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939화 (939/1,497)

EP.939 2부 8장 23

서울 시민들의 생존을 사방으로 확실하게 알리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우리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신서울로 남하를 하자는 의견도 있었고, 선의철의 만행을 국제 사회에 알리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의견은 채택되지 않았고, 나의 안건이 채택되었다.

"S급 괴수를 잡으면 모두가 알게 되지 않겠어?"

"오...."

서울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S급 괴수.

그걸 제압한다면 분명 사람들은 관심을 가질 것이다.

아니,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서울을 수복하지 못한 궁극적인 원인은 서울의 종로에 자리잡은 S급 괴수, 시청사의 뱀을 공략하지 못해서 그랬던 것이니까.

즉, 시청사의 뱀만 공략한다면?

서울 시민들이 서울의 지상으로 나오는 걸 넘어, 진정한 의미에서 서울 탈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무리 신서울이 수도의 역할을 대신 하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서울이 나라의 중심이었다.

서울 복구.

S급 영웅을 죽인 빌런이라도 서울을 다시 탈환했다는 업적 하나만으로 다크 나이트가 될 수 있는 전국민의 염원.

지금까지 그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진정한 의미의 서울 수복이 아주 서서히 준비되기 시작했다.

* * *

<7월 2일, 오전 1시.>

[괜찮은 거 맞나? 내 서울로 올라갈까?]

화면 너머의 석하랑(늙)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괜찮아. 부산을 지켜줘."

[여기 있으나 서울 올라가나 똑같은 거 아이가?]

"이쪽은 충분히 커버할 수 있어. 알잖아. 여기에 S급이 몇 명이나 모였는지."

한국에 있는 S급들이 어디에 밀집되어있는가를 분석해보면 단연 서울일 것이다.

"박라온 있지, 슈리 있지, 김펜릴 있지, 아지다하카 있지, 히드라 있지, 거기에 이번에 조금만 더 자극하면 진짜 S급으로 각성할 김누리 있지."

인간 3명에 괴인 3명.

아니, 괴인 4명.

"<마스터 텐타클>도 있으니까 시청사의 뱀 정도는 쉽게 이길 수 있어."

[그 사람이 제일 걱정되는데.]

"걱정마.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괴인이니까."

마스터 텐타클이라는 변수에 대해서 나는 이미 판단이 끝났다.

굳이 DLC에 관한 스포일러 자료를 찾아볼 필요도 없다.

마스터 텐타클은 그냥 큐브의 에로함이 현실화 된 존재일 뿐이다.

그래.

단지 몹시 에로해 질 뿐.

'누구 하나 적당히 희생만 하면 된다 이거지.'

큐브가 만족할 만한 상황만 만들면 마스터 텐타클, 그러니까 촉수꺼비도 인정하고 순순히 힘을 빌려줄 것이다.

마스터 텐타클 개인의 성향과는 별개로, 그는 일단 누구 간부에게 소속되지 않은 '큐브에서 파생된 괴인'이니까.

'원래는 큐브의 파수병이었지.'

바닐라 모드에서는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필드보스였다.

그리고 20년의 지구에서 피닉스는 촉수꺼비를 상대로 공중전을 펼쳐 승리를 따내기도 했다.

큐브에 남아있던 촉★수에 대한 의지가 어떤 트롤러에게로 깃들게 되는 사고도 있었지만, DLC 업데이트를 통해 큐브의 의지는 마스터 텐타클로 실체화 되었다.

"너는 여기 안 오는 게 좋아. 나중에 상황 보고 나면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걸?"

[어떤 상황이 일어나는 건데?]

"전국민의 앞에서, 아니 전세계인이 보는 앞에서 그라비아 아이돌이 될 지도 몰라."

[...대충 야한 상황이 발생한다 이거제? 알겠다. 내는 안 갈란다.]

몸매에 아직은 자신이 없는 20대 후반 석하랑은 내 말에 바로 꼬리를 내렸다.

물론 희생이 예정되어 있다거나 석하랑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고 하면 만발의 준비를 갖추고 서울로 올라오겠지만, 지금은 여유가 철철 넘쳐 흐르는 상황.

"올 필요 없다고 말해서 속상한 건 아니지?"

[...알면 됐다.]

"이번 일 잘 마무리 되면 금방 내려갈게. 그리고...."

[스승님에 관한 일은.]

석하랑이 먼저 내게 화두를 던졌다.

[일 끝나고, 나중에 이야기하자. 알긋나?]

