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42 2부 8장 26 변신
<7월 3일 낮, 서울 지하.>
[광검, 암컷이 되다.]
"어떤 미친 놈이 이런 기사를 쓴 거야?"
"일본이요. 번역기 잘못 돌린 거예요."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바로 옆 나라 S급을 암컷이라고 표현할 리가 없지."
"원래 표현은 다른 거고, 실제로는 그보다 더 심해요."
히카리는 내게 일본 사이트, 히어로 채널의 내용들을 번역한 걸 가져왔다.
"이제 광검 '변신'각이냐는데요."
"역시 성진국이야. 생각하는 방향이 정말 대단해."
"이걸 어떻게 아시는 거죠?"
"인터넷을 하다보면 알기 싫은 것도 알게 되는 법이니까."
광검은 여자가 되었다.
이에 여론은 순식간에 뒤집어졌다.
"40대 아저씨가 갑자기 17세 미소녀가 되었어. 그러니까 내 말은 17세 미소녀처럼 생긴 20살 성인 여인이 되었다는 거지. 그러면 말이야,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을 할까?"
"보통 이런 상황의 클리셰는 하나 뿐이죠."
히카리는 작업용 안경을 검지로 치켜올리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저주로 인한 약화!"
"그래. 누구나 광검은 지금 약해졌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미소녀화 된 남자가 약해지는 것은 상식이다.
선의철이 굳이 광검의 암컷화를 공표한 것은 그가 여론을 단번에 뒤집을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며, 실제로 이는 아주 큰 효과를 거두었다.
-광검 약해진 상황이면 신서울도 위험한 거 아님?
논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접근하는 이들.
광검이 약해졌으니 지금까지 대외적인 활동을 주로 하지 않았던 것.
-사실 정부는 약해진 국방력을 숨기기 위해 지금까지 광검(女)를 숨겨왔던 거임!
-큭, 꼬추가 지고 나서야 선의철 인줄 알았습니다....
-선의철! 그는 30cm야!
-젠장! 믿고 있었다구!
국가의 혼란을 막기 위한 선의철의 거국적인 결단과 행동으로 생각하는 자들.
선의철이 광검의 변신을 폭로한 것으로 본 아주 효과적인 여론의 전환이었다.
-그럼 서울의 폭도들은 광검이 약해진 걸 알고 그런 짓을...?
-서울의 얼음벽을 부수려고 한다! 자지벌레들이 한강을 넘어서 신서울로 내려올 것이다!
-3cm면 어떠랴! 빌런 새끼들 재활용 한 게 어떠랴! 신서울을 지키기 위해선 선의철이 필요하다!
광검의 변화에 혹한 이들을 상대로 선의철을 지지하는 이들이 여론을 호도하기 시작했다.
바닥을 치던 선의철에 대한 지지와 믿음은 그나마 반등하여 올라가기 시작했다.
"한 방 먹었네."
"어느 분이 광검의 실체 공개를 안 막은 덕분이죠."
히카리는 내게 이죽거렸다.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 지휘관 님께서 한국에 계시고, 서울 레이드의 지휘봉을 잡으셨다는 것만 밝혀도 이 나라 언론사들 전화기에 불이 붙을 걸요? 다른 나라에서 바로 비행기 띄워서 한국으로 올 거예요."
"그렇긴 하지. 내가 아는 사람이 한 말인데, 지휘관은 그런 거라더라."
피닉스 왈.
"축구로 치면, 지휘관이 한국에 왔다는 것은 K-리그에 라이오넬 메르시가 연봉 1억으로 입단한 격이라고."
"......죄송해요. 제가 축구는 잘 몰라서."
"나도 잘 몰라."
하신라적으로 표현하자면 테라라는 세계의 신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정착하여 가장적이고 헌신적인 가정주부로 살고 있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정말 상식으로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지."
"그런데 그게 지금 현실이잖아요."
"그러니까 인생이라는 게 재미있는 거 아니겠어?"
기적은 일어났다.
지휘관은 한국에 존재하고,여신은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
라이오넬 메르시는 한국이 아닌 유럽에 계속 남게 되었지만, 적어도 '지휘관'이라는 이름은 그만큼의-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더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
"광검은 고마워해야 할 거야. 앞으로 하루만 지나면 자신에 대한 관심과 이슈는 단번에 묻힐 테니까."
"지휘관 때문에요?"
"당연하지.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봐. 암컷이 되어 약해진 걸로 추정된 전 S급이랑 이렇게 예쁘고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지휘관이랑 비교해서 누가 더 인기를 끌겠어?"
"밤낮으로 성별이 바뀌는 지휘관이요."
"그렇지."
현재.
시간은 낮.
