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936화 (936/1,497)

EP.936 2부 8장 20 악의

새벽.나라는 발칵 뒤집혔다.

-새벽에 있었던 연구단지에서의 소동은 단순한 폭발 사고인 것으로 밝혀졌으며, 경찰에서는 이를….

-...평범한 사고입니다. 만약 빌런들이 친 범죄라면 협회에서 히어로들이 출동했겠죠. 하지만 아무도 출동하지 않았잖습니까? 만약 이게 빌런 범죄라면, 이는 협회의 직무 유기로….

-하하, 네트워크 상에서 돌아다니는 영상은 가짜뉴스일 뿐입니다. 정부에 반기를 품은 자들이 만든 저열한 조작 영상일 뿐입니다. 저 조작 영상을 제작한 이를 반드시 찾아 발본색원 하겠습니다. 정부에서는….

뉴스.

패널.

전문가.

언론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모두 간밤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 단순한 가스 폭발사고니,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했느니, 음주운전을 했느니 하며 사고를 덮고 있었다.

하지만 시민들은 겉으로는 네, 네 하면서 뒤로는 다들 진실을 찾느라 여념이 없었다.

-연구소에서 사람들 엄청 죽었다는데?

대규모 살인 사건.

단순한 대량 학살 사건이라면 모두가 공분을 하고 시민들도 진실을 은폐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정부를 '사회가 혼란에 빠질까봐 그러는 구나'하고 이해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죽은 이들의 신원이 하나 둘 밝혀지면서 음모론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죽은 빌런들이 왜 여기서 또 죽어있는 거임?

-아니, 얘들 정부 소속 히어로들 실적으로 잡혀간 애들 아니냐?

-씨벌, 폰실적ㅋㅋㅋ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 죽어있었다.

빌런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어야 할 범죄자들이 죽어있었다.

즉, 있어서는 안 될 곳에서 빌런들의 시신이 발견된 것이다.

그들의 시신은 모두 심장마비에 걸린 것 마냥 굳어있었고, 시신의 상태는 정말이지 말로 할 수 없을만큼 흉악했다.

-섹스빔이라도 맞은 건가? 아니면 정체불명의 섹스빌런이 다 범하고 도망친 건가?

-남녀 구분 없이?

-이 빌런은 남녀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빌런의 뒤에 박아드립니다!

-사람 죽었는데 그런 말이 나오냐?

-뭐래. 뒤진 놈들 다 사람 죽인 빌런 새끼들인데. 내 약혼녀가 저 새끼한테 죽었는데 그런 말 안 나오면 뭐?

죽은 빌런들에 대한 호의적인 시각은 어디에도 없었다.

과거 같았으면 다들 뉴스에 김 모 씨(45세)와 같은 식으로 사나흘 동안 나라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 수준의 흉악범죄자들이라,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다들 관심이 없었다.

관심은 오직 두 가지.

왜 그들이 모습을 드러냈는가.

그리고 누가 저들을 이렇게 만든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나라에서 이거 숨기는 것 같지 않냐?

-140% 확신함. 우리 나라도 이제 S급 흉악 범죄자가 등장한 거임.

-씨벌, 그냥 빌런말고 다크 히어로라도 S급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흉악한 빌런들을 죽인 자를 '다크 히어로'라고 칭송하기 시작했다.

설령 빌런끼리 싸운 것이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그를 다크 '히어로'라고 부를만큼 사람들은 엄청난 능력을 가진 이능력자를 원했다.

범인이 막강한 존재라는 증거는 차고 넘쳤으니까.

-간밤에 광검님 기술 연구소에 떨어지는 거 본 사람?

빌런들의 시체가 즐비하게 늘어져있는 대전 연구소.

그곳에 광검의 공격이 떨어졌다.

하늘에서 벼락처럼 꽂힌 금빛의 검들은 야심한 밤에 늦게까지 깨어있던 이들에 의해 집중적으로 관측되었다.

심지어 몇몇 이들은 CCTV 영상을 증거로 올리거나, 마침 심야 방송을 하고 있던 스트리머들의 창문에 금색의 빛들이 반짝이는 것이 녹화되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조작이라고 하기에는, 정확히 그 시간에 수십 수백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관측된 광검의 검폭격을 마냥 덮을 수는 없었다.

