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970화 (970/1,497)

EP.970 2부 9장 26 망중한, 부산 데이트

석하랑과의 데이트.

로, 나는 부산에 도착했다.

"하랑아, 부산 풀코스는 어디에 있어?"

"풀코스가 뭐 별 거 있나. 회 한 접시 하고 소주 까고 그런 거지. 근데 오빠야 그런 거 좋아하나?"

"네가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굳이?"

"오빠야는 오빠야 좋아하는 거 먹을 생각은 없나?"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거 같이 먹는 게 내가 좋아하는 음식인데."

"으, 농담이 아니라 더 빡치네. 어디가서 그런 말 하지 마라."

툴툴거리면서 화를 내지만, 석하랑은 얼굴을 붉히며 모자를 눌러썼다.

현재, 그녀는 평소와 같은 차림에 모자로 자신을 최대한 가리고 있다.

딱히 석하랑의 얼굴이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들킬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그냥 석하랑의 외모 자체가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많이 끌고 있어, 석하랑은 괜히 자신이 들킬까봐 최대한 모자를 눌러쓰고 검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는 것이다.

흔히들 인터넷에서 말하는 연예인 포스라는 게 바로 이걸까?

나는 우리를 향한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에 좀처럼 당혹스럽기는 했다.

신라와 있을 때는 신라가 워낙 당당하게 다녀서 나도 딱히 주변을 의식하지 않았지만, 석하랑은 생각보다도 상당히 주변을 의식했다.

"하랑아. 이름이라도 다르게 불러줄까?"

"응?"

"아무래도 하랑이라는 이름이 흔한 건 아니니까."

석하랑.

게임 속 캐릭터의 이름이 아무리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고 한들, 그걸 한국인이 석하랑이라는 이름을 짓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게, 게임 속 19금 캐릭터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지었다고 하면 자식이 어떤 기분이 들까?

쉽게 판단할 문제는 아니지만, 분명 커서 자신의 이름을 검색했을 때 좋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뭐라고 부를 건데?"

"음...설야?"

"지랄하네. 도랐나?"

격한 반응이다.

설야라는 건 그녀의 이명이고, 여기는 히어로가 없는 세계니까.

"그럼...이렇게 부르면 되겠다."

나는 석하랑의 손을 잡은 뒤, 그녀의 귀에만 들리게 작게 속삭였다.

"루살카."

"......!!"

아까보다 더 격한 반응이다.

하지만 나는 이 이름이야말로 다른 이들의 시선을 받는데 큰 문제가 없을 호칭이라고 생각했다.

"러시아 사람같지 않아? 루살카 큥큥스키."

"뭐라카ㄴ"

"어허."

나는 석하랑의 마스크를 내려 그녀와 입술을 맞췄다.

석하랑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내가 물러나자 마스크를 올리며 툴툴거렸다.

"...그냥 루살카로 해라."

석하랑은 지금 누구보다도 외국인처럼 보인다.

그녀의 몸에 흐르는 반인반령의 유전자가 아무리봐도 러시아에서 내려온 외국인을 연상케했다.

염색도 노화도 아닌 은백색과도 같은 머리카락.

이국적인 외모.

가슴은 크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한국인 평균보다는 이제 조금 더 커졌으며, 하반신으로 갈수록 음심보다 예술작품을 보는 듯한 감탄이 나오는 바디 라인.

오늘은 청바지를 입어 다리를 가렸지만, 석하랑의 하체는 정말 남들 보여주기 아까운 몸이다.

"가자, 루살카. 내가 부산 풀코스로 소개해줄게."

"뭐라카ㄴ"

나는 석하랑을 데리고 곳곳을 둘러다녔다.

우리의 여행은 명소를 관광하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저거는 여기도 있네?"

"거기에 있었나?"

"어. 흉물이라고 욕은 먹었는데 랜드마크라고 남아있었지. 근데 그 때 휩쓸려서 다 망가졌다 아이가."

"언제?"

"고래."

"아."

20년의 지구와 현대의 지구를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다.

