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91 2부 10장 04 흑역사
눈 앞에 떠오른 표시가 말하는 바는 명백했다.
-나는 이미 너에 대해 알고 있다.
군신, 샤오린.
중국의 S급 히어로이며, 이능력을 오로지 상처의 회복과 피부 강화-즉 육체에 올인한 여자.
그렇다면 군신은 어떻게 싸우는가?
마치 중국의 군신, 관우처럼 싸운다.
청룡언월도를 들고, 녹색 전포를 휘날리며, 붉은 말을 타고 달리며 적을 무참히 썰어버린다.
혹자는 군신 코스프레라고 모욕하기도 하지만, 그런 자들은 전부 없던 자들이 되었다.
그러나 군신이 '여자'라는 것은 극비사항이다.
군신, 샤오린은 어떤 정치적 고위 관료의 딸이며, 그는 자신의 딸을 숨기기 위해 머리카락을 수염처럼 달고 다니게 하고 전포와 가면으로 정체를 숨기게 만들었다.
그래서 군신이 샤오린, 소령이라는 것은 극히 일부만 아는 특급 기밀이었다.
그런데 상대는 자신을 알고 있다.
소령은 은은한 미소로 '네'를 눌렀다.
"씨발, 이거 뭐야!!"
소령과 달리, 다른 여자 중 한 명이 비명을 지르듯 뛰쳐올랐다.
"당신은 비처녀인가요? 네? 네? 씨발, 지랄하는 것도 아니고 뭐하자는 거야!!"
"......."
소령은 간신히 웃음이 터져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마법소녀가 되는 길에 처녀 비처녀 유무가 중요한 것도 아닌데, 상대방의 정조를 묻는 질문은 몹시 무례하면서도 불쾌한 일이었다.
'아니야.'
소령은 생각을 바꿨다.
자신에게 주어진 첫 질문이 군신이냐는 질문이었으니, 저 여인에게도 비처녀냐 아니냐 하는 질문은 그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비처녀냐고 묻는 질문은 조금.'
소령은 갑자기 불안감에 빠졌다.
만약 마법소녀가 되는 조건이 '처녀성'이라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
소령은 불안감에 좀처럼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처녀성이라는 것은 한 번 사라지면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것이며, 탈모와 같이 그 어떤 방법으로도 복구할 수 없는 것이다.
삐빅.
소령의 화상에 또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군신이냐는 질문에는 조금 당황해도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이어진 질문에 소령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당신은 섹스를 해 본 경험이 있나요?]
[아니오/아니오]
"......."
소령은 섹스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리고 당당하게 '섹스를 해본 적이 없다'고, 아니오를 누를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질문에 답변을 할수록 점점 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뭐?!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냐고?! 그, 그럴 리가 없잖아!!"
"마, 맞아요! 답변을 이렇게 해둔 거 뭐야?! 이거 불법사찰 아니야?!"
"거, 거짓말로 사람을 속이는 건 좋지 않아요! 뭐하는 짓이에요, 이게!!"
다른 여자들도 일제히 불만을 토로했다.
소령과 마찬가지로 질문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혹은 치부를 드러내는 과정으로 나아가는 질문인 듯 모두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소령은 저들의 표정, 몸짓, 언성을 통해 이미 직감했다.
저들에게 주어진 질문들, 처녀성의 유무라거나, 살인에 대한 경험 유무라거나, 그런 것들 모두 진실이라는 것을.
이미 지휘관은 모든 것에 대해 알고 있었다.
불법 사찰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구나 싶을 정도로, 테스트는 참가자들의 과거를 낱낱이 후벼파고 있었다.
끼이익.
화상 모니터의 화면이 바뀌었다.
우측 하단에 아주 작게 나타난 푸른 머리칼의 여인은 현실과는 다른 3D 입체 이미지였다.
"버츄얼 캐릭터...?"
[안녕하세요, 저는 여러분의 마법소녀 매지컬 큥큥스 입단 테스트를 도울 진행 요원, P쨩인 것이에요.]
스스로를 P쨩이라고 소개한 푸른 여인은 싱글벙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지금 이것은 여러분들의 진실됨을 테스트하기 위한 것이에요. 솔직하게 답변해주시면 테스트는 통과랍니다.]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네와 아니오, 둘 다 나오는 것도 아니고 하나밖에 안 나오잖아요!"
[규칙은 묻는 말에 네, 아니오 버튼을 누르는 거랍니다.]
P쨩의 말대로, 질문이 나오면 그에 대한 버튼을 누르면 되는 게 규칙이다.
네와 아니오, 둘 중 하나가 동시에 나오기는 했지만, 그것은 분명 숨길 수 없는 '진실'이었다.
지휘관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전제가 깔리지만, 지휘관이라면 그것도 가능한 게 아닐까.
[만약 테스트를 도중에 포기하겠다면 그냥 조용히 나가면 됩니다.]
"흥, 누가 못 나갈 줄 알고?!"
"저, 저기...."
여인 중 하나가 P쨩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거, 막 중간에 나가고 그러면 세상에서 영원히 나가게 해준다고 탈락시키는 거 아니죠?"
"뭐...?"
"저, 저 드라마에서 봤어요! 이런 상황에서 탈락하면, '너는 인생에서 탈락이다!'라면서 막 쏴 죽이는 거! 총으로 이마에 구멍을 뚫는, 그런 거...!!"
