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968화 (968/1,497)

EP.968 2부 9장 24

무궁화 보이.

나는 모르는 이름이다.

하지만 게이머들이라면 전부 다 알 법한 사람이며, 이 세계에서는 특히 잘 알려진 유명인이다.

화권 '김철수'와 함께 2012년까지 한국 투탑을 달리던 S급 히어로.

키가 180cm에 이른 청년이지만 애국심을 위해 얼굴에 무궁화 꽃과 태극 무늬에 타이즈를 입고 다니는 것에 당당했던 이름모를 한 청년.

그 실체가 실은 과도한 성장으로 초등학생 때부터 성장이 끝난 S급 초딩이라는 것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당사자만 아는 일이다.

"무궁화 보이에 대해 아는 거 있나?"

"음...돌아가신 분이라는 거? 히어로 위키에 나와있는 거 말고는 잘 몰라요."

히어로 위키에 등재된 무궁화 보이에 대한 정보는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국뽕 히어로.

불꽃타입.

자지가 존나 큼.

솔직히 아메리카였으면 수-퍼맨이라고 했을텐데, 헬조선이라서 당했다.

지금까지 살아있었으면 무궁화 보이 시절에 있었던 모습 때문에 수치사를 했거나, 그것조차 이겨내고 모두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새로운 존재로 탈바꿈 할 것이다.

그런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아아,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인 줄 알았습니다.

무궁화 보이, '백청화'라는 존재에 대한 호의적인 시각은 그의 '행방불명'으로 완성되었다.

평양 사태에서 그는 다른 S급들과 함께 사망에 가까운 MIA로 분류되었지만, 실은 살아서 시베리아까지 떠내려갔다.

루살카가 시베리아에서 한국으로 떠내려온 것처럼, 무궁화 보이 백청화는 한국에서 시베리아로 떠내려갔다.

정말 다행이었던 점은 그가 무궁화 꽃이 달린 전신 타이즈의 흔적은 전혀 없이 알몸으로 시베리아에 정착했다는 점.

오직 선의철만이 그의 정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선의철이 지금까지 입을 꾹 닫고 있어 무궁화 보이의 실체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

정말로 다행스럽게도 '지휘관이 무궁화보이다!'하는 건 굳이 언급하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을 일이다.

고로, 무궁화 보이에 대한 일은 언급하지 않는 것이 상책.

'괜히 흑역사로 취급 받는 게 아니야.'

게임 속 백청화의 옛 이명에 대해 조롱을 받아야 하는 건 오직 플레이어의 몫이다.

플레이어 100명에게 게임 속 자기 이명을 두고 '신관'할래, '지휘관'할래, '무궁화 가이'할래 라고 묻는다면 50은 신관하고 50은 지휘관을 할 것이다.

세상에는 이명을 잘못 지어서 히어로 은퇴를 하는 자들도 있기 마련.

이명이란 정말로 중요하다.

나름 있어보이는 이름으로, 신화 속에 존재하는 짐승이나 전설 속 인물들로 이명을 정한다면 오그라들기는 해도 그 나름의 '멋'이 존재한다.

마치 창염의 피닉스처럼.

"유나야. 이명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알지?"

"물론이죠. 대부분은 히어로 협회에서 정하는 거지만, 지휘관 님께서 정해주실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래. 전자는 집단지성으로 정해지는 거고, 후자는 내가 정하는 이명이지."

자유도 갓겜이라서 그런지 이명도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디폴트 네임으로 '성녀', '청운', '야황'과 같은 이름이 있기는 하지만, '여신보지'라거나 '아가맘마통'이나 '싹퉁바가지'와 같은 괴상망측한 이명을 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 이명의 이상함으로 히로인임에도 인터넷 상에서의 놀림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생긴다.

