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972화 (972/1,497)

EP.972 2부 9장 28

프로포즈를 하러 왔다.석하랑은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멍한 얼굴로 나를 계속 바라보기만 했다.

"고백을 하러 왔다."

"...오빠야 어디 뭐 약 하거나 그랬나?"

고백이라는 말이 어색하게 들렸을까.

아니면 내 말을 이해하고도 믿지 못하는 걸까.

"약 하는 거 아니야. 진심으로 말하는 거다."

나는 지금까지 오직 고백을 신라에게만 했다.

신라가 창염이었을 때부터 나는 그녀에게 몇 번이고 고백을 했고, 이 세계로 넘어온 뒤로 나는 고백에 대한 화답을 받았다.

그 뒤로 석하랑과 이유나가 우리의 가족이 되었지만, 중간에 신라가 중개를 하다보니 가족이 된 것이지 엄밀히 따지자면 조금 의미는 달랐다.

신라는 내 아내다.

하지만 하랑이나 유나는 '내 아이를 임신한 여자'였지, 내 아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이들이 나를 남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둘에게 정식으로 아내가 되어달라고 말한 적이 없으니까.

"내 아이의 어머니로 계속 이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어."

그러니 석하랑에게 정식으로 이렇게 고백한다.

"내 아내가 되어줄래?"

나는 석하랑이 누워있는 침대를 향해 다가갔다.

석하랑은 여전히 굳어있었고, 나는 그녀의 위로 몸을 겹치며 머리칼을 쓸었다.

"한 가지 빼고는 약속할 수 있어."

"...뭔데?"

"신라보다 더 사랑할 수 있다고는 자신할 수 없어. 하지만 이것만큼은 분명히 말할 수 있어. 내가 신라 다음으로 사랑하는 여자는 네가 될 거라는 걸."

"......고백치고는 진짜 개쓰레기 같은 발언이네."

석하랑은 차가운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그 말은 아직 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거 아이가?"

"아니지."

"맞다 아이가. 금마 다음으로 사랑하는 여자가 될 거라는 건, 이제…."

"사랑한다."

나는 석하랑의 위로 입술을 겹쳤다.

그녀는 그저 가만히 입술을 열었고, 나는 그녀와 잠시 혀를 섞었다.

츄릅.

여전히, 그녀의 입에는 블루베리 향기가 가득했다.

"아이 어머니에 대한 의무감으로서의 사랑이 아니야. 나를 사랑하는 것에 대한 반대 급부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야. 정말 소중히 아껴주고 싶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졌어."

"...언제?"

"네가 나를 찾아와서, 신라랑 보비는 한이 있더라도 나와 함께 하고 싶어진다고 말한 순간부터."

솔직히, 흔들렸다.

내가 나를 원하지 않는 이를 상대로 사랑을 계속 주장해보고, 그 사람의 사랑을 받기를 갈구해봤기 때문에 나는 석하랑이 가진 아픔과 고뇌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참아내고, 끊어냈다.

신라를 위해서, 나는 모든 것을 참고 신라만을 생각했다.

그러나 신라가 하랑과의 섹스를 원하며 하랑과 살을 섞은 뒤로, 하랑을 임신시키게 된 뒤로 나는 하랑에 대한 마음이 생겼다.

"이렇게까지 나랑 있고 싶어하는 여자를 어떻게 밀어낼 수 있겠어?"

"......이러다 오빠야한테 죽어라 대시하는 여자 나오면 계속 한 두 명씩 늘어나겠네?"

"그건 아니지."

적어도 당장은.

"신라, 너, 유나. 이 세 명의 사랑으로도 나는 벅차."

"지휘관은 일곱 명까지 최종 결정전에 데려가는 거 알제? 그러면 오빠야도 일곱 명 데리고 살 걸?"

"설마 여기서 더 늘어나겠어?"

"확신할 수 있나?"

"...그건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내게는 너희 셋으로도 충분해."

한 명으로도 나는 이미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런 여인들이 셋이나 나를 사랑해주는데 여기서 더 무엇을 바랄까.

"...금마 허락 받고 말하는 거제?"

