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00 2부 10장 13 뉴페이스
괴수들로부터 서울을 되찾았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럼 지휘관이 본격적으로 위로 북진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특히 경기북부에 부동산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 특히 많이 의견을 내기 시작했고, 지휘관도 공식 채널을 통해서 천천히 북쪽으로 괴수들을 사냥하며 나아갈 것을 주장했다.
좀 더 안전해지기 위해서.
서울 남부에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지만, 이들 모두 만약 지휘관이 서울을 떠나면 그 즉시 다른 곳으로 도망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다.
서울은 한강 남쪽만 안전할 뿐, 여전히 서울 북부, 경기도 북부 지역에는 괴수들이 존재하고 있다.
특히, 서울 북부에서 시청사의 뱀 아래 비호를 받고 있던 A급 괴수들.
시청사의 뱀이 죽고 서울이 붕괴되면서, 오갈 곳 없어진 괴수들은 경기 북부로 향했다.
새로운 터전을 찾아서.
그곳에 자리를 잡고 있던 B급 괴수를 제거하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거나, 혹은 그곳에 숨어있던 A급 괴수에게 오히려 잡아먹히며 코어를 빼앗기거나.
서울이라는 곳의 복구.
지휘관의 등장.
서울 인근은 괴수들에게 새로운 생태계가 형성되었고, 괴수들은 서울을 예의주시하며 호시탐탐 남쪽으로 내려올 생각에 이를 갈고 있었다.
당장 의정부, 괴수의 이동 속도로 치면 불과 20분 안에 여의도에 도착할 수 있는 위치에 A급 괴수가 지내고 있으니까.
바로 이번에 새로운 이 달의 마법소녀가 퇴치하겠다고 호언장담한 괴수가.
그리고 지금.
쏴아아.
의정부로 향하는 파괴된 도로를 트레일러 한 대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뒤에 있는 거대한 철제 부스 안에는 정부 요인, 리포터 등을 비롯하여 촬영팀, 그리고 한 명의 마법소녀가 그들과 함께 타고 있었다.
마법소녀.
전신을 검은 로브로 가린 그녀는 그저 가만히, 묵묵히 앉아있을 뿐이었다.
"저기, 한 마디만 해주시면 안 됩니까...?"
"......."
가면을 쓴 마법소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검은 로브에 흰 가면을 쓴 마법소녀는 보이는 모습을 제외하면 그 어떤 정보도 안에 있는 이들에게 제공하지 않았고, 그저 검 한 자루만 허리에 찬 채로 가만히 앉아있었다.
"일단...S급은 맞으시죠?"
끄덕.
목소리를 내서 대답은 못하지만 그래도 대화를 아예 안 할 생각은 아닌지, 마법소녀는 기자의 질문에 성실히 응했다.
"트럭 위에 있는 분도 S급인가요?"
끄덕.
그들이 타고있는 트레일러 위, 운전석 바로 위에 한 마법소녀가 코어웨폰으로 제작된 지팡이를 들고 앞으로 마력을 계속 뿌려대고 있었다.
쏴아아.
트럭은 현재, 물길 위를 달리고 있다.
도로는 망가져서 트럭이 달릴 수 없는 만큼, 지휘관은 마법소녀의 데뷔방송을 위해 방송용 차량을 직접 지키며 동시에 도로를 만들어 달리게 했다.
S급 마법소녀가 물로 도로를 만듦으로써.
물위를 달리는 트레일러.
운전을 하는 존재도 마법소녀다.
현재, 촬영팀은 무려 세 명의 S급 마법소녀들의 보호를 받고 있다.
지휘관의 허가를 받고 어떤 장면을 촬영하기 위하여.
"저기, 진짜 누구십니까...?"
여인은 묵묵히 다리를 꼬았다.
뭔가 자신의 정체를 캐는 것에 불편해하는 눈치였고, 가면으로 보이는 눈이 카메라를 향하고 있었다.
사아아.
여인은 허공에 자신의 마력을 뿌렸다.
검은 안개가 카메라를 향했고, 안개는 하나의 글씨를 만들어냈다.
[야황].
야황이라는 이명을 가진 이가 존재했던가?
아니다.
