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949화 (949/1,497)

EP.949 2부 9장 06 수치심은 없다

강서, 구로, 관악, 강남, 강동.

지휘관의 지휘 하에, 다섯 방향에서 서울 북쪽을 향해 진격한 S급 다섯 명은 자신이 맡은 지역의 주변 일대도 함께 청소했다.

S급 다섯.

그리고 그들을 보좌하는 수많은 전투원들.

사실상 지난 일년 사이 영국 런던의 전장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력을 동원하는 수준이었고, 그들은 불과 두 시간도 되기 전에 엄청난 성과를 낼 수 있었다.

한강 이남, 클리어.

반지하에 숨어있던 괴수들도 모조리 쓸어버렸고, 건물을 통째로 휘감고 있던 A급 괴수들도 모조리 퇴치되었다.

문제는 그들이 '퇴치'만 한다는 것.

생방송을 보는 모든 이들이 생각했다.

저 많은 코어, 저 중에 하나만 챙겨도 내 수중에 100만원이 떨어지는 건데.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법이고,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일 때문에 남이 더 잘 되면 더 배가 아픈 법이다.

더군다나 목숨이 안전한 상황에서, 합법적으로, 나라에 애국하고 세계 평화에 기여하며 막대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누군들 나서지 않을까!

-서울 해방을 도우러 온 분들에게 전합니다.

지휘관은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모든 전투는 마도기어를 통해 기록되고 있습니다. 코어와 사체는 괴수를 쓰러뜨린 저희 팀원들과 서울 시민들의 것입니다.

만.

자고로, 한국말을 끝까지 들어야 하는 법.

-저희와 함께 서울을 되찾기 위해 나선 '영웅' 여려분들의 도움을 구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사냥한 괴수는 온전히 여러분의 것입니다. 지휘관 보증 하에, 여러분은 괴수 사냥에 집중해주십시오.

지휘관은 마법소녀들과 서울 시민 뿐만 아니라, 선의철이 불법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 서울 인근으로 올라온 이들을 지휘했다.

-여러분이 사냥한 괴수의 부산물, 코어는 서울의 '환경미화원' 분들에 의해 수거될 겁니다. 약속드립니다. E급 코어 하나라도 분실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이 지휘관이 책임지고 보증합니다.

보증. 확약.

한국인에게 얼마나 위험하면서도 공허한 말인가.

그러나 지휘관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서울 전역에 펼쳐진 마력 파장을 바탕으로 실시간으로 자료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 막타를 쳤는지, 누가 딜 지분이 높은지, 누가 더 서포팅을 잘 했는지 철저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공개적으로.

지휘관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한 인터넷 사이트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마치 각지에서 펼쳐지는 괴수 사냥에 대한 각각의 '모든' 레이드를 딜미터기처럼 나타낸 자료가 있었다.

-[프로페서 H]. 이 빅데이터는 여러분들에게 지급될 코어의 정산금을 실시간으로 보여줄 겁니다. 그러니 서울을 되찾을 영웅 답게, 괴수를 소탕하는데 집중해주십시오.

"우오오오!!"

히어로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헌터들도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간 괴수들을 상대하며 가장 걱정했던 것이 무엇인가?

바로 코어의 회수 아닌가!

행여나 자신이 목숨을 걸고 B급 괴수를 쓰러뜨리고 난 뒤, 기절한 사이에 누가 B급 괴수의 코어를 훔쳐갔다면?

자신이 손을 쓸 시간도 없이 나라에서 코어를 챙겨가 국익을 위해 쓰겠다면서, 막대한 세금을 떼고 남은 금액을 개평마냥 준다면?

지금까지 한국의 이능력자들은 모두 자기가 잡은 코어를 직접 회수하느라 고생을 했다.

하지만 지휘관이 직접 데이터를 바탕으로 보증을 한다면.

"믿어보자! 안 주면 나중에 고소할 거다!"

"나 벌써 삼천만원이라고? 으아아! 저리 다 꺼져! 이 구역의 괴수들은 다 내가 죽인다!!"

