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50 2부 9장 07 서울로
그 시각, 관악산.
경기도에서 서울로 향하는 길은 정말 다양하다.
하지만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냐고 묻는다면, 상당히 한정되어있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도로에는 괴수들의 시체가 가득하다.
또한 괴수들과의 전투 여파로 인해 망가지거나 무너진 곳도 많고, 무엇보다도 도로 인근에서 고라니마냥 괴수가 튀어나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오죽하면 차량 운행을 할 때 고라니보다 괴수를 더 조심하라고 할 정도로, 괴수들은
즉, 서울로 올라가려면 괴수를 상대할 각오를 하고 올라가야 한다.
그래서 평소에는 서울은 커녕 경기도로 올라가는 버스나 차량도 하루에 3~4대 있을까 말까한 수준이었고, 그나마도 히어로 협회의 히어로나 헌터의 동행 하에 이동이 이루어지고는 했다.
허나 지금은?
빵빵ㅡㅡㅡ!!
도로에는 20년 전 휴가철을 방불케 할 정도로 차량의 행렬이 길게 늘어졌다.
4차선 도로는 중간중간 부서져서 2차선으로 좁아지거나 가드레일을 지나쳐 반대편 차선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허다했으나, 차량들은 서로 앞다투어 서울로 향했다.
헌터 길드의 차량.
방송국의 차량.
정부측 차량.
그리고 일반인의 차량.
누군가는 콩고물처럼 떨어질 코어를 챙기기 위해서.
누군가는 지휘관과 마법소녀들의 활약을 촬영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끈 떨어진 선의철로부터 새로운 권력의 중심과 사진이라도 한 컷 찍기 위해서.
누군가는 신서울로 내려오면서 버리고 왔던 서울의 부동산을 되찾기 위해서.
'서울은, 돈이 된다!'
각자 목표는 다르지만, 목적지는 같다.
"야! 비켜!!"
"끼어들기 하지마!"
"닥쳐! 우리 방송사인 거 안 보여?!"
"방송사면 대수냐, 젠장!"
혼돈이 가득한 가운데, 라디오를 통해 모두에게 소식이 들려왔다.
현재 시각, 3시 00분.
지휘관이 밝힌 바에 따르면, 한강 이남에 있는 모든 괴수들을 소탕했다고 합니다.
"뭐...라고...."
늦었다.
콩고물은 이제 한강 남쪽에 더이상 없다.
그렇다면.
"가, 강북!!"
아직.
한강 북쪽에는 괴수들이, 돈이 들끓고 있다.
* * *
[5분 전, 7월 4일 새벽 2시 55분, 여의도 마포대교 사거리.]
여의도라는 지역은 서울의 중심이라는 의미가 강하지만, 이 게임에서는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지휘관의 새로운 거점.
아키택트라는 존재를 영입했느냐 안 했느냐에 따라, 유성과 얼마나 긴밀한 관계를 맺었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이 여의도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지휘관은 서울에 새로운 거점을 마련하게 된다.
신서울의 길드가 임시 사무소 겸 앞으로 신서울 출장소가 된다면, 이곳 여의도는 마법소녀 매지컬 큥큥스를 위한 지역이 된다.
20년의 지구에서 피닉스가 여의도에 있는 호텔을 재건하여 청화단의 본거지로 활용했던 것도 그에게 여의도가 익숙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괜히 나중에 공중정원이 되거나 지하요새가 되는게 아니지.'
비록 20년의 지구에서는 그 미래를 보지 못하고 떠나야 했지만, 석하랑이나 이유나의 말에 따르면 한창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쯤 그곳의 여의도는 위로는 떠오르고 아래로는 지하로 층층이 내려가며 666층 단위의 거대한 탑이 되지 않았을까.
이에 대해 혹자는 말한다.
여의도라는 섬을 지휘관 개인의 사유지처럼 활용해도 되는 건가?
아무리 지휘관이라고 한들, 몰락한 땅이라고 한들, 한 나라의 수도와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을 개인의 왕국마냥 운용해도 되는가?
