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990화 (990/1,497)

EP.990 2부 10장 03 진실 혹은 거짓

7월 17일 오후 11시 47분. 서울, 노량진.

노량진이라는 곳이 어디냐.

지리적으로는 가장 여의도와 가깝고, 상징적으로 보면 공무원이든 뭐든 고시 공부를 하는 이들이 가장 많이 모여있던 곳이다.

수많은 고시 학원들이 모여있으며, 많은 이들이 공무원으로 합격하기 위해 일부러 지방에서 상경하여 고시원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현실이 어떻든, 이곳은 사람들에게 있어 꿈의 메카였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수많은 고시텔들은 마법소녀가 되기 위해 모여든 이들에게 임시 거처가 되었다.

마치 감옥처럼, 독방처럼 방 하나 공간 안에 화장실과 침실 등 모든 것을 욱여넣은 듯, 침대 바로 옆에 변기와 세면대를 두고 부스를 설치해둔 이 시설은 서울이 복구되자마자 많은 이들이 이곳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히어로가 되기 위해서.

이능력자가 되기 위해서.

혹은, 마법소녀가 되기 위해서.

삐빅.

여인은 마도기어를 부여잡고 자신에게 할당된 방으로 향했다.

서울에 몰려온 사람들은 저마다 텐트를 치거나 노숙을 하며 여의도 근처에서 버텼지만, 자신처럼 '마법소녀 자질 테스트 사이트'를 통해 시험에서 통과한 이들에게는 마법소녀 매지컬 큥큥스-세간에서는 간단하게 '청화단'이라고 부르는-에서 숙소를 제공했다.

비록 그 장소가 좁디 좁은 고시텔이었지만, 놀랍게도 화장실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으나, 마도기어의 불빛을 이용하거나 촛불을 켜놓으면 크게 불편할 것도 없었다.

사락, 사락.

여인은 품에서 편지 하나를 꺼냈다.

볼펜으로 대충 휘갈겨 쓴 필체는 '은인'으로부터 받은 증표였다.

- 중고 마도기어 값, 37만원. 옷 다 합쳐서 23만원. 현금 15만원.

차고 있는 마도기어도, 입고있는 옷도, 심지어 이제는 누구도 쓰지 않지만 주머니 속에 꼬깃꼬깃 들어있는 지폐도 전부 빌린 것이다.

-국밥은 한국 온 기념으로 사준 거니까 예의상 청구 안 함.

"...풉."

외국에서 온, 그것도 이전에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이국에서 온 이를 상대로 현금 백 만원 가량을 쾌척할 수 있었을까.

"고맙습니다, 은인."

아무리 상대가 A급 이능력자라고 한들, 이 정도로 금전적 지원을 해준 건 분명 그가 자신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 이것은 투자다.

은인은 자신이 꼭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투자를 한 것이고, 자신은 은인에게 은혜를 갚아야 한다.

-나중에 성공하면 백 배, 천 배로 갚으시오. 인천불빠따 이기우.

"물론."

은혜는 반드시 갚는다.

원수도 반드시 갚는다.

여인의 몸에 흐르는 피는 은원에 대하여 확실하게 갚아야 한다는 집념이 담겨있었다.

그렇다면 여인이 이곳, 말도 짧게나마 통하는 한국에 온 이유는 무엇인가?

복수 때문이다.

고국에서 있었던 일에 대하여 복수하기 위해서.

설령 지휘관에게 육체를 허락한다고 한들, 자신의 나라를 집어삼킨 악의 존재를 처단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가족을 구하기 위해서.

"...힘이 필요해."

자신의 힘만으로는 부족했다.

국가 안에서 뭔가를 하기에는 철저한 통제 속에서 움직이기 힘들었고, 여인의 오빠는 죽기 직전에 자신에게 동쪽으로 떠나라고 했다.

-지휘관이 지금 한국에 있을 지도 몰라.

"...당신의 예상이 맞았습니다."

불과 3월.

서울에서 난리가 났던 그 시점, 그는 신서울에 있는 금발서양남이 지휘관이 아닐까 특정했다.