코어와 시체 회수로부터 해방된 서울의 영웅들이 본격적으로 괴수 사냥에 나섰다.

그리고 그들이 쓰러뜨린 괴수들이 남긴 코어는 서울 시민들에 의해 회수되었다.

"거기, 아저씨! 그거 몰래 빼돌리면 재미 없을 줄 알아!"

"우리도 이거 회수하는 거 다 실적이거든?!"

"코어 한 개당 뭐 십만원이라도 떨어지냐?!"

"코어 한 가방 챙기면 서울에 집 한 채 준다더라!"

지휘관의 힘으로 이능력을 각성했으나 그 능력이 미진하거나 전투에 직접적으로 나서지 못하겠다고 하는 이들은 후방에서 서울 해방을 지원했다.

"야! 거기 괴수 이빨 조심히 빼! 그거 하나에 100만원이래!"

"코어 해체 조심해! 코어 상하면 우리 실적도 날아가는 거야!"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파밍의 민족 아닙니까!"

'파밍.'

죽은 괴수의 시체에서 좋은 소재가 되는 물건들을 챙기며, 그들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코어'를 회수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뭐해! 빨리 괴수 죽여! 그래야 우리가 코어를 가방에 집어넣을 거 아니야!"

"뒤에서 보고만 있지 말고 좀 도와!"

"그럼 우리 지분 늘어나는데?"

"아오, 젠장!!"

서울 시민들은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코어를 회수했다.

덕분에 K-2 마도소총을 든 이들은 안심하고 괴수들을 처리할 수 있었고, 비전투원들은 서울 지하에서 괴수들을 해체하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코어를 백팩에 집어넣었다.

"세상에."

서울에 있는 이들을 위해 나선 헌터, '애국페이'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이들을 보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저렇게 열성적으로 움직이면서 삥땅을 치지 않을 수 있지?"

그는 구로 방면에서 북쪽으로 나아가며 서울 시민들을 보조했다.

C급인 자신이 나설 일이 거의 없겠다 싶을 정도로 서울 시민들은 괴수들을 빠르게 정리했다.

"어떻게, 누구 하나 뒷주머니에 슬쩍하지 않을 수 있지?"

아무리 데이터가 모두 기록된다고 한들, 삼십만이 실시간으로 수십 수백에 이르는 괴수들을 죽이고 있는데 이걸 과연 단번에 기록하고 정리할 수 있을까?

"...그래도 나는 내 지갑 챙길란다."

콰득!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숨어있던 괴수들도 있었지만, 애국페이에게는 영 성이 차지 않았다.

"...내가 서울 지키러 왔나? 흥, 대박 노리러 왔지."

그가 노리는 것은 서울 해방을 틈타 괴수들을 사냥하며 나오는 코어를 챙기는 것.

이른바 스캐빈저와 같은 행동이었지만, 지금의 전장은 그마저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강 이남에 있는 전 히어로들에게 알립니다. 현재 한강 이남에 있는 괴수 소탕률 69%. 나머지 31%도 안전하고, 빠르게 정리 부탁드립니다.

모두의 마도기어에 떠오른 메세지에 애국페이는 입술이 바짝 말랐다.

아직 두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70%.

즉, 이제 한 시간 정도만 있으면 한강 이남의 모든 괴수들이 사라진다.

자신이 코어를 벌 수 있다는 생각보다 먼저 든 걱정과 기대가 있다면.

"이, 이러다 진짜로 서울 되찾는 거 아니야?"

서울, 탈환.

손발에 저릿저릿한 감각이 들었다.

누구나 원했지만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서울 탈환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돈에 눈이 먼 헌터이기 이전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하기를 맹세하던 어린 소년의 심장에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성공할 리가 없어. 지금까지 몇 번이나 실패했는데."

하지만 소년은 속세에 찌들었다.

