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64 2부 9장 20 게임체인저
"집을 새로 구해야겠어."
결심했다.
"언제까지 여기서 지낼 수는 없을 것 같으니까, 새로 집을 구하자."
나는 셋을 내 앞에 앉혀놓고 내 결심을 말했다.
"인게임에서 집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 거예요?"
"그런 것도 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수는 없잖아."
이곳은 나와 신라가 단 둘이서 사는 것을 가정하고 산 집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계속 석하랑을 방송용 방에, 그리고 유나를 손님맞이용 방에 머물게 할 수는 없는 노릇.
"집을 지어버리는 거야."
"괜찮아요? 현실의 오빠는...."
"괜찮아. 나 돈 어느정도 모아둔 거 있어."
현실에서 탈출하며 클리어 보상 2천억이 수중에 들어왔다.
신라와 사는데 쓰는 걸 제외하고는 거의 사용을 하지 않고 묻어두고 있는 만큼, 언제든지 집 짓는데 활용할 수 있다.
"시골에 넓은 정원 짓듯이 아주 크게 지을 거야. 한 채는 신라 꺼, 한 채는 하랑이 꺼, 그리고 한 채는 유나 꺼."
"한 채 더 지어야죠. 오빠만의 개인 공간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내도 그렇게 생각한다. 방송방이랑 자는 방이랑 분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뭣보다 아파트니까 신경이 안 쓰일래야 안 쓰일 수가 없네."
"마력으로 소음 차단하잖아."
"그래도 계속 마력을 쓸 수는 없다 아이가."
"마음대로 집 구조를 바꿀 수 없는 것도 문제네요."
아파트의 구조는 함부로 바꿀 수 없다.
기본적인 틀은 아파트의 형식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내부 인테리어를 리모델링하는 것이 한계다.
즉, 처음부터 집을 다시 만들면 된다.
비록 게임 속 집처럼 코어를 기반으로 하는 집은 설계하지 못하겠지만, 땅과 돈만 있다면 어떤 집이든 만들 수 있으리라.
"게임 속 큥큥하우스가 아니라 우리들의 러브하우스가 되는 거네. 좋다, 당장 하자."
"하랑 언니 전용 스트리밍 룸도 만들고, 저도 제 취미공간 만들고, 신라 님을 위한 여자들만의 공간도 만들면 되겠네요."
"대찬성."
신라 또한 동의했다.
그녀도 내심 하랑과 유나가 우리 집에서 불편하게 지내는 것이 신경쓰였으리라.
"그런데...집은 어떻게 지으면 되죠?"
신라의 말에 하랑과 유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 돈으로 해결하면 안 되나?"
"하랑 언니. 함부로 돈을 썼다가는 덤터기 쓰는 곳이헬조선이에요. 아무리 세계가 다르다고 한들, 그것까지 다를 리가 없어요."
"......."
아니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차마 말을 하지 못하겠다.
유나의 발언에 나는 반박을 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니까.
당장 U튜브만 찾아봐도 '아는 사람에게 시공을 맡겼다가 X된 썰'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설령 그 아는 사람이 가족이나 친척, 오랫동안 사귀어온 친구라고 한들, 인간은 믿음과 신뢰를 돈으로 인해 저버리거나 놓아버리는 경우가 정말 허다하다.
"그렇다고 마냥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맡기기도 그런 게...."
"계약을 하려면 직접 만나고 해야 하잖아요? 우리의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런 방을 만들어달라고 하면 뭔가 이상한 생각을 하지 않을 까요?"
딸기방, 블루베리방, 크림치즈방.
표현이 이래서 그렇지, 실상은 남들에게 말해주기에는 상당히 참혹하기 짝이 없다.
딸기(모유착정)방.
블루베리(섹스)방.
크림(파이)치즈방.
그리고 피닉스(난교)방.
우리의 모든 주거 환경과 인테리어는 섹스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우리가 남들에게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렇다면 좋은 방법이 뭐가 있을까.
나는 한 가지 꾀를 생각해냈다.
"신라. 네가 플레이하는 게임 말이야, 자유도가 엄청 높잖아?"
"그건 그렇죠."
"거기서 집 설계를 짜자."
"...아하."
신라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내 허리를 손으로 찔렀다.
"게임에서 건물을 지은 다음, 그걸 설계도 형식으로 만들어서 디자이너에게 맡기려고 하는 거죠?"
"그래. 설계사에게 직접 컨셉이랑 기타 등등 자료만 보내면 되지 않겠어?"
집을 만드는 것이 분명 쉬운 일은 아니지만, 구체적인 설계도로 짜내는 것이 분명 쉬운 일은 아니지만, 게임 속 세상에서 만들어진 것들을 '스크린샷'으로 찍거나 영상으로 '녹화'하는 건 가능하다.
"게임 속 25년 지구의 디자이너들에게 맡기는 거지."
"그런 걸 맡길 사람이...설마, 그 사람?"
"그래. 어차피 좋아할 거야."
그를 살린 이유는 단순히 게임 속 주거환경 개선을 위함이 아니다.
서울 주민들의 주거환경 개선은 단순히 게임 속 여론을 가져오기 위함이 아니다.
"서울 시민들 집 만들면서 쌓인 경험을 바탕으로, 궁극적으로는 현실의 우리 집을 만들어야겠지?"
의뢰비는 이미 목숨을 구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 * *
-인게임. 7월 6일 오전 10시.
"뭐? 건평 150평? 무슨 공업용 창고 짓는 것도 아니고 뭐 그리 넓습니까?"
150평.
단순 계산으로 따져도 37평 아파트가 무려 네 개나 다닥다닥 붙어있는 면적이다.
