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53 2부 9장 10 OOO의 검
한강 이북에는 A급 괴수들이 산재해있다.
S급 괴수가 존재하는데도 A급들이 많은 배경에는 유미르가 대권 후보 셋과 서울에 나타난 마룡을 잡아먹고 난 뒤 지성을 갖춘 것에 있다.
신서울에는 무수히 많은 인간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천만에 이르는 인간을 지키는 수호신이 있다.
그 수호신을 제압하려면 괴수 하나의 힘으로는 부족하다.
그야말로 막대한 양의 힘이 필요하기에, 유미르는 A급 괴수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어차피 S급이 되어도 자신보다는 약한 존재들.
A급들이 아무리 많이 모여봐야 유미르 한 개체를 당해낼 수 없었고, 유미르는 압도적인 힘을 바탕으로 서울에 있는 괴수들을 모두 통솔하고 있었다.
한강 북쪽, 한정으로.
한강 이남으로 내려가기에는 여의도에 자리잡고 있던 어떤 괴수 때문에 쉽지 않았다.
강을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인천이나 경기도 방면으로 돌아서 내려가면 대부분 인간들의 격정적인 방어로 퇴치당하기 일쑤였다.
유미르는 깨달았다.
자신들이 죽으면 단순히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인간들에게 더 강한 전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그에 비해 서울에서 얌전히 자리잡고 있으면 뜨내기같은 인간들이 올라와서 죽어준다는 것을.
A급 괴수들이 함부로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인간들을 죽이는 것보다는 서울 지하에 있는 시민들을 다 먹어 치울 때까지 힘을 비축하는 편이 더 낫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언젠가 서울을 넘어 남쪽, 신서울 내려가기 위해서.
그래서 A급 괴수들은 어디 강릉이나 산골로 들어가면 당당히 그 지역의 패자를 자처할 수 있음에도 유미르에게 고개를 숙이고 함께 하기를 선택했다.
유미르는 서울의 왕이었고, 지하에는 수많은 먹이가 있었고, 때때로 서울로 오는 먹이들로부터 자극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남쪽으로 내려가 수많은 인간들을 먹을 생각만 하던 괴수들은 겁에 질렸다.
유미르를 죽일 것 같은 수많은 인간들.
인간 같지 않은 힘을 가진 자들.
자신이 아무리 강해도 힘으로는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자들.
엄청난 능력을 가진 인간들 중에는 서울의 수호신과 같은 힘을 가진 이들도 있었다.
유미르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살해당한다.
괴수들은 경종을 울리는 생존본능에 따라 상황을 예의주시하기 시작했다.
인간, 저 나풀나풀거리는 형형색색의 제복을 입은 자들-마법소녀들은 누구를 노리는 것인가?
만약 자신을 노리는 것이라면 저항하며 버티다가 유미르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이며, 만약 유미르를 노리는 것이라고 한다면.
끼에에엑!!
유미르가 공격을 당하는 사이, 그가 당하는 모습을 보고 도망치는 괴수가 한 부류.
서울에서 얌전히 유미르가 넘겨주는 콩고물을 받아먹던 자들은 황급히 자리에서 이탈하여 도망쳤다.
쾅, 콰광!!
도망치면서 건물을 무너뜨리거나, 발로 주택을 짓밟는다거나, 전신주를 부순다거나, 도로에 거대한 발자국을 낸다거나 하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한강 이북에서 '도망'치는 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었다.
마법소녀들이 이기면 유미르에 이어 살해당할 것이 분명했고, 유미르가 이기면 더 강해진 유미르에 의해 잡아먹히거나 살해당할 것이 분명했다.
괴수는 서로의 핵을 잡아먹는 것으로 더 강해지니까.
그 말인 즉슨 주변에 자신보다 강한 적이 없다면, 자신은 누구에게도 잡아먹히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쿵, 쿵, 쿠웅ㅡㅡ!
괴수들은 한강 이북을 마구잡이로 파괴했다.
아파트가 넘어가고, 건물 아래에 괴수 모양의 구멍이 생기고, 지하철 입구는 괴수들이 계단 윗부분을 밟고 지나가다가 아래로 함몰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정점은....
