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957화 (957/1,497)

EP.957 2부 9장 14 전투가 끝난 뒤 (1) 네오 여의도

7월 4일.

태양이 떠오른지 불과 다섯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 날은 이 나라에 있어서 역사적인 날이 되었다.

지휘관 등장.

괴인과 시민들.

S급 다섯 명의 등판.

한강 이남의 괴수 전멸.

한강 이북, S급 괴수 '유미르' 격퇴.

광검의 등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사람들에게 인상깊은 것.

'사상자, 전무.'

서울을 되찾기 위해 그간 수많은 이들이 죽고 또 죽었으나, 지금까지 그 누구도 서울을 되찾지 못했다.

선의철 '전' 대통령의 서울수복작전은 언제나 항상 이능력자 사상자를 만들어냈고, 그럴 때마다 작전을 지휘한 장성이나 대괴수대책중앙본부의 책임자가 옷을 벗어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지휘관을 비롯한 서울 시민들의 연계는 조금의 오차도 없었고, 단 한 명의 사람도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나마 크게 다친 이가 있다고 한다면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괴수에 놀라 뒤로 넘어져 엉덩이뼈를 다친 정도.

아무도 죽지 않고 서울을 되찾았다.

가히 기적이라고 표현해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의 업적.

불과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서울의 밤'이 불러온 결과는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서울로 집중되었다.

서울의 영웅, 나라의 영웅 '지휘관'.

그는 현재, 아침이 되자마자 자취를 감췄다.

* * *

7월 4일, 오전 10시.

여의도, 옛 국회의사당 터.

"광검처럼 암컷 취급을 받을 수는 없죠."

나는 국회의사당에서 그나마 온전한 방의 의자에 앉아 사람들의 시선을 피했다.

태양이 떠오르고, 현재 나의 모습은 현실의 신라가 금발 벽안이 된 것과 마찬가지.

나는 광검이 여자가 된 걸 만천하에 공개하면서 어떤 사단이 일어났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광검쟝 하악하악

-광검쟝은 흰스야!

-광겸쟝은 검스야!

비록 게임이지만 예쁜 여자를 향한 미친 놈들의 시선은 받기 불쾌하다.

남편이 있는 몸으로서, 스스로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예전이라면 그런 시선을 나에 대한 우월감과 자존감으로 충당했겠지만, 지금은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이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지휘관 안에 싸고 싶다!'라고 외치는 건 당연한 걸지는 몰라도, 굳이 내 모습을 당장 공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사람들은 지휘관이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고, 지휘관에게 박히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와중에 낮에는 여자가 된다는 걸 굳이 공개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조심해주세요. 저는 저주에 걸린 몸이라서."

방 안에 있는 사람은 세 명.

서울 괴인들의 대표인 마스터 텐타클.

서울 시민들의 대표인 선겨울.

그리고 아키택트.

"우리 팀원들은 이미 제 상황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낮에는 더 조심하고 있죠. 지휘관으로 활동하는 건 마도기어와 문자 지시를 통한 걸로 모두 가능하니까, 저와 만나고 싶으면 문자로 연락을 하거나 밤에 연락해주세요."

"하지만 밤에는 마력공급을 하지 않습니까?"

"중간 중간 쉬는 시간이 있으니까, 그 때 간단하게라도 답할게요. 급한 일이면 마력공급도 중단할 거고."

"하하, 그랬다가는 S급 마법소녀들에게 살해당할지도 모릅니다."

마스터 텐타클은 너스레를 떨었지만, 몇몇 이들-특히 간부들은 실제로 저지를 수 있는 이들이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리고 경찰도 일반 가정집 안으로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것처럼, 마력공급 중인 지휘관을 방해하는 행위는 죄악에 가깝다.

"그러니까 대외적으로 저를 만나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면, 지휘관은 낮이나 밤이나 마력공급을 하느라 바쁘니까 정해진 시간을 잡고 왔으면 좋겠네요. 음...저녁 8시부터 10시 사이? 그 때만 만날 수 있는 걸로."

"그 뒤에는요?"

"섹스해야 해서 안 됩니다."

"지휘관, 안 주무십니까?"

"새벽까지 하고 새벽에 자서 정오에 일어나면 됩니다."

완벽한 플랜이다.

"벌써 만나고 싶어서 바람 넣는 사람들있죠?"

"...예. 국회의원부터 차기 대권 유력 후보자, 기업 대표에 언론사 국장까지 지금 경기도에서 대기 중입니다."

현재, 서울은 서울 시민들에 의해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남은 괴수 잔당을 소탕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아직 수거하지 못한 코어를 마저 회수 중이다.

의로운 이들을 위한 코어 보상을 위해.

그리고 서울 시민들이 앞으로 살아가는데 힘이 될 수 있도록 새롭게 건물들을 만들기 위해.

"아키택트. 지금 바로 시작할 수 있어요?"

"네오 한양 프로젝트 말입니까?"

"예. 여의도부터."

"맡겨만 주십시오! 어, 그런데 저는 지금...."

"그거라면 여기."

짝.

내가 손뼉을 쳐서 신호를 보내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괴인이 들어와 아키택트의 앞에 쟁반 하나를 거칠게 내려놓았다.

"어여 쳐먹어!"

"...설마, 욕쟁이 할머니? 그리고 이건, 선지국...?!"

"마력공급의 효율이 가장 높은 건 성교지만, 다른 방법으로도 마력공급이 가능하기는 하죠."

19금 미연시 판타지니까 섹스지, 전연령판이었으면 혈액이나 타액으로 마력공급을 하기도 한다.

결국 중요한 건 '지휘관의 의지가 담긴 체액'.

