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956화 (956/1,497)

EP.956 2부 9장 13 서울의 밤

그 시각, 마포대교.

캬아아악!!

기어이 다리를 넘어와 아가리를 벌리며 서울 시민들을 물어뜯기 직전.

번쩍, 하는 빛과 함께 자지 벌레들은 몸이 안개가 되어 사라졌다.

"뭐, 뭐야...?"

"지금, 소멸했어...?"

자지벌레들은 일제히 소멸했다.

그 타이밍은 워낙 절묘했고, 갑자기 괴수들이 픽 소멸한 이유를 짐작하기에는 충분한 상황이 존재했다.

"설마, 광검 님 덕분에...?"

"맞을 거야! 광검 님이 시청사의 뱀을 죽이니까 딱 사라졌잖아!"

"씨발, 영화에서나 보던 걸...."

마치 폭탄이 1초 남기고 해제되는 것 같은.

그런 비현실적인 상황을 직접 격게 된 만큼, 사람들은 허탈하면서도 가슴이 들끓을 수밖에 없었다.

SS급 괴수를 일격에 쓰러뜨린 남자.

"...남자는 아닌가?"

긴장이 다들 풀려서 그런지, 누군가가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제, 광검 누님인가."

본격적인 토론의 시작.

과연, 광검은 여자인가?

"아니, 잠깐만. 원래는 아저씨였다고. 수염 난 아저씨! 그런 사람이 하루 아침에 여자가 되었는데 어떻게 누님이라고 부를 수 있겠어?"

"그렇지? 내가 너무 게이같은 말을 한 건가?"

"여자로 다시 태어났으니까 우리한테 오빠라고 해야지."

"미친 놈."

서로 시덥잖은 소리를 하고 있지만, 그만큼 모두가 전장의 고요함을 만끽했다.

레이더에는 더이상 괴수들의 반응이 없었다.

지휘관이 시청사의 뱀을 쓰러뜨리며 전투는 끝나는 가 싶었지만 2페이즈가 열렸고, 그 2페이즈 마저도 광검이 나타나며 상황은 종료되었다.

신서울에서 일어났다고 하는 계엄도 이능력자 여고생들이 전차를 제압하고 오히려 전차를 끌고 신서울 정부청사로 진격했다고 했다.

사상자는 거의 없음.

아직 계엄이 완전히 해제된 건 아니지만, 실시간에 가깝게 신서울의 상황을 전해듣던 이들은 선의철의 마지막 발악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깨달았다.

서서히, 아침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둠만 짙게 깔려있던 기나긴 서울의 밤에도 서서히 새벽의 빛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그래, 지금부터 다시 네온사인 가득한 서울이ㅡ

[서울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알립니다.]

굳은 남자의 목소리.

그것은 분명 서울 시민들을 지켜주고 S급 괴수를 격퇴한 젊은 영웅의 목소리였다.

[SS급으로 진화한 괴수, 유미르가 죽었습니다.]

환호성을 내질러야 함에도 지휘관은 그저 담담했다.

중간 중간 뜀박질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모두들 지휘관이 어디론가로 급히 달리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저, 저기!!"

지휘관은 마포대교 맞은 편에 나타났다.

[고등급 개체가 죽은 뒤, 후속 웨이브가 있습니다.]

마법소녀들은 지휘관을 지키듯 호위하고 있었고, 지휘관은 마도기어에 대고 소리쳤다.

[마지막 웨이브, 옵니다!!]

캬아아아아악!!

마도기어의 괴수 레이더.

그곳에는 남산 타워에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엄청난 양의 붉은점들이 한강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 * *

'원래는 보너스 타임인데.'

S급이나 SS급 괴수를 쓰러뜨리고 난 뒤, 반드시까지는 아니지만 괴수를 잡고 난 뒤에는 반드시 힘들게 싸운 것에 대한 보답이 있어야 한다.

대부분 S급 코어나 SS급 코어, 그리고 대괴수의 시체가 대표적인 예이다.

시청사의 뱀 또한 마찬가지.

20년의 지구에서 청화단이 시청사의 뱀을 죽였을 때, 그 코어는 한 인간의 몸속으로 들어가 단장 전용 전천후 대응 고기동 비행생명체 '흑염룡'으로 재탄생했다.

