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958화 (958/1,497)

EP.958 2부 9장 15 이제 이 ■은 제 겁니다

서울이 복구되었다.

그 소식에 기우는 급히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야, 빨리 카메라 정리해. 이 새끼가 빠져가지고!"

"알겠습니다, 감독님. 기우야! 여기 나 좀 도와줘!"

"벨트 풀어도 돼요?"

"어차피 가는 동안 사고 안 나! 이쪽으로 와봐!"

평범한 버스는 아니었다.

과거 방송국에서 단역 아르바이트를 하며 알게된 지인이 있었고, 딱한 기우의 상황을 이해해 준 덕분에 기우는 방송국의 스태프인 척 차에 타서 방송차량에 탑승할 수 있었다.

달칵, 달칵.

기우는 선배를 도와 집기를 정리하며 귀동냥으로 버스에 탄 주요 인물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정장을 입은 여자 아나운서와 PD는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진짜 미친 거 아니야?"

"네가 참아. 지금이 어떤 상황인데. 조금만 늦게 나왔어도 신서울 계엄에 휘말렸다고."

"차라리 신서울에서 얌전히 있는 게 더 낫지. 저기는 괴수 소굴이잖아. 으으, 싫어."

TV에서는 바른 말만 하던 유명 아나운서가 질색을 하며 몸서리를 치는 광경은 상당히 어색했지만, 기우는 아무래도 좋았다.

만약 서울이 괜찮다면, 이제 서울을 비롯하여 경기도와 인천 또한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인천에 있는 자신의 부동산들도 온전할 터.

기우가 지난 오 년 동안 신서울에서 밑바닥 생활을 하며 버텨왔던 삶의 기반이 다시금 돌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아파트, 꼭 살아있어야 해!'

인천에 많은 건물이 있었던 만큼, 기우에게도 서울에 자기 명의로 된 집이 하나 있었다.

부동산으로서의 가치는 그다지 높지 않았지만, 그래도 서울에 집이 있다는 것 자체가 어디 보통 일인가.

"그보다 그거 진짜야? 지휘관이 서울에서 지내려고 한다는 거?"

"모르지. 신서울이 그 지경이 되었는데 신서울에서 살 수 있겠어? 그리고 외국에서 사람들 엄청 찾아올 거 아니야. 최소한 신서울보다는 서울에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한 거겠지. 기차도 없는데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가는 건 보통 일이 아니잖냐."

"그렇긴 하지. 하아, 정말. 미친놈들 덕분에 나라 꼴이 진짜 말이 아니네."

아나운서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마도기어를 튕겼다.

"그래도 내 말 맞지? 서울에 있는 집, 안 팔고 버티면 이기는 거라니까."

"그래, 그래. 내가 네 덕분에 존버타서 살았다."

누군가는 서울에 있던 집을 헐값에 팔았고, 누군가는 서울에 있던 집을 끝까지 가지고 버텼다.

전자의 사람들은 이미 소유권이 다른 이에게 넘어갔기 때문에 뭐라 할 말이 없었지만, 후자의 사람들은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서울이 복구된다면, 컨테이너에 몸을 눕히더라도 계속 버티고 앉아있을 자신이 있었다.

설령 흉측한 괴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나날이 된다고 하더라도.

"저기 있잖아. 괴인들, 따로 사는 구역 만들어주겠지?"

"...글쎄."

"글쎄가 아니야. 아무리 같은 한국인, 서울 사람이라고 해도 그런 흉측한 사람들이랑 어떻게 같이 살겠어? 어디 섬 같은 곳에 가두고 못 나오게 만드는 게 낫지."

"......."

아나운서의 말에 기우는 쓰게 웃었다.

자신도 서울에서 처음에 시민들이 나왔다고 했을 때, 괴인이 된 모습을 보고 구토를 할 뻔 했다.

개중에는 그냥 머리에 짐승 귀가 달린 수인이나 귀가 뾰족한 엘프처럼 된 이들도 있었지만, 전대물에서나 나오는 괴인처럼 완전히 인간의 탈을 벗어버린 존재들도 많았다.

그런 이들이 아무리 이성을 갖추고 있다고 한들,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이 과연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고 죽이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부동산은 부동산이고, 목숨은 목숨이다.

아무리 서울을 탈환하는데 그들의 도움이 컸다고는 해도, 기우로서는 괴인과 함께 이웃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꺼려질 수밖에 없었다.