"허락은 아니지. 허락보다 용서가 쉬운 법이니까?"

"하지만 오빠야라면 이미 저지른다고 연락하고 왔을 거 아이가?"

"......거짓말은 못하겠네."

석하랑은 피식 웃으며 나를 끌어안았다.

나는 나를 향해 다가오는 그녀를 향해 입을-

"키스 하려는 거 아이다, 빙구야."

석하랑은 내 어깨를 향해 고개를 파묻었다.

졸지에 서로 볼을 마주하게 되었지만, 나는 석하랑이 원하는 대로 그녀를 내 품에 꼭 안았다.

"그 말,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모르제?"

"알지."

"아는 사람이 지금까지 기다리게 했나?"

"불안했으니까."

솔직히 불안했다.

아무리 석하랑이 내게 보여주는 마음이 진심이라고 한들, 내가 하랑에게 진심으로 대해도 내가 신라에 대한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고 한들.

신라가 나를 대하는 마음이 변한다면, 나는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다.

"창염의 피닉스를 설야의 피닉스로 만든 건 다 네가 한 거야. 네가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 덕분에 신라가 마음을 열어준 거지."

섹스의 대상과 내 자식의 어머니로 여기는 게 아닌, 자신과 동등한 '내 아내'의 위치로 신라는 드디어 진정으로 인정한 것이다.

내가 진심으로, 여자로서 사랑하게 되는 대상으로 석하랑과 이유나라는 둘과 손을 맞잡기로 한 것이다.

이전에는 나와 신라가 손을 맞잡고 그 뒤를 하랑과 유나가 따라오기로 했다면.

이제는 넷이서 함께 손을 나란히 잡고 걷거나, 셋이서 함께 공정하게 내 좆을 잡거나 하는 삶을 살게 될 터.

"신라가 내 사랑이 네게도 똑같...아니, 비슷하게 갈 수 있었던 배경이 뭔지 알아?"

"뭔데?"

"네가 신라랑 보비는 걸 각오하면서 나와 사랑을 하고싶어해서."

한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가 그 남자의 아내를 상대로 보빔을 허락하면서까지 남자에 대한 사랑을 갈구한다.

신라는 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순애에 약하다.

"...슬슬 오겠네."

나는 시간이 되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석하랑을 안고 바로 침대 옆으로 굴렀다.

와장창!

유리창이 깨지며 사방으로 유리 파편이 흩날렸다.

나는 석하랑을 안고 침대 옆으로 굴러 파편이 날아오는 걸 피할 수 있었고, 잠시 시간이 지난 뒤 유리창을 깨고 날아온 물건 하나를 집었다.

"자."

나는 내 손 위에 올라온 함을 그녀에게 건넸다.

석하랑은 표정없는 얼굴로 함을 열었고, 그곳에는 푸른색과 금색이 함께 나선형을 그리며 어우러지는 모양의 반지가 있었다.

"네 거야."

"......끼워줄래?"

석하랑은 묵묵히 왼 손을 내밀었고, 나는 직접 반지를 잡아 그녀의 왼 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웠다.

"......나 참."

석하랑은 자신의 손에 끼워진 반지를 보며,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애써 내리며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유리창은 깨져있고, 옷은 이 모양에, 영상 편집하다가 이게 무슨…."

"좋잖아?"

"......오빠야, 내도 로망이 있다."

석하랑은 입술을 삐죽였다.

"내도 어디 뭐 촛불로 만들어진 길 사이로 오면서 턱시도 쫙 빼입고, 나랑 결혼해달라고 무릎 꿇으면서 고백받고 싶은 그런 게 있었다고."

"지금이라도 할까?"

"엎드려 절받기 해봐야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 일단…."

사아아.

석하랑은 깨진 유리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유리조각을 모두 마력으로 날려 모은 다음, 유리창의 결정을 마력으로 이어붙여 유리창을 복구했다.

여신들과 함께 살다보니 이제는 물체가 움직이는 모습 만으로도 마력의 움직임을 알 수 있었다.

