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71 2부 9장 27 설야의 피닉스
버튜버.
버츄얼리얼리티 큥튜버.
실사가 아닌 증강현실을 이용한 캐릭터를 앞세워 스트리밍이나 기타 다른 활동을 하는 방송인.
석하랑을 통해, 그리고 유나를 통해 이미 어떤 개념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신라가 올리는 녹화 방송 플랫폼을 통해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그게 나를 비롯하여 우리를 중심으로 만들어진다고 하는 건 정말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대머리가 미쳤나?"
나는 석하랑이 잠시 방에서 휴식을 취한다고 하는 사이, 따로 밖으로 나와 전화를 걸었다.
[예, 하선태입니다.]
하선태에게.
도저히 그 남자에게는 직접 전화를 걸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하선태를 쪼는 게 정답이다.
"버튜버 소리는 또 무슨 소리입니까?"
[저희 회사의 사업 확장을 위한 다양한 방안 중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그게 왜 버튜버냐는 겁니다."
[요즘 대세는 버튜버니까요.]
대세.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대세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신라도, 하랑도, 유나도 모두 최근에는 공통 주제가 버튜버이 이야기였고, 이들은 자신들도 일종의 버튜버로서 활동하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신라는 데스디나스 녹화방송을 올리는 식으로.
석하랑은 데스디나스 관련 컨텐츠를 진행하거나 기타 다른 사항을 홍보하는 운영측 버튜버로.
-그라운드 제로!
...그리고 유나는 종합게임 버튜버로 활동하고 있다.
서로 각자 다른 분야에서 방송을 하며 이 별에 있는 사람들과 친해지고 있는 여신들의 노고에 박수를.
그런데 왜 그걸 나까지 해야 한단 말인가?
"전 한다는 말도 없었습니다만."
[그래서 자료를 보여드리는 걸로 설득을 하려고 합니다.]
"보내주세요."
[바로 이겁니다.]
나는 하선태가 보내준 자료 하나에 입이 떡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슈퍼챗으로 하루 이야기해서 1억을 벌었다고...?"
[첫 날 데뷔 방송으로 이야기를 한 거지만, 오픈 이후로 그녀는 이미 엄청난 액수를 벌어들였습니다. 예, 당신의 아내이기도 한 유나 양이 말이죠. O튜브 슈퍼챗 전체 순위 중 7위가 바로 유나 양입니다.]
유나는 이미 버튜버로 활동을 하고 있었다.
몰랐던 사실이고 딱히 말하지도 않아서, 나는 그녀가 평범하게 3D 보정 작업으로 나서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예상외로 유나는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어째서지?'
유나가 예쁘고 아름다운 건 사실이지만, 세상 사람들이 유나라는 사람을 대함에 있어 다른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내가 게임 속에서 너랑 큥큥했어!
유나의 입장이나 내 입장이나 상당히 불쾌한 자들이 시청자로 와서 이야기를 했지만, 유나는 그들에 대해 너무나도 의연한 자세로 대처했다.
-저 실명으로 이유나구요, 회사 소속 법무팀이 곧 출발할 거구요, 곧 고소장 날아갈 거니까 어디 멀리 나가지 마세요.
유나의 멘탈은 단단했다.
게임 속에서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던 유나나 의존적인 모습을 보이던 유나와는 달리, '나의 유나'는 이미 완성된 한 명의 여신이었다.
-제가 유나같지 않다고요? 캐릭터 이유나랑 저랑은 다른 사람이랍니다. 제가 유나라는 건 여기서 데스디나스 게임 플레이한 분들이랑 모두 섹스를 했다는 거잖아요? 저는 태어나서 오직 한 사람과 해봐서 잘 모르겠네요.
...분명 그녀의 뱃속에 깃들어있는 히드라의 영향력이 있으리라.
유나는 현재 예쁘게 매콤한 19금 방송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유나의 모습을 한 무언가.
아, 그게 버튜버인가?