"이왕이면 서울 말고 어디 다른 깡촌에 박아뒀으면 좋겠다. 후후, 그러면ㅡ"

"상황 발생! 서울에서 이상 현상 발생!!"

누군가의 외침에 버스 안은 바로 분위기가 변했다.

껄렁한 자세로 앉아있던 아나운서는 바로 표정을 바꾸고 카메라를 향해 진지한 얼굴로 자세를 잡았고, 다른 이들 모두 생중계 상태로 들어갔다.

역시, 프로는 프로구나.

기우는 조명판을 아래에서 정확하게 비추며 자신의 일에 집중ㅡ

"...저게 뭐야?"

하지 못했다.

기우가 얼빠진 목소리로 말했지만, 누구도 기우를 탓하지 못했다.

"구, 국민 여러분. 보이십니까?"

이런 상황에서도 마이크를 붙잡은 아나운서의 프로 정신이 빛을 보였지만, 그녀 또한 황당하면서도 긴장한 건 마찬가지였다.

"폐허가 된 서울, 여의도 땅에서…."

우수수.

"...한옥들이 솟아나고 있습니다."

잠시 뒤.

히어로 협회의 공식 발표에 따라, A급 이능력자 '아키택트'에 의해 여의도가 복구되었음이 사방으로 퍼지게 되었다.

한옥이지만.

* * *

"아아, 여의도에 한옥이 가득해."

정치와 금융의 메카, 고층빌딩으로 뒤덮인 숲은 이제 한옥의 숲으로 탈바꿈했다.

"고층 건물이 늘어선 것만 보다가 이렇게 낮은 건물이 가득한 걸 보니까 상당히 어색하네요."

"그렇긴 하지? 원래 서울이라는 좁은 땅 안에 최대한 많은 걸 집어넣으려고 했으니까. 20층짜리 건물이 통째로 하나의 기업에서 운영하는 곳도 있었고, 이곳에 본사를 둔 기업이나 은행들도 많았잖아."

"다 신서울로 이전했죠."

"그래서 이곳이 비로소 한옥으로 도배될 수 벌일 수 있는 거야."

나는 유나와 함께 옛 국회의사당 자리에 만들어진 넓은 정원에서 한강의 경치를 즐겼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괴수들의 시체로 가득했던 한강은 다시 맑고 고요한 모습을 되찾았다.

아직 대외적으로 공표되지는 않았지만, S급 히어로인 김가온이 한강 상류로 이동하여 한강의 물을 통째로 서쪽으로 밀어냈기 때문.

아마 지금쯤 서해상에는 괴수들의 시체로 축제를 벌이고 있을 것이다.

코어는 대부분 회수했지만 시체들 중에는 미처 회수하지 못한 코어도 일부 있을 것이고, 서해상에 사는 괴물들은 그걸 맛있게 먹으면서 시체를 말끔히 정리할 것이다.

아무리 한강뷰라고 해도 자지벌레들이 두둥실 떠다니는 걸 볼 수는 없는 노릇.

"이렇게 정화된 모습을 보니 정말 예쁘네."

"저는 지휘관 님이 그 모습을 하고 있는 게 더 예쁜데요."

"내가?"

"네. 이건 정말 예상 못했어요. 지휘관님이 설마…."

유나는 코피라도 흘리는 듯 손으로 입을 막았다.

"마법소녀 복장으로 자신을 숨기려고 한다니."

"나뭇잎을 숨기려면 숲에다 숨겨야지."

나는 내가 직접 마법소녀 복장을 입었다.

비록 나는 아무 능력도 없지만, 적어도 이 복장을 착용함으로서 사람들은 생각하게 될 것이다.

아.

창염의 얼굴을 하고 있는 이 금발벽안의 여자는 지휘관이 아니라 지휘관과 배를 맞춘 이능력자 중 한 명이구나!

"낮에 최대한 활동을 자제한다고 해도 일단 움직이기는 해야하잖아."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부르면 될까요?"

"피닉스."

이 모습을 하고 있으면 당연히 이 이름으로 부르는 게 인지상정.

"낮에 내가 이 상태로 마법소녀 복장을 하고 있으면 나를 피닉스라고 불러줘."

"피닉스라.... 여의도의 지금 모습과는 조금 안 어울리는 듯한 이름이시네요."

"그렇긴 하지? 영어니까. 그럼 페니스는 어때?"

"더 이상해지니까 그냥 피닉스로 하시죠."