똑똑똑.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나는 석하랑에게 눈짓을 보낸 뒤 문을 열었고, 그곳에는 창백한 표정의 정장 남녀들이 서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예?"

"이 호실의 유리창이 깨졌다고 해서 왔습니다만…."

지배인처럼 보이는 이는 내 뒤의 유리창을 눈으로 훑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죄송합니다. 이 방인 줄 알고…."

"어디 유리창 깨졌습니까? 이 높이에?"

"어디서 갑자기 돌풍이 일어나 돌덩이 하나가 유리창을 두드렸다고 합니다. 깨지는 소리가 났는데...죄송합니다. 옆 방으로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거."

어떻게 말해야 할까.

나는 다소 쑥쓰러웠지만, 나보다도 더 부끄러워 할 석하랑을 위해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옆방도 저희가 둘 다 빌려서요."

"...네?"

"......소음 문제 때문에."

"저희 호텔은 방음이 완벽하게 되어있…."

지배인은 말을 끊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했겠지.

아니라면 내가 부끄러워 죽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고객님께서 괜찮다면 마스터키로 확인을 해도 되겠습니까?"

"네. 어차피 저희 이 방만 쓸 거라서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쿵.

문이 닫혔다.

나는 방 안에서 벽에 얼굴을 박은 석하랑을 향해 다가가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 그냥 그러려니 할 거야."

"으으…."

호텔에서 섹스를 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석하랑은 자기 신음이 옆방으로 새어갈까봐 몹시 부끄러워했다.

그래서 양 옆 방도 함께 빌렸다.

남녀가 함께 와서 세 개의 방을 빌리는 것에 직원들이 의아해하기도 했지만, 내 적당한 변명에 직원들은 민망해하면서도 입을 꾹 다물며 넘어갔다.

이유는 하나.

"하랑이, 신음 옆방에 들릴까봐 부끄러워?"

"부끄러운 게 당연하지. 오빠야, 잊었나? 오빠 닮은 그 괴인 가시나랑 그 아저씨가 어떤 걸 겪었는지."

"......."

별로 기억하고 싶지는 않지만, 짜증나는 녀석이기는 하지만 기억은 한다.

"화권 얘기야?"

"그래. 모텔에서 찍힌 섹스 영상 유출되는 바람에 개고생했다 아이가.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그건 네가 신음이 커서 그런, 으윽…."

나는 아래에서 서서히 타고 흐르는 한기에 입을 다물었다.

"아무튼 집 밖에서 할 때는 항상 조심해야 하는 기다. 알겠제?"

"집 밖은 위험하니까 안 하는 건 안 되고?"

"...고백받고 반지를 받았는데 섹스를 안 한다고? 오빠야, 죽는다?"

석하랑은 나를 침대로 다시 당겼다.

"오빠야, 그거 아나? 화권, 은근히 오빠랑 많이 닮은 거."

"......."

"오빠야, 화권 싫어하는 이유가 오빠야랑 닮아서 그랬던 거 맞제? 거의 형제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닮았구만."

"......그런 거 아니다."

화권 이승형.

내가 20년의 지구에서 시작부터 한 번 키워볼까 싶었던 A급 히어로, 불곰.

천가을과의 관계는 다소 공교로웠지만, 국내외적으로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되었다.

"내는 오빠야가 왜 이승형을 싫어하는 지 알지롱."

"조용히 해."

"내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 오빠야가 만약에 내 세상에서 태어났다면 어떤 사람이었을까."

"......."

나는 석하랑에게 고백을 했는데, 왜 석하랑은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걸까.

"이름은 완전 다르지만, 얼굴 보니까 바로 알겠구만. 오빠야는 창염의 피닉스로 우리 세상에 왔지만, 우리 세상에 오빠야랑 대응되는 사람이 하나 있었던 기다."

"......."

"가루라랑 이승형이 사귀게 놔둔 거, 둘이 하는 거 보면서 오빠야가 대리만족 했던 거 아이가?"

"이것 만큼은 단언할 수 있어. 그 녀석과 내가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증거."

나는 석하랑의 손을 잡고 그녀를 침대로 이끌었다.

"자지는 내가 존나 더 크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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