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938화 (938/1,497)

EP.938 2부 8장 22

자고로, 지옥불반도의 시민들은 익명성이라는 방패만 있다면 그게 나랏님이라도 두드려 팬다.

선의철을 향한 서울 시민들의 악의는 한국을 넘어 전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문제.

여기서 가장 파급력이 큰 이슈는 과연 무엇일까?

"하나. 선의철은 2012년 괴수들이 서울을 침공했을 당시 서울 시민들이 전부 대피하지 않은 것을 알면서 서울에 있는 모든 다리를 폭파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선의철이라는 자가 이 세계에서 저질러 온 행적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을만큼 잔인했다.

"둘. 자기 정적을 제거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상대의 정보를 불법적으로 사찰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약을 먹고 자살한 척 위장을 하거나 자율주행차량에 태워 연탄을 피우기도 했다.

21세기 현대 사회에서는 먼 나라 이웃 나라에서나 나올 법한 짓들을 서슴없이 저질렀으며.

"셋. 사람을 강제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이능력자를 포섭하여 빌런들을 조종했다. 이 빌런들은 선의철의 명령에 따라서 정적을 죽이거나 사람들을 통제하는데 동원되었다."

어둠의 세계에 있는 마피아나 갱단 같은 조직들이 저지를 법한 일들을 일국의 대통령의 자리에서 저질렀으며.

"넷. 사실 대머리다."

모두를 기만하고 선하고 완벽한 자인 것으로 세상을 속였으며.

"다섯. 딸인 선겨울을 아끼는 것 같지만, 딸에게 고백을 했던 한 남자 고등학생을 드럼통에 파묻어 인천 앞바다에 던져버렸다. 남학생의 부모는 아직도 자식이 괴수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DLC의 업데이트로 기존에 없었던 악행도 추가된 것으로 모자라.

"여섯. 한식의 세계화라는 명목으로 파김치킨이는 혼종을 만들어냈다."

기존에 드러나지 않았던 숨겨진 악행들 또한 만 천하에 폭로되었으며.

"일곱. S급 히어로 광검의 약점을 잡아서 자신의 옆에서 떨어지지 않게 만들었다. 2012년 이후, 광검이 신서울을 떠나지 못한 것은 신서울을 지키는 게 아니라 선의철이 자신을 지키도록 협박한 것이다. 실제로, 선의철 또한 신서울을 벗어나지 않았다."

개인의 이기심으로 국가 권력을 마음대로 움직인 정황 또한 드러났으며.

"여덟. 서울의 지하에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대통령령 특급 기밀로 선정하여 누구도 알지 못하게 하였으며, 서울의 지하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괴인이 되면 히어로들을 파견하여 서울수복작전이라는 명목으로 살해하였다."

자신의 치부를 숨기기 위해 모든 진실을 은폐하려고 하였으며.

"아홉. 쥬지가 3cm이다."

"이 모든 것은 음해이며, 중상모략이다!!"

자신에게 던져진 이 모든 의혹들을 부인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이 중 사람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는 이슈는 무엇일까.

"세상에, 그거 들었어? 선의철 쥬지가 글쎄...."

"그럼 딸은 어떻게 낳은 거야?"

"인공수정 한 거 아니야? 그도 아니면...금태양이...키히힛!"

비단, 어떤 특정 이슈만 집중적으로 어그로를 끌어서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선의철 개인의 신체와 관련된 이슈를 제외하면.

그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참혹하고, 잔인하고, 불쾌하여 다른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기가 쉽지 않았다.

그저.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자신들을 서울의 생존자들이라고 알린 단체, '서울촌놈들'은 자신들의 홈페이지를 공개하였습니다. 이곳에는 그들이 선의철 대통령을 향해 펼치는 마타도어에 관한 모든 것들이 정리되어 있으며....

달칵, 달칵, 달칵.

-...현재, 서울에 살아있는 생존자들과 함께, 이들이 아는 사람들의 생사여부도 함께, 등록되어 있....

달칵, 달칵, 달칵, 달칵, 달칵!!

'모두가 죽은 줄 알았던 서울에 생존자가 있다'는 소식에, 신서울로 도망친 모든 이들이 자신의 가족을 찾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가족을 잃은 자.

