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943화 (943/1,497)

EP.943 2부 8장 27 개전

[7월 3일, 오후 9시 10분. 서울의 지하 어딘가.]

-광검의 부재. 서울 탈환은 헛된 희망일 뿐.

-정부를 향한 과도한 정치 공세. 배후는 야당?

-다시 보는 서울 괴수의 위험성. 정말 안전한가?

"...정말 성공할까요?"

선겨울은 언론에서 떠드는 온갖 부정적인 시각에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무조건 성공합니다. 공주님은 직접 보시지 않았습니까? 그들의 힘을."

"네. 직접 옆에서 봤죠. 하지만...."

"믿으십시오."

촉수신사, 마스터 텐타클은 무거운 얼굴로 뒤에 있는 수많은 이들을 가리켰다.

"이제 이들을 막을 수 없습니다. 내일 아침해가 뜨면 이들은 이제 햇빛을 본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가족과 친구를 볼 수 있다는 생각밖에 없으니까요."

지휘관의 도움 덕분에 서울 지하에 있던 이들은 무사히 아는 이들과 연락을 취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선의철과 유성에서 중간 연락을 차단해왔지만, 설령 연결이 이루어지더라도 소나무부대에 의해 연탄재에 살해당했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고작 200km 떨어진 거리를 두고 13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설움을 떨쳐낼 차례입니다."

"그렇게 말하니까 꼭 이산가족 상봉하는 것 같네요."

"하하, 틀린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13년 동안 생이별을 했는데. 심지어 죽은 줄 알고 장례를 치른 이들도 있고, 재혼을 해서 자식을 본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얼굴이라도 보고 한 번 만나고 싶은 게 사람 심리죠."

선겨울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서울 위에 있는 수십 만 괴수를 쓸어버리고, 이제 서울을 되찾아 인간의 삶을 찾을 때입니다."

현재.

시청사의 뱀으로부터 파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자지벌레를 비롯하여, 서울에 존재하는 괴수의 수는 대략 삼십만 남짓.

E급 괴수 하나가 원룸의 방 하나마다, D급 괴수 하나 하나가 아파트 각 호마다, C급 괴수 하나가 건물의 층마다, B급 괴수 하나가 건물 하나마다, 그리고 A급 괴수 하나가 아파트 단지 하나를 통째로 자기 영역으로 삼으며 서로가 서로를 지배하는 피라미드 구조를 갖추다보니 서울은 기이할 정도로 괴수들이 많이 밀집되어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공주님? 이번 전투가 끝나면 정치사범의 딸로 평생 욕을 먹을 겁니다."

"이미 욕은 진작부터 들어왔어요. 그리고 어차피...."

선겨울은 자신의 마도기어를 가리켰다.

"패륜을 각오하고 비정한 결단으로 지휘관과 함께 서울 시민들을 구한 영웅으로 남는 게 더 좋아요."

"진심이십니까?"

"당연하죠. 아무리 유교라고 하지만, 다들 인정할 걸요? 지휘관을 도운 인류의 영웅이랑...."

선겨울은 한탄 어린 목소리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3cm의 딸이랑 둘 중 뭘 선택하라고 묻는다면, 저는 차라리 패륜아가 될래요."

"......."

마스터 텐타클은 묵묵히 선겨울을 향해 엄지를 들었다.

"그리고 선겨울은 죽고,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면 되죠. 페이스 오프."

"...뭐요?"

"저 말이에요. 이번 전투 끝나면 성형하려고요."

선겨울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지휘관 님 여자 형태의 얼굴로 성형한 다음,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거예요."

이곳은 서울.

강남역, 아래.

* * *

[7월 3일, 오후 11시 45분. 관악산 정상.]

시간이 다가온다.

나는 21세기 대마도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물건을 하나 집어들었다.

"아아, 전달합니다."

무전기에 대고 지휘를 하는 경험은 처음이다.

20년의 지구에서도 그가 사용하는 걸 본 적이 없는데, 무전기를 사용해본 적이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원리는 알지.'

내가 말하는 것을 감지만 할 수 있다면, 누구든 들을 수 있다는 것.

