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941화 (941/1,497)

EP.941 2부 8장 25

하루 아침에 나라의 영웅이 여자가 되어 나타난다면 어떨까.

나라는 혼란에 빠질 것이다.

뭔가 모종의 상황도 아니고 갑자기 남자가 여자로, 그것도

하얀색 드레스가 잘 어울리는 빈유 초절정 서양계 미소녀라면 더 큰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막말로.

S급 40대 아저씨가 S급 미소녀가 되었다.

국가는 대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더 공개할 가치가 있다.

"혼란은 더 큰 혼란으로 덮는다."

선의철은 허윤화를 앞에 두고, 그(녀?)의 앞에 서류철 하나를 내밀었다.

"여기에는 네가 저지른 거대한 죄악이 남아있다."

"......."

광검은 서류철을 직접 손으로 집었다.

그곳에는 자신에게 남겨진 두 가지 추악한 '비밀'이 담겨 있었다.

하나.

"석하랑, 네 딸이지?"

"......."

"유전자 검사도 불일치로 나왔고, 아무리 생각해도 음해이며 오해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선의철은 모니터를 향해 리모컨을 눌렀다.

그러자 그곳에는 석하랑의 어린 시절 사진들이 연령대 대로 나타났다.

"이 얼굴을 보고도 누가 혈연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석하랑의 어린 시절.

최초로 S급으로 각성했던 12세 시절의 어린 석하랑이 지금 선의철의 앞에 있었다.

석하랑이 보통 얼굴도 아니고, 최초의 각성이 S급이었던 만큼 외모의 특별함은 단순히 예쁘다 정도로 끝날 수준이 아니었다.

"나는 여러모로 정말 많은 조사를 해왔지. 석하랑이 발견되었다는 보육원의 원장을 찾아서 정보를 알아내기도 했고, 네가 석하랑을 후원한 것이 양육의 개념이라고 생각했어. 예전에 유전자 검사를 했을 때, 믿을 수 없었지만 불일치가 나온 걸 보고 생각을 접었지. 하지만 아니었어."

선의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앞에 섰다.

"조작을 한 거지? S급 능력자라면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겠지."

"...이것이 나의 약점이라고?"

"물론."

선의철은 광검을 향해 비릿하게 입꼬리를 들었다.

"한 살도 안 된 갓난아기를 이름 석 자만 남기고 보육원에 버린 자. 그리고는 딸이 S급으로 각성하고 나니 보육원에서 데려와 제자라고 길렀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광검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겠지?"

"그걸로 내 명예를 실추시키겠다고?"

"물론. 그렇게라도 시선을 돌릴 수만 있다면."

선의철은 와인잔에 와인을 따르기 시작했다.

"원래 정치적 이슈는 연예게 이슈로 덮는 게 국룰 아닌가? 연예계보다 더 큰 파급력을 가지고 있는 게 히어로 업계이니, 광검과 설화공주의 관계를 세상에 밝히면 이슈를 덮을 수 있겠지."

"고작 그 정도로?"

"그 정도라니? 지금까지 이게 밝혀질까봐 전전긍긍하지 않았나. 아니면 그게 두려운 건가?"

선의철은 '특급'이라고 적힌 서류철을 가리켰다.

"평양 결전 때, S급 히어로를 모두 몰살시켰던 건 평양의 괴수가 아니라 그대라는 것을?"

"......."

2012년.

평양의 S급 괴수를 쓰러뜨리는 과정에서 석하랑을 제외한 모든 S급 히어로가 죽었다.

광검을 제외한 모든 S급 히어로가 평양의 S급 괴수에게 죽었다.

그 바람에 38선 방어선은 무너졌고, S급 괴수들의 영향력이 사라짐에 따라 괴수들이 38선을 넘어 남하하기 시작했다.

"우리 나라가 이렇게 망해버린 건 다 광검 탓이지. 안 그런가?"

"......."

광검의 얼굴은 핏기가 가셨다.

"아무리 광검이라고 한들,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역적은 되고 싶지 않겠지. 안 그런가? 폭주한 나머지 S급들을 전부 죽이고는 돌아와서 아무렇지 않게 충무공이니 수호신이니 찬양받게 되었지. 실상은 허완용인데 말이야."

