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994화 (994/1,497)

EP.994 2부 10장 07 선택

괴인은 보통 키가 2m가 넘고, 곤충이나 괴물이 사람처럼 두 발로 다니는 모습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게임에서도 마찬가지.'

이 게임, 푸른 하늘의 데스디나스에서 괴인은 정말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너무 다양해서 인간처럼 안 생긴 이능력자는 전부 괴인으로 취급해.'

이들을 구분지어보면 라이더형 괴인, 좀비형 괴인, 마인형 괴인, 그리고 갑주형 괴인이 존재한다.

라이더형 괴인은 특촬물에서 으레 나오는 괴인이다.

대부분의 괴인들이 이 모습을 하고 있으며, 서울의 주민들도 대부분 특촬 속 괴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좀비형 괴인은 과거 청화단의 듀라한들이나 청송의 소나무부대가 그러하듯, 언데드와 같은 자들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천가을이나 유이신과 같이 죽었다가 살아난 괴인들이 여기에 속한다.

마인형 괴인은 판타지 속 악마와 같은 자들을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천리안을 가진 김지화가 여기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갑주형 괴인이란 무엇인가.

이들은 본래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외형의 괴인들이다.

즉, 원래는 게임에 없었지만 DLC에서 새롭게 추가된 괴인들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로, 창염의 피닉스.

몸 안은 존재하지 않지만, 마력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겉은 갑옷으로 이루어진 괴인들.

판타지에서 '리빙 아머'와 같은 것으로 표현되는 이 괴인들은 간지와 성능 두 가지를 갖춘 괴인으로, 많은 이들이 새롭게 동료로 끌어들이려고 혈안이 된 이들이다.

단 일곱 명 추가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리고 창염의 피닉스[괴인형]이 동료로 추가되면서 플레이어들은 직감했다.

-혹시 간부들 괴인형으로 변신 가능한 거 아니냐?

플레이어들은 DLC를 통해 간부들을 변신시키는 방법을 찾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했고, 결국 어떻게 하면 변신이 가능한지 찾아내고 말았다.

-야 P형님처럼 다른 애들도 갑주형으로 변신 가능한데?

-ㄹㅇ?

-인간형이랑 본체 괴수형 사이에 괴인형이 따로 추가된 듯?

-어떻게 하면 됨?

-몰?루

조건은 알 수 없지만 하나 둘 플레이어들은 간부들의 갑주형 괴인을 해금했다.

그리고 플레이어들은 간부들이 새롭게 갑주형 괴인이라는 걸 DLC로 선물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창염의 피닉스만 혼자서 갑주 괴인형으로 다닐 수 없으니, 다른 이들에게도 그에 걸맞는 모습이 주어진 것이다.

동료로 영입할 수 있지만, 동시에 하드 난이도에서 등장하는 적으로도 만날 수 있는 존재들.

다른 모든 것을 배제한, 오직 인간과의 전투만을 위해 모든 힘을 개방한 간부들의 모습이 바로 갑주 괴인형이다.

바로 지금의 김펜릴처럼.

카ㅡㅡ앙!

마력과 마력이 부딪칠 때마다 금속음이 울린다.

장충무도관 전체에 파공성이 일며 일대를 마력으로 흔들었고, 나는 혹시나 여파가 관객석에 닿지 않기를 바라며 둘의 전투를 예의주시했다.

"크으윽?!"

샤오린은 이를 갈며 언월도를 휘둘렀다.

마력으로 만들어낸 언월도는 펜릴의 공격에도 쉽게 잘리거나 망가지지 않았지만, 샤오린의 몸은 다르다.

카앙!

"읏...!"

언월도와 손톱이 부딪칠 때마다 샤오린은 인상을 찌푸렸다.

펜릴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고, 샤오린의 사각으로 파고들어 복부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

"하아압!"

그만하라고 말하려는 순간, 샤오린은 자신의 복부를 향해 날아오는 검은 건틀릿을 붙잡고 위로 뛰어올랐다.

카가가강!

펜릴의 건틀릿은 칼바람이 휘몰아친다.

그걸 팔 전체에 마력을 둘러 억눌며 펜릴을 붙잡은 뒤, 샤오린은 몸을 크게 돌리며 벽을 향해 날렸다.