석하랑이 모르는 건 내가 설명해주고, 석하랑이 아는 건 내가 설명을 듣고.

석하랑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20년의 지구에서 몇 번이고 본 부산이지만, 현실 속 부산은 게임이나 20년의 지구와는 당연히 많은 차이가 났다.

"해운대 근처에 저렇게 높은 건물 지어도 되나? 막 바람 불고 흔들리면 난리나는 거 아이가?"

"바벨탑을 세운 인류의 심정 같은 거 아니겠어?"

우리는 해운대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고층 건물 근처로 놀러왔다.

확실히 당장 엎어지면 바닷물에 코 닿을 만큼 해변에 가까운 이 건물은 석하랑의 입장에서는 생경한 광경일 수밖에 없었다.

"괴수들 해안에서 뛰쳐나오면 여기부터 바로 먹히겠는데?"

"여기는 괴수가 없잖아."

"또 모르지. 내가 요즘 영화 자주 보는데, 막 부산에서 어인 나오고 화성에서 바퀴벌레 나오고 막 그러더라?"

"그런 게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니까."

상업적 목적이든 흥미 유발이든, 인간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상당한 흥미와 관심을 가지게 된다.

20년의 지구 사람들이 이곳 현실의 평화를 갈구하여 대부분의 컨텐츠들이 순애나 평화, 사랑을 찾게 된 것처럼, 현실 속 인류는 다양한 분야를 상상하며 호기심을 채운다.

"실사 영화 같은 것도 그렇잖아. 스릴러나 폭발 같은 것도 영화 속에서나 즐길 컨텐츠지, 현실에서 그걸 즐길 수는 없는 거 아니겠어?"

"그건 그렇네. 인간은 가질 수 없는 걸 갈구한다라...."

석하랑은 베시시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그래서 내가 오빠야를 그렇게 원했던 건가?"

"무슨 소리를."

"바라는데 얻을 수 없으니까 자꾸 욕심이 더 생기는 거지. 초딩 때 안 배웠나? 인간의 욕심은 무한한데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고."

"너도 그거 배웠어?"

"히힛, 아무리 세계가 바뀌었어도 가르치는 건 똑같네."

20년의 지구와 현실의 분기점은 1999년 12월 25일.

이 날을 기점으로 테라에서의 차원문이 열린 만큼, 많은 것들이 변했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 기본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후손을 위해 땅을 개척한다거나, 자신들의 세대 이후를 위해 교육을 한다거나, 성인이 어린 아이들을 지킨다거나.

"그래서 하랑이 너는 만족해?"

"만족하냐니?"

"여기 이곳의 생활."

"그건 오빠야가 더 잘 느끼고 있지 않나?"

석하랑은 오히려 내게 되물었다.

"피닉스로서, 전 세계에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 아이가? 비록 힘을 사용하면 괴인의 모습이 된다고는 하지만, 여자 몸으로 살아야 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더 많은 걸 가질 수 있는 자리였으니까."

"그건 그렇지."

창염의 피닉스.

20년의 지구에서 불과 1년 동안 쌓은 힘과 자산은 다른 모든 것들을 초월할 만큼 많았다.

내가 처음 DLC를 설치하여 빨려들어갔을 때, 나는 2천억이라는 거금 대신 창염과의 만남을 선택했다.

그리고 20년의 지구에서 스스로를 불사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2천억?

억 단위가 아니라 조, 경, 아니 지구 단위로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내는 아직 이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오빠는 이능력도 지금 없다 아이가. 이능력 잃은 사람들이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알제?"

"잘 알지."

부정하지는 않는다.

손가락 한 번 튕기는 걸로 아메리카 대륙의 절반을 불태워버리는 전지전능한 힘을 잃고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와 생활하는 건 분명 고역이었다.

"생각해보니, 힘을 잃고 나서 진짜 아쉬운 거 하나 있네."

"글체?"

"문지방에 새끼 발가락 부딪혔을 때는 진짜 아팠지. 피닉스 시절에는 그런 것도 없었는데."

"...도랐나, 진짜."