"아쉽네."

여차하면 '창염의 피닉스'라고 부르고 싶지만, 그 이름은 엄연한 주인이 있으니 보류.

'나중에 여의도에서 만나면 어떤 모습일까.'

인게임 속, '창염의 피닉스'는 괴수, 그러니까 거대 불사조의 모습으로 서울을 습격한다.

그리고 엄청난 힘을 과시하며 아군을 압도한 뒤, 2페이즈에서 일정 체력을 깎은 뒤에 스스로를 희생하며 죽음을 맞이한다.

그 장소가 바로 이 여의도다.

그가 몇 번이고 걱정했던, 그리고 게임 속에 들어간 '내'가 죽을 장소.

하지만 이제는 한옥을 곁들인.

창염의 피닉스가 죽을 곳은 폐허가 된 서울이 아닌, 네오 한양의 중심 여의도다.

앞으로는 사람들이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지휘관만의 구역.

마법소녀들을 비롯하여 매지컬 큥큥스를 돕는 이들만이 출입가능한 네오 한양의 중심.

여의도는 이제 내 것이다.

"유나야. 예전만 하더라도 여의도는 서울의 남북을 잇는 주요 거점이라고 했잖아?"

"그렇죠. 국회의사당도 있었고,63빌딩도 있었고."

"이젠 아니야."

"...지휘관 님. 그, 조금 걱정되는 게 있는데요. 여의도에 땅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땅을 내어놓으라고 하지 않을까요?"

유나는 조심스럽게 의견을 펼쳤다.

"지금 서울로 올라오는 사람들, 다들 자기 부동산 되찾으려고 하고 있잖아요. 건물이 망가져있든, 땅이 움푹 파여있든."

"그래. 괴수를 상대로 땅 주인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어도, 사람 상대로는 어떻게 비벼볼 수 있지."

나는 두 팔로 넓은 여의도를 가리켰다.

"하지만 말이야. 나는 여의도 땅을 내 것처럼 활용할 거지만, 엄밀히 따지면 당장은 지휘관 소유의 땅이 아니야."

"네?"

"아주 오래전부터 땅을 조금씩 사들였지. 비록 지금 당장은 알박기를 한 자들이 있거나 땅주인과 가족들이 모두 죽어서 주인 없는 땅이 되거나 한 곳이 있지만, 나는 여의도 땅 전체의 47% 만큼의 지역에 대한 소유권을 확보했거든."

"...언제 그만큼?"

"지난 반 년 동안, 아주 천천히."

유성의 뒷배경을 이용하기도 했고, 은유하의 도움을 받아 나는 많은 땅을 확보했다.

비록 지금 당장은 유성 일가의 땅으로 되어 있지만, 아주 먼 미래에는 그게 전부 다 지휘관의 땅이 될 터.

"그리고 사람들이 지휘관을 욕할 수는 없을 거야. 왜냐고? 우리, 여기 월세로 들어온 거거든."

"...네?"

"여의도 전체를 월세로 빌렸어. 유성 일가로부터. 한 달에 10억. 어때? 저렴하지?"

"...저렴한 건지 비싼 건지 잘 모르겠어요."

"돈값을 한다고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

나는 유나에게 마도기어의 화상을 띄웠다.

"어이쿠. 그만 전투를 치르다가 올림픽 대로 위, 여의도로 넘어오는 다리들이 모두 파괴되어 버렸네?"

"...저기요, 혹시?"

"폐허가 된 공원들도 무슨 일인지 움푹 파여서 마치 해자처럼 되어버렸고. 지하로 들어오는 길도 모조리 침수되어버렸고. 이것 참, 이거 완전히 중세 판타지에서나 나올 법한 호수 위의 섬이 되어렸는 걸!"

진정한 의미에서, 여의도는 이제 섬이 되었다.

"이곳은 말이야, 하나의 섬이자 성이 될 거야. 마법소녀들을 위한 성."

"누가 그러던데요. 지휘관 님의 음습한 욕망을 담은 섹스 캐슬이라고."

"......."

나는 조용히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부터 여기를 '매지컬 큥큥섬'이라고 부르는 건 어때?"

나만의, 뷰빔랜드.

"좀 있다 낮에 같이 보벼볼래?"

"싫어요. 밤에 섹스 할래요."

"......"

생각보다 다들 허들이 강했다.

어째서지.

"보지보다 자지가 더 좋은 게 당연하잖아요?"

유나의 답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