쾅ㅡㅡㅡ!!

펜릴은 벽에 처박혔다.

전투형 김펜릴을 상대로 육탄전으로 유효타를 날린 이는 샤오린이 처음이었다.

[좀 치네.]

펜릴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먼지를 털어내며 필드로 다시 돌아왔다.

맹수처럼 손톱을 세우며 자세를 낮추는 모습은 마치 블랙 펜...릴과도 같았다.

"잠깐."

내가 손을 들어 둘의 싸움을 중재했다.

막 달아오르려던 찰나에 싸움을 막으니 둘의 표정은 좋지 않았지만, 나는 손뼉을 쳐서 물건 하나를 샤오린의 옆에 투척했다.

"이거 입고 싸워봐요."

"당신은...?"

"어서."

"......."

샤오린은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한 번 본 뒤, 자신의 옆에 떨어진 거대 케이스를 눌렀다.

철컥, 철컥.

케이스가 열리자 안에서 흰 연기가 뿜어져나왔다.

샤오린은 연기 안에 있는 슈트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이, 이걸 입고 싸우라는 겁니까?"

"그래요. 당신을 위한 슈트입니다."

"...이게요?"

"그럼요."

샤오린은 슈트케이스 안에 있는 의복을 꺼내들었다.

그것은 너무나도 얇은, 속이 비치는 만두피보다도 얇은 검은색 타이즈였다.

"입혀드릴까요?"

"이, 이건…!"

"걱정마세요. 이건 지금 심사 테스트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거니까. 당신을 위한 마법소녀 복장은 당신의 취향을 듬뿍 담아서 새롭게 만들어질 거예요."

샤오린의 복장은 이미 정해져있다.

20년의 지구에서 그녀가 그러했던 것처럼, 지금의 샤오린도 분명 그 복장을 좋아할 것이다.

"타이즈는 어디까지나 테스트를 위한 것이고,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랍니다. 그거 그렇게 보여도 A급 코어를 갈아서 만든 방어구예요. 얇아서 그렇지."

"속이 비치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더 좋지 않나요?"

"...움직이기는 편하겠죠."

샤오린은 주섬주섬 타이즈를 입기 시작했다.

당연히 타이즈를 입기 위해서는 옷을 벗어야했고, 샤오린은 속옷을 제외한 모든 옷을 벗고 케이스 안에 집어넣었다.

철컥, 철컥.

케이스가 샤오린의 옷을 집어삼켰다.

바퀴가 자동으로 구르며 필드에서 벗어났고, 샤오린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타이즈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지휘관. 기다리기 힘든데.]

펜릴은 좀처럼 가만히 있지 못했다.

마치 민트초코를 먹다가 아이스크림 통을 빼앗은 것처럼, 그녀는 몹시 짜증을 냈다.

[내가 입혀줄테니까 그냥 싸우면 안 되나?]

"스스로 입을 때까지 기다려줘요."

[흠….]

만약 이대로 계속 시간이 지나가면 펜릴의 호감도가 바닥을 향해 내려가기 시작할 터.

[저거, 꼭 필요한 건가?]

"저거 입으면 당신이 '전력'으로 싸울 수 있어요."

[......호오?]

"전력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죠?"

펜릴과 샤오린을 동시에 자극시키는 말.

"무협식으로 말하자면, 살초를 쓰지 않았잖아요."

"그게...살초가 아니었다고?"

죽일 듯이 공격했지만 죽이려고 한 공격은 아니었다.

샤오린이 잘 막아낸 것도 있지만, 펜릴도 전력을 다한 공격이 아니었다.

[당연하지. 동료가 될 수 있는 자를 죽이지 말라는 지휘관의 명령이 있었으니까. 뭐, 그걸로 죽으면 거기서 끝인 거지만.]

"뭐라? 하, 웃기는 군. 그게 전력이 아니고 뭐지?"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군 그래.]

"죽이지도 못하면서 입만 살았어."

이렇게 서로를 자극시킨다.

펜릴은 전력을 사용하지 않았고, 샤오린은 펜릴이 전력으로 자신을 상대하지 않는 것에 불쾌감과 호승심을 느끼게 될 터.