석하랑은 내 다리를 걷어차려고 발을 뻗었다가 고이 접었다.

"응애, 나 무능력자."

"나중에 한 판 진짜로 함 뜨자."

"세 시간 뒤면 한 번 뜰 거 아닌가?"

"...침대 말고, 빙구야."

이능력자는 레고를 밟아도 아프지 않고, 혀를 씹어도 아프지 않다.

그런 특권을 잃은 나는 평범한 인간으로 회귀했고, 지금도 현실에서는 그 어떤 힘도 사용할 수 없다.

"그래도 테라 가서 다시금 힘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 그걸로 괜찮은 거 아닐까?"

"테라로 가는 건 나중에 결정된 일이었잖아. 그동안은?"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지. 사람이 외국에서 살다가 한국 들어와서 살면 그것도 적응하느라 시간이 걸리는데, 이계의 지구는 오죽하겠어? 이능력자로 살아왔던 삶이 한순간에 사라졌는데. 하지만."

단언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을 바친 거잖아. 너 혹시 이거 봤어?"

나는 두 손을 하나로 모았다.

석하랑은 아쉽게도 고개를 가로저었고, 나는 단번에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에 살짝 아쉬웠다.

-피닉스가 없어져도, 창염이 살잖아.

-정답이다, 창염의 피닉스!

봤으면 한 마디로 석하랑이 이해하게 만들 수 있었는데. 살짝 아쉽다.

그래도 잠시 써먹는 건 괜찮겠지.

"이능력자고 자시고, 애초에 나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어. 사랑하는 사람도 제대로 만나지 못하는 평범한...."

"올. 거기서 나온 대사지?"

"들켰네."

"오빠야 말 하는 거 거의 다 여기서 온 거 아이가."

석하랑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진짜 알아냈을 때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더라. 내 고향 사람들이 알면 뭐라카겠는데? 인류를 구원한 세계 최강의 일격이 사실은 만화 속 대사라고 한다면."

"뭐래. 거기서 정발한 것도 아닌데. 카드로 세계를 정복하거나 세계를 구하는 세상도 있을텐데, 일격기 기술을 존경을 담아서 말하는 것도 나쁠 건 없잖아?"

"내 손발이 오그라드는 건 어떻게 하지?"

"그냥 오그라드는 순간을 즐겨."

"하아...내가 진짜 무서운 건 있다 아이가, 내가 생각한 것도 어디서 따왔을 까봐 무섭다."

"......."

설화난영이 사실은 다른 곳에서 먼저 사용되었다고 하면 석하랑은 화를 낼까, 아니면 다른 기술 이름을 만들어내려고 생각할까.

"내가, 응? 얼마나 고생하는지 아나? 방송할 때마다 사람들이 뭔가 개드립을 치는데, 그거 내가 아는 거랑 다를 때마다 갈고리 올라오는 거 얼마나 고역인데. 응? 성스러운 신의 불꽃탄인가? 그거 올라왔을 때 내가 진짜 빡종했다 아이가."

"......."

"지금 석하랑 위키에 이게 박제되어서 클립으로 남아있다고. 응?"

"적당히 구라쳐. 그거 사실은 창염의 피닉스 최종기술 이름이라고."

"스포일러인데?"

"어차피 너도 회사 소속 버튜버 같은 거 아냐."

2D 입간판으로 하는 방송이지만, 3D 모델링인 척 하는 3D보정 방송이지만, 석하랑은 나와 큥큥할 때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시간을 방송에 할애한다.

"그런 셈이지. 오빠야, 그러고보니 회장 아재가 디코로 그 얘기 하던데."

"무슨 얘기?"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 빠져나온 사람들끼리 버튜버 큥큥단 1기 만들어보는 건 어떠냐고."

"......그 대머리가 도랐나?"

미친 소리.

"세 명이서 1기생을 어떻게 꾸려? 최소한 5명은 되어야지."

"왜? 한 명만 더 구하면 된다 아이가?"

"무슨 소리야. 너희 셋 밖에 없는데."

"......?"

석하랑은 나를 가리켰다.

"오빠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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