"그걸 이용한 건 네놈이 아닌가…!"

"그러니까 계속 이용하겠다고. 응?"

선의철은 광검을 향해 와인잔을 들었다.

"얌전히 매스컴 앞에 그 모습으로 나서라고. 응? 모든 건 준비해뒀어."

달칵.

선의철은 마도기어를 두드려 광검의 앞에 스크린을 꺼냈다.

[광검의 여성화! 이능력 상실의 전조…?!]

[코어손상의 부작용. 위협받는 신서울의 안보.]

[선 "광검이 무너지면 신서울이 붕괴."]

[설화공주와의 관계는?? 이상하리 만큼 닮은 두 S급]

"자네의 등장과 동시에 전 언론이 집중 포화를 할 거야. 광검의 변화를. 그리고 불안감을 자극할 걸세."

"......."

"신서울의 사람들은 말이야, 서울이 어떻게 되든 이제 아무래도 좋아. 이들에게 중요한 건 신서울의 안전이지. 과연 서울의 지하에 있는 폭도들이 나를 음해하는 것을 믿을까, 아니면 신서울의 수호신인 광검이 코어가 붕괴되어 신체변화가 발생했다는 걸 믿게 될까?"

치직, 치지직.

"암컷이 되라. 광검."

갑자기 정전이 일어났다.

어둠 속에서 마도기어의 빛에 비친 선의철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은 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나라를 위해서."

"...선의철을 위해서가 아니고?"

"선의철을 위해서라."

선의철은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곧 이 나라인 것을."

"웃기는 소리."

광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때려쳐, 씨발."

선의철의 표정에 미미한 금이 가기 시작했다.

"너는 충분히 많은 권력을 누리지 않았느냐."

광검의 말에 선의철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내가 모두를 죽였다고 어쩌라는 거냐. 지금까지 살아온 것에 만족하고 지금처럼 살면 될 것을."

"...네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S급 히어로라도 사고로 죽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능력이 판을 치는 시대. 괴인이든 괴수든 사고든 이능력으로 인해 어떤 인간이든 죽을 수 있다."

서서히.

"내가 그 때 폭주한 건 우연한 사고였을 뿐이었다. 내가 모두를 죽일 의도를 가지고 죽인 것도 아니고, 원래 S급 괴수를 상대하다보면 S급 히어로들도 살해당할 수 있지."

광검의 눈이 보라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협박이나 하는 독재자를 상대하는 건 이제 지쳤다. 이 지긋지긋한 노예 생활을 끝내고 싶은 건 내쪽이다."

"......."

선의철은 와인잔을 떨어뜨렸다.

유리잔은 바닥에 떨어지며 산산조각이 났고, 선의철은 묵묵히 안경의 가운데를 중지로 올리며 입을 열었다.

"광검, 너는."

선의철은 이를 갈며 말을 이었다.

"존재해서는 안 될 히어로다."

"...그래. 그렇다면."

광검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덮으며.

"이제, 히어로를-"

[각하!! 급보입니다!!]

선의철은 이제 익숙해졌다.

갑자기 부하 관료들이 급보라고 알려오는 것은 결코 자신에게 좋은 소식이 아니라는 것을.

"뭐지?"

[협회들이 성명을!!]

"협회...들?"

* * *

<7월 2일 오후 9시. 서울 지하 모처.>

[...에 따라, 저희 헌터 협회에서는 서울 이능력자들의 S급 괴수 레이드를 지지합니다. 만약 그들이 원한다면 서울의 괴수들을 격퇴하는데 연계하여 싸울 것입니다.]

헌터 협회에서 먼저 공개적으로 방송을 하고 나섰다.

헌터 협회의 협회장 뒤에 보이는 녹색 간판은 '서울 20km'가 남았다는 도로표지판이었고, 협회장은 길쭉한 도로를 가리켰다.

[우리는 서울을 되찾을 것입니다. 설령 나라에서 어떻게 우리를 규정한다고 한들, 우리는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훗날 이 땅에서 태어날 자손들에게 서울을 물려주고자 합니다. 제발, 한국인이라면 서울을 되찾는데 동참합시다!]