[지휘관. 진짜로 죽여도 되나?]

드디어 펜릴이 나를 지칭했다.

샤오린은 짐작은 했지만 진짜로 그럴 줄은 몰랐다는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고, 나는 펜릴에게 목 아래로 시선을 보냈다.

"타이즈 있는 부분은 그냥 칼에 베이는 정도로 끝날 거예요. 히카리가 시뮬레이션 돌린 거니까 안심하고 싸워도 돼요."

[목 아래로는 힘을 써도 된다? 죽어도 나는 모른다?]

"죽어도 상관없어요. 죽으면...거기서 끝이라는 거니까."

진짜로 그렇다.

죽으면 끝이다.

아무리 인게임에서 히로인이라고 한들, 이유나를 제외하면 다른 스타팅이라고 표현하는 박라온과 김누리도 동료로 영입하지 못하고 넘어갈 수 있다.

즉, 히로인이 죽으면 죽은 그대로 끝이다.

흔히들 RPG 게임에서는 캐릭터가 사망해도 전선에서 이탈하는 식으로 처리하지만, 이 게임에서는 쓸데없이 리얼리티를 살린다고 사망하면 그냥 거기서 끝난다.

만약 히로인 개인 루트다?

그러면 게임이 끝나겠지.

"샤오린. 펜릴을 상대로 안 죽고 살아남는다면 선물을 줄게요. 당신만을 위한 전투용 슈트를."

"......후, 후후. 질문있습니다."

"말하세요."

샤오린은 웃으며 언월도를 다시 들었다.

"딱히, 저 자를 이겨도 상관은 없는 겁니까?"

"...풋."

그거, 패배 플래그인데.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떠났다.

잠시 뒤.

이전보다 훨씬 더 거친, 칼바람 소리가 장충무도관을 가득 채웠다.

* * *

둘의 전투를 영상으로 녹화하는 사이.

나는 장충무도관 지하를 통해 히카리가 있는 연구소에 왔다.

치직, 치직, 치직.

연구소 안은 20년의 세계에서 봤던 것의 초창기 형태와 비슷했다.

히카리가 연구에 필요한 물건들을 하나 둘 채워넣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연구실을 거대한 지하 연구소로 만들었다.

시간과 예산, 그리고 코어를 얼마나 투자하느냐에 따라 히카리가 만들어내는 건 얼마든지 달라진다.

단지….

예산과 코어는 무한정 줄 수 있지만,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는 것.

게임은 12월 25일, 2025년이 지나가기 전에 끝난다.

그러니 히카리에게 맡겨 생산해야 할 물품들은 전부 효율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S급 코어를 바탕으로 만드는 무기나 방어구 같은 것도, 동시에 여덟 명이 올라가도 꺼지지 않는 편안한 침대 매트리스도, 호문클루스도 모두 시간이 필요하다.

'20년의 지구에서도 빨리 피닉스로이드를 만들어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큰일날 뻔 했어.'

만약 그가 여유를 부리면서 지구정복놀이에 집중했다면, 아마 의식의 분화라는 개념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히카리는 내게 은인이다.

그를 살려주고, 또 나를 무한의 연옥에서 탈출시켜준 고마운 여자다.

그러니까….

'보빔으로 갚는다.'

"히카리."

"네."

"다 만들었어요?"

"이제 슬슬 다 만들어가요."

위이잉.

히카리는 기계팔들이 열심히 움직이는 공간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어보이지만, 히카리가 손가락을 튕기자 바로 전신 슈트가 하나 나타났다.

"샤오린 님을 위한 슈트, 앞으로 하루면 만들어진답니다."

"좋아요."

샤오린을 위한 슈트.

몸에 착 달라붙는 타이즈와 다를 바가 없지만, 놀랍게도 슈트에는 광학미채라는 아주 특별한 기능이 붙어있다.

즉, 샤오린은 투명인간이 될 수 있다.

"지휘관 님. 이거 다 만들고 나면, 저 쉬어도 돼요?"

"그냥 쉬는 것보다 저랑 재밌는 놀이 하는 거 어때요?"

"음…."

히카리는 손가락을 세 개 펼쳤다.

"저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