-해치웠나.
누군가가 그 말을 하는 순간.
괴수들은 직감했다.
좆됐다.
이전에는 그나마 같은 하늘의 낮은 곳과 높은 곳에 서로 위치해 있었다면, 이제는 더 높은 차원으로 상승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A급들이 대기권 안에서 놀고 있었다고 한다면, 유미르는 이제 오존층을 돌파해버린 것이다.
곧.
애애애앵ㅡㅡㅡㅡㅡㅡ!!
서울에 그나마 남아있던 모든 경보들이 급히 울리기 시작했다.
SS급 괴수의 등장 경보.
남산 타워에 자리잡은 SS급으로 진화해버리는 유미르는 마치 신과도 같은 모습으로 사방을 예의주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콰아아아아ㅡㅡㅡㅡ!!
막대한 브레스를 뿜어내며, 순식간에 도심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A급 괴수는 물론이거니와, 서울의 모든 것을 파괴할 기세로.
* * *
"지휘관, 무슨 짓입니까!"
"하하, SS급을 상대하는 건 처음이지?"
나도 놀랐다.
DLC의 기능을 사용해보는 건 처음이었고, 설마 이 정도로 강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힘만 SS급이 된 게 아니라 손에 여의주마냥 움켜쥐고 있는 마력의 핵심, 코어도 SS급이라는 것.
"긍정적으로 생각해. 저거 코어 하나만 챙겨도 서울에서 얻은 모든 이득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SS급 코어를 가질 수 있는 경우는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
애초에 SS급 코어를 뱉어내는 개체도 한정되어있는 만큼, DLC는 하드코어 유저들을 위한 보상으로 이렇게 SS급 코어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리라.
그 문구가 '해치웠나'인 이유야 뭐....
-또 큥큥이야?!
그가 한 행동이 이렇게 나타날 줄은 누가 알았을까.
무조건 이길 수 있는 상대를 어떻게든 키워먹기 위해 해치웠나를 남발하던 그의 행적이 여기에 이런 식으로 반영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SS급 코어는 괴수를 쓰러뜨리고 난 다음에 얻을 수 있는 것.
지금 당장은 서울 북부를 단숨에 날려버린 SS급 괴수를 상대해야 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이봐, 저거 위험한 거 아니야?"
그 위험성은 히드라나 아지다하카 마저 긴장하여 침을 삼킬 정도.
"우리, 그거 안 하면 지금 상태로는 위험한 거 알지?"
"당연히 알고 있지."
그거.
즉, 변신이다.
그냥 변신도 아니고 '본체'를 불러내는 변신으로, 괴인이 아닌 괴수로서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럴 필요 없어."
"뭐? 왜? 무슨 방법 있어?"
"펜릴 혼자서는 무리인 거 아니야?"
"펜릴이 나설 필요조차 없다면?"
정확히는 라온과 펜릴이 유사 싱크로를 한 '바나르간드'지만, 바나르간드가 나설 때가 아니다.
"그래도 장모님인데 활약할 기회는 마련해줘야지."
"장모...뭐?"
장인어른이었다면 나는 그냥 무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게임에서도 장인어른인 만큼, 20년의 지구에서도 개고생을 하는 걸 본 만큼, 나는 '그녀'의 참전을 기다렸다.
두두두두.
한강 남쪽, 관악산 정상에서 마침 헬기 하나가 넘어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히카리. 아직 마포대교 쪽에서 죽은 사람 없지?"
[네. 지금 타이밍이에요?]
"아니. 아직이야. 조금만 더 고생해줘."
[걱정마세요. 지금 마포대교에 투입된 X로이드 저격수들, 아직 탄환 다 떨어지려면 한참 남았어요.]
원래는 우리가 타이밍을 조절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마포대교 전선이 질질 끌릴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뒀고, 그게 드디어 빛을 볼 때가 왔다.
"국가의 위기에는 항상 영웅이 나타나는 법. 히카리, 하나, 둘, 셋 하면 X로이드들 동시에 외치게 만들어줘. 알겠지?"