"제 피랑 그녀의 피를 조금 섞었어요. 물론 그냥 피가 소스 정도로 들어간 터라 생긴 건 콩나물국밥과 다를 바가 없어요. 대신, 혈향이 조금 느껴지는 정도?"

"...지휘관. 그렇다면 이건 설마."

"네. 맞아요. S급이 되는 국밥."

"이걸로 가능한 겁니까?"

"왜요? 내가 미쳤다고 당신이랑 마력 공급을 할까봐?"

"아니, 그건 저도 사양입니다. 설령 지휘관이 지금 모습으로 하자고 해도 사양이라고요!"

"...호오?"

이건, 조금 선을 넘는 발언이다.

"그럴 생각도 없지만, 감히 이 얼굴과 이 몸매를 가진 여자가 섹스를 하자고 엉겨붙는데도 안 한다고?"

"안에 시커먼 사내새끼가 들어있는 걸 아는데 제가 왜 합니까?"

"......!!"

나는, 깨닫고 말았다.

"제가 씹게이도 아니고, 여자가 된 남자랑 섹스하는 건 게이입니다."

"......호오, 그런 관점일 줄이야. 만약에 제가 여자였으면요?"

"뭘 당연한 걸 묻습니까?"

"좋아요. 그 자세입니다. 숟가락 드는 걸 허락합니다."

아키택트는 숟가락을 들고 국밥을 퍼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입 크게 입안에 넣자마자 그의 몸에서 갈색빛의 마력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와.... 진짜로 국밥으로도 되는 구나."

"물론이죠. 누구는 정액사탕으로도 각성했는데."

"......."

아키택트가 막 계란을 입안에 넣은 순간, 그는 표정이 굳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마법소녀들 먹일 정액도 모자란데, 당신에게 줄 정액은 없으니까."

"그, 그렇죠? 하하, 만약에 그랬으면 저 자살할 뻔 했습니다."

"그럼요. 물론 동태탕 같은 곳에는 이리랑 곤이 같은 게 들어가기도 하는데, 지금은 그거 아니니까 괜찮아요."

"...제대로 먹으라는 겁니까, 아니면 골려주려고 하는 겁니까?"

"둘 다? 푸흐흐."

"지금보면 낮일 때의 지휘관 님은 장난기가 상당히 심하군요."

가만히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선겨울이 입을 열었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했잖아요."

"왈왈."

"...아니."

"후후, 다들 긴장한 것 같아서. 안심해요. 우리는 우리의 일을 잘 하면 됩니다."

나는 여전히 긴장하고 있는 선겨울과 마스터 텐타클에게, 우리의 앞에 걸어놓은 TV를 가리켰다.

"서울의 계엄도, 선의철도, 시민들의 횃불 혁명도, 여고생들의 전차 탈환도, 광검의 여성화 및 기억상실도, 서울에서 우리가 죽인 괴수들의 코어 분배도, 무너진 서울의 재산권에 대한 문제도, 서울의 인프라 복구에 대한 문제도, 아직 괴수들의 반응이 미약하게 남아있는 한강 북쪽의 문제도, 서울 시민들 중 괴인이 되어버린 이들에 대한 사회적 시선도, 죽은 이들의 주민등록 부활 문제도, 한국으로 들어오겠다고 하는 수많은 전용기와 외국 비행기들도, DMZ로 도망친 A급 괴수들도, 그리고 갑자기 새벽부터 연락오기 시작한 난민들에 대한 문제도 모두 다 잘 될 거니까요!"

"문제가 한 두가지가 아닌데요."

"그러니까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자구요. 우리만 이걸로 골머리를 썩히나?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고생하는 건데, 우리만 앞장서서 개고생을 할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지휘관은 서울을 탈환하는 것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제 서울을 탈환한 뒤의 일은 사회 전반에서 함께 해결할 문제지, 지휘관이 서울시장이라도 된 것 마냥 앞장서서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

다만, 지휘관으로서 서울 재건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바로 지금처럼.

"후우...."

아키택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나와 히드라의 마력이 들어있는 국밥을 바닥이 보일 때까지 싹싹 긁어먹었고, 곧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눈을 감았다.

고오오오.

아키택트의 머리가 골드브라운과 같은 머리로 물들기 시작했다.

금발이었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지만, 원래 영화배우같은 외형이라 크게 어색한 건 없었다.

"...과연, 이게 S급의 힘인가."

시작부터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는 걸로 보아, 아키택트는 분명한 S급이 되었다.

이전에도 그가 알게 모르게 히드라를 통해서 마력을 늘려놓기는 했지만, 나라는 지휘관을 통해서 마력이 늘어난 남자는 그가 처음이다.

물론, 아키택트는 평생 S급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아키택트. 만약 내가 당신을 내 피로 각성시킨 걸 알면 사람들이 내 피를 뜯어내려고 할 겁니다. 어휴, 흡혈거머리들이 달라붙는 걸 생각하면 정말 귀찮아지겠죠?"

"물론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지휘관과 섹스를 해야 마력이 늘어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당신이 나타난다? 사람들이 무슨 오해를 하겠어요?"

"아키택트가 엉덩이를 대줬구나."

"그래요. 당신이 S급이라고 공개적으로 떠들고 다니면, 당신은 게이가 되는 거야. 내가 이 모습을 숨기고 다닐 거니까. 지휘관, 시안.w.히비스커스는 오직 여자만 마력을 늘려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요. 알겠어요?"

"당연하신 말씀이십니다. 저는 게이라고 오해받기도 싫고, 또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저는...."

아키택트는 부채를 펼치며 이죽거렸다.

"한옥을 사랑하니까요."

구구구.

잠시 뒤.

여의도를 시작으로, 무수히 많은 한옥들이 땅에서 일제히 솟아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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