설령 DLC 언어, '해치웠나'를 시전했어도 SS급 코어가 나왔어야 한다.

"짜잔, 지휘관. 선물입니다냥."

"고마워. 집에 돌아가면 민트초코 케이크로 만들어 줄게."

다행히 나는 김펜릴에게 몰래 지시를 내려 SS급 코어는 회수했다.

다른 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S급 모두가 마력을 씌워 겉으로 마력이 노출되는 걸 막았고, 나는 은유하를 위한 선물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건 예상 못했다.

설마 시청사의 뱀 속에서 또다른 '보너스'가 튀어나올 거라고는.

'모비딕보다는 적네.'

D급 기생충 오만.

오키나와 해저에 잠들어있는 모 고래 괴수 속 회충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문제는 우리가 자정부터 지금까지 엄청나게 전투를 치르며 피로가 누적되어 있다는 것.

최종 보스로 추정되는 SS급 괴수가 죽었다.

다들 성취감과 만족감을 가지고 승리를 만끽하고 있는데, 던전 1층에서 징그럽게 만났던 잡몹 5만 마리가 쏟아진다?

'패드 던져야지.'

거지같은 게임이라면서 컨트롤러를 던질 것이다.

성취감을 누릴 새도 없이 계속 전투가 이어지게 만드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누구나 다 지쳐 쓰러질 것이다.

"지휘관 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유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아직 서울 시민들은 우리 근처에 쉽게 다가오지 못했지만, 그들 또한 불안감에 나를 바라보기는 마찬가지였다.

"앗, 저기...!"

첨벙, 첨벙!

기생충들은 하나 둘 한강에 뛰어들었다.

한강 수온을 체크하는 것도 아닐테니, 분명 한강을 헤엄쳐 넘어오는 것일 터.

아니나 다를까, 놈들은 빠른 수영 속도로 한강을 넘어오기 시작했다.

일부 기생충들은 서로 몸을 이어붙여 거대한 뱀처럼 몸을 이어붙이기 시작했다.

"저건...다리?"

"가벼워서 몸을 물 위에 띄우네. 그리고 그 위로 기어올 생각인거지."

꿈틀, 꿈틀.

한강 위에는 괴수들로 이루어진 다리가 생성되었다.

급히 사람들이 다리를 향해 K-2 마도소총을 발사했지만, 그마저도 이전처럼 화망이 촘촘하지 않았다.

"큭, 탄환 다 떨어졌어...!"

위험한 상황이다.

하지만 나는 모두를 향해 조용히 엄지를 치켜들었다.

"걱정하지 마시길. 이런 상황에서...영웅은 더욱 빛나는 법이니."

현충원 방향에서 뭔가 하얀 빛이 터져나왔다.

나는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마력 패턴이 등장한 것에 시름을 놓았다.

"새로운 영웅의 탄생입니다."

한 명의 죽음으로부터 새롭게 태어날 '그녀'를 위하여.

창염개진.

* * *

유미르의 기생충들이 자신들의 몸과 몸을 이어붙여 한강을 도하하는 사이.

탓.

광검은 대로에 착지했다.

하얀 드레스는 먼지 하나 묻지 않았고, 그녀는 남아있는 자신의 마력을 갈무리했다.

"아...."

방금.

유미르를 향해 큰 기술을 사용하며 그녀는 많은 마력을 사용했다.

자신이 힘을 극한까지 사용하는 바람에, 억눌러왔던 모든 마력이 해방되기 시작했다.

"루살카."

사랑하는 여인이 남기고 떠난 마지막 마력이 자신의 몸에서 발현되기 시작했다.

이제,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폭주하게 될 터.

"...후."

광검은 직감했다.

자신이 죽으면 루살카의 저주는 곧 누군가에게로 향할 것이라는 걸.

루살카 내부에 남아있던 폭주의 기운이 반드시 루살카의 반신, 석하랑에게로 전해질 거라는 것.

그건 안 된다.

그걸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이 힘을 사용해야 한다.

자신의 몸 속에 이 힘을 가두고, 자신이 루살카가 남긴 모든 힘을 받아들여야 한다.

설령 자기 자신이 아니게 되더라도.

"이게, 나의 죽음인가."

눈 앞에 있는 수많은 괴수 무리들.