"지하에 있는 모두, 들립니까."

답변을 바라고 하는 건 아니다.

나는 일방적으로 떠들 뿐이고, 소리는 내가 서있는 땅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울려퍼질 뿐이니까.

'솔직히 이런 거 안 해도 되지만.'

지휘관이 나서서 사기를 북돋을 필요는 없다.

어차피 서울은 수복될 것이고, 마법소녀들의 활약으로 서울은 구원받을 것이다.

그러나.

'테라 생각이 나네.'

세계 전체를 상대로 싸우던 그 순간.

같은 위상을 가지고 있던 존재들은 타락하고 오염되어 아래에 있는 정령들을 죽이는 괴물이 되었고, 우리는 언제나 하루 하루 누가 살아남았나 확인을 하는 걸로 삶을 연명했다.

지옥과도 같은 삶.

무한히 반복되는 죽음의 세계.

그 지옥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안도감을 과연 이들은 알고 있을까.

아직은 모를 것이다.

저들은 아직 승리의 해방감을 느껴본 적이 없기에, 모두들 마음 속에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내가 그 기분 잘 알지.'

그러니까, 희망을 심어줘야한다.

"이 나라에 온 것도 어느덧 6개월 정도 흘렀습니다."

단순 계산만 해도 180일이다.

그동안 인게임 속에서 지휘관이 질싸한 횟수를 계산하면...이 아니고, 마력공급을 한 횟수를 단순 계산해도 대략 180에 이른다.

24시간 텀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쿨타임을 돌렸으니, 아군 전체를 살펴보면 도합 180레벨이 오른 셈이다.

아군 10명이 각각 1/N 으로 마력공급을 받았다고 해도 각각 18레벨씩 오른 수준.

모두가 1렙부터 시작한 게 아니라 누구는 10에서 시작하고 누구는 90에서 시작을 했으니, 전력의 차이가 나는 건 당연하다.

"그동안 저는 S급 히어로들을 발굴해냈습니다. S급 히어로들을 발견했습니다. S급 히어로들을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이 세계의 인간들은 특히 S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법.

"지휘관을 믿으십시오. 위험한 괴수들은 저와 저의 팀원들이 처리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힘으로 직접 서울을 되찾는 겁니다."

지하에 있는 이들에게는 각자 역할이 주어졌다.

30만 서울 지하 시민들은 서울을 되찾기 위해 저마다 무기를 들었다.

"제 지시를 따른다면 죽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보증합니다. 혹시나 죽을 것 같다면 후퇴하십시오. 싸우다가 질 것 같으면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십시오."

사기를 떨어뜨리는 말이기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 싸워왔다.

"그대보다 더 강한 자가 괴수를 죽여줄 겁니다. 그대보다 더 강력한 이들이 당신을 구해줄 겁니다. 우리는 그들을 영웅이라고 불러왔습니다."

이제, 시각은 11시 48분.

"S급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은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을 하면 됩니다. 탈환을 위해 기도하셔도 좋고, 함께 나와서 싸와도 좋습니다. 다만 한 가지 미리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나는 무전기에 대고 소리쳤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영 '서울을 탈환한 자'라는 호칭은 얻지 못할 겁니다?"

훈장.

명예.

호칭.

설령 신조차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시간'과 관련된 것이라면, 인간은 생각이 달라지는 법이다.

11시 50분.

[지휘관! 정보 공개 됐어요!]

"자, 이제 신서울에서 서울을 지켜보고 있을 겁니다."

이미 신서울의, 이 나라의 이목은 모두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광검도 설화공주도 없는데 어떻게 S급 레이드를 할 것인가.

"상공에 헬리콥터들이 날아다니고 있고, 경기도 방면에서 망원 카메라로 서울 쪽을 촬영하고 있습니다. 자정부터 시작될 우리의 싸움은 전 세계에 생중계되고 영상으로, 기록으로 남을 겁니다."

인간은 누군가가 뒤에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행동을 함부로 할 수 없게 되는 법이다.

"다음은 없습니다. 서울을 지킬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 지금 서울 지하에 있는 여러분들과...."

