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954화 (954/1,497)

EP.954 2부 9장 11 3cm의 몰락

창염의 피닉스.

이 문구에 대한 의미는 내가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한 거지만, 정령과 간부의 관계를 확실하게 나타내는 문구라고 생각해왔다.

창염을 사랑하는 피닉스.

창염으로부터 태어난 피닉스.

창염에 종속되어있는 피닉스.

즉, 한 여자만을 위해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존재.

그래서 들리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내게는 '창염을 사용하는 피닉스'라기보다는 '창염에게 종속되어있는 피닉스'라는 의미가 더 강했다.

그건 광검 또한 마찬가지.

20년의 지구에서 그가 했던 행동들을 생각하면 나이고 장인어른이고 뭐고 다시 찾아가서 명치를 개패듯이 패고 뒤통수를 때린 다음 패죽여서 다시 부활시켜버리고 싶지만, 나는 내가 창염을 사랑하는 만큼이나 루살카를 사랑한다는 걸 알기에 그 꼬장과 찌질함에도 최선을 다해 도왔다.

원래 때로는 남자조차 사랑 앞에서는 비굴해지고 찌질해지는 때가 있으니까.

물론, 과하기는 했다.

광검과 루살카가 서로 싸우지 말고 진작에 섹스부터 했으면 아마 러시아에서의 그 사단이 없었을 것이고, 석하랑과의 가족관계도 건전하고 행복하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20년 동안 한 사랑하는 여자를 잃고 평생 시름에 빠져 살았다고 생각하면, 사람이 피폐해지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20년의 지구에서 보인 광검의 모습.

이곳은 25년의 지구다.

심지어 광검과 관련된 트리거들을 하나 하나 신라가 직접 박살낸 덕분에 광검에 관한 모든 기믹이 '해금'된 상태.

이제 신라가 플레이하는 게임 속에는 광검 허윤환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능력을 사용하면 자신의 상태가 어떻게 되는지 알면서도 힘을 해방하여 모두의 앞에 자신을 당당히 드러낸 암컷만이 존재할 뿐이다.

"하랑아, 왜 보다가 마는 거야? 저기 네 아빠 있다."

"으아아! 내 아빠 아이다!"

하랑은 절규했다.

검을 쌍수로 들고 자신만만하게 웃는 그녀의 얼굴은 모 정령, 루살카와 정말 닮아있었다.

"나, 나갈래!"

"미안하지만 한 번 넣은 자지는 질싸하기 전까지 뺄 수 없어."

"그럼요."

하랑은 탈출하기를 원했지만, 나는 뒤에서 하랑을 안고 유나가 앞에서 하랑과 마주 안으며 하랑이 도망가지 못하게 막았다.

마치 하랑을 사이에 두고 나와 유나가 앞뒤로 쑤시는 듯 보이지만, 그냥 유나는 하랑이 부끄러워하고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을 즐길 뿐이다.

"빠, 빨리 싸라! 제발 나를 여기서 내보내줘!"

"왜 그래. 저기 엄빠가 열심히 남산타워를 부수고 있는데."

"스워드 오브 루살카!"

"갸아아악!!"

하랑은 기겁을 하며 괴성을 질렀다.

스워드 오브 루살카라고 말할 때마다, 광검의 얼굴이 클로즈 업 될 때마다 보지가 씰룩거려서 자지에 전해지는 조임이 보통 자극이 아니었다.

"루살카의 검."

그에게 있어서 그 이명은 '창염의 피닉스'와 결이 같다고 할 수 있으리라.

"유나야, 어떻게 생각해?"

"하랑 언니의 부모님은 정말 로맨틱한 것 같아요."

"야! 너는 직접 만나봤잖아!!"

루살카의 검.

그 이명만큼 광검을 잘 나타내는 단어가 없을 것이다.

그의 아랫도리에 달린 그것은, 루살카를 위한 검이니까.

* * *

그 시각, 신서울 대통령 집무실.

"......."

선의철은 조용히 TV를 껐다.

마지막, 모니터를 가득 채우는 금빛과 백색, 그리고 약간이지만 푸른색이 뒤섞인 십자검격에 선의철은 진심으로 바랐다.

광검의 패배를.

지휘관의 죽음을.

그러나 그런 미래는 없었다.

"루살카의 검, 인가."

의미는 모른다.

아무리 찾아봐도 루살카라는 단어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히어로 위키에도 없고, 국제 히어로 협회의 명부에도 없고, 국내외 헌터 명부나 빌런 사전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루살카라는 이름은 보통 이름이 아닐 것이다.

SS급 괴수를 죽이기 위해 사용한 기술을, 누가 봐도 궁극기처럼 보이는 일격기의 이름을 가지고 키우는 강아지 이름을 붙일 리는 없다.

-스워드 오브 댕댕이!

그래, 분명 루살카는 사람일 것이다.

그것도 광검에게 아주 의미가 깊은 사람.

짐작이 가는 건 그의 '아내'로 추정되는 자의 이명이 루살카가 아닐까 하는 것.

하지만 이제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 하하."

서울이 수복된다는 것은 자신의 지지기반이 멸망한다는 것.

신서울에 집약되어있던 모든 인프라는 다시 서울로 되돌아 갈 것이다.

파괴되었으니까 살기 힘들 것이다?

아직 북쪽에 있는 괴수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휘관이 S급을 대여섯 명 넘게 데리고 서울에 있을텐데.

지휘관이 서울에서 지내겠다고 한다면 주택 하나를 뽑아서 비행기 네 대로 땅을 들어 공수해서라도 옮겨줄 나라가 수두룩 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은 더이상 끈이 없다.

