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97 2부 10장 10 존버는 승리한다
7월 19일 낮, 신서울 카페 Padre Juan.
"아침부터 정말 북새통을 이루는구먼."
바리스타 후안은 아침부터 카페 앞에 몰려든 이들에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정말, 나도 모르는 카페의 규칙을 만들어내고 말이야."
카페가 아직 오픈할 시간도 아니건만, 카페 앞에 모인 사람들은 인터넷에 떠오른 맛집 이상으로 줄을 서며 기다렸다.
지휘관의 신서울 스튜디오 1층이라서.
단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후안의 카페는 문전성시를 이뤘다.
사람이 많이 꼬이는 곳에는 당연히 잡음이 생기기 마련.
보통 맛집이라면 철면피와 같은 이들이 횡포를 부리거나 하겠지만, 후안의 카페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
-야! 미쳤어?! 여기 2층에 사는 사람들이 어디 사람인 줄 알아?!
-너 뭐야?!
-A급 헌터다, 왜?!
-아니, 씁....
난동을 피우려던 이들은 마치 경비병처럼 건물을 지키는 이들의 등장에 꼬리를 말고 도망갔다.
-저기, 누구요?
-아, 저는 손님입니다. 사장님.
-...매일 매일 여기에 서 있는 것 같은데?
-하하, 별거 아닙니다. 혹시나 여기 있으면 지휘관님을 뵐 수 있지 않을까, 또는 지휘관님이 커피 사러 오시지는 않을까, 혹은 지휘관님이 이곳 소식을 듣고 저를 눈여겨보시지 않을까 하는 그런 건 결코 아닙니다! 하하하!
-자네, 이름이?
-이탁한이라고 합니다!
-...테이크 아웃이라도 하겠나?
-아아로 주십시오!
후안의 카페를 지키기 위해 정말 많은 이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이들은 소란을 피우지 않기 위해 나름의 룰을 정했다.
후안은 그럴 생각도 없는데 자기들 멋대로 번호표를 만들어 돌리지를 않나,
주변 상권에 민폐를 가하지 않을 정도로 대기열을 정하지 않나,
외부 음식을 들이는 이는 자체적으로 척결하여 쫓아내겠다고 하지를 않나,
심지어는 1시간에 1잔은 무조건 주문해야 한다는 자기들 나름의 규칙을 정하지 않나.
덕분에 카페는 한 시간의 브레이크 타임도 없이, 오픈부터 정리 시간까지 자리가 빠지지를 않았다.
매출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아무리 천 모(32세, 알바전사) 씨의 도움이 있다고는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다.
그래도 어쩌랴.
살인적인 신서울의 물가를 감당하려면 커피를 팔고 케이크를 구워야 하는 것을.
끼이익.
후안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문을 열었다.
그를 향해 기자로 보이는 이들이 달려들려고 했지만, 헌터와 협회 관련자들이 기자들을 막아서며 으름장을 놓았다.
"어휴."
"사장님 오셨어요?"
카페 안에는 이미 오픈 준비를 마친 흑발의 여인이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었다.
유독, 가슴이 큰.
"그래. 여름양, 뭐 특별한 일은 없었고?"
"저 먼저 문 열고 들어오려고 하니까 오픈 시간도 전에 들어와서 앉으려고 하던데요. 쫓아냈어요."
"잘했네."
후안은 유리창 밖에서 줄을 서고 기다리고 있는 이들을 보며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자기들이 저기서 저렇게 버티고 있으면 지휘관을 만날 수 있을 거로 생각하는 건지."
"그러니까요. 서울에 갈 용기는 없고, 그래도 지휘관은 만나고 싶고. 그러니까 여기서 주야장천 버티고 있는 거죠. 지휘관 만나면 어떻게 말이라도, 아니 눈도장이라도 찍고 싶어서."
아직 2층의 간판은 오라클 스튜디오다.
즉, 이 건물의 2층은 마법소녀 매지컬 큥큥스 신서울 거점이라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다.
마법소녀 매지컬 큥큥스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자연스레 신서울 스튜디오의 정체 또한 노출되었다.
-아니, 어쩌다가 지휘관님이 여기에 머무르게 된 겁니까?
-아니, 나야 뭐.... 젊은 청년이 임대료 저렴한 곳에 사무실 차린다길래 무슨 스타트업인 줄 알고 방 내줬지.