나 또한 여성의 몸으로 활동하고 있다.
게임 속이지만, 익숙한 몸이라 활동에 부담은 없다.
"먼저 여자가 된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말은 없어요?"
"내가 왜?"
"그야 남자가 여자가 된 거잖아요."
"글쎄."
이렇게 남자가 여자가 된 걸로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지만, 나는 이에 대해 해당사항이 없다.
'그는 알지도.'
일시정지.
그리고 재개.
"'나'는 아니지만, 전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어."
게임 속이지만, 부디 심심한 위로를.
"세상 사람들은 40대 수염난 탈모 아저씨보다는 보지에 털 없는 미소녀를 좋아할 거라고."
"......털 없으세요?"
"있는 게 좋아?"
의문.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없는 쪽이 더 좋다고 하던데."
"왜요?"
"그래야 살이 더 잘 닿는 느낌이 든다더라."
그건 보빌 때도 마찬가지다.
"히카리 양.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없는 쪽이 좋다는 거요?"
"...아니, 그거 말고. 40대 아저씨 보다는 미소녀 모습인 게."
"음."
히카리는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복장에 따라 달라질 지도...."
"......."
히카리.
그녀는 공식 석상에 나온 광검(암컷)의 신체 데이터를 면밀히 분석하며, 광검에게 맞는 옷을 디자인하고 있었다.
"역시 TS된 사람에게는 미니스커트 고딕 드레스가 국룰이겠죠?"
"......."
일시정지.
다시 재개.
"그건 가슴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는데?"
"......인정. 쌉인정."
광검(암컷)의 그곳은, 유감스럽게도 그의 사별한 아내와 무척이나 닮아있었다.
그도 그럴게....
'루살카의 몸인 걸.'
여체화가 아니다.
아내화다.
"빈유면 더 고스로리 드레스가 진리라고 생각하는데요."
"거기에 얹어서 검은 오버니삭스에 가터벨트 추가."
"머리 위에 꽃 장식은요?"
"퍼펙트."
히카리와의 커뮤니케이션은 몹시 성공적이었다.
* * *
"씨발. 개 좆같은 새끼들."
"...예?"
"아무것도 아니다. 후우."
광검, 허윤화는
"허윤화가 아니다!"
허윤환은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자신을 향한 모든 시선을 때려부수고 싶었다.
"그, 광검 님...."
"미안하군. 후우. 못 볼 꼴을 보여서."
"아, 아니에요."
협회에서 광검을 보좌하기 위해 온 여성 히어로는 울분을 참지 못하는 광검의 행동에 어떻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귀여운 서양계 미소녀가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는데, 자신이 힘을 조절하지 않으면 주변이 망가질까봐 걱정하며 발만 동동 구른다.
REC.
본인의 허락을 받은 건 아니지만, 히어로 협회 차원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광검의, S급 히어로의 몸이 갑자기 여자가 되어버린 상황인데 당연히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해야 하지 않겠는가?
"후, 젠장. 남자일 때는 몰랐는데, 여자가 되니 정말 미칠 것 같군."
"무,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남자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좆같아서 참을 수 없다."
광검은 손발을 부들부들 떨었다.
"모두가 나를 따먹겠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발끝에서부터 벌레가 기어오는 것 같은 혐오감이 가득해. 진심으로 참을 수 없을 만큼 역겹고 화가 치민다...!"
"그런 것을 두고 사람들은 시선강간이라고 하는 겁니다."
"음...! 시선강간이라. 불쾌하기 짝이 없는 말이로군. 하지만 그것 만큼 이 상황을 더 잘 표현하는 말이 또 어디있을까."
광검은 문고리를 부여잡았다.
"이보게. 정말 이대로 나가도 되는 거 맞나?"
"물론이에요. 광검 님은 광검이실 뿐입니다."
단지 히어로 위키에는 이미 광검의 성별이 '암컷'이라고 되어있지만, 신서울의 신규 주민등록번호로 그의 주민번호 뒷자리를 '2'로 하냐 '4'로 하냐를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지만,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광검은 그런 것을 전혀 모르니까 상관없다.
"후...."
광검은 거울을 살폈다.
그곳에는 자신이 너무나 사랑했던 여인이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입혀주지 못했던 너무나도 아름답고도 단정한 옷을 입은 채, 거울 속 그녀는 자신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보게. 개인적으로 하나 부탁을 해도 되겠나?"
"광검 님의 부탁이라면 얼마든지 들어드리겠습니다."
"...이건 절대로 이상한 부탁이 아닐세. 그냥 궁금해서 그런 거야. 알겠나?"
"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광검은 너무나도 슬픈, 그러면서도 결연한 의지로 입을 열었다.