자신의 지지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다들 기회주의자의 전형이었기에 지휘관을 향해 발가벗고 무릎을 꿇으며 찬양을 일삼기 시작했다.

심지어 자신이 광검에 대해 일부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게 한 찌라시 언론사들도 마치 삼대 메이저 신문사가 된 것 마냥 광검의 활약을 대서특필하기 시작했다.

여론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선의철은 그 안에서 어떤 이들의 조직적인 움직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백가가 움직이고 있는 건가."

오랫동안 자신에게 반기를 들어온 자들.

몇 번이고 억눌러놓았지만, 사회 곳곳에 뿌리를 박고 있어 완전히 걷어낼 수 없었던 이들.

그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게 느껴졌다.

백가의 유력 인사를 손녀딸을 건드리려고 한 성범죄자로 만들어 몰락하게 한 뒤, 가문 전체가 몰락 직전까지 몰렸던 백가가 기어이 반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유성도 배신을 했어."

이에 대응해 줄 유성그룹의 여론조작단은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유성 회장에게 직통으로 들어가는 전화는 전원이 꺼져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만 흘러나왔고, 유성의 주요 임직원들-사장급조차 유성이 지휘관의 스폰서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여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실상 회장이 단독으로 움직인 사안이리라.

"그 늙은이.... 다 죽은 몸으로 이런 괘씸한 짓을."

엔터키 하나만 누르면 유성이 지금까지 벌인 악행들을 만천하에 드러낼 수 있다.

서울 붕괴 이후 그걸 빌미로 삼아 국가 최고의 기업으로 우뚝 선 뒷배경에는 당연히 더럽고 치졸한 방식이 많았다.

그리고 사실상 그의 수족과도 같았던, 힘의 원천이었던 소나무부대는 이미 와해되어 존재하지 않았다.

"......."

이제, 끝이다.

선의철이라는 자의 정치 인생은 이걸로 끝난 셈이다.

삐비비빅. 삐비비빅.

전화가 울렸다.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하지만 누구보다도 자세히 몰랐던 여인의 전화에 선의철은 입꼬리가 비틀렸다.

"나다."

[끝까지 그런 식으로 받으시네요.]

"내게 전화를 했으면서 무슨 말이냐."

[후, 알았어요. 그럼 저도 제가 할 말을 하고 끊을 거예요.]

선겨울.

울먹거리는 딸의 목소리에 선의철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잘못된 길을 걷고 계셨어요. 마지막이라도 전국민에게 사과하고 들어가세요.]

"내가? 왜 사과를 해야 하지?"

[뭐라고요...?]

"평양 사태로 S급들이 두 명 빼고 전부 다 뒤졌을 때, 나라가 일본으로 넘어가는 거 아니냐고 하던 걸 내가 간신히 막았다. 내가 이 나라를 지켰어. 그런데 이런 식으로 나를 엿먹이나?"

선의철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13년 동안 국가가 무너지지 않게 만들었다. 내가 아니면 진작에 중국의 속국이 되었거나 제 2차 일제강점기의 시작이었어. 그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야!"

[그건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에요. 아버지가 만든 공포였을 뿐이야.]

"과연 그럴까? 너는 국제사회를 몰라도 너무 몰라. 그래, 너...."

선의철은, 분노에 잠겨 속에서 들끓는 화를 그대로 내뱉었다.

"지휘관이 내려주는 뜨거운 좆물이 그렇게도 좋더냐?"

[...뭐라고요?]

"하하, 그래. 딸자식 키워봐야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더니, 딱 그 모양 그 꼴이구나. 젠장. 임신이라도 했냐? 내 손자가 반쯤 외국인 피가 섞인 양키라니, 씨발!"

[딸한테 무슨 말을....]

"닥쳐! 나는 양놈에게 다리 벌리는 걸레를 딸로 둔 적 없다!"

뚝.

선의철은 욕설과 함께 서랍을 열었다.

그곳에는 하얀 종이갑이 있었고, 선의철은 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인생 씨발."

"각하! 큰일 났습니다! 지금, 밖에서...!"

"계엄하라고 그래."

"...예?"

"계엄령 내려."

선의철은 너무나도 담담하게 담배를 태우며 말을 이었다.

"나 아직 대통령이다?"

"아니, 가, 각하, 이런 상황에서 계엄을 내리시면 국가가 혼란이...."

"뭐."

선의철은 담배를 재떨이에 털 뿐이었다.

"내가 바로잡고 있던 나라인데, 내가 망치는 게 무슨 문제라도?"

* * *

"역시 선의철이야."

계엄령, 선포.

아직 대통령의 권한이 살아있기에 가능한 조치였다.

"히어로와 헌터들이 빠져나간 틈을 노려서 탱크를 동원해 민간인들을 협박하다니."

역시 선의철답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가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결국 그의 말 한 마디로 모든 것을 지휘하고 지배할 수는 없다는 것.

"미안하지만 이건 메인 시나리오라서."

계엄은 실패한다.

"당신은 히로인 등판을 위한 발판밖에 되지 않는다는 거야, 3cm."

모든 히로인은 신서울 밖에 있다.

은유하는 재계의 인사지, 정치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히로인은 아니다.

[고객님, 급한 소식 하나 있는데 들어보시겠어요?]

그리고.

히로인 중에는 '정치인'이 있다.

[신서울 BH 앞에 지금 여고생들이 시위하고 있어요. 다들...이능력자.]

아무리 계엄군의 전차라고 한들, 이능력자 여고생을 막을 수 있을 리가.

그리고 그 교복 입은 여고생 중에는, 한 명 비양심인 존재가 섞여 있다.

여고생 코스프레를 한 히로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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