자식의 이름을 히틀러라고 짓는 부모는 없는 것처럼, 지휘관은 히어로에게 지어주는 이명을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이름을 남겨주는 것처럼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중요한 이명인데, 선의철은 백청화에게 무궁화 보이라는 이명을 붙였다.

진심으로.

그게 이름이 예뻐서.

- 태권 보이나 올빼미 오형제랑 다를 바가 없다고!!

정말, 무시무시한 빌런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정말 다행스럽게도, 이제 무궁화 보이는 '웃긴 히어로 네임 앙케이트'같은 곳에서 1위로 보일 때나 나올 수 밖에 없다.

무궁화 보이의 실체를 '알아챌 수 있는' 자는 이제 지구상에 없으니까.

"이름 지어주는 거 정말 스트레스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아이의 이름이라면 정말 진지하게 지어주실 거잖아요?"

"그건...그렇지?"

"헤에."

유나는 싱긋 웃으며 내 손을 자신의 하복부에 올렸다.

"이름, 중요하겠죠?"

...분명 게임 속 유나가 평소처럼 하는 요망한 짓인데, 왜 나는 이게 무겁게 들리는 걸까.

[헤에. 그렇네요. 이름 중요하겠죠?]

내 뒤에서 가슴을 내 머리 위에 얹으며 나를 안는 모 유나 씨 때문은 아닐 것이다.

* * *

부산항.

컨테이너 박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은 버려진 컨테이너 박스 안에 긴급 공수한 침낭을 집어던진 뒤, 무더운 더위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긴급 회의에 들어갔다.

"이대로 가면 지휘관과 만나기는 커녕 석하랑에게 살해당할 것이오!"

이들은 모두 지휘관과 만나기 위해 한국에 왔다.

그러나 석하랑의 엄포에 따라, 누구도 지휘관을 만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아니, 상식적으로 SS급에 오른 이능력자를 누가 이길 수 있겠소?"

"이기면 만나게 해준다? 사실상 만나지 말라는 거 아닙니까?"

"하지만 우리가 누구?"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

이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개중에는 한 때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 귀화를 했던 이들도 다른 이들에게 계란을 맞을 각오를 하면서까지 한국에 돌아왔다.

지휘관이 한국에 있으니까.

오직 그 하나의 요소 때문에, 그들은 별로 원하지도 않는 한국 땅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신서울로 갈까요? 그쪽으로 간 이들이 지금 정부랑 협회를 대상으로 협상 중이라고 하던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소? 신서울에서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을 정부 또한 지휘관을 보호하기 위해 움직일 것이며, 어쩌면 지휘관을 위한 정부가 세워질 수 있소!"

"아니면 지휘관의 마법소녀가 정부 요인으로 나설 수 있지."

모두가 침묵에 빠졌다.

한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방면을 지배할 수 있는 자가 바로 지휘관이라는 존재였으며, 이 나라는 현재 지휘관의 아래에 놓여있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만약 지휘관에 의해 이능력을 각성한 이가 정치인으로 나선다면?

"지금 이 나라 뉴스에서 하는 이야기를 들으셨습니까? 여의도를 내어주고 지휘관을 이 나라에 계속 있게 하는 것에 찬성하는 자가 무려 70%가 넘는다고 합니다."

"나머지 30%는?"

"전직 대통령 선의철의 잔존 세력이겠죠."

"대단하군. 우리는 아마 90%가 찬성하게 될텐데."

이들에게 있어 여의도라는 땅은 그냥 서울 한 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에 불과했다.

"지휘관이 이렇게 양보를 해줬는데도 고작 70%라고?"

"미국에서 한국으로 넘어왔다는 게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야."

"미국이었으면 어디 테마파크, 아니 주 하나는 통째로 내어줬을텐데 말이야."

"지휘관 아래에서 뿜어져나오는 하얀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 국가 간 전쟁도 불사할 나라인데, 크흐흐."

그래서 이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휘관에 대해 더 잘 대해줄 수 있는 나라들이 이렇게 많은데.