'그래도 좀 다른데.'
버튜버가 무엇인지는 나도 어느정도 안다.
안의 사람과 밖의 사람이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며, 프로그램을 통해 움직이는 이미지를 바탕으로 꾸미지만....
'유나는 유나잖아.'
1:1 미드빵으로 유나팬티보라색이라는 아이디를 강탈하여 '내팬티보라색'으로 개명한 유나는 다른 캐릭터가 아니라 여전히 '이유나'라는 모습으로 활동하고 있다.
금발적안의 유나.
그래서 유나의 시청자들은 유나에 대하여 게임 속 유나와 구분하기 위해, 나의 유나를 '갸루유나'라고 부르고 있다.
이는 석하랑도 마찬가지.
게임 속 로하랑과는 다른 석하랑이지만, 석하랑의 옛 모습을 기억하기 위해 석하랑의 방송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갸루유나.
(가슴)큰하랑.
그런 의미에서 둘의 방송은 이미 버튜버라고 할 수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하랑이 말한 '프로젝트'는 뭔가, 뭔가였다.
'나'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도대체 무슨 계획을 꾸미고 있는 겁니까?"
[당신이 아이 셋을 키우기 위한 분유값 복사 프로젝트?]
"...구체적으로 한 번 말씀해보세요."
분유값 세 배.
아무리 통장에 막대한 돈이 남아있다고는 하지만, 부모가 되어서 태어날 아이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나는 세 명의 여신을 임신시켰다.
세 여신으로부터 태어날 아이들은 반인반신으로 자라게 되어 평범한 육아는 아니게 되겠지만, 나도 아버지는 처음이지만 이것만은 확실히 얘기할 수 있다.
아버지가 매일 어머니'들'과 섹스만 하고 놀고 먹는다면, 과연 어느 자식이 부모를 존경할까?
일하고 놀고 먹는 모습만 보여주는 건 자녀교육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설령 그게 방송과 관련된 일이라고 해도.
-우리 아빠가 창염의 피닉스야!
...라고 하는 건 조금 부끄러울 수 있겠지만, 그래도 자식에게만큼은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
"일단 자세히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당신은....]
하선태 왈.
"그러니까 나는 '창염의 피닉스'가 데스디나스 뒷설정 풀어주는 걸 하라는 말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이미 본편은 물론이고 DLC도 어느정도 공략이 절찬리에 진행되고 있지만, 사람들이 아직도 찾지 못한 비밀스러운 정보들이 많거든요.]
"그렇겠죠."
본편 100% 올클리어는 나 뿐이다.
피닉스 루트에 진입한 사람 자체가 나뿐이라고 이야기를 들었으니, 앞으로 이 데이터가 0.01%라도 차지하고 있는 이상 올클리어 세이브 파일은 사실상 99.99%가 가장 높다.
피닉스 루트에 관한 썰을 푸는 것만으로도 나름 모두가 만족할 수 있다.
만족은.
"근데 그렇게 뒷설정 푸는 거 다들 별로 안 좋아할텐데."
[그거라면 이런 컨텐츠가 있습니다.]
"...위키 읽어주는 남자?"
[이미 히로인들에 대한 정보는 행적부터 성격, 인간관계까지 위키에 다 정리되어 있거든요.]
이게 전세계급 미연시 게임의 힘인가.
나는 처음 보는 위키 속 히로인들에 대한 정보에 아찔함을 느꼈다.
"이 사람들은 왜 히로인으로 논문을 써놓은 거지?"
[당신도 신라 양으로 이 정도 쓸 수 있지 않습니까?]
"뭐...."
주석이 약 130개 정도 달려있을 정도로 제법 길지만, 신라를 바탕으로 쓰라고 하면 못 쓸 것도 없다.
그런데.
"뭐지? 왜 다른 히로인들은 자기 얼굴이 올라가있는데 왜 나는 괴인형이 올라가 있는 거지?"
[당신도 히로인이니까.]
