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46 2부 9장 03
<강서, 한강 근교.>
"으아아!!"
슈리는 분노를 터뜨리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파이어펀치! 파이어펀치! 파이어펀치!!"
그리고는 직접 두 손에 불꽃을 휘감아, 달려드는 괴수를 향해 불꽃을 '날렸다'.
"펀치면 직접 때려야 하는 거 아니냐?"
"씨발! 저걸 어떻게 직접 때려요!"
"그건 그렇지."
슈리와 함께 전선에 나선 이능력자, 아키택트는 곰방대를 휘두르며 땅을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퍽, 퍼억!!
갑자기 땅에서 솟아난 벽에 자지벌레는 대가리를 처박고 쓰러졌고, 아키택트는 낄낄 웃으며 벽을 없앴다.
"나처럼 잡아보든가."
"나는 불속성이거든요?! 아이, 씨발 진짜!!"
슈리는 옆에서 자신을 향해 튀어나온 무언가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
겉에 마력을 건틀릿마냥 두르고 쳐낸 덕분에 그녀의 손에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으나, 슈리의 손에 얻어맞은 자지벌레는 대가리가 꺾여 옆으로 쓰러졌다.
"어떻게 서울에 이런 개좆같은 괴수들만 있냐고!!"
"저 좆같은 괴수들 상대해 온 우리는 어떤 기분이었겠냐?"
"......썅."
아키택트의 회한 어린 목소리에 슈리는 할 말을 잃었다.
"젠장, 젠장. 어쩐지 서울수복작전의 자료를 찾기 힘들더라니."
"원래부터 찾기 어렵게 만들어놨겠지만, 자료가 이런 거라면 찾아보고 싶었던 사람들도 생각이 싹 사라지게 되지. 다만."
"다만?"
"...원래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더 많이 나타나는 것 같네. 아무래도 그 말이 사실인 것 같아."
"그 큥트로피인가 뭔가 하는 그거요?"
"그래. 큐브의 힘을 많이 사용하면 사용할수록...촉수든 뭐든 성적인 것과 관련된 괴수들이 튀어나온다는 거. 저거 봐."
아키택트는 한강 둔치 쪽을 가리켰다.
"너, 서울에서 저런 나무 본 적 있어?"
"몰라요! 내가 서울 와본 게 지휘관 따라 온 것 말고는 없는데 어떻게 알아?"
"너 한국인이라며?"
"썅, 내가 한국에 있던 시간보다 외국에서 집시 노릇하던 시기가 더 긴데 무슨 개소리예요?!"
"한국인으로 귀화했으면 한국인답게 살아야지! 쯧쯧."
"아이, 퍽킹 제임스 리!!"
"그게 누구냐. 나는 모르는 사람이다."
파지지직!!
아키택트가 가리켰던 거대한 나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족히 10m는 훌쩍 넘는 나무는 전신이 빙글빙글 흔들리더니, 곧 꼭대기로 뻗은 줄기들을 아래로 내리기 시작했다.
"어우야."
줄기 사이에 가려진 건 사람의 형상이었다.
그게 누가봐도 알몸인 여인의 모습이었고, 아키택트는 입맛을 다셨다.
"저런 나무로 한옥 지으면 진짜 대박나겠는데."
"저건 괴수예요, 미친놈아! 아리아드네, 몰라요?!"
"알아. 씁. 근데 괴수로 집 짓지 말라는 법 있나?"
"당신이 더 미쳤어!"
"서울 지하에서 저런 놈들이랑 12년 동안 부대끼고 살면 누구나 다 미치는 법이지. 그래도 나 정도 되면 정상이다?"
아키택트는 뒤에 있던 이들을 향해 손을 들었다.
"어떤 미친 놈들 중에는 저것도 가능이라면서 바지 벗고 달려들던 애들도 있었다니까?"
"......."
슈리는 입을 꾹 다물었다.
더이상 욕을 내뱉었다가는 자기 자신이 자괴감이 들 지경이었고, 슈리는 그냥 생각을 그만두기로 했다.
[끼아아아악ㅡㅡㅡㅡ]
괴수가 괴성을 지르며 줄기를 뻗었다.
그 줄기의 끝은 지름 3cm 정도의 구멍을 쩍 벌렸고, 안쪽은 수액처럼 보이는 끈적한 액체를 흘리고 있었다.
"씨발, 진짜 싫다."
"으하하! 상대하다보면 익숙해진다니까? 아 참, 슈리 양. 최대한 주변 건물들 부수면서 싸워줄 수 있어? 특히 저기 강변에 있는 아파트 단지."