삐비빅.

시간이 됐다.

나는 마도기어를 손으로 눌렀고, 곧 마도기어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내 앞으로 펼쳐졌다.

"서울 밖에서 대기 중인 이들이 함께할 것입니다."

지하에 있는 이들에게는 낡은 중계 화면을 통해 전송될 것이다.

나라에서 서울 사람들을 폭도로 몰았음에도 불구하고.

설화공주 석하랑과 광검 허윤화가 참전하지 못한다고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S급의 존재가 그 누구도 알려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A급부터 E급까지. 그리고 일반인임에도 코어웨폰 하나 들고 찾아온 비능력자 헌터 여러분까지. 서울을 되찾기 위해 모인 이들의 수가 무려 일만입니다."

이능력자가 일만인 건 아니다.

실제로 이능력을 각성한 이들의 수는 천 명보다 훨씬 적지만, 괴수를 죽일 수단을 가진 이들은 일만 명 중 90%가 넘는다.

코어웨폰을 들었다면, 코어웨폰의 마력이 다하기 전까지는 이능력자와 같으니까.

"들리십니까? 서울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여러분. 당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서울에 남겨진 자산을 되찾기 위해, 서울이라는 땅을 다시 되찾기 위해, 지긋지긋한 괴수들을 이 나라에서 쫓아내기 위해 모인 여러분. 축하합니다. 여러분은 지휘관과 함께 싸우는 전우입니다."

지휘관과 함께 싸운다?

심지어 그게 서울을 탈환하기 위한 전쟁이다?

평생 술안주로 삼아도 모자라지 않을 일이다.

심지어 그게 목숨을 걸고 싸워도 내가 죽지 않을, 혹은 다치지 않을 전투다?

"살아남는 걸 생각하십시오. 무리하지 마십시오."

테라에서 싸울 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목숨을 건 전투는 싸워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이들이 할테니, 살아남는데 집중하라고.

이것도 마찬가지다.

승리할 때까지, 살아남는 자가 승리다.

다치지 않는다면 금상첨화.

"그거 알고 있습니까? 안 오면 선의철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지금 안 온 사람들, 기사보고 깜짝 놀랐을 겁니다. 방금, 지휘관이 서울 레이드를 지시한다고 공지했거든요."

곳곳에서 경악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아마도 서울에 의기로 올라온 이들 중 아직 내가 지휘관인 걸 모르는 이들이 내 말을 듣고 깨달은 것이다.

"그러고보니, 올해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레이드를 지휘하는 군요."

혹은 아무리 말을 해도 믿지 못하던 이들이 협회의 공식 성명을 보고 진실임을 깨달았다거나.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슬슬 시작해봅시다."

이제, 남은 시간은 불과 10초.

"서울을 되찾은. 참전용사가 되어봅시다."

시각.

00시 00분.

"개전(開戰)."

와아아아ㅡㅡㅡㅡㅡㅡㅡ!!

사방에서 함성이 울려퍼진다.

나는 하늘 높이 손을 치켜올렸다.

"석하랑에게 지시. 빙벽해제."

딱.

'자지벌레, 컷.'

손가락을 튕기자마자, 한강을 가르고 있던 빙벽이 순식간에 안개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쩌적, 쩌저적.

한강에 있던 모든 괴수들이 얼어붙었다.

빙벽은 나비가 흘리는 가루처럼 눈가루가 되어 흩어졌고, 가루에 닿는 모든 것들을 얼음동상으로 만들었다.

"고생했습니다. 석하랑."

아마 모두가 놀라겠지.

빙벽이 내가 지시를 내린 것과 동시에 해제되었다는 게.

"우리 팀 첫번째 S급, 설화공주 님. 시간이 되면 빙벽을 해제하라고 지시했지요. 부산에서 서울에 있는 빙벽을."

나는 부산에서 응원하고 있을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지금 SS+급입니다."

나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내가 석하랑(27세)과 섹스했다는 것을 공개했다.

'보고 있나, 광검.'

네 딸은 내가 따먹었다.

'꼬우면 서울로 오든가.'

7월 4일.

우리는 서울을 되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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