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06 2부 10장 19 고래사냥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신서울 외곽으로 집중된 가운데.
히어로 협회 한국 지부의 협회장, 설지영은 이유나의 연락을 기다리며 외곽도로 한복판에 나왔다.
"......."
누구도 설지영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다.
올림픽 국가대표가 한일전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노리는 상황을 앞두고 있을 때의 관객들처럼, 주변에 있는 이들은 설지영이 행여나 이유나의 연락을 받고 당황하거나 실수할까 봐 걱정했다.
오죽하면 설지영을 중심으로 원을 형성하여 그녀를 보호할 정도.
설지영이 실수하지를 않기를 바라며, 제발 지휘관의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보거나 지휘관과 한 번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은 심정이었다.
삐빅.
설지영의 마도기어에 전화가 걸렸다.
모두가 숨을 죽였고, 설지영은 급히 마도기어를 눌렀다.
"네! 설지영-"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저희 유성텔레콤에서 기존에 사용하던 휴대폰을 최신형 마도기어로ㅡ]
"안 바꿔요!"
뚝.
삐빅.
"네! 설지영-"
[안녕하십니까? 여론조사기관, US리서치에서-]
뚝.
삐빅.
"...네?"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 기호-]
"아오, 진짜!"
설지영은 연이어 들려온 전화에 분통을 터뜨렸다.
기다리는 이의 전화는 오지도 않고, 원하지 않는 전화만 계속 전해질 뿐이었다.
그렇다고 모르는 번호를 안 받을 수도 없는 것이, 이유나가 어떤 번호로 전화를 할지 모르는 상황 아닌가?
삐빅.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설지영은 받을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설지영 씨.]
"...어?"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목소리.
설지영의 반응이 심상치 않자, 다른 이들도 스피커폰으로 전해진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오랜만에 연락드립니다.]
"어, 저기, 설마...?"
[유나에게 연락을 부탁했는데, 아무래도 직접 전화를 드리는 게 예의인 것 같아서요. 혹시 통화할 수 있으십니까?]
"!!"
설지영은 주먹을 불끈 쥐며 허리를 숙였다.
동시에 주변에 있던 이들이 급히 마이크나 녹음기기를 뻗으며 소리를 따려고 했고, 설지영 근처에 있던 협회 사람들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된 사람들을 막아내느라 안간힘을 썼다.
[아...전화 받기 곤란한 상황입니까?]
"아, 아닙니다! 금방 정리하겠습니다."
쾅.
설지영은 하이힐로 바닥을 힘차게 굴렀다.
그러자 그녀를 중심으로 붉은 불꽃의 막이 형성되었고, 설지영은 코쿤과도 같은 막 속에서 대화에 집중했다.
"죄송합니다.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서."
[이해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먼저 사과부터 했다.
설지영은 슬슬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상황에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커맨더?"
[지휘관이라고 불러주시는 게 더 익숙합니다. 아니면 이름으로 불러주셔도 좋구요.]
"...백청화 씨?"
[네, 말씀하십시오.]
대화는 당연히 불꽃의 결계 너머로 흘러나간다.
결계는 밖에서 들리는 잡음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니까.
"...용건은 다 해결하셨습니까?"
[.......]
지휘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미약한 웃음소리만 들릴 뿐.
[협회장님이랑은 이야기가 잘 통해서 좋네요. 미리 얘기 안 하고 갔는데.]
"!!"
역시,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
[이용한 것 같아 죄송합니다. 제가 낯을 많이 가려서.]
"아...."
[등록 절차는 끝났습니다. 2명 새롭게 등록했으니, 지금 확인이 가능할 겁니다.]
"네?"
웅성웅성.
당황한 나머지, 결계의 불꽃이 흔들려 밖에서 다른 이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잡음으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니, 그게 무슨...?"
[달묘. 교수. 각각 지속성 S급과 어둠 속성 A급입니다.]
"!!"
S급과 A급.
달묘는 이미 공개되었지만, '교수'라는 또 다른 존재는 기존에 협회에서도 체크하지 못한 이능력자다.
"두 명 다 마법소녀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둘의 프로필에 대한 건 협회장님만 볼 수 있게 따로 보냈으니, 확인해주시면 됩니다. 이외에 영입 예정 중인 다른 마법소녀에 대한 프로필도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
당했다.
아주 기분 좋게 당했다.
그리고 설지영은 당해주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
[협회장님,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도 얻은 건 있으니까.
뚝.
전화가 끊겼다.
설지영은 표정을 바꾸며, 오만하고 도도한 얼굴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죄송합니다."
표정이 저러니 누구도 죄송하다고 느끼지는 않겠지만, 설지영은 아무튼 죄송하다는 말부터 시작했다.
"여러분들을 속이게 되었군요."
"네?"
"지휘관께서는 이미 협회에 다녀가셨습니다."
"!!"
충격과 공포.
"우리를...속인 겁니까?"
"예."
설지영은 당당한 걸음으로.
"자세한 사항은 언론 보도를 통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타-앗.
이능력을 사용하여, 인파를 벗어나 허공을 달렸다.
* * *
-S급, A급. 유령 같은 지휘관의 등록 작전 해부.
-설지영 협회장, 사전에 지휘관과 교감이 있었나?
-설 "아무튼 속인 건 죄송", 협회장 자질 충분해.
-적을 속이려면 아군을 속여라. 지휘관과 협회장의 완벽한 콤비 플레이.
[는 개사기죠.]
화면 너머, 은유하는 싱글벙글 웃으며 신문 기사의 헤드라인을 내게 보였다.
[협회장이랑 미리 말을 맞춰? 그냥 협회장이 알아서 눈치껏 시선을 끈 거잖아요.]