-나 봤음. 폭격형으로 떨어지는 게 무슨 장맛비 쏟아지는 줄ㄷㄷ

-신서울에서 대전 연구소까지 금방 가잖아. 광검 수준이면 충분히 그 시간에 제 때 도착하지.

광검이 나섰다.

아직 당사자는 침묵하고 있지만, 신서울의 지척에서 광검이 움직였다는 것 만으로 나라는 떠들썩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것은 유언비어입니다! 지금부터 조작된 영상이나 유언비어를 바탕으로 국가를 혼란에 빠뜨리는 자들은 신 국가보안법으로 조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죽하면 대통령 선의철이 직접 나서서 화재를 진압하려고 할 정도.

너무나도 강력한 그의 말에 사람들은 오히려 의심이 깊어지게 되었지만, 적어도 신서울 안에서는 함부로 인터넷에 글을 올리거나 의견을 주고받을 수 없었다.

설령, 네트워크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모두의 의심이 깊어지는 가운데.

신서울 정부청사에는 하나의 소포가 배달되었다.

구형 비디오 테이프가.

* * *

<6월 27일 낮, 신서울 정부청사.>

"...지문은 없었습니다."

"DNA 정보도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젠장."

선의철은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질렀다.

"대체 비디오 테이프같은 걸 누가…."

그냥 무시하고 싶었지만, 테이프의 겉에 박힌 문구에 선의철은 함부로 테이프를 무시할 수 없었다.

[푸른 소나무].

군가가 아닐까 처음에는 생각도 해봤지만, 푸른 소나무는 선의철에게 또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푸른 소나무.

청송.

...빌런 교도소.

그리고 문신사.

"......."

마침 문신사가 행방불명되고, 소나무 부대의 거점이었던 대전 연구소가 습격을 받게 되고, 수많은 소나무 부대 빌런들이 광역 심장마비로 살해당하고 일부가 행방불명 되기 시작한 시점에서 선의철은 테이프를 무시할 수 없었다.

"...젠장."

"각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나 혼자서 보겠다."

"위, 위험합니다. 그, 막 우물에서 귀신 같은 게 나오는 그런 테이프일지도 모르잖습니까?"

"씨발, 지금 그게 말이냐? 응?"

"이능력도 존재하는 세상인데 혹시 모르잖습니까."

"......."

선의철은 걱정했다.

혹시나 테이프의 내용이 자신의 치부를 명확히 드러내는 내용이 있다면, 누구에게도 함부로 보여줄 수 없는 것들이 분명했다.

하지만 주변의 만류를 마구잡이로 뿌리치고 혼자서 따로 보겠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자신을 걱정하는 이들의 눈빛도 읽어냈지만, 일부 사람들은 선의철을 파헤치듯 테이프를 노려보고 있었다.

테이프 속에 숨겨진 비밀을 알아내고자 하는 승냥이처럼.

"...재생해."

선의철은 담담히 의자에 몸을 묻었다.

그는 애써 당당하고 근엄한 얼굴로 테이프를 노려봤다.

삐빅.

대형 80인치 TV와는 어울리지 않는 조정 화면이 떠오르고, 검은 화면 속에 흰 문구가 생기자 선의철은 긴장했다.

[경고. 이 비디오를 무단 복제 하는 경우….]

"...응?"

선의철을 비롯한 일부 관료들은 뭔가 낯이 익은 영상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설마…."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현대의 어린이들은 무분별한 불법 비디오를 시청함으로써….]

"썅, 장난해?!"

선의철은 자신도 모르게 책상을 치며 일어났다.

"씨벌, 비디오방에서 가져온 공테이프 잖아!"

"지, 진정하십시오. 각하, 조정 영상이 끝나면 혹시ㅡ"

[안녕하신가.]

화면이 넘어가자마자, 한 남자가 머리에 3D 입체 가면을 뒤집어 쓴 채 모습을 드러냈다.

주변에 모여있던 전문가들은 화면의 밝기를 높이고 변조된 목소리를 분석하며 자료를 모으기 시작하려고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안녕하신가, 3cm 대통령.]

"......."

선의철은 한손으로 자신의 눈에 있는 칼자국을 쓸었다.

[혹시 눈 만지고 있나? 미안하지만 그거 아닌데.]

"......."

