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966화 (966/1,497)

EP.966 2부 9장 22 설야

님비와 핌피.

누구나 한 번 쯤은 들어봤을 집단이기주의 현상을 일컫는 말로, 혐오시설은 배척하고 선호시설은 환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원한다.

이능력자가 근처에 있기를.

사람들은 원하지 않는다.

괴수와 괴인이 근처에 있기를.

그리고 모든 이들은 원한다.

자신의 목숨을 책임져 줄, 혹은 내가 위험에 처했을 때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누군가가 옆에 있기를.

하지만 자신의 근처에 있는 이가 자신에게 피해를 주거나 양아치같은 짓을 한다면, 그건 또 혐오와 기피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지휘관은 그렇다면 혐오대상인가, 아니면 선호 대상인가?

-저랑 섹스 해주시거나 제 옆에 살아주세요!

당연히 선호 대상이다.

지휘관을 대상으로 하는 핌피는 사실 'Please Put In My Fucking spot'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 만큼, 전국에 단 한 명 뿐인 이능력 각성 및 마력 증진자는 누구에게든 빼앗기기 싫은 존재다.

지휘관 한 명을 두고 전쟁이 일어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만큼, 지휘관의 존재는 절대적.

지휘관이 내가 사는 나라에 오기를 누구나 바란다.

그런데 이미 내가 사는 땅에, 내가 사는 나라에 지휘관이 있다?

'절대 못 나가게 해야지.'

지휘관을 향한 타국의 손길은 한 둘이 아니다.

국빈 방문을 희망하든, 자국에 들어오면 으리으리한 성과 같은 곳을 제공하고 마음껏 마력공급을 하게 해준다고 약속을 하든, 몰래 S급을 동원하여 납치를 하든 어떠한 방법으로든 지휘관을 데려가려고 한다.

한국인들의 입장에서는 한국에 자리를 잡은 지휘관을 지키려고 몸소 나서고자 하는 것.

어딜 지휘관을 함부로 서울에서 타국으로 데려가려고 하는가?

지휘관만 있으면 이 나라는 다시 강해질 수 있다.

-서울을 다시 위대하게!

-나라를 다시 위대하게!

-S급 강국의 시대! 지휘관님이 S급을 찍어내신다!

과거 S급들이 넘쳐나던 시기, 아주 짧은 시기나마 동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하던 당시보다도 더 강한 전성기를 누릴 수 있다.

지휘관만 서울에 남아준다면.

-지휘관은 절대 외국으로 나가게 해서는 안 돼!

그래서 시민들은 누가 나서서 여론을 조성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직접 나서서 수많은 이들의 길을 막아세웠다.

"택시 타고 서울까지 50만원?! 하, 따따따따블로 줘도 안 간다!"

"버스?! 그런 거 없어! 여기 있는 버스는 다 고장이라서 못 가!"

"아, 꼬우면 비포장도로로 흙길 발고 가든가!"

부산 시민들의 의지는 결연했다.

서울로 올라가고자 하는 이들은 이미 진작에 올라갔고, 자신들은 비록 부산에 남아있지만 외국인들이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것은 한사코 길을 막았다.

"아니, 길이 있는데 왜 못 지나가게 하는 겁니까! 비키세요, 당장!"

"뭐라꼬! 내는 마도기어 같은 거 읍따! 한국에 왔으면 한국말로 해라!"

"지금 한국어로 내 마도기어에서 번역 돌아가고 있잖아요! 여기 들어봐요!"

"내는 전자기기 소리를 못 듣는 병이 있다!"

"번역을 할 거면 부산 사투리로 해라! 읍제?! 그러면 우리는 서울말 못 듣는다!"

"아니, 이런 미친...!"

히어로를 비롯한 수많은 외국인들은 답답함에 가슴을 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길 없어? 지방도나 다른 길이 있을 거 아냐."

"선의철이 지방을 버렸대. 신서울로 향하는 주요 고속도로를 제외하면 모조리 다 폐허나 마찬가지야."