자지벌레처럼 생긴 놈들은 날카로운 이빨을 쩍 벌리며 땅을 기어오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광검 조차 휘말리게 될 터.

힘을 더 사용하면, 자신은 죽을 지도 모른다.

괴수에게 씹고 뜯고 먹히는 게 아니라, 허윤환이라는 이름과 기억을 가진 존재가 사라지게 될 지 모른다.

마력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자신의 몸 속에 있는 금빛의 마력은 점점 루살카의 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더이상 광검 허윤환이라는 존재가 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힘을 거둔다면.

많은 이들이 죽을 것이다.

자신이 폭주하는 것이 두려워 거부하게 된다면, 또다시 평양에서 있었던 일이 다시금 일어나게 될 터.

그건 안 된다.

그녀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순국 선열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군."

마침 자신이 서있는 곳은 현충원.

수많은 선조, 호국 영령들이 파묻힌 공원은 괴수들 조차 건드리고 싶지 않았는 지 과거의 모습을 최대한 온전히 유지하고 있었다.

괴수들이 한강을 도하하여 넘어온다면, 이곳 마저도 괴수들의 끔찍한 체액으로 뒤덮일 터.

"한 번 더."

광검은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심장에서 뿜어져나오는 마력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금빛으로 물들였다가, 곧 하얀색으로 희게 변하게 되었다.

"모두를 지키기 위해서."

키아아아악ㅡㅡㅡㅡ!!

괴수들이 달려온다.

넓게 펼친 기감 너머에는 한강을 기어이 넘어와 육지에 상륙하는 놈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

사아아.

광검의 손에서 하늘로 올라간 마력이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하늘로 뻗어나가기 시작한 안개는 현충원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마치 석하랑이 한강에 만들었던 거대한 얼음의 벽처럼, 광검의 안개 또한 허공에 넓게 구름처럼 펼쳐졌다.

그 모든 구름은 자연 현상으로 빚어진 것이 아니었다.

오직 광검, 그녀의 '마력'에 의해 형성된 것.

한강의 물길을 따라 넓게 퍼진 백금색의 구름은 아주 짧은 시간만에 50km에 이를 정도로 넓게 퍼졌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힘.

그것은 바야흐로, 신의 권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기생충들이 도로를 넘어와 광검의 지척에 닿은 순간.

"우리의 딸을, 위하여."

투둑, 투두둑.

구름 속에서 백금색의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니, 그것은 하나의 '검'이었다.

마치 물방울이 뭉쳐 허공에 떠도는 구름이 무거워지면 비가 되어 땅을 적시듯, 광검이 마력으로 만들어낸 검은 구름처럼 떠돌다가 괴수를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파바바박.

"누구도, 이 땅을 넘볼 수 없다."

백금색으로 반짝이던 광검의 눈은 서서히 푸른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가 어떻게든 억눌러왔던, 광검의 마력패턴과는 다른 이질적인 마력 반응이 광검의 눈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나는 루살카의 검."

검의 비가 떨어질 때마다, 그녀의 눈은 희고 푸른 기운으로 변질되어갔다.

마력을 사용할 때마다 그녀는 자기 자신의 흔적을 하나 둘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구름이 전부 끝날 때는 유미르가 죽고 난 뒤 나타난 수많은 기생 괴수들이 전부 죽었을 때.

한강 남쪽으로 넘어오려고 하는 괴수들이 모두 죽었을 때.

심장에 새겨진 코어의 마력 중 금색의 빛이 모두 사그라들고 희고 푸른색으로 물들 때.

광검이라는 존재가 자신을 바쳐서, 진정으로 '루살카'가 될 때.

비로소.

비는 그치리라.

"...사랑한다."

광검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리며 눈을 감았다.

마도기어의 레이더에 반짝이는 괴수들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비 또한 멎었다.

"......."

광검은, 아니 광검이었던 여인은 조용히 눈을 떴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아니 그녀의 전신에는 광검을 상징하는 금빛의 기운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루살카."

픽.

여인은 뒤로 넘어졌다.

현충원의 수풀에 반듯하게 쓰러진 그녀는 머리부터 땅에 부딪혔고, 조금의 미동도 하지 않았다.

"너희들은...누구니?"

깨어난 여인은 기억상실이었다.

마치,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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