-지휘관님과 무슨 모종의 관계가 있는 건 아닙니까?
-몰라. 그런데 기자 양반. 이거 팔면 진짜로 내 수중에 이천억 떨어진다는 게 사실인가?
사람들은 지휘관이 임차인으로 들어온 건물의 주인인 후안이 궁금해졌고, 후안은 귀찮은 상황을 대비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순박한 건물주를 연기했다.
-이 건물을 저한테 파시지요. 그리고 계약 관계의 갑을 저로 좀....
-협회!!
-당신을 체포합니다.
-무슨 무슨 법으로?! 자유민주주의 겸 자본주의 세상에서 지금 뭐 하자는 짓이야! 내가 금전 거래를 하겠다는데 왜 막는 거냐고! 나는ㅡ커헉!
-...입에 민초가...? 이게 그 말로만 듣던 민초암살?! 역시, 지휘관은 여기를 지켜보고 있었구나!
지휘관을 임대인으로 만들고 싶어서 후안을 향해 건물을 팔라고, 2층의 임차계약을 이어나가고 싶어 하는 이들도 존재했다.
그러나 후안은 건물을 팔지 않았다.
계약서를 다른 이에게 넘겨주기 위해 건물을 팔 바에는 차라리 계약서를 찢고 건물을 내버려 둔 다음 여의도에 카페를 차리는 게 더 나을 지경이었다.
-혹시 여의도로 올라가실 생각은 있으십니까?
-몰라. 자기가 성공하면 나 여의도에 4층짜리 스타ㅡ박스 하나 차려준다고 하던데?
-역시...! 존버는 승리하는군요!
-아니, 나 지휘관인 거 몰랐다니까....
지휘관은 후안에게 약속했다.
여의도에 파드레 후안 2호점을 내어주기로.
"...거기는 조용하겠지?"
"글쎄요. 마법 소녀들 상대로만 파는 카페가 될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콩고물 받아먹으려고 오는 이들보다 커피를 즐기러 오는 이들에게 팔고 싶은 게 내 심정이라서. 끌끌."
본점의 장사가 확실히 매일매일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지만, 후안은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이지 파이어족이 아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정말 환장하겠군."
"아르바이트 더 늘리는 건 어때요?"
"지금 뽑는다고 순수한 목적으로 아르바이트생이 생기겠나?"
"음...."
현재의 상태는 이른바, 극한 사장.
잘 팔리는 건 기분이 좋지만, 이렇게까지 잘 되는 건 바라지 않았다.
"사장님, 시간 됐어요."
"...오픈하지."
후안은 앞치마의 끈을 단단히 묶으며 커피를 내렸다.
아르바이트생 천여름이 카페의 문을 열고 나가서 '오픈'으로 팻말을 바꾸기 무섭게, 많은 사람이 자체적으로 번호표를 가져와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아아."""
마시기 위해 주문하는 것이 아니다.
자릿세의 개념으로 주문하는 것이다.
"오, 자네 왔는가?"
"오늘은 예가체프로."
"따뜻하게, 에스프레소?"
"제 취향을 정확히 아시는군요."
"매일 오니까."
간혹 진짜 커피를 좋아하는 이들은 후안이 내려주는 커피를 즐기지만, 대부분은 다른 이들의 눈치가 보여서 1인 1잔, 그리고 시간마다 하나씩 주문한다.
"...나 아침에 단 거 당기는데. 스무디 하나 주문할까?"
"야, 사장님 귀찮게 하지 마. 지휘관이랑 친한 어른이라고!"
일개 카페 사장이지만 지휘관의 '지인'이라는 것 때문에 사람들은 후안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리고 하나 더 요인이 있다면....
"그래도 나 인터뷰 딸, 커흑?!"
기자는 뒤로 쓰러졌다.
그의 입에는 민트초코가 한 덩이 들어있었고, 안에 있던 이들 중 남자의 입에 민트초코가 쑤셔지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민트쓰롯]을 당했군."
"나 이거 치우는 동안 내 자리 빼앗지 마시오."
협회에서 온 자가 민초살을 당한 자를 치우는 동안, 후안은 조용히 TV를 켰다.
카페 사장이 음식점도 아니고 벽에 걸린 대형 TV를 켰다?