"대도시 빼고 버렸다고?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었어? 최소한 지방에 사람들 몇 명은 살았을 거 아니야."

"신서울 집값 올리려고 그랬다는데?"

"이런 젠장...."

지방 인프라는 박살이 나 있었다.

결국 부산에서 서울로 향하는 교통 인프라는 오직 부산에서 신서울을 경유하여 올라가는 길 뿐이었다.

"그냥 일반도로로 갈까? 중간에 길 끊어져 있으면 돌아가면 되잖아."

"이 나라 평야가 거의 없어. 여기는 미국이 아니야. 칠레 뺨치는 셈이라고."

"아 씨. 그냥 산을 뚫으면서 가는 건 어때?"

"바퀴가 중간에 퍼져버릴 걸? 우리 마도차량 가져오려면 최소한 며칠은 걸려. 현지에서 빌린 차량이 아니면 지금 당장 못 가."

"젠장. 저기...유성? 저거 차량 절도범들도 안 훔치는 차잖아. 저걸 타고 갈 바에는 차라리 뛰어가겠다."

설령 시민들이 먼저 나서서 막지 않았다고 한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올라가는 이들은 올라가는 동안 상당한 애로사항이 펼쳐졌을 것이다.

"비키세요! 당장 비키지 않으면 그냥 택시 위로 밟고 지나가겠습니다! 마지막 경고입니다!"

"아이고, 점마 말하는 싹퉁바가지 보소! 어여! 햄들! 자, 드가자!!"

시위대들은 티셔츠를 까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일부, 붉은 모자를 뒤집어 쓴 이들은 서로 팔짱을 끼고 정자세로 쭉 몸을 뻗었다.

"눕자아아아!"

"...헐."

시민들은 도로를 점거했다.

"서울로 가고 싶으면 우리를 밟고 가라!!"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그들은 단결된 의지로 바닥에 누워 자신들의 차량과 함께 도로를 점거했다.

"젠장, 진짜로 밀어버려...?"

"야, 진정해. 지금 저 뒤에서 다 찍고 있다고. 여기 지금 생중계되고 있어."

"뭐?! 밀어버린다고! 밀어봐라! 내는 밀리는 한이 있더라도...!!"

시민들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우리 지휘관 님은, 못 데려간다!!!"

악에 받친 소리에 외국인들은 그만 기가 죽었다.

특히 한 때 한국에서 빠져나가 외국에 귀화한 뒤, 그래도 한국인이라고 한국에 들어온 검은 머리 외국인들은 난감함에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진짜 신서울로 돌아가야 하나?"

"안 되지. 신서울로 돌아가면 이제는 정부쪽 사람들한테 잡힐 걸?"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그쪽으로 가면 더 많은 사람들이 바닥에 드러누울 걸?"

외국인들은 난관에 봉착했다.

부산에서 꼼짝도 못하는 상황에 놓이자, 그들은 하나 둘 극단적인 방법을 생각해냈다.

"...300km 달려가?"

일반인에게는 불가능한 말이지만, 이능력자인 그들에게는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하물며 S급들이 모여있다면, 300km라는 거리는 전력을 다해 달려서 도착하지 못할 것도 없다.

그리고 그런 이들의 생각을 예상이라도 하듯-

쩌저적.

"이, 이거 뭐야?!"

얼음의 성벽이 나타나 길을 뒤덮었다.

* * *

석하랑은 마법소녀다.

마법소녀는 당연히 지휘관과의 마력공급을 원하며, 이에 대해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다.

세상에는 가장 건드려서는 안 될 세 부류의 이능력자가 존재한다.

하나. 지휘관과 섹스를 할 기회를 박탈당한 이능력자.

둘. 지휘관과 섹스를 한 지 오래된 이능력자.

그리고.

"지휘관이랑 마력공급 하려는 걸 방해당한 이능력자 건드리면 누구든 좆되는 거지."

누구든, 지금 저 한기 풀풀 날리는 작은 석하랑을 건드리면 좆된다.