[제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히카리는 내게 여의도 방면의 화상을 띄웠다.
방송국 헬기와는 다른, 꼬리에 태극문양이 박힌 협회의 헬기에 모든 이들이 고개를 들어 헬기를 보기 시작했다.
[다들, 이미 보고 있는 걸요.]
딸칵.
헬기의 문이 열렸다.
그곳에는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존재가 검은 복면을 두른 채, 자신의 몸에 맞게 조정된 하얀 배틀 슈트를 입고 남산 타워를 바라보고 있었다.
"와, 진짜 대박이다."
"지휘관 님?"
"요정이 따로 없네."
금발 소녀의 옷 디자인이 어디에서 따온 것인가에 대해 정체를 아는 입장으로서, 나는 그가 입고 나온 배틀 슈트의 디자인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순백의 요정.
마치 동화 속 겨울 나라의 공주와도 같은 디자인.
그것은 저 소녀의 원래 몸 주인이었던 이를 기리는 상복인 동시에, 가난한 청년이었던 그가 소녀에게 입혀주고 싶었던 웨딩드레스가 틀림 없었다.
'그도 나한테는 저런 거 안 입혔는데.'
내 몸에 빙의했던 한 남자도 내 몸에 웨딩드레스를 입히지 않았다.
그런데 저 인간은 모든 걸 알면서, 전국민-아니 전세계의 앞에 모습을 보일 거라는 걸 알면서 직접 나섰다.
그래, 신서울을 벗어나 서울까지 올라온 것이다.
"지휘관 님! 유미르가 저쪽을 봐요!"
유나의 말에 고개를 급히 돌리니, 유미르는 남산 타워에서 헬기 방향을 향해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었다.
브레스와는 다른, 입에서 에너지를 모아 충격파를 발사하려는 듯한 모습에 모두가 급히 움직이려고 했으나, 나는 그들을 향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진정해. 힘순찐이 모든 힘을 해방하겠다는데, 말려서야 되겠어?"
타앗.
소녀는 헬리콥터에서 뛰었다.
상공에서 헬리콥터를 박차고 뛴 소녀의 양손에는 각각 푸른색과 금색의 빛이 섞인 검이 들려있었다.
"우리는 그냥 외쳐주기만 하면 돼."
한국의 영웅을.
"하나, 둘, 셋ㅡ"
광검이다!!!!!!!
* * *
모두가 자신의 이명을 외치고 있다.
모두가 자신의 이름을 외치고 있다.
-돌아와! 이 미친 놈아! 죽고 싶어!!
마도기어를 통해 들려오는 어떤 남자의 목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는다.
모두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순간부터, 모두에게 이 모습을 들킨 순간부터 광검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생각밖에 없었다.
자신은 사라지고 이 모습만 남게 된다면.
차라리, 이 모습을 널리 퍼뜨리자.
자신이 사랑했던 이의 모습을 누구나 알 수 있게.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이의 모습이 자신의 기억과 추억 속에만 남는 것이 아니라, 전 인류가 기억할 수 있게.
키아아아악!!
마침, 적 괴수는 상대함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는 상대.
"...지켜봐다오, 루살카."
광검, 허윤화는 흉부에서 넘쳐흐르는 마력을 양손에 집중시켰다.
고오오오ㅡㅡ!!
어깨 너머로 넘긴 두 팔 너머, 수십 미터에 이르는 빛무리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 형태는 마치 칼날과도 같았고, 광검은 그 검을 움켜쥐고 남산타워의 괴수를 향해 날아갔다.
"베어갈라라ㅡ"
■■■■■■■ㅡㅡㅡ!!
"스워드 오브 루살카!"
서걱.
십자로 교차한 금청색 검날이 브레스와 함께, 남산 타워를 갈라버렸다.
"갸아악! 아아악! 아아아아악!"
"하랑아, 진정해."
"아아아아악!!"
기술은 게임 속 광검이 썼는데, 피폭은 현실의 석하랑이 당했다.
"역시 정령감수성이야. 효과 대단하구만."
"갸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