한국보다 더 좋은 조건과 좋은 대우가 보장되어 있는 나라들이 이렇게 많은데.

그가 원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미국조차도 그에게 지금 한국에서 겪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제공할 수 있는데 왜 한국을 선택한 걸까.

"혹시 연고가 한국에 있는 거 아닌가?"

"연고라고 할 게 뭐 있어? 지금 전형적인 히스패닉이잖아."

"얼굴이야 성형을 했을 수도 있지."

"글쎄다. 차라리 한국인인데 서양인처럼 하고 다녔다고 하는 게 더 믿음직스럽네."

사람들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세상의 모든 권력을 가질 수 있는 지휘관이 한국에 자리를 잡은 이유를 알아야 접촉을 한 뒤에 그를 쉽게 설득할 수 있을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요소는 존재하지 않았다.

"혹시."

누군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지휘관 말이야, 동양인 패티시 있는 거 아니냐?"

"...오."

농담으로 내뱉은 말이었으나, 이는 모두에게 '혹시?'하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중국도 일본도 아니고, 그냥 한국인에 대한 패티시를 가지고 있는 거지."

"패티시는 어쩔 수 없지."

"슬림한 체형의 여자가 취향인가? 아닌데? 마법소녀들 몇몇 빼고는 다 글래머잖아."

"아니면 오빠 소리에 환장하는 놈이라거나."

점차 이야기는 지휘관의 패티시에 대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가운데, 판초우의와 같은 거적데기를 두른 이가 아무도 모르게 밖으로 나왔다.

스륵.

판초우의의 후드를 벗자, 안에는 단아한 흑발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야심한 시각.

부산항에 있는 컨테이너들 사이, 그녀는 그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곳에서 판초우의를 훌러덩 벗어던졌다.

"스읍, 하아, 스읍, 하아."

여인은 새하얀 나신으로 두 팔을 벌렸다.

아무리 인적이 드문 곳이라고 한들, 머리카락이 발 끝까지 닿는 것으로도 모자라 바닥에 쓸릴 정도로 긴 여인이 알몸을 드러내는 일은 드문, 아니 보통 일은 아니었다.

"쓰으읍."

여인의 손이 잠시 아래로 내려갔다.

하지만 그녀는 곧 고개를 가로저은 뒤, 자신의 머리칼을 뒤에서 잡으며 앞으로 쓸어내렸다.

그리고.

스륵, 스륵.

자신의 머리칼을 마치 붕대처럼 몸에 감기 시작했다.

가슴을 가리고, 머리칼을 아래로 내리며 고간을 지나 골반을 휘감고 한바퀴 감고 등에 머리 끝을 묶었다.

그것은 마치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스트링 수영복 같았고, 여인은 두 손을 비비며 바다를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여기가 부산이니까...."

여인은 마도기어의 버튼을 두드렸다.

그러자 한국의 지도가 펼쳐졌고, 여인은 부산을 시작으로 기이한 경로를 그리기 시작했다.

해안선을 따라 올라가는 길의 끝에는 '서울'이 있었다.

"육로가 안 되면 바다로 수영을 하면 돼."

여인의 눈에는 확신이 가득차있었다.

확신 뿐만 아니라, 반드시 지휘관과 만나야 한다는 사명감도 흘러 넘쳤다.

"...오직 지휘관만이 그를 막을 수 있어."

여인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난간 위로 올라섰다.

싸늘한 바닷바람이 그녀를 휘감았고, 여인은 잠시 몸을 으스스 떨며 입맛을 다셨다.

"...한국인 패티시가 아니라 동양인 패티시여야 할텐데."

여인은 능숙한 한국어를 구사하며 밤 바다를 향해 몸을 던졌다.

"응, 괜찮아. 적어도 마력공급하면서 중국어는 안 쓸 수 있을테니까...!"

풍덩!

아주 작은 물소리가 부산항에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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