이라도 더 기억하고 싶으니까.

"돌아가고 싶다…."

아, 물론 괴수에 의해 인류가 위협받는 건 빼고.

인류에 대한 위협없이, 다시금 2020년으로 돌아가고 싶다.

힘을 마구 사용해도 무리가 없었던 시절로.

청화단의 사람들과 함께 세계를 누비며, 전장과도 같은 곳을 돌아다니며 인류의 평화를 위해 공헌했던 그 때 그 시절로.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전후 PTSD?”

S급의 힘이 있지만 사용할 곳이 없다.

그 무료하고 공허한 감각을 느끼고 있는 건, 분명 김누리만 그런 게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런 문제 때문에, 사람들은 이세계로 통하는 문을 찾는 게 아닐까.

지금 이 시점에서 지구에서 힘을 사용해봐야 '여신'들이 와서 뚝배기를 깨버릴테고, 그 힘을 어딘가에 쓰고 싶은데 쓸 곳이 없으니.

최근.

누리는 결국 힘의 사용을 참지 못하고 재사회화 과정에 있는 괴인을 공격한 한 헌터-빌런이 되어버린 그를 잡았을 때가 떠올랐다.

-씨발! 네가 뭘 알아! 이 나이가 되어서야 간신히 인생의 막이 새롭게 펼쳐졌는데, 이제 다시 평범한 회사원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이능력이 있으면 뭐해! 시대는 이제 이능력자라도 힘을 쓸 곳이 없는데! 뭐, 빌런이라도 조질까?! 응?! 시빌워라도 일으켜?!

-차라리 뭐 외계생명체라도 와서 지구를 공격했으면 좋겠어! 나를 증명하게! 내 힘을, 내가 쓸모있는 존재라는 걸 증명하고 싶다고!

"에휴."

김누리는 한탄했다.

자신도 이런 심정인데, 막장 인생에서 간신히 이능력이라는 밧줄을 잡았던 이들은 어떤 심정일까.

오죽하면 '피닉스가 구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미친 소리를 공공연히하는 이들도 존재할까.

"언니는 어떻게 생각해?"

"...언니 아니다."

백청화를 쏙 닮은 흑발의 여인은 마찬가지로 딸기우유를 홀짝이며 짜증을 냈다.

"아저씨라고 해라."

"하지만 지금은 언니잖슴."

"그건 또 어디서 배워온 말이야?"

"언니라고 인정하면 안 할게."

"...하아."

흑발 여인, 유독 '백청화'를 닮은 여인은 눈을 질끈 감았다.

"신께서 너를 본다면, 분명 머리부터 쥐어박을 거다."

"단장님은 나 이뻐해서 안 때림. 인정?"

"......창염개진."

여인은 두 팔을 Y자로 벌리며 기도한 뒤, 한손으로 성호를 그리고 두 손을 모았다.

"아영 언니, 그러니까 진짜 단장님 같다."

"정말?"

"근데 단장님 안 같음."

"...그게 무슨 말이냐?"

"단장님은 좀 더 자신감 넘치게 했잖아. 아니, 부끄러움이라는 게 없었다고."

"지, 지금 내가 신앙의 증명에 부끄러워한다는 거냐?"

쾅.

흑발여인은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치며 일어났다.

"나, 흑염룡 곽아영! 그분에 대한 신앙과 믿음은-"

"아, 지금 곽아영이라고 했다."

"......젠장."

흑발여인, 청화단이 S급 이능력자 '흑염룡' 곽아영은 맥없이 주저앉았다.

"분하다."

"분할 게 뭐있음? 단장님이 언니한테 내려준 축복이라며?"

"내가 진짜 이런 말을 하기는 싫은데."

곽아영의 눈초리가 파르르 떨었다.

"구원 이후에도 계속 이럴 줄은 몰랐지."

"그건 그래."

구원 이후.

창염의 피닉스가 만들었던 괴인들은 그대로 육신이 유지되었다.

분명 창염의 피닉스가 죽으면 괴인들은 모조리 죽는다고 했는데, 어째서인지 창염의 피닉스가 사라졌는데도 괴인들은 살아있었다.

-살아스님이 피닉계신다!

-피닉스 님은 미국가셨어! 곧 돌아오실 거라고!

-뭐? 미국이 아니라 이세카이겠지!

-어쨌든 살아계신다는 거 아님?

하나, 피닉스가 죽으면 괴인들은 죽는다.

둘, 피닉스가 죽었는데도 괴인들은 살아있다.

셋, 그럼 피닉스 안 죽은 거 아니냐?

"나는 신께서 반드시 돌아오실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나를 다시 남자, 대한의 건아 곽용우로 돌려줄 거라고 믿는다. 창염개진, 창염개진."

"가망이 없음."

"아니야…!!"

"언니는 그냥 언니로 사는 게 좋아. 이제 그만 포기하고 브라도…."

순간, 둘은 바로 몸을 일으켰다.

"느꼈지?"

"그래."

멀리서 느껴지는 이상한 기운.

둘은 급히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달렸다.

"언니, 변신은?!"

"변신하는 것보다 뛰어가는 게 더 빠르다!"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은 분명 북쪽.

둘은 빠르게 산을 타고 올라가, 산의 정상으로 향했다.

백두산.

천지.

맑은 물로 가득 차있어야 할 그곳에는, 한 남자가 물 위에 선 채 가만히 있었다.

온통 검은색만 가득한, 수상할 정도로 키가 큰 중절모의 남자는 손에 든 뭔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저거, 뭐하는 거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일단 프로페서에게 연락을…."

뚜둑.

뭔가가, 끊어졌다.

둘은 마도기어의 신호가 멈춘 것에 표정이 굳었다.

"어떻게…?"

"SS급…?"

"크흐흐흐."

남자의 웃음소리에 둘은 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

과거.

명왕성이 떨어진 날.

그 때 느꼈던 그 충격과 공포, 정신을 갉아먹는 듯한 고통이 둘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방해하지마라…."

"누구 마음대로 반말이야! 죽을래?!"

"크, 흐흐흐…."

남자는, 정육면체의 물건을 만지작거리며 둘을 비웃었다.

"간신히, 특이점을 찾아냈다고…! 나를, 방해하지마라…!"

"특이점…?"

"명왕성의 주인이시여!!"

남자는 손에 든 물건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이세계로 통하는 문을, 이곳에!!"

그 물건을 본 둘은 전신이 굳어버렸다.

"큐브...?"

"어떻게 저게…?"

"다시, 이능력자가 위대해지는 세상이 되기를!!"

"아, 안 돼! 저거, 막아야 해! 저걸-"

화륵.

"멈춰."

검은 불꽃이 김누리의 발목을 붙잡았다.

"내가 간다."

갑작스럽게 자신을 구속하는 불길에 김누리는 앞으로 달려가지 못했다.

"애는 얌전히 학교에 가라. 여기부터는 어른의 영역이다."

"아저씨!!"

앞으로 뛰쳐나간 곽아영은 두 손을 높이 치켜들며 외쳤다.

"오라, 신화의 불꽃이여! 나의 몸을 불살라, 천지를 불태우는 한 줄기 빛이 되어라!"

화륵.

"흑염개진!!"

천지가.

검은 불꽃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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