그러나 서울수복 이후, 야황은 공식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어둠속성의 S급 이능력자.
코어웨폰을 다루는 무투파인 동시에, 검은 마력을 이용하여 창의적인 방법으로 싸우는 전천후 만능형 마법소녀.
갑자기 나타는 S급.
아마도 지휘관이 외부에서 데려온 존재이거나, 아니면 한국에서 몰래 발굴한 존재이리라.
그래도 제일 궁금한 건....
"한국인이십니까?"
O.
이번에는 하얀 장갑을 낀 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대답했다.
[내츄럴 본 토종 한국인.]
다른 건 몰라도 국적에 관한 건 확실하게 대답하는 야황의 태도를 보며, 기자는 직감했다.
지금, 야황을 통해 풀 수 있는 정보는 최대한 풀어주려고 한다는 것을.
"마법소녀들은 전부 S급인가요?"
도리도리.
"앞에서 물을 다루는 이능력자 분도 S급인가요?"
끄덕끄덕.
"이번에 '데뷔'한다는 마법소녀도 S급인가요?"
묵묵부답.
야황은 잠시 고개를 푹 숙였다.
팔짱을 끼며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기자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답을 기다렸다.
대답은.
몰?루
"......예?"
몰?루
어깨까지 으쓱이는 제스쳐를 통해 기자는 그게 모른다는 메세지임을 알았다.
"몰루가 뭐야?"
"몰라요."
"뭐?"
"몰라요."
"장난치지 말고."
"...모른다는 말입니다."
"아."
그리고 야황이 한 말이 신조어라는 것을 통해, 야황은 상당히 나이가 어린, 성인이라면 20대 극초반의 나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아무리 나이가 많다고 해도, 젊게 보이려고 해도 나이가 많은 이가 실제로 젊은 이들처럼 행동해도 티가 나는 법이니.
야황에게는 20대 극초반의 파릇파릇함-혹은 싸가지-이 엿보였다.
"그, 실례가 안 된다면...."
스륵.
[잠시.]
야황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마도기어를 급하게 두드리며 화상카메라를 꺼냈다.
[뭐하는 거지? 왜 멈춰?]
[전방에 A급 출현. 어떻게 할래?]
[뭘?]
[그냥 지나가?]
화상의 상대는 트럭 위에 있는 존재였다.
[원래 싸우기로 한 녀석이야?]
[타깃은 분명해. 근데 여기는 좀 그런데.]
[괜찮아. 그래도 경기도인데 고층 아파트 하나는 있겠지.]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채팅으로 대화를 하는 듯한 모습에 기자는 자판을 누르는 위치를 보며 둘의 대화를 유추하기 시작했다.
A급.
통행.
제거.
"혹시 뭔가가 통행을 방해하고 있습니까?"
끄덕.
"그게...A급인 건 아니죠?"
야황은 잠시 고개를 천장으로 돌린 다음, 로브를 벗었다.
사락, 사락.
로브를 벗은 야황의 모습에 안에 있던 이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하얀 셔츠에 검은 바람막이, 그리고 핫팬츠를 입은 야황의 모습은 공항을 나가는 연예인과도 같았다.
미인.
너무나도 아름다운 미인이었고, 마법소녀라는 이름보다는 S급의 영웅이었지만....
마법소녀라는 이름에는 '지휘관과 섹스를 함'이라는 명함이 따라붙는다.
촬영팀의 남자들은 너무나 아름다운 야황의 모습에 침을 꿀꺽 삼켰고, 동시에 이런 여자와 즐거운 해피타임을 보내고 보낼 지휘관에게 질투심을 느꼈다.
[오프 더 레코드.]
야황의 말에 기자는 바로 마이크의 전원을 내렸다.
그리고 뒤로는 따로 마도기어를 통해 녹음을 하고 있었지만....
[그건 안 됩니다.]
치지직.
뭔가 야황이 뿌린 어두운 안개가 마도기어에 스며들자, 더이상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다.
"원래는 의정부에 있는 적을 상대하기로 했는데, 의정부에서 상대가 여기까지 마중을 나왔네요."
"저, 정말입니까?"
청량한 여인의 목소리에 놀라기도 잠시.