[지금 혹시 녹화가 아니라고 생각한 건가? 미안하지만 이건 녹화방송이야. 자네의 세대에 맞게 옛날 카메라로 녹화한 영상이다 이 말일세.]

"나이가 대략 50대 중반으로 추정됩니다. 아마...각하와 비슷한 연령대가 아닐지…."

[왜 그렇게 표정이 굳어있나. 응? 내가 누군지 잊은 건 아니겠지?]

"......."

[섭섭한데. 그럼 내가 기억이 나게 해줄까? 이 테이프 안에는 죽은 빌런들의 정체, 그리고 자네의 실체가 담겨있지. 하지만 자네는 내 말을 듣자마자 비디오를 부수려고 할 거야. 만약 이 비디오를 옆에서 같이 듣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반드시 선의철을 막게.]

너무나 비장한 남자의 협박에 모두가 침을 꿀꺽 삼켰다.

[나는 선의철, 자네의 비밀을 알고 있네.]

"흥, 그렇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해봐야ㅡ"

[선의철 자지 3cm.]

"......."

선의철은, 바로 책상 위로 뛰어 비디오 테이프를 향해 달렸다.

"이 개같은…!!"

"가, 각하! 참으십시오!"

"놔라! 저 미친놈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어야 한다고?! 이건 대통령을 향한 모욕이야!"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했지.]

"......."

선의철은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TV를 노려봤다.

"...후, 그래.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을 뻔 했어. 나라는 사람이…."

[첫 경험은 정치 동아리에 들어온 신입생 여후배를 강간한 것이 시작이었지.]

"......내가 이 음해를 참아야 하는 건가?"

[아직도 믿지 못하는 건가? 아니면 내가 어디까지 알고 있나 실험하는 건가? 미안하지만 나는 자네가 12년까지 살았던 모든 삶의 흔적을 알고 있네.]

팟, 파밧.

남자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주변에 환한 빛이 밝아지기 시작했고, 정부 청사에 있던 이들은 남자가 있는 장소에 비명을 지를 뻔 했다.

[같은 의원 출신끼리, 야박하게 굴지 말게나. 응?]

"...국회의사당?"

그곳은, 국회의 본 회의장이었다.

의장석을 점거한 정체불명의 남자는 두 팔을 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만나러 오고 싶다면 직접 찾아오게.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야. 이곳은 괴수들이 들끓는 곳이라서. 특히 최근에는 자지벌레도 넘쳐나지 않는가?]

자지벌레.

최소한 영상이 4개월 이내에 찍혔다는 것을 증명하는 단어였다.

[자네가 나를 뒤에서 총으로 쐈던 곳에서 기다리겠네. 참고로….]

끼이익.

남자는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직접 와야할 것이야. 안 그러면 하루에 하나씩 자네의 치부가 드러나게 될테니.]

하나의 면이 아홉 개로 분할된 '큐브'였다.

[오물로 덮어둔 영광의 시대는 끝이다, 선의철.]

남자는 가면을 벗어던졌다.

가면 속 남자의 모습에 선의철은 충격에 빠졌다.

"네, 네놈이 어떻게…?"

[살아있다. 우리는. 그리고.]

두꺼비를 닮은 듯한 모습의 남자는 화면을 향해 싱긋 웃었다.

[이곳에는 S급이 다섯이나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마라.]

치지직.

영상이, 끝났다.

* * *

"S급이 다섯이라니요?"

"그냥 질러본 걸세. 큐브를 넘겨주는 대가로 S급 다섯 명 만들어주시게."

"시간이 필요합니다만."

"느긋하게 하시게. 지하에서 계속 섹스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왜? 혹시 의사당에서 하기를 바라는 건가? 혹시...선겨울 공주님을?"

"......."

현재.

마법소녀 매지컬 큥큥스는 서울의 지하 여왕 선겨울과의 동맹을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안심하게. 내가 바라는 것만 해결하면, 내게 남은 조각을 돌려줄테니."

촉수꺼비로부터 선겨울에게로 이어진, 큐브를 진짜로 회수하기 위해서.

"뭘 원하시는 겁니까? 진짜로 선의철 뒤에 촉수를 박아넣으려고요?"

"일단."

촉수꺼비는 사납게 웃었다.

"선자삼을 전국민이 알았으면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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