"...알았어."

나는 석하랑과 이야기를 마쳤다.

현재 시점.

석하랑(26세, 건어물녀)은 아직 광검의 실체를 모른다.

피닉스가 석하랑(21세)를 설득하려고 얼마나 갖은 애를 썼는가?

상황이 복잡한 만큼, 석하랑에게 이야기를 하기 위해 접근하려면 몇 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법이다.

누가 곧이 곧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아빠는 스승님이고, 엄마는 외계인이라는 걸.

'여섯 번째 정령 스토리를 지금 걱정할 필요는 없겠죠.'

폭주 석하랑을 맞이하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석하랑을 폭주시키지 않고 제압하는 방법도 있으니, 여차하면 그걸 사용하면 된다.

석하랑과 관련된 스토리를 진행하려면 최소한 앞으로 두 명의 간부를 더 상대해야 한다.

그걸 위해서는 '해외진출'이 필요하며, 이 해외진출을 위해서는 선의철이 무대에서 퇴장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라의 중심을 지휘관이 지키고 있음을 만천하에 드러내기 위해서.

그리고 그 신호탄으로 'S급 괴수'를 처치하고 서울을 탈환하는 것으로 이 나라는 알게 될 것이다.

지옥불반도에도 희망의 불씨가 피어오르리라.

다만.

'바로 잡으면 재미가 없죠.'

예열이 필요하다.

적당히 떡밥이 식지 않을 정도로 불이 붙어야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다.

마스터 텐타클이 서울 공략을 천명한 순간, 곧장 서울을 공략했다면 아마 별다른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아, 그냥 서울이 돌아왔구나.

괴수가 퇴치되었구나.

'그런 정도로는 안 되죠.'

신서울에 있는 이들, 지방에 사는 이들, 그리고 해외에 있는 모두가 서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앞으로의 전투도 생각하는 의미에서.

"저기, 지휘관."

"왜그러냥."

"아니, 그건 이 몸의 말투인데."

김펜릴은 스리슬쩍 내 곁으로 다가와 자신의 옷을 가리켰다.

"이거, 우리도 입어야 하는 거냥?"

"간부복은 아무렇지 않게 입어놓고 왜 그건 부끄러워 하는 거지?"

"이, 이건…마법소녀 복장이니까!"

"뭘 새삼스럽게."

김펜릴은 마법소녀 복장을 입고 있다.

그것도 이전에 한 두 번 장난으로 입은 게 아니라, 진짜로 아동용 마법소녀 시리즈 물에서나 나올 법한 프릴 달린 마법소녀 복장을 입고 있다.

유나나 다른 마법소녀들이 그나마 신세대, 그러니까 약간 마법소녀가 10년이나 나이를 먹고 난 뒤 더이상 소녀소녀한 복장을 입을 수 없어졌음에도 여전히 그 디자인을 계승하기 위해 '마법전기'와 같은 복장이라고 한다면.

김펜릴이 입고 있는 마법소녀복은 프릴과 보석과 형광색으로 반짝이는 전통적인 마법소녀 복장이다.

그래.

막말로 프리O어ㅡ

"이건 악의 간부 실격이다냥!!"

"원래 악의 간부들이 아군이 되면 마법소녀 복장으로 디자인 바뀌는 게 국룰인 거 몰라?"

"최소한 정장 차림으로 해달라냥! 그래, 라온이랑 합체할 때처럼! 이건, 이건 너무…!"

김펜릴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너무 초딩스럽다냥…!"

"평소에는 메이드복 입고 알바뛰고 섹시코만도 뺨치는 암살복 입고 야외 큥큥도 하는 애가 초딩스러운 마법소녀 복장을 입었다고 부끄러워하기는."

"그러는 지휘관이야말로 이런 거 입을 수 있냥?!"

"나는 남자잖아."

인게임 성별은.

"지금은 여자잖아!"

"아, 그렇지."

해가 뜬 와중이라 나의 몸은 여자다.

"못 입을 것도 없지. 단,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그건 침대에 가기 전의 이야기 아니냥?"

"그렇지."

"우리는 침대로 가는 게 아니고 싸우러 가는 거 아니냥."

"그렇지."

김펜릴은 눈을 가늘게 뜨며 내게 묻고 있다.

이게 정말 '전투복'이냐고.

"이 몸이나 다른 애들은 상관없지만, 수천 마리 A급 괴수들과 S급 중에서도 이제 곧 있으면 S급을 넘어설 지도 모르는 괴수를 상대로 이런 복장으로 싸워도 되는 거냥?"