이는 카페 사람들이 사장에게 저것 좀 꺼달라거나 다른 채널을 켜달라고 항의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TV가 켜지자 카페 사람들은 묵묵히 TV를 응시했다.
[여기는 여의도입니다! 현장에는 여전히 마법소녀가 되기 위해 모여있는 수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항간에 몇몇 여성분들이 예고도 없이 사라진 것을 두고 이미 예선전은 진행되고 있는 게 아니냐 하는....]
[알겠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다음 마법소녀가 누가 선정될 것인가를 두고 이야기를 나눠보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헌터 길드 부협회장님, 그리고 히어로 협회 소속 스카우트를 모시고 한 번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뉴스에서는 다음 마법소녀로 누구를 뽑을 것인가에 대한 분석이 한창이었다.
테이블에 앉아있는 이들도 저마다 마법소녀 후보들의 명단을 보며 이야기를 나눴고, 후안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난리군."
"사장님은 뭐 들어본 거 없어요?"
쫑긋.
사람들이 후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후안은 쓰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없네. 알려줬으면 좋겠어. 정말이지...후."
딸랑딸랑.
갑자기, 문이 열렸다.
민초살을 당한 이를 처리하고 온 이가 들어오나 싶었지만, 당당히 문을 열고 들어온 이를 보며 손님들은 입을 떡 벌렸다.
민트색 머리칼에 하얀색 정장을 입은 미인.
심지어 바지 뒤로 살랑거리는 민트색 꼬리는 누가 봐도 평범한 존재는 아니었다.
"사장님!"
"......."
후안은 커피를 내려놓았다.
눈앞에 나타난 여인, 민트색 머리카락의 김펜릴은 후안의 앞에 서서 마도기어의 목록을 하나 튕겼다.
"이거 지금 한 잔씩 뽑아달라냥."
미친 컨셉의 보유자.
사람들은 깨달았다.
마법소녀다.
"저, 저기...?"
"응?"
"혹시, 마법소녀님과...?"
"훗."
김펜릴은 손으로 한쪽 눈을 가리며 비릿하게 웃었다.
"지휘관 심부름으로 테이크아웃 하러왔다냥."
"여의도에서요...?"
"이 몸, S급이다냥."
"아."
사람들은 단번에 이해했다.
몇몇 사람들은 급히 김펜릴의 모습을 촬영했고, 김펜릴은 그들을 향해 슬며시 미소지으며 팔짱을 꼈다.
"하여튼. 이 몸의 인기란."
"당신을 찍는 게 아니라 당신이 주문한 메뉴를 찍는 거예요."
"...후냥?"
"저거 보세요. 지금 음료 분석 하는 거."
김펜릴은 TV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어디서 구했는지, 카페 파드레 후안이 보이는 CCTV에서 테이크아웃으로 들고 나가는 음료들을 찍은 영상으로 마법소녀들을 분석하고 있었다.
[이거 보시다시피 블루베리 에이드가 있지 않습니까? 블루베리 하면 누구겠어요? 설화공주, 아니 이제는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할 석하랑 양 아니겠습니까? 이걸 생각하면 이미 2월, 아니 그 전부터 교류가 있었다....]
[정슈리 양이 실습을 나간 시점부터 레모네이드가 늘어났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매일 마시면 다른 걸 마시고 싶어질 수도 있지만, 이렇게 하루에 석 잔씩 주문하면 한 번은 자기가 자주 마시는 걸 주문할 수밖에 없다....]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이 있는 거로 봐서는 아주 올바르고 현명한 마법소녀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분명 탕수육도 부어먹을 거예요.]
"와."
김펜릴은 아주 징글징글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 무섭다냥."
"아무렴 지휘관 관련된 건 손톱 유무도 확인하는 사람들인걸."
"김펜릴, 잠깐만."
후안은 김펜릴의 주문을 가리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홍차 이거, 제대로 주문된 거 맞나? 이거, '그걸' 첨가해달라는 거."
"맞다냥."
"...하나 더 많은데?"
"한 명 늘었으니까."
김펜릴은 아무렇지 않게 말하며 마도기어를 두드렸다.
"뉴페이스 거다냥."
"......"
"......어?"
갑자기 싹 가라앉은 분위기.
김펜릴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입을 떡 벌렸다.
그러고는.
"...데헷? 스포...해버렸다냥?"
이달의 마법소녀, 공개까지 앞으로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