"뭐요? 왜요?!"
"그래야...."
아키택트는 입맛을 다시며 황홀한 미소를 지었다.
"저 아파트들을 부수고, 저기다가 한강뷰 한옥 저택을 지을 수 있거든."
"......."
콰ㅡㅡㅡ앙!!
아파트가 무너졌다.
* * *
<관악, 옛 S대 부지.>
"이야, 어떻게 싸울 때마다 이런 좆같은 괴수들만 나올까."
하이라, 라는 이름을 임시로 쓰고 있는 히드라는 산을 기어올라오는 괴수들을 상대로 땅을 마구 주무르며 괴수들을 제압하고 있었다.
"유나양, 어떻게 생각해?"
"저런 것들에게 당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히드라의 옆에 선 유나는 정상에서 전해지는 신호를 중계하며, 다른 네 루트의 진격을 조율하면서 S대를 거점으로 괴수들이 정상으로 올라가지 못하게 막는 중이었다.
"그렇지? 너도 이제 B급...아니다. 어쩌면 A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저런 잡몹들에게 당하면 안 되지."
"그게 아니라."
유나는 전방을 향해 스태프를 들었다.
스태프에 달린 코어가 금빛을 반짝이기 시작했고, 곧 금빛의 화살이 되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파바바박!
S대를 기어올라오던 괴수들은 금빛 마력의 화살에 몸이 터졌다.
놈들은 더이상 기어올라오지 못했고, 코어만 남겨둔 채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하이라 씨, 코어 챙겨주세요."
"그래, 그래."
히드라는 우아한 손짓으로 손을 흔들며 괴수의 사체를 땅속으로 당겼다.
죽은 동료 괴수를 향해 아가리를 벌리던 괴수는 땅속으로 들어가는 동료의 사체를 향해 손을 마구 휘둘렀으나, 괴수는 땅속으로 들어가는 사체에 손을 묻은 바람에 움직일 수 없었다.
타다다당!!
괴수를 향해 K-2 마도소총이 불을 뿜었다.
푸른 마탄이 일제히 날아가 괴수의 몸을 벌집으로 만들었고, 괴수는 동료와 함께 땅속으로 스며들게 되었다.
"괴수도 동료를 구하려는 걸까요...."
"그것보다는 죽은 괴수의 코어를 삼키려고 한 거 아닐까?"
괴수의 행동에 대해 상반된 의견이 있었지만, 분명한 건 괴수들이 괴수가 죽을 때마다 고개를 자꾸 그쪽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에 버티고 있으니까 두려운 거지. 정상에 있는 맛있는 먹이랑 당장 옆에 있는 먹이. 둘 중 누가 더 먹기 쉽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바로 옆에 있는 먹이 아니겠어?"
"동료들조차 먹이로 삼는다는 건가요...."
"그래. 하지만 용어에 어폐가 있네. 괴수들끼리는 동료라고 할 수 없어. 그냥 같은 생명체일 뿐이야. 상어가 다른 물고기들 잡아먹는 것처럼, 물고기가 물고기를 잡아먹는 거랑 같은 거라고?"
"그런 느낌이군요."
유나는 히드라의 관점을 단숨에 이해했다.
다른 인간들은 히드라를 잘 이해하지 못할 지 몰라도, 왠지 모르게 유나는 히드라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요. 괴수는 자신이 강해지는 것과 사람을 죽이는 것 이외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는 거죠?"
"정확해.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라. 쟤들은 사람을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라...."
쾅!
아래에서 솟구친 대지의 창이 자지벌레들을 단숨에 꿰뚫었다.
"사람을 범하려고 하는 거야."
"...다른 곳에서도 저런 괴수들이 미쳐 날뛰고 있다고 해요."
유나는 각지에서 전해진 정보를 정리했다.
대부분 A급 괴수들을 한 기, 또는 여러 기 조우하여 그들을 제거하느라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단순히 A급이라고 하기에는 그들이 너무나도 더러운, 아니 상대하기 골치아픈 적들 뿐이었다.
건물 높이 만큼의 점액거인이 음부로 추정되는 곳에서 체액을 뿌린다거나.
걸어다니는 거대한 난이 길쭉한 잎을 촉수처럼 휘두른다거나.
자지벌레를 통솔하는 개체인 듯 귀두모양의 대가리에 몸통을 두 바퀴에 끼우고 달리는 괴수라거나.
몸 길이가 5m가 넘는 바퀴벌레라거나.