[.......]
P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령은 혹시나 싶은 마음에 주변에 기감을 뿌렸지만, 딱히 코어웨폰이나 총과 같은 무기는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각각의 의자에 연결된 마나의 선 뿐.
각각 코어 하나씩 박혀 있는 듯 했고, 소령은 묵묵히 의자에 몸을 눕혔다.
아니오.
다른 이들이 뭐라고 하든 말든, 소령은 침묵을 지키며 키보드를 눌렀다.
다른 이들이 흘끗거리는 게 보였지만, 소령은 그들이 볼 수 있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손을 움직이며 답변에 대답했다.
S급 괴수를 다섯 개체 이상 쓰러뜨려봤습니까?
네.
S급 괴인을 상대로 1:1로 싸워서 이겨본 적이 있습니까?
네.
S급 마법소녀들과 싸워서 이길 자신이 있습니까?
네네네네네네네네네.
소령의 무수한 연타에 다른 이들은 잠시 기가 죽었다.
"흐, 흥...! 진실 테스트라고 했지? 그래, 어디 해보자고. 나중에 이 테스트 내용 가지고 뭐라고 하면 사기죄로 고소할 거야!!"
여인들은 다시금 자리에 앉았다.
여기서 스스로 떠나게 되었을 때, 앞으로 다시는 마법소녀에 지원할 수 없게 될 지도 모른다.
마법소녀.
로또 1등보다도 더 가치가 있다.
-그래도 섹스를 해야 하는데 괜찮겠어?
-나는 남편 허락을 받고 온 여자야!
-오....
-남편도 원서를 넣었다고!
-우웨엑.
이 자리에 온 이들은 모두 지휘관과의 섹스를 각오하고 온 이들이다.
설령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마법소녀가 되겠다는 각오를 끝마치고 온 이들이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자신의 치부가 드러난 것에 불쾌감이 들었지만, 그 불쾌감을 애써 억누르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일확천금을 위하여.
[당신은 돈 때문에 마법소녀가 되려고 하는 건가요?]
[네 / 아니오]
처음으로 나온 이지선다의 선택형 질문.
소령은 당당히 아니오를 눌렀다.
[당신은 국가를 위해 마법소녀가 되고자 하는 건가요?]
[네 / 아니오]
"......."
소령은 제법 긴 시간을 고뇌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국가와 지휘관이 생각하는 국가에 대한 개념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쉽게 함부로 누르기가 애매했다.
"네."
하지만 눌렀다.
국수주의라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소령은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이곳에 왔으니까.
[어떠한 명령이 나와도 지휘관의 지시에 따를 것인가요?]
[네 / 아니오]
"네."
[정말로?]
[네 / 아니오]
"네."
[지휘관과 레즈 섹스를 할 수도 있나요?]
[네 / 네]
"......?"
순간, 소령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질문이 잘못되었다고 생각이 들었고, 자신의 번역기가 오류가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질문, 있습니다."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진행요원, 파랑새 4796호기가 소령에게 다가왔다.
"무슨 문제라도?"
"이거, 제가 제대로 읽은 것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이 말은...."
소령은 다른 이들의 눈치를 봤다.
아마 이 단계까지 온 이들은 얼마 없는 것 같았고, 자신이 알고 있던 사전 정보와는 차이가 너무나도 심한 내용이었다.
레즈 섹스.
그건 여자와 여자 끼리 하는 섹스가 아닌가?
"음...문제를 정정하겠습니다. P쨩, 정정해주십시오."
[칫.]
두 명이서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뭔가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하는 느낌이 드는 건 어째서일까.
소령은 기이한 기시감을 느끼며, 바뀐 질문을 다시 읽었다.
[지휘관과 섹스를 할 수 있습니까?]
[네 / 아니오.]
"......."
아마, 이 질문이 소령에게 가장 큰 난관일 것이다.
이 자리에 선 이들 모두가 마법소녀가 되기 위한 필수 단계가 무엇인지 알고 있지만, 소령에게 섹스를 미지의 영역ㅡ
"......."
미지까지는 아니고, 수박 겉핥기로 어떤 느낌인지는 잘 알고 있다.
섹스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지만, 섹스가 어떤 느낌일까에 대해서는 대충 알고 있다.
한 번도 남자와 섹스를 해본 적은 없지만, 소령은 질입구주름이라고 표현할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가.
그것은....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은 영상을 보고 답하는 내용입니다.]
"앗."
소령은, 순간 뛰쳐나가고 싶어졌다.
[이 영상은 당신 이외의 사람에게는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습니다. 아래에 있는 바이저를 착용해주십시오.]
"......."
소령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바이저를 착용했다.
바이저는 소령의 눈앞에 밀착하듯 수경처럼 달라붙었고, 귀에 이어폰이 삽입되어 눈과 귀를 막았다.
눈앞이 서서히 암전되기 시작하고, 서서히 어떤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질컥, 질컥.
누군가가 수음이라도 하는 걸까.
소령은 당장 바이저를 벗고 뛰쳐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앙, 하앙.]
캠 화면이었다.
[오늘은, 흐응, 칼 손잡이 자위를 해볼게요...흐흥.]
"......."
[Playlist : [CN]SR_6974_HILT_Virg....
소령은 정신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저기요. 몸캠 히로인도 히로인이라고 할 수 있나요?"
일단, 히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