서울이 아니지만 가족이 행방불명된 자.

모두가 자신의 가족이 살아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서울에서 전해진 소식에 집중했다.

"으아앙...! 아빠, 살아있었어...! 3cm, 이 개같은 새끼...!!"

선의철에 대한 욕설과 함께.

* * *

<7월 1일, 서울 여의도 지하.>

"괜찮을까요? 이렇게 서울 사람들과 바깥 사람들을 연결시켜줘도."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서울에 사람 사는 게 알려진 이상 피할 수 없는 일이었어."

인간은 누구나 다 희망을 가지고 산다.

희망이 꺾였을 때의 절망은 너무나 고통스럽고 괴롭지만,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게 '희망'이다.

특히 가족의 생사에 관한 희망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단순히 계산해도 산술적으로 가족이 3% 확률로 살아있을 수 있는 거니까, 다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명단을 찾아보는 거지."

"97% 확률로 죽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도요?"

"누가 그러더라. 3%면 혜자 아니냐고."

사람의 생사에 관한 문제를 두고 %놀음을 할 생각은 없지만, 천만 명 중에 30만 명이라는 숫자는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이 살아남은 셈이다.

"이게 말이 3%라서 그렇지, 30만명 중에 내 가족이 2~3명만 있어도 성공하는 거 아니냐."

"...그렇긴 하죠."

히카리는 '서울촌놈들', 그러니까 선겨울이 정리해준 서울 생존자들의 명단을 계속 업데이트하며 나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봐봐. 벌써 채팅으로 서로의 생존 여부를 확인하고 기뻐하는 사람들도 있잖아."

우리가 있는 곳은 여의도의 한 지하철 역.

얼음벽이 펼쳐진 한강의 남쪽, 아직 인터넷 선이 끊어지지 않은 여의도역의 한 시설에서 우리는 신서울과의 네트워크를 연결했다.

강제로.

미쳤다고 선의철이 인터넷에 자신에 관한 자료나 서울 생존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가만히 놔두겠는가?

아직까지 그를 지지하는, 혹은 지지하지는 않더라도 선의철과 운명공동체인 이들이 목숨을 걸고 저지하려고 들겠지.

하지만 유감.

이곳에는 세계 최강의 해커가 있다.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이기만 한다면, 구식 컴퓨터로도 정부 홈페이지를 습격하여 자료를 빼낼 수 있는 상식 밖의 천재가 여기에 있다.

"선의철 지지율은 지금 얼마야?"

"여론 조사가 이루어지지도 않았는 걸요."

"그렇겠지. 지금 당장은 선의철의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겠지. 하지만...."

랜선을 통해서 전달되는 진실들.

-저기, 정말로 어머니가 살아계시냐?! 어떻게? 한강 다리를 건너오지 못하셨는데...!

-네 어머니라면 내가 구했다. 지하철 역으로 간신히 숨어들어갔는데, 마침 거기서 지하로 통하는 구멍을 발견하고 살아남았지.

-크흑, 어머니...! 그런데 왜 우리 어머니말고 네가 연락하냐?

-부랄친구끼리 미안하다. 그런데...일단 놀라지 말고 들어. 내가 네 새아버지다.

-엑.

-그렇게 됐다. 13년은...좀 많이 길었어....

생존자들의 13년.

대부분은 누가 어떻게 죽었는가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어떻게 살아는가를 전달하는 경우도 많았다.

-네 여동생도 살아있다.

-진짜? 와, 씨발. 진짜 신께 감사드린다....

-그래, 처남.

-뭐? 야, 너 내 여동생 어떻게 했냐.

-서울의 지하는...너도 알다시피 법이 통하지 않는 곳이었잖아? 여기는 완전 원시시대나 다름없었어. 어, 음, 그러니까 원시시대라는 건 어디까지나 비유적인 표현이고....

-똑바로 말 안 해?!

-...오야코동이라고, 알고 있나?

그리고 지금, 어떻게 살아있는가를 이야기하는 이들의 대화를 통해 서울과 신서울은 활발히 교류가 이루어졌다.