"안 될 건 없지 않아?"

"막 판타지 웹툰 보니까 복장이 대부분 갑옷이나 슈트 차림이던데?"

"그런 복장도 존재하기는 하지. 하지만 이건 상징이야. 마법소녀 복장으로 싸운다는 건 한 마디로…."

"빠요엔."

갑자기, 히카리가 튀어나와 대화에 참여했다.

"우리는 이런 복장으로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지구를 지키려는 마법소녀의 사명감! 정의의 히어로! 이름하야 마법소녀-"

"매지컬 큥큥스."

"...이름이 뭐 그래요?"

"공식 길드명이니까 따지지 마라."

<마법소녀 매지컬 큥큥스>.

우리 팀의 공식 명칭이며, 세계를 구원할 자들의 이름이다.

언젠가 달이 떨어지게 되는 날, 50억 전 지구인이 달을 향해 떠나는 최후의 영웅들을 향해 '믿고 있었다고, 매지컬 큥큥스!!'라고 외치는 그 날 까지.

나는 매지컬 큥큥스라는 이름을 고수할 것이다.

애초에 변경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무튼 매지컬 큥큥스의 모토는 그거야. 우리는 다른 히어로들과는 다르다. 이런 복장을 입은 게 단순한 취미나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이런 복장을 하고도 우리는 괴수와 괴인들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기 위해서야."

"마법소녀들이 패배하는 컨텐츠는 없으니까요!"

마법소녀는 무적이고, 지휘관은 신이다.

그러므로 김펜릴을 비롯한 간부들이 마법소녀 복장을 입어서 마법소녀가 된다면, 아무리 강한 적이 오더라도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다른 전투라면 복장을 벗을 수 있어. 하지만 이번 전투만큼은 마법소녀 복장이어야만 해."

"어째서죠?"

"힘든 전투니까, 마법소녀 복장이 더 가치를 가지는 법이지."

메인 스토리의 전투라고는 하지만, 이 게임의 요소는 메인 스토리에서의 진행 상황에 따라 서브 퀘스트가 열리냐 마느냐 결정되기도 한다.

주로, 큐브 적으로.

"우리의 전투는 지구 곳곳에 알려지게 될 거야. 모두의 이목이 쏠리게 되겠지. 그 때 비로소 마법소녀 복장이 큰 효과를 보게될 거야."

"사람들의 어그로를 끌려고 하는 거냥?"

"그래."

정확히는 큐브의 어그로를 끌기 위함이다.

"김펜릴아. 이번 <너만 오면 고> 작전의 시청률이 몇 퍼센트나 될까?"

"음...140%?"

"그래. 하나의 기기로 보는 게 아니라, 여러 대를 동시에 켜놔서 혹시나 중간에 에러가 나면 다른 걸로 보려고 대기 중인 사람들도 있겠지."

13년 동안 서울을 지배한 시청사의 뱀을 쓰러뜨리는 중요한 작전이니까.

"그런데 이게 군사작전 급의 상황이지만, 매스컴에 보이는 장면들이 이렇다면 어떨까?"

딱.

나는 마도기어에 저장된 동영상을 꺼냈다.

"헉."

"...지휘관 님?"

그러자 김펜릴과 히카리는 동시에 표정이 굳었다.

"진심이냥?"

"그래. 이게 바로 마법소녀 복장의 진정한 가치. 마법소녀 복장만이 인류를 진정으로 구원할 수 있어."

영상 속에는 우리 팀의 마법소녀들이 점액질의 슬라임을 상대로 고전하는 모습이 보였다.

"찢어지거나 녹아내렸을 때, 가장 가치있는 옷이 뭐겠니?"

대부분의 큐브는 마법소녀들의 복장이 찢어지고 녹아내리는 것에 격렬히 환호한다.

"이건 앞으로의 전투를 유리하게 끌어가기 위한 중요한 선택이야."

왜냐.

앞으로 큐브는 마법소녀 복장을 입은 이들을 '죽이기' 위해 이벤트를 마련하는 게 아니라, '벗기기' 위해 이벤트를 마련할테니까.

"산성 물질에 온몸이 뼈째로 녹아내리는 게 좋겠어, 아니면 마법소녀 옷만 녹아내려서 노출당하는 게 더 좋겠어?"

이 게임은 고어 판타지가 아니라 19금 미연시 판타지 게임이니까.

"중상 컷씬은 중대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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