협회장이 주먹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그의 뒤로 수많은 헌터들이 각자 무기를 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괴수'를 사냥하는 이들입니다. 누가 과연 괴수인가! 그건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인간을 죽이려고 하는 자들! 그런 자들을 우리는 괴수라고 부릅니다! 헌터는 괴수를 사냥하는 자들! 우리는 우리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와아아아ㅡㅡㅡ!!

헌터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헌터 협회장의 연설은 곧 종료되었고, 나는 협회장의 연설 영상을 넘기고 다음 영상을 재생했다.

[저희 저희 '히어로 협회'는 인류의 평화를 위협하는 괴수들의 위협으로부터 인류를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 히어로입니다. 우리는 서울 지하, 한 명이라도 있을지 모를 서울의 사람을 지키고자 합니다. 히어로 여러분! 우리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히어로가 되었습니다. 성별, 연령, 인종, 정치, 국경을 넘어 우리는 '인류'를 지키기 위해 모였습니다! 부디 당신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말은 잘 해요."

나는 두 명의 협회장이 목 놓아 부르짖는 영상을 내렸다.

"헌터 협회장은 사냥하는 괴수들 코어 서리하러 왔고, 히어로 협회장은 자금 지원 협박 때문에 나선 거 누가 모를까봐."

[그렇게 말씀하시면 사람들이 많이 참여 안 하잖아요.]

"사람들이 적어야 유성에 이득이 떨어지는 거 아닌가?"

[이런 빅ㅡ이슈는 숟가락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이랍니다. 후후.]

영상은 없지만, 상대방은 의자 등받이만 보이며 내게 '직접' 목소리를 전하고 있었다.

[지휘관 님. 인간이 가장 화가 날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남들은 다 이득을 보는데 나만 이득을 보지 못할 때랍니다.]

"유성은 서울 탈환에 걸겠다 이거지?"

[당연하죠. 광검이 없다고 한들, 그곳에는 지휘관 님과 매지컬 큥큥스가 있잖아요?]

은유하의 말대로, 서울은 '무조건' 수복된다.

희생이 얼마나 작냐 크냐 차이가 있을 지 몰라도, 서울에 있는 이들은 아침이 되는 순간 평화롭고 따스한 햇살을 마주하게 되리라.

광검이 없어도.

석하랑이 부산에서 자리를 지켜도.

S급 괴수, '시청사의 뱀'은 격퇴되고 서울은 인류의 땅이 된다.

"회장님, 레이드 시작 10분 전에 공개해. 찌라시도 돌리지 말고. 왜 그런지는 알지?"

[당연하죠. 지금 찌라시도 가짜로 돌리고 있는 걸요. 10분 안에 서울 땅 밟을 수 없는 곳에 있는 놈들한테 서울 공략의 기쁨을 누리게 할 수는 없잖아요?]

"역시 회장님이야."

레이드에 참가한 이들에게 더 큰 이득을, 가만히 뒤에서 구경만 하는 이들은 그 자리에서 손가락만 쪽쪽 빨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공식적으로 정보가 오픈되면 너나할 것 없이 서울로 몰릴 테니까.

[마지막으로 확인할게요. 지금이라도 되돌릴 수 있어요.]

"아니. 오픈한다."

레이드 시작 10분과 함께 모든 언론사에 보내질 정보.

히어로 협회장도, 헌터 협회장도, 그 누구도 모르는 정보.

하지만 레이드를 시작하기 10분 전이 되면 누구나 알게 될 정보.

"이 레이드, <지휘관>이 지휘한다."

S급, 정슈리.

S급, 김펜릴.

S급, 아지다하카.

S급, 히드라.

그리고 S급, 김누리.

"이번 전투로 얻는 코어는 모두 '우리 것'이다."

이번 전투, 지휘관이 다섯 명의 S급을 지휘하여 서울을 탈환할 것이다.

"코드. 창염개진."

왜 하필 레이드 직전인 10분 전이냐.

"허윤화 씨가 모처럼 공개석상에 나오겠다는데, 레이드 하기도 전에 내가 여론의 포화를 받을 필요는 없지."

7월 3일 오후 10시.

[광검, 여자가 되다.]

"결국 협박에 못 이겨서 기어이 자기가 여자가 된 걸 세상에 공개하겠다는데, 주인공 자리 빼앗으면 미안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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