-당근빳다죠, 씨펄!
-여의도를 안 넘겨준다고? 우리는 스코틀랜드를 넘겨주겠어!
-하와이 허쉴?
라고 묻는다면, 전 세계의 대통령이나 지도자들은 여의도는 커녕 서울 면적의 땅을 내어주는 한이 있더라도 지휘관을 자국으로 영입하려고 할 것이다.
'애초에 여의도는 망한 곳이잖아.'
이미 모든 것이 파괴되고 아무것도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여의도를 뒤덮은 고층 빌딩들은 모두 무너진 도미노마냥 쓰러져있고, 그 속에는 온갖 괴수들이 개미마냥 거점삼아 지내고 있다.
이런 여의도를 그냥 홀라당 챙기는 것도 아니고 지휘관이 자신의 병력을 이끌고 직접 탈환한다.
여의도 뿐만 아니라 평양 사태 이전의 영토를 모두 복구한다.
서울 전체, 아니 경기도와 강원도 전체를 넘겨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업적에 여의도를 가지는 게 무슨 대수랴.
'일본에서는 대마도를 주겠다고 하는 걸.'
히카리 루트에 따르면, 일본 공주 출신의 히카리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파악한 일본은 대마도를 주겠다고 하더라.
이미 인구는 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섬이 되었지만, 그 땅의 면적만큼은 한 지역의 왕으로 군림하기에 적당한 면적.
한국과도 가깝고, 무엇보다 일본 본토에서 떨어진 아주 먼 외딴 섬이라는 점이 주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오키나와가 살아있었다면 그걸 줬겠지만, 그건 수마룡한테 먹혔지.'
익숙한 이름, 모비딕.
석하랑과의 관계를 개선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녀석인 만큼, 이번에도 아주 잘 요리하여 2페이즈가 나오지 않게 하리.
아무튼.
내가 이렇게 여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것도, 다 여의도가 우리의 손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여의도, 클리어."
"남은 괴수 반응 없음."
"축하해. 이걸로 진짜 한강 이남을 되찾은 거야."
새벽 3시.
적당히 괴수들을 소탕하면서 올라오다보니 작전 개시로부터 무려 3시간이나 흘러버렸다.
하지만 고작 3시간 만에 수만, 아니 수십 만에 이르는 괴수들을 모두 소탕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몹시 고무적인 성과다.
'아직 저기 위에 더 강한 놈들이 많지만.'
한강 남쪽에 있는 괴수들은 그나마 상대적으로 '약한' 녀석들이다.
그에 비해 한강 북쪽은 S급 괴수를 중심으로 온갖 A급이 사방에 깔려있다.
협회의 레이더에 나타나지 않는 A급만 최소 20 개체는 될 터.
자지벌레처럼 약한 A급이 아니다.
하나하나가 힘의 차이를 명백히 느낄 수 있게 하는, 언제 S급으로 진화하지 않아도 이상할 놈들이 포진해있다.
해가 뜨기 전까지 모두 정리할 수 있을까.
아직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슬슬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히카리. 지금 괴수들 한강 넘어오는 건 안 보이지?"
"네. 반응 없습니다."
"그럼 여기 말고는 사실상 못 넘어오겠네."
"그렇죠."
유일하게 흔적이나마 살아있는 다리, 마포대교.
한강의 남북을 잇는 다리는 과거 선의철이 전부 폭파시켰다.
하지만 여의도에서 어떤 물건을 챙기려고 하다가 폭파가 늦어지게 되었고, 결국 폭발물이 터지기 전에 괴수들이 폭발물을 들고 다른 곳으로 달려가는 바람에 다리는 무너지지 않았다.
현재, 한강을 잇는 다리는 오직 마포대교 하나.
물론 그마저도 차는 커녕 사람은 지나갈 수조차 없는 끊어진 철골 뿐이지만, 이능력자들에게는 큰 무리가 아니었다.
크르르.
마찬가지로, 괴수에게도.
"지휘관 님. 마포역 방면에 괴수들이 집결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벌레들이 한 곳으로 모이는 것 같아요."