정말 상대하기 끔찍한, 이대로 방송을 냈다가는 19금은 커녕 22금으로 정지를 먹을만한 이형의 괴수들이 차고 넘쳤다.
"이게 지휘관 님께서 말씀하신 큥트로피의 법칙일까요?"
"적어도 큐브를 쓰면 이런 괴수들이 차고 넘친다는 건 확실하네."
히드라는 질색을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큐브, 진짜 질색이다...."
"이전에도 몇 번 사용하지 않으셨나요?"
"그 때는 몰랐지. 아무리 우리라도 이런 걸 쓰고 싶다는 생각은 없어."
"모르셨다고요?"
"그냥 기껏해야 사람이 좀 더 강간지향적으로 바뀐다거나, 부하들이 좀 더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강간을 원한다거나, 흔히들 범죄라고 하는 짓들을 원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그런 게 선을 넘으면 다들 저렇게 되는 군요."
"그러게."
쿵. 쿵.
멀리서 거대한 괴물이 걸어오고 있다.
이족보행의 거인은 5m가 넘는 거대한 키에 두 개의 눈, 세 개의 다리를 앞뒤로 움직이며....
"우욱."
정정.
가운데 다리는 다리가 아니었다.
다리처럼 굵고 땅까지 닿을 정도로 길었지만, 그것은 명백한 '그것'이었다.
[여...자....]
괴수는 여자를 찾고 있었다.
사람이 들어가기는 커녕 머리도 다 들어가지 않을 크기였지만, 괴수는 유나와 히드라를 보자마자 세 번째 다리를 번쩍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아까 전에 제가 말했잖아요. 저런 놈들한테 당하기 싫다고. 그거, 지휘관 님과 할 수 없는 더러운 몸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어요."
"흐응. 하긴, 저런 놈들 상대하면 그냥 싸우는 것도 기분 좆같은데, 저게 몸에 닿았다고 생각하면 끔찍하기 짝이 없지."
히드라는 길쭉한 지팡이를 높이 치켜들었다.
마법소녀 복장이지만, 머리 위에 쓴 마녀모자가 그녀의 정체성을 마법소녀보다 마녀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온다! 사격 개시!!"
S대의 건물 옥상에 올라가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괴수들을 향해 총격을 퍼부었다.
누구도 괴수가 가까이 다가오는 걸 원치 않았으나, 괴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탄을 몸으로 받아내며 천천히 S대의 언덕을 따라 올라오기 시작했다.
"저거, 그냥 놔둘까?"
"왜요?"
"쟤가 노리는 게 우리가 아닐 수도 있잖아."
히드라는 관악산 정상을 가리켰다.
"괴수들도 알고 있을 걸? 진짜로 맛있는 게 누구인지."
"그럼 더 안 돼요."
유나는 히드라에게 다가가 그녀의 등 뒤를 움켜쥐었다.
"저거, 죽여주세요."
"......."
초첨없는 유나의 눈동자에 히드라는 침을 꿀꺽 삼켰다.
"...가끔 보면 말이야, 지휘관보다 네가 더 무섭다니까."
"지휘관 님을 건드리려고 하는 괴수는 다 죽여야 해요."
"그럼 나는?"
"당신은...."
유나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싱긋 웃었다.
"저랑 지휘관 님이랑 셋이서 섹스했으니까 괜찮아요."
"...유나야."
히드라는 떫은 얼굴로 물었다.
"너, 혹시 너랑 3P만 하면 아무 여자나 와도 괜찮다는 거야?"
"네."
"와우."
유나의 즉답에 히드라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단하네, 정말. 나라면 나 혼자 가지고 싶어서 미쳐버렸을 지도 모르는데."
"제가 그만큼 능력이 된다면 모를까, 그건 아니잖아요. 지금 가지고 있는 능력도 지휘관 님 덕분에 생긴 능력이고. 그러니까...."
유나는 괴수를 향해 스태프를 겨눴다.
"지휘관 님을 건드리려고 하는 것들은, 모두 용서할 수 없어요."
"아하, 스트레스를 괴수들 상대하는 걸로 푸는 거구나. 그럼 도와줄게."
히드라는 유나의 손에 자신의 손을 겹치며 마력을 불어넣었다.
"마력은 빌려줄게.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봐."
"그럼...."
유나는 히드라의 마력을 빌려, 괴수를 향해 마력을 날렸다.
"그라운드 파운드!"
순간.
[크어어엉!!]
거대한 괴수가, 무릎을 꿇고 바닥에 대가리를 처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