대화의 내용을 전부 다 살펴볼 수는 없지만, 서울이나 신서울이나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은 단 하나.

-선의철 이 개새끼!

선의철이 만악의 근원이라는 것.

단지, 그 뿐이다.

* * *

<그 시각, 신서울 정부청사.>

"각하, 큰일났습니다. 시민들이 하나 둘 모이려고 준비 중입니다."

"어디에?"

"세, 세종대로입니다."

"씁...."

선의철은 자신의 집무실에 설치된 수많은 모니터를 훑으며 입맛을 다셨다.

"저들이 모두 세종대로에 나오면 몇 명이나 될 것 같나?"

"그, 못해도 백만 명은 될 것 같습니다."

"그들을 전부 밀어버리려면 탱크가 몇 대나 필요하지?"

"...예?"

관료는 자신이 들은 말이 사실인가 의구심이 들었다.

"태, 탱크요?"

"그래. 그냥 탱크여도...아니, 그러면 안 되겠군. 멍청한 헌터들이 뛰쳐나와 탱크를 사로잡으면 안 되잖아. 지금 신서울에 주둔 중인 수방사에 연락해. 수방사 소속 히어로들한테 전원 5분 대기조로 대기하라고."

"하, 하지만 그들이 말을 들을까요?"

"씨발, 말 안 들으면? 전시에 상관의 명령을 불복종하는 건 즉결 처분인 거 몰라?!"

"예?!"

관료는 기겁을 했다.

전쟁 영화에서도 노답이거나 주인공의 활약을 위해 암걸릴 것만 같은 빡대가리 상관들에게서나 나올 법한 대사가 지금 자신의 귀에 들렸다.

심지어 그걸 실천할 수 있는 양반의 입에서!

"가, 각하! 재고하여주십시오! 뒷 일을 감당할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 걸 판단하는 건 네가 아니다. 역사가 판단할 일이지."

"하, 하지만...."

"전부 밀어버리면 돼."

선의철은 느긋한 얼굴로 손목의 마도기어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전부 없었던 일이 되면 되는 거야. 누가 그러더군. 평생 착한 척을 해온 악당이 있으면, 그 사람은 악당이 아니라 착한 사람이라고."

선의철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마찬가지다. 누가 아무리 지껄인다고 한들, 누구도 '서울에 사람은 없다'라고 말하면 서울은 멸망한 도시가 되는 거지. 입으로든 키보드로든 엄지 손가락으로든, 누구도 감히 표현 조차 하지 않으면 되는 거야. ...맞나?"

"......."

"나는 '맞나'라고 물었네만."

"그, 그게."

"각하! 큰일났습니다!!"

다른 관료가 급히 집무실로 들어왔다.

"<토드의장>이 또다시 여의도 의사당에서 성명서를!!"

* * *

아, 아.

듣고 계십니까, 국민 여러분.

그리고 이 방송을 멀리 타지에서 듣고 있을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살아남기 위해 괴인이 된 자.

촉수꺼비, 두꺼비의장, 폭로자, 서울의 지배자 등으로 불리고 있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좋습니다.

저는 서울의 생존자 중 한 명일 뿐입니다.

저희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저희는 엄연히 살아있습니다.

저희는 마물이 아닙니다.

지하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일 뿐이었습니다.

저희는 한 때 인간이었던 존재로서, 인간과 함께 살아갈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비록 몸은 이렇게 되었으나, 이 심장은, 이 영혼은, 이 얼은 아직 이 나라의 사람이며 한 명의 인간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우리가 이 나라의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싸우겠습니다.

모두.

지켜봐주십시오.

우리가 서울을 되찾을 것입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서울에 있는 모든 괴수들을 소탕할 것입니다.

그래요.

서울시청에 자리잡은 S급 괴수, <시청사의 뱀>.

날짜는 7월 4일 정오.

함께 서울을 되찾고 싶은 분들은 오십시오.

그리고 분명히 말합니다.

저는 이 나라에서 태어나고 이 나라에서 뼈를 묻을 사람입니다.

제가 이 나라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한 마디로, 제 인사를 마치겠습니다.

안 오면 선의철.

작전명, <너만 오면 고>의 시작을 알리는 방송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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