"그래. 놈들도 낌새를 챈 거지. 한강을 도하하려고 하면 죽는다는 걸."
한강에는 석하랑의 마력이 아직도 남아있는 상태다.
아무리 자지벌레가 약한 A급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한강의 절반도 건너지 못하고 얼어붙어 죽는다는 걸 지휘 개체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강을 넘어오려고 하는 거다.
무너진 다리를 이능력자들이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것처럼, 괴수들 또한 다리를 쉽게 넘어올 수 있다.
"지휘관. 마력이 뒤틀린다냥."
김펜릴의 말에 나는 망원경으로 마포역 방면을 훑었다.
"가만히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설마 저런 식으로 진화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진화?"
"그래. 괴수들이 인간을 죽이기 위해 더 발전된 형태로 몸을 바꾸는 거지."
다리 너머.
구더기처럼 들끓던 자지벌레들은 하나하나 새로운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음식으로 비유하면 좀 그렇긴 하지만, 프랑크 소시지에 다리가 네 개 달린 것 같아."
"정확한 표현이야."
"뭘 정확해. 그냥 좆에 다리 달렸다고 하면 되지."
히드라의 말 그대로, 괴수들은 정말 형용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가급적이면 머리 모양이라도 바꿔줬으면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저 모양은 그들의 아이덴티티라는 듯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혈관처럼 보이는 것들이 도드라져서 더 혐오감이 생길 정도.
아무리 DLC의 영향이라고는 하지만, 저런 괴수를 상대하려고 하니 정말 기가 막힌다.
적의 전의를 꺾기 위한 형체.
싸울 의욕이 사라지게 만드는 외형은 여러모로 혼돈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괴수들 다웠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스터 텐타클."
"...하하하, 저도 저게 저렇게 될 줄 알았겠습니까."
범인은 이 남자다.
큐브의 힘을 사용하여 큥트로피의 법칙에 따라, 큐브의 힘을 사용한 만큼 자지벌레가 나올 수밖에 없도록 만든 남자가 바로 이 남자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설령 저 괴수들이 더 나타난다고 해도, 더 심한 놈들이 나타난다고 해도, 저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그 물건을 사용했을 겁니다."
차마 더 따지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서울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 괴수에서 괴인으로 각성하여 큐브의 힘을 사용한 것을 알기 때문.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마스터 텐타클은 뒤에서 촉수를 수 가닥 뻗으며 전의를 불태웠다.
굳이 그런 전의는 안 태워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를 비롯한 서울 시민-괴인들을 포함한 이들도 있어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여의도를 잘 부탁드립니다. 서울 시민 여러분들께도 전합니다. 부디, 버텨주십시오."
지금까지 싸운 것이 소탕전이라면, 이제는 방어전이다.
"우리가 시청사의 뱀을 잡는 동안, 부디 한강 남쪽을 잘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키아아악!!
괴수들이 일제히 한강 다리를 뛰어넘기 시작했다.
"마법소녀들이 시청사의 뱀을 잡을 겁니다."
S급 괴수를 잡고 서울을 탈환한다.
'반만.'
서울을 탈환한다고 했나.
그것은 거짓말이다.
'이 노다지 코어 밭을 내가 왜?'
여의도는 내 땅이다.
이 괴수 스팟은, 나 지휘관의 것이다.
한강 이북에서 넘어오는 모든 괴수들이 여의도로 향하게 된다면.
다른 A급 괴수들이 시청사의 뱀이 가지고 있던 S급 코어의 냄새를 맡고 마포대교를 내려와 여의도로 향한다면.
이곳, 여의도는 괴수들을 상대하는 최전선이 되리라.
'가만히 앉아서 코어 수급 할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서울 탈환은 탈환이고.
돈은 벌어야 하지 않겠는가.
'다들 돈 벌려고 서울로 올라오는 거니까.'
기회의 땅, 서울로.
"우리가 제일 고생했는데, 우리도 돈 좀 벌어야지."
모든 것은 뷰빔하우스를 위해서.
...아니, 지구 평화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