"웨딩 드레스."
"...예?"
"이 몸에 맞는, 웨딩 드레스 한 벌을 구해다 주겠나."
"......."
마치 S급 괴수를 레이드하기 직전의 모습을 보이는 광검에 히어로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광검 님. 제가 반드시 당신께 어울리는 드레스를 찾아드리겠습니다."
"고맙네."
끼이익.
문이 열렸다.
좌우로 펼쳐진 기자들은 광검을 향해 열심히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고, 광검은 그들을 가로지르며 전방의 거대한 물체 앞에 섰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전국민께서 보는 앞에서, 광검 님의 마력 재측정이 있겠습니다."
위이잉.
광검은 자신의 손을 마력측정기 위에 올렸다.
모두가 긴장하며 광검을 예의주시했고, 광검의 손에서 흘러나온 마력은 측정기로 흘러들어가 마치 물결과도 같은 흐름을 보이기 시작했다.
판정....
광속성.
S+.
와아아ㅡㅡㅡ!!
여전히, 광검은 건재했다.
* * *
<7월 3일, 오후 7시.>
"찌라시 떴네. 광검 배틀 슈트 디자인, 웨딩 드레스라는데?"
"미친 거 아님?"
누리는 광검이 희망하는 드레스 코드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전투복이 전투복 다워야지. 히어로든 헌터든, 드레스 코드가 얼마나 중요한 지 모르는 가봐. 그 아저씨."
"그러는 너야말로 그게 맞는 드레스 코드야?"
"이거?"
누리는 비릿하게 입꼬리를 들며 자신을 가리켰다.
"물론! 이게 무슨무슨법도 튕겨내는 궁극의 코스튬이야. 내가 전차 세 대 분량의 전투력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기도 하지. 이름하야 ㄱ-"
"OL제복이지."
"...흥."
누리는 흘러내리는 옷을 조정했다.
마력이 깃든 배틀 슈트가 아닌, 서울 지하 상가에 있던 제복 중 하나를 가져왔기에 신체 조정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누리의 키보다 최소한 30cm 가량 더 큰 체구의 여인이 입어야 할 옷을 누리가 현재 입고 있다.
왜냐.
사아아.
"사장님이 그랬잖슴. 나한테 이미 이명도 정해주기도 했고."
해가 떨어지고, 서울에 점차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허름했던 누리의 옷이 점차 타이트해지기 시작했고, 누리는 푸른 넥타이를 목에 채우며 셔츠를 갈무리했다.
"나, D컵이야."
"...거기서는 '야황'이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흥."
김누리는 빵빵해진 자신의 가슴을 아래에서 떠받치며 나를 비웃었다.
"이러면 지휘관 님보다 더 큰 거 아님?"
"어디서 건방지게 내 몸이랑 비교를 해?"
"어쭈? 크고 작은 건 대봐야 아는 거 아님? 아니면...직접 만져봐야 아나?"
김누리는 도발적인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가슴을 내 몸에 붙였다.
"아니면, 이 몸으로 떡을 쳐봐야 누구 가슴이 더 큰 지 알 수 있으려나?"
방금 전까지는 여자였던 나와 꼬마였던 김누리는 사라지고, 금발서양남과 연예인 저리가라 하는 포스를 보이는 흑발의 제복 여인이 있을 뿐.
"조심해. 아직은 완전한 각성이 아니라서 변신같은 거니까."
"흥. 언젠가 내 능력을 온전히 다루면 이 모습 그대로 성장한다는 거 아님? 그럼 내 거지. 대출 같은 거랑 무슨 차이임?"
"하아, 그래. 알았다."
나는 누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전에는 손을 허리쯤으로 뻗어야 했다면, 이제는 어깨를 살짝 들어야 할 정도.
"다녀와. 그리고 보여줘. 이 나라 모두가 보지 못했던 원석을 지휘관이 보여줬다는 걸."
"내가 지휘관 덕분에 SS급까지 각성했다는 걸 공개하면 내가 지휘관이랑 섹스했다고 만천하에 공개하는 거 아님?"
"......."
정론이다.
"후후후."
누리는 허리에 찬 검을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침 해가 뜨면 모두가 놀랄 걸? 나라는 S급의 힘을. 지금은 비록 SS급의 힘을 내지 못하게 되겠지만, 이제 온 나라가 나를 알게 되겠지."
누리는 가슴을 쭉 펴며 엄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래, 야황-"
"나, 야스 황제 김누리를."
"야황이 그 야황이 아닌데."
"그럼 섹황할까?"
"...야황으로 하자."
다섯 시간 뒤.
"암컷 광검은 퇴물이 될 거야."
하루 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