물론 그걸 알고도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의 상급자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혹시나 전쟁이 일어날까봐.

그가 현재 '충분한 억제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면, 분명 대규모 군대가 황해를 건널 것이라고 직감했다.

그래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지휘관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무능'을 이유로 구금당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었다.

여인은 오빠를 납치, 감금에서 구하지 못했다.

오빠는 자신을 구하러 왔다가 함께 잡히는 것 보다 밖으로 나가서 지휘관에게 몸을 의탁하라고 했다.

"......."

여인은 손으로 얼굴을 눌렀다.

오빠가 남긴 물건이라도 하나 있으면 좋으련만, 김해공항에 밀입국을 하면서 그녀에게 남은 거라고는 몸뚱아리 하나 뿐이었다.

스륵.

여인은 마도기어를 눌러 인터넷에 접속했다.

중고 마도기어라서 상당히 느렸지만, 그래도 아예 사용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검색...."

여인은 익숙한 손길로 마도기어의 화상키보드를 두드리며 자신에 대해 검색했다.

"휴."

검색결과, 0건.

역시 통제가 잘 되는 곳 답게, 자신에 대한 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속으로는 사라진 자신을 찾느라 난리가 났겠지만, 그걸 찌라시로라도 돌리는 이가 있다면 바로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을 것이다.

다행히, 아직 자신은 들키지 않았다.

걱정되는 것이 있다면....

"드러낸다?"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 마법소녀 오디션의 중요한 포인트다.

지휘관에게 자신을 어필해야 하는 때, 만약 자신의 정체가 탄로난다면?

전쟁이다.

자신을 잡으러 온 특수부대가 황해를 건너오든, 아니면 이 나라에 침투해있는 특수부대원들이 자신을 잡으러 오든, 아니면 지휘관을 납치하든 전쟁이 열리게 된다.

그러니 최대한 자신의 정체가 들키지 않는 선에서 지휘관의 눈에 들어야 한다.

그래서 여인은 다소 어려운 길이라도 자신의 노출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온라인' 시험을 치뤘는데....

"...왜 통과됐지?"

마법소녀가 되기 위한 입단 테스트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나뉜다.

당연히 오프라인이 경쟁률이 더 낮다.

온라인은 한국에서 접수하는 이들을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접수를 하니까.

몇 차까지 테스트가 존재하는지는 모르지만, '프로듀스 큥큥스타'로 뽑는 '이 달의 마법소녀'가 '2명'이다.

각각 온라인 1명, 오프라인 1명으로 신청을 하는 상황에서 여인은 온라인으로 신청을 했고, 놀랍게도 테스트를 진행하자마자 통과했다.

자신에 대해 노출한 것이라고는 오직 '맨 얼굴'밖에 없다.

여인은 히어로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 법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남자 히어로로 알려져 있으니까.

매일 가면을 쓰고 나선 만큼, 여인의 맨 얼굴을 아는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 온라인 테스트에 합격을 했다?

"......어쩌면."

이것은 운명일지도 모른다.

여인에게 은혜를 갚고, 복수를 하라는 신의 계시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여인은 희망한다.

누구도 없는 장소에서, 오직 지휘관만 보는 장소에서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열리기를.

"...이길 수 있어."

무기를 들고, 싸울 수 있는 시간이 온다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리라.

"S급이니까."

중국의 S급 히어로, 군신(軍神).

그 정체는 머리카락이 허벅지까지 닿을 정도로 긴, 지금 이 노량진 고시원에서 한국인 모 청년에게 백 만원 가량을 빚진 여인이다.

"...일단 한국인인 척, 이름을 지을까?"

여인은 자신의 이름을 번역기로 돌렸다.

"소령."

샤오린.

"...은인의 성을 빌려서, 이소령이라고 하자."

여인, 이소령은 다음 날을 기약했다.

당장 내일, 현장 2차 테스트가 있으니까.

* * *

아침이 되었다.

이소령은 시간이 되자마자 지정된 장소로 향했다.