그게 땅을 포함하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건물 면적'만 150평이니, 논밭에 있는 회사 자재 창고와 비슷하거나 좀 더 넓은 면적이었다.
"2층 올릴 겁니까?"
"그것도 계획 중인데, 1층만 할 거예요."
"1층이라.... 엄청 넓겠는데요. 이것 참."
아키택트는 내 제안에 난색을 표했다.
"이거, 네 개의 집이 하나로 붙어있는 것 같습니다?"
"정답이에요. 그런 컨셉이라서."
아키택트는 내가 인게임으로 가져온 스케치-우리가 현실에서 그리고 그걸 인게임에서 다시 내가 그린 간이 도면을 보며 고뇌에 빠졌다.
"네 명이 각각 독립된 공간에 살지만 함께 사는 구조라.... 개인 공간이 따로 존재하지만 중앙에는 모두 함께 지내는 공용 공간을 마련해야겠군요."
"꼭 정사각형 구조는 아니어도 돼요. T자 모양으로 구성해도 좋구요."
■□■
■
당연히 □ 부분은 나, '신라'의 것이다.
그와 섹스를 하고 싶다면 나의 영역을 지나가야 할 터.
그는 나의 피닉스니까.
"가운데에는 지휘관 님이 들어가시는 겁니까?"
"그렇죠."
"음.... 저기, 지휘관 님. 이건 설계에 앞서 정말 진지하게 여쭙는 겁니다만."
아키택트는 그 어느때보다도 긴장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이거, 일곱 명도 아니고 딱 세 명입니까?"
"네?"
"아니, 제 말은 단 세 명만 지휘관 님 옆에 방을 두는 거냐는 겁니다. 아무리 스케치를 확인 해봐도 여자 일곱, 열댓 명 정도는 같이 살 수 있는 구조가 아니어서."
"......."
현실의 문제를 게임 속으로 가져오면 이런 문제가 생기는 구나.
나는 아키택트의 오해를 바로 짐작해냈다.
"왜요? 제가 혹시 주변에 셋만 들일까봐 그래요?"
"셋을 들이는 건 지휘관 님 뜻이지만, 문제는 지휘관 님 근처의 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 무서운 겁니다."
"다툼이요?"
"혹시, '캣파이트'라고 아십니까?"
"푸흐흐."
그걸 누가 모를까.
"당연히 알죠."
19금 미연시에서 빠지면 섭섭한 게 히로인들 간의 정실 결정전이며, 히로인들끼리 서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집착과 애정을 보이며 싸우는 것이 진정한 하렘의 정석.
"하지만 저는 그런 걸 일으킬 생각은 없어요."
"이거, 유출되는 즉시 전쟁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만."
"설마 전쟁까지 일어날까봐요."
"SS급인 분들이 지휘관 님 옆 자리 차지하려고 하다가 한반도가 셋으로 쪼개지는 모습을 볼 수 있겠군요."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거 아녜요?"
"심각하다뇨? 이건 현실입니다. 지금 밖에 지휘관 님과 하고 싶어하는 이들만 수백 수천 명이 넘는다고요."
"그건 이미 마법소녀들과 이야기가 되었으니...."
"아니, 지휘관. 단순히 마법소녀분들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닙니다!"
아키택트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렸다.
나는 그가 답답해하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그럼요? 광검? 아, 광검은 안 되요. 원래 남자였던 사람이랑 어떻게 해요?"
"그건 공감합니다만, 광검 님도 지금 오락가락해서 뭐라 말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마법소녀가 아닌 사람들입니다! 광검도 아니지만 지휘관 님을 원하는 자들이요!"
"흐음?"
"세상에는 지휘관 님이 남자여도 상관없다는 놈들이 수두룩 합니다!"
"......아."
나는 아키택트가 무엇을 걱정하는 건지 깨달았다.
"외국에서 들어올 쩌리들?"
"쩌리.... 아니, S급들을 쩌리라고 표현하는 사람은 지휘관 님밖에 없을 겁니다."
아키택트는 자신의 손목에 채워진 마도기어를 두드려 화상을 펼쳤다.
타닥, 타다닥.
곳곳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공항을 가득 메운 인파를 가로지르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외국에 있던 S급들이 기어이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지금, 서울로 올라오고 있다고요."
"......남자들인데요?"
"예. 지금 지휘관과 섹스를 하기를 바라는 겁니다."
인파로 바글바글한 김해국제공항.
그곳에는 전용기와 국제선을 타고 온 온갖 인종들이 공항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평생 한국에 올 이유가 없었던 이들.
자신들의 나라를 지켜야 할 이들이 버선발로 부산으로 날아온 이유는 단 하나, 지구 상에 남아있는 유일한 지휘관을 만나기 위해서.
정확히는 섹스를 하기 위해서다.
"하하, 저는ㅡ"
<게임이 일시정지되었습니다.>
* * *
"...저기요?"
"멈춰."
아무리 인게임이지만, 용서할 수 없다.
"감히 내 아내를 상대로 디지털 쪼가리들이 섹스를 하기를 바란다고 쫓아와?"
"...오빠야. 그거 과몰입이데이."
"그래요. 그냥 게임일 뿐이잖아요."
"그래도 안 돼."
나는 신라로부터 VR기기를 받았다.
그녀는 뚱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으나, 당연히 나는 그녀의 게임 플레이를 멈출 생각은 없다.
다만.
이것 하나만은 내가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
"내가 한다."
지휘관을 상대로 섹스하기를 원하는 비히로인들.
그리고 탑이든 바텀이든 관계 없으니, 지휘관과 섹스를 하기를 원하는 호모게이들.
히로인 빼고, 전부, 죽인다.
"지금부터 이 게임은 내가 플레이한다."
창염의 피닉스,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