그가 만약 의기와 충성심이 가득했다면 히어로 길을 걸었지, 헌터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 내가 무슨 영웅ㅡ"

"선배님?"

"...너는!!"

애국페이는 화들짝 놀랐다.

그의 앞에 나타난 백색 정장 스타일의 여인은 자신이 익히 알고 있는 여인이었다.

"박라온?"

"오랜만입니다. 선배."

"너, 그 마크는...."

"예. 저 마법소녀입니다."

스스로를 마법소녀라고 부르는 박라온의 얼굴에는 아주 오래 전, 같은 길드에 소속되어 있던 이에게 자신을 소개함에도 부끄러운 기색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서울을 되찾기 위해 오셨습니까? 그 날이 기억나는군요. 후후."

"너, 방금 요라고...!"

"예. 저도 많이 변했습니다. 아직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했지만...지금은 '운사'가 아니라 마법소녀 박라온입니다."

그녀는 오히려 자신이 마법소녀라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는 듯 했다.

"선배님이라면 꼭 오실 줄 알았습니다. 작년까지 서울수복작전에서 한 번도 빠짐없이 참여한 것,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코어 때문이다."

"예, 압니다. 코어 때문이라는 것을. 하지만 이왕 코어를 수급할 거라면, 서울을 되찾고 난 뒤에 여기 있는 코어를 모두 수거하는 건 어떻습니까?"

"그건...."

만약 진짜로 서울을 수복하게 된다면.

서울이라는 노다지는 이제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닐까?

"서울, 진짜로 되찾을 수 있냐?"

"예. 서울을 되찾고, 우리는 38선을 넘어 저기 북쪽까지 진격할 겁니다."

"!!"

애국페이는 전율했다.

정말로, 서울을 되찾는 것을 넘어 더 넓은 곳을 바라볼 수 있단 말인가?

"서울을 되찾고 난 뒤, 우리는 더 강한 적들을 만날 겁니다."

"...더 강한 적이라는 건 양질의 코어가 들어온다는 얘기지."

"예. 그렇습니다."

고오오오!!

아스팔트 도로 아래에서 거대한 촉수가 튀어나왔다.

마치 문어처럼 생긴 그것은 사방으로 다리를 뻗으며 사람들을 휘감으려고 했다.

"위험...!"

서걱!

박라온은 창을 한 번 빠르게 내질렀다.

그러자 문어의 머리에 동그란 구멍이 뚫렸고, 문어는 땅에 축 늘어졌다.

"너, 너 어떻게 그런...!"

"지휘관 님께서 저를 다시 일으켜세워주셨습니다."

"......."

애국페이가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

하지만 이제는 신경쓸 수밖에 없는 것.

"...그, 진짜 좋았어?"

"...언니."

라온은 자신의 하복부에 손을 올리며 야릇하게 웃었다.

"첫경험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행복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분께서 저를 다시 이능력자로 만들어주셨죠."

"...미친."

애국페이는 머리에 쓴 헬멧을 벗었다.

그러자 좌우로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물들인 머리가 흘러내렸다.

누군가는 할리퀸이라고 부르겠지만, 이 여인은 스스로를 태극 스타일로 부르고 있는 색깔.

운사 박라온과 마찬가지로 과거 애국심 고취를 위해 전통을 추구하던 그녀의 옛 이명, C급 히어로명은 [태극걸]이었다. 지금은 스스로를 애국페이라고 부르지만.

"너 지금 그러면 어느 정도야?"

"지금 B급입니다."

"...얼마나 박아댄 거야."

애국페이의 말에 라온은 고개를 단호히 가로저었다.

"틀렸습니다. 얼마나 박아댄 거야가 아니라, 얼마나 질싸했냐고 묻는 게 정답입니다."

박라온은 다시 창을 움켜쥐며 마력을 뿜어냈다.

"최소한, 60번은 넘거든요."

"......."

30분 뒤.

영등포구의 괴수들이 모조리 소탕된 것을 끝으로, 다섯 방면에서 진격하던 히어로들은 여의도로 모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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