석하랑은 지금 얼음벽 위에서 살기를 내뿜으며 이능력자들을 향해 시위를 벌였다.

[오빠야, 내가 암만 그래도 저렇게까지 하진 않는 거 알제?]

현실의 하랑이 딴지를 걸고 들어왔다.

안 그래도 게임 속 석하랑에게 이야기를 하려던 찰나에 하랑이 이야기를 하니, 나는 구분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리지만 임신한 석하랑은 하랑이요.

나이가 더 많지만 루살카와 빼다박은 석하랑은 로하랑일지니.

[나는 점마랑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이니까 같은 취급 하지 말그라.]

'하지만 기질은 비슷한 것 같은데?'

[오빠야랑 하는 건 좋아해도 저렇게 사람들 상대로 깽판치고 싶어하지는 않는데.]

'무슨 소리야. 너 힘 각성하고 난 뒤로 힘쓰고 싶어서 사고 쳤잖아.'

[앗.]

그 날.

석하랑이 진정으로 반인반령의 힘을 각성한 날.

그녀는 해운대 바다에 발을 담그며 힘을 시험했다가 그만 오키나와에 있던 수마룡 모비딕의 어그로를 끌었다.

자신이 가진 힘을 어떻게든 사용하고 싶어 끓어넘치는 상태였고, 하랑은 모비딕을 상대로 압도적인 힘을 보이며 자신의 힘을 세상에 드러냈다.

게임 속 로하랑도 마찬가지.

한강에서 보여준 힘은 어디까지나 'SS급 인거 아니냐?'하는 수준이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지휘관의 마법소녀라는 것도 공개되었으니, 본격적으로 'SS급이네!'하는 수준의 힘까지 보여줄 차례.

아니, SS+급의 힘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일 터.

[그, 그래도 내는 힘을 괴수들 상대로 사용했다 아이가!]

'그건 그렇지.'

하랑과 로하랑.

현재, 둘이 보이는 차이점은 가슴도 키도 임신 여부도 성격도 나이도 아니다.

강력해진 자신의 힘을 누구에게 사용하는가.

하랑은 괴수에게 사용했다.

하지만 로하랑은?

"가라, 얼음메스가키! 지휘관의 자지를 노리는 녀석들을 전부 죽여버려!"

하랑하랑!

* * *

파사삭!!

얼음벽을 향해 다가온 이능력자들은 강렬한 살의에 공포를 느꼈다.

죽는다.

진짜 죽이려고 얼음창을 던졌다.

트라이던트와 같은 얼음창은 정확히 심장을 노리고 날아왔고, 전력을 다해 마력을 쓰지 않았다면 분명 피를 토하고 쓰러졌을 것이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설화공주!!"

"내는 설화공주가 아닌데."

빙벽의 위에 선 석하랑은 고개를 삐딱하게 옆으로 돌리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설화공주가 누군지는 내는 모르겠고, 썩 니들 나라로 돌아가기나 하시지?"

"제정신인가! 지휘관은 전 세계의 희망이다! 어떻게 독점할 생각을 하는 거지!"

"아, 그러니까 내한테 이겨보라니까?"

석하랑은 손을 살포시 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손 위에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 얼음결정은 외국인들을 향해 바늘침처럼 날아갔다.

"지휘관 지금 서울 레이드 뛰느라 피곤하신데, 니들 지금 가면 민폐인 거 알제?"

"그대가 민폐라고 생각은 하지 않나!!"

"민폐는 무슨. 내가 지금 누구 명령을 듣고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아나?"

석하랑은 손을 높이 치켜올렸다.

"니들이 그렇게 오매불망 찾고 있는 지휘관께서 명령하셨다. 이 빙벽을 넘어오려고 하는 것들은 다 없애버리라고."

석하랑은 오만한 얼굴로 시선을 쓱 좌우로 쓸었다.

"유구의 동토에 온 걸 환영한다."

사라락.

어두워진 밤하늘, 하얀 눈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설야]."

7월.

부산에 겨울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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