"그 정도 안 하면 협회장 못 하지."
[하긴. 이 나라에서 어떤 단체든 우두머리 하려면 그 정도 능력은 되야죠. 안 그러면 물러나야 하는데.]
"역시 회장님."
은유하는 어깨를 으쓱이며 커피를 홀짝였다.
어딜 가든, 은유하는 은유하였다.
[언론은 제가 주무르지 않아도 알아서 정리될 겁니다. 협회 측 언론들이 기사를 쓰면 그게 파생되어 사방으로 퍼질 테니까요.]
"고마워."
[문제는 광검이에요.]
"......."
현재.
신서울 모처에는 광검이 있다.
[지금 광검 뭐 하고 있어요?]
"정훈교육."
[네?]
"마법소녀로 지금 정신 개조 하는 중이야."
어떤 곳에 갇힌 그는 현재 마법소녀로서의 자질을 함양하기 위한 교육을 이수 중이다.
"누가 봐도 마법소녀라고 생각될 만큼 바꿔놓을 거니까, 안심하고 기다리면 돼."
[적당히 폐관수련 들어갔다고 둘러대면 되겠군요.]
지금 당장 광검은 대외적으로 활동을 하지 못한다.
어린아이-루살카의 몸으로 변해버린 것도 있지만, 선의철의 히어로라는 이미지가 아직 사람들에게는 남아있다.
"광검이 선의철에게서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대안이 필요하지. 일단 서울에서 SS급을 썰어버린 거로 누그러지기는 했지만, 아직 광검에 대한 악의를 가진 이들이 많아."
이건 어쩔 수 없다.
광검은 구시대의 존재고, 구시대의 존재가 사라짐으로써 새로운 시대-지휘관과 히로인들의 시대가 열린다.
원래, 광검은 죽어야 할 사람이다.
하지만 죽지 않는 방법이 있으니....
'DLC 만만세.'
알아보니, DLC에는 광검을 살리는 방법이 있다더라.
직접 구체적인 방법을 알아낸 건 아니지만, 나는 왠지 그 방법이 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유하가 많이 도와줘야겠어. 광검의 영혼을 다른 몸으로 옮기려면."
[영혼이라.... 정신을 나눠서 여러 몸에 넣고 있는 제 입장으로서는, 부정할 수 없는 개념이군요.]
유하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능력을 드러냈다.
이제 슬슬 지휘관에 대한 신뢰 관계가 본격적으로 구축되기 시작했다는 신호.
"광검 개조 작업에 필요한 자원은 빛나가 연락을 할 거야. 이번에도 잘 부탁해."
[이번에도?]
"언제나처럼 잘 부탁한다는 이야기지. 이 나라에서 네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잖아."
[후후, 아가예요?]
"응애."
[풉.]
이제는 이런 농담도 가볍게 할 수 있을 만큼 유하와의 관계는 돈독해졌다.
그렇다면, 슬슬 유하와도 진도를 빼야 하지 않을까.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죠.]
마침 유하도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휘관님께서 알아봐달라고 하셨던 것들, 정리가 다 끝났어요. 전용기도 비밀리에 수배해놨고, 출발 일자만 정해주시면 돼요.]
"벌써 그렇게 됐나."
[그렇죠. 아, 물론 저는 따라가지 못하는 거 아시죠? 제 영향력은 국내에 한정되어있어서.]
은유하의 이능력은 범위가 한정되어있다.
X로이드를 중계기로 사용한다면 거치고 걸쳐서 지구 반대편까지 의식을 옮길 수도 있지만, 그러려면 수 km마다 한 명씩 X로이드를 배치하여 그 자리에 고정해야 할 것이다.
"아쉽네. 유하 꼭 데려가고 싶었는데."
[저를요? 왜요?]
"돈 버는 거 보여주고 싶어서. 외화벌이잖아."
[...저는 계약서랑 통장에 찍히는 돈 보면서 만족할게요. 그리고 다른 준비도 해야 하고.]
은유하는 은유하대로 한국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러므로 은유하는 아쉽지만 패스.
[누구 데려가실 거죠? 아니, 누구를 한국에 남겨두실 건가요? 지금 그게 제일 중요할 것 같은데.]
"일단 석하랑."
석하랑은 국내에 계속 남아있어야 한다.
등급과는 달리, 석하랑이 부산을 벗어나면 전 세계가 위험해진다.
"인원수 제한은 없는데, 일단 최소한 석하랑 제외하고 다섯 명은 남겨 둬야 사람들이 안심할 테니."
서울에 1명.
신서울에 1명.
강원에 1명.
부산에 1명. (석하랑)
그리고 제주에 1명.
"전부 다 S급으로 배치할 거야."
[호화롭네요. 지방마다 전술핵을 배치하다니.]
"어디서 누가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이미 난이도가 상당히 높아진 지금, 바깥으로 나가는 우리보다 한반도가 더 위험하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적이 가득하니까.
인간이든 괴인이든 괴수든, '욕망'으로 생기는 적들은 넘쳐나기 마련.
"떠나는 인원은 내가 조정할게. 그리고...한 명 아는 사람 데리고 갔으면 좋겠는데."
[누구요?]
"비행기 기장 수배됐어?"
[아직요.]
"그럼 딱 됐네. 내가 아는 사람이 하나 있거든."
외국 이동에 빠져선 안 될 아주 중요한 인물이 있다.
"국격상승의 장에 빠져서는 안 될 여자가 하나 있지."
[...여자?]
"응, 여자."
뚝.
은유하는 화상을 꺼버렸다.
이게 만약 미연시라면 호감도가 내려가는 상황이겠지만....
"인도 가서 S급 코어 세 개는 긁어올게."
[......잘 다녀오세요.]
은유하는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