-한국시 기준, 7월 18일 오전 9시 00분까지 동작역 9번 출구로 올 것.

"......?"

소령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혹시나 몰라서 넉넉하게 30분 일찍 도착을 했건만, 주변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무너진 동작대교와 한강, 그리고 하강 북쪽의 폐허 뿐.

그러나 서서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비를 뒤집어쓰거나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여인들이 하나 둘 나타남에 따라 소령은 직감했다.

여기에 모인 이들이 전부 자신과 같이 '1차 합격'을 한 이들이라는 것을.

분명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저기 지하로 향하도록 지시가 떨어질 것을.

삐빅.

마도기어에서 알람이 울렸다.

마법소녀 매지컬 큥큥스에서 배포한 오디션 전용 어플이 밝게 빛나고 있었고, 소령은 어플의 지시를 따라 9번 출구 아래로 발걸음을 옮겼다.

9번 출구로 들어온 여자들은 소령을 포함하여 전부 10명.

"아이 씨, 이런 곳으로 왜 오라는 거야...?"

그들 중에는 한국에서 제법 유명한 CEO도 있었다.

외국인인 소령이 그 얼굴을 알고 있을 정도로 나름 유명한 여인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지만 목소리로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이능력자였으니까.

화장품 회사 사장이었지만 이능력자로 각성한 뒤, 헌터 길드를 차려 새롭게 회사를 만든 그녀는 소령도 이 합격자 중 눈여겨 볼 정도로 제법 강한, B급이었다.

'이능력자라서 다 뽑은 건 아닌 것 같은데.'

소령은 일행을 훑었다.

일행 중 소령을 포함하여 이능력자는 고작 셋.

다른 이들은 일반인인 듯, 이곳에 괴수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벌벌 떨며 어둠만이 가득한 지하를 구둣발로 내려오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지하철 역사.

정체를 숨기기 위함인 듯 얼굴에 가면을 쓴 여인은 여인들을 향해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금발의 여인은 머리에 다소 우스꽝스러운, 파란색으로 물들인 새 가면을 쓰고 있었다.

"저는 여러분을 다음 시험 장소로 안내 할 파랑새 4796호기라고 합니다."

"무슨 시험이죠?!"

"차근차근 알게 되실 겁니다. 따라오십시오."

파랑새 4796호기는 몸을 돌려 지하철 안쪽으로 향했다.

여인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파랑새를 쫓아갔고, 소령은 그녀가 아무 힘도 없는 일반인임을 깨달았다.

일반인임에도, 그녀는 당당했다.

"여기로 들어가시면 안에 의자가 있을 겁니다."

파랑새는 자신들을 철로 안, 밀실처럼 생긴 공간으로 안내했다.

소령이 가장 먼저 안으로 들어가자, 그곳에는 사람 수에 맞춰놓은 듯한 의자가 있었다.

"이건...?"

"앉으신 다음, 마도기어의 어플을 켜고 대기해주십시오."

소령을 비롯한 참가자들은 의자에 앉았다.

안마의자처럼 몸을 눕힐 수 있게 만들어진 의자에 앉은 소령은 의자에서 느껴지는 마력을 감지했다.

'뭐야?'

소령이 의아함을 느끼기도 잠시.

[마법소녀 매지컬 큥큥스 입단 테스트 2Stage.]

[진실 혹은 거짓.]

소령의 어플에 떠오른 화상.

[규칙 : 묻는 말에 네, 아니오 버튼을 누를 것.]

[거짓이 3회 이상이 될 경우 탈락.]

"뭐야, 거짓말 탐지기야?"

"쉽네. 진실만 말하면 된다는 거 아냐?"

"하긴...진실됨이 히어로에게는 중요하죠."

다른 참가자들에게도 똑같은 화상이 떠오른 듯 했고, 소령은 눈앞의 화상에 집중했다.

그리고.

첫 번째 문제.

[당신은 중국의 S급 히어로, '군신' 샤오린입니까?]

[네 / 네]

"......."

소령은, 왜 자신이 바로 1차에 합격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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