"A급이...?"
"예. 아무래도 여기서 싸워야 할 것 같아요."
그 내용을 곱씹은 기자는 '상대'가 찾아왔다는 것에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밖에 있어요. 나와요. 음, 아아. 음성변조."
치지직.
[이제부터는 생중계로 촬영해도 됩니다.]
끼이익.
트레일러의 문이 열리며, 야황이 밖으로 나갔다.
안에 있던 촬영팀은 급히 라이브로 촬영을 시작했다.
"이곳은 현재 도봉산역 근처입니다! 서울 북부에서 의정부로 향하던 저희는 A급 괴수를ㅡ"
캬오오오오ㅡㅡㅡ!!
괴수의 포효가 울려퍼졌다.
촬영팀은 갑자기 나타난 거대 괴수의 등장에 기겁했다.
"저, 저건...?"
[A급 괴수, '자이언트 민트초코'.]
야황이 말한 괴수의 이명은 장난스러웠지만, 그 크기는 결코 장난이 아니었다.
색깔이 민트초코색과 비슷하다는 것을 제외하면, 몸 크기가 무려 18m에 이르는 거구의 거인이 걸어오는 건 분명 충격 그 자체였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인 건....
덜렁덜렁.
"......."
3m가 넘는 물건이 고간 아래에서 하늘을 향해 쭉 뻗어있었다.
높게 치솟은 그것에 리포터는 진심으로 방송을 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저거 꼬리네.]
[꼬리지.]
마법소녀들은 툭 튀어나온 것의 정체를 바로 알아챘다.
아니, 정체를 알아챘다기보다는 차마 그것으로 부르기 싫어 일부러 꼬리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아!"
그렇구나. 저것은 꼬리구나.
괴수가 중요 부위를 보호하기 위해 꼬리를 엉덩이에서 앞부분으로 당겨 세운 거구나!
"A급 괴수, 자이언트 민트초코가 등장했습니다!"
끄어어엉ㅡㅡㅡ!!
거대괴수는 입을 쩍 벌리며 주변을 향해 체액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사방에 흩어지는 민트초코와 같은 점액은 순식간에 도로를 민트초코색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우욱...!"
코가 울릴 정도로 과한 박하향.
거대 괴수는 마치 술이 과하게 들어간 사람처럼 마구 정체불명의 형광물질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하다못해 진짜 민트초코도 아니고, 몸 안에서 뽑아낸 지방질 같은 형태에 색깔만 민트초코라 혐오감이 하늘을 꿰뚫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의정부가 민트초코로 전부 뒤덮이는 게 아닐까, 싶은 순간.
구구구구.
아파트 하나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콘크리트의 벽만 우뚝 솟아오른 아파트는 단숨에 괴인의 머리를 넘겼고, 카메라는 아파트 옥상을 향했다.
"저, 저건...!"
야황과 마찬가지로 검은 로브의 존재.
얼굴에는 하얀 하회탈 가면을 쓰고, 머리에는 아래로 축 늘어진 하얀 토끼의 귀가....
토끼귀?
[소개합니다. 새로운 마법소녀.]
펄럭ㅡ
마법소녀는 로브를 벗어던졌다.
그러자 그녀의 정체가 단숨에 드러났다.
"바니걸...?"
하얀 구두.
허벅지까지 오는 검은 스타킹.
하이레그 디자인으로 되어있는 바니걸 복장.
심지어 타이즈 디자인이라 몸에 착 달라붙는 디자인이며, 가슴의 굴곡과 체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옷이었다.
마치 역바니 옷 위에 타이즈를 덧 입은 듯한, 그런 모습.
그리고 한쪽으로 가지런히 정리한 사이드 포니테일.
"와...."
리포터는 생각했다.
저 몸, 저 얼굴, 저 모습으로.
"빠요엔...."
'S급'이 아니면, 그건 사기라고.
그리고.
타ㅡ앗.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바니걸 마법소녀는.
[큥큥ㅡㅡㅡ]
너무나 상큼한 목소리로.
[키ㅡㅡㅡㅡㅡ익!!]
일격에, 괴인의 심장을 뚫어버렸다.
S급 히어로, '달묘'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