"미친. 그게 무슨 신라가 주인공이고 제가 히로인 중 한 명이라는 듯한 소리입니까?"
[창염의 피닉스라는 소설이 있으면 주인공이 당신일지 몰라도, 하신라 양이 주인공이라면 하렘으로 여러 사람 주변에 꾸릴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
"내가 신라의 남자 애인이고 신라 하렘의 멤버다?"
[틀린 말은 아니지요.]
"틀렸습니다. 나는 신라의 남편입니다."
[그럼 석하랑과 이유나는 어떻습니까?]
갑자기, 말문이 턱 막혔다.
[그들은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
[한 번 생각해보시길.]
뚝, 뚝, 뚝.
하선태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버튜버 문의하려고 했는데 내가 왜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지?"
필경, 하선태는 버튜버에 대한 민원을 듣기 싫어서 일부러 말한 것이리라.
그도 그럴게 만약 버튜버 프로젝트가 대머리가 추진하는 행동이라고 한다면, 하선태는 이에 대해 최소한의 의견 개진은 할 수 있어도 프로젝트 중단이나 폐기는 불가능하다.
중간 관리자의 입장이 여러모로 난처한 건 알지만, 그래도 당사자인 나로서는 당황스럽다.
그리고 동시에.
"......확실히 하기는 해야지."
삐비빅.
나는 신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결심은 했지만, 신라에게 분명히 말해야 할 게 있다.
[여보세요? 당신? 데이트 간 거 아니었어요?]
"말할 게 있어서."
[...흐응, 목소리 보니까 알겠는데요.]
신라는 마치 '드디어'라는 듯 미약한 웃음을 흘렸다.
[허락을 구하는 거예요, 용서를 구하는 거예요?]
"일방적 통보야. 적어도 이건 양보 못 해."
[푸흐흐. 이거, 제가 제 무덤을 판 것 같은 느낌이긴한데.]
이 상황은 신라가 만든 상황이다.
자신이 참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며, 그녀 또한 자신의 선택에 따라 언젠가 이런 상황이 벌어질 거라고 충분히 생각했을 것이다.
아무리 나라고 한들, 책임은 져야 한다.
[좋아요. '그거' 준비는 해놨어요?]
"......."
[푸흐흐, 생각만 하고 일단 질러버렸구나. 그걸 하는데 그게 빠져서는 안 되죠. 대신 이건 약속해요.]
신라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 힘이랑 유나의 힘을 같이 담는 거예요.]
"야, 그러면 유나한테도 들키잖아...!"
[제 거라고 속일게요. 속지도 않겠지만, 적어도 당신이 말하기 전까지는 속는 척이라도 하겠죠. 유나니까.]
유나니까.
나는 그 말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유나라면 분명 그렇게 할 가능성이 높았다.
[물건은 금방 날아가서 30분 뒤에 가져다 드릴게요. 그럼, 행운을.]
삑.
신라가 전화를 먼저 끊었다.
...내게 화가 났다기보다는, 한순간의 보빔에 이끌려 결국 이 상황이 일어나게 만든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을 것이다.
'누가 그러게 하렘하라나.'
이건 신라가 자초한 일이다.
사실 진작에 내가 정했어야 할 일이지만, 나는 지금까지 어쩌면 미뤄왔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
'한다.'
휘이잉.
하늘에서 뭔가가 날아와 내 앞에 떨어졌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함을 움켜쥔 뒤, 하늘을 향해 감사의 인사로 고개를 짧게 숙였다.
띵동.
엘레베이터를 타고 다시 우리가 예약한 방으로 올라왔다.
방 안에는 석하랑이 침대 위에서 나이트 드레스만 입고 누워서 태블릿을 보고 있었다.
자신의 방송이 녹화되고 편집된 영상을 확인하는 것일 터.
"어, 오빠야. 왔나."
"하랑아."
"응?"
"프로포즈를 하러 왔다."
내 아이의 어머니로 시작했지만.
나의 아내로 만들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