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927화 (927/1,497)

EP.927 2부 8장 12 범인은 바로

<6월 25일 새벽 2시, 대전XX연구소.>

"흐아암."

경비원 기우는 하품을 하며 오늘도 CCTV를 확인하는 중이다.

대전 XX 연구소의 야간 근무 아르바이트 중인 그는 낮에는 다른 일을 하고 밤에는 CCTV 관리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이른바 투잡이지만, 낮에 하는 일이 걸리면 분명 경비 일을 계속 하는 것도 안전하지 않지만, 투잡이라도 하지 않으면 이 신서울에서 먹고 살기란 상당히 막막한 소득이었다.

나날이 기우가 써야 할 최소한의 소비는 늘어나는데, 월급은 올라가기를 커녕 동결되기만을 바라야 하는 판이다.

-...한 편, 올해 최저임금의 상승을 두고 동결이냐 인하를 두고 최저임금위원회가 첨예한 대립을 하는 가운데, 동결과 인하를 투호로 결정했다는 한 시민의 제보가 밝혀짐에따라….

"씨벌."

예전같으면 천오백원에 사마셨을 저렴한 캔커피가 사천원에 이른 시대.

"니미 좆같은 X-펄슨 시대."

괴수가 들끓는 시대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마력과 코어가 넘쳐나 원자력이 쓸모가 없어진 이 시대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만 했다.

언제든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동산이 괴수의 위협에 의해 파괴될 수 있다.

언제든지 자신이 일하는 직장이 마력혁명으로 인해 직장이 사라질 수 있다.

마력을 각성한 이능력자들은 히어로니 헌터니 막대한 명예나 부를 얻으며 떵떵거리며 살게 되었다.

마력이나 코어와 관련이 없는 자들은 구 시대의 능력과 지식만으로 살아남아야 했다.

기우는 안타깝게도 후자의 입장이었다.

괴수에 의해 온갖 상가 건물이 파괴되어버렸고, 신서울의 단칸방에 쪼그려앉아 하루하루 컵라면으로 세 끼를 떼우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에휴, 젠장."

기우는 으스스한 날씨에 몸서리를 쳤다.

오늘따라 날씨가 몹시 차가웠고, 기우는 솔솔 다가오는 수면의 악마에 정신을 놓을 지경이었다.

그나마 CCTV 관리실은 난방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어 다행이었지고, 덕분에 잠이 솔솔 잘 와야했다.

그래, 이렇게 등골이 오싹하고 추운 곳이 아니어야했다.

"뭐야…?"

등 뒤엣 서있는 귀신의 영향일까.

아니면 자신이 월급루팡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에 경각심을 주기 위한 조상의 인도일까.

"아, 뭐야…?"

기우는 정문 앞에 서성이고 있는 한 여인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여자가 왜…?"

[아 씨, 뭐야…?]

CCTV 앞에 서있는 여자는 뭔가 손에 엄청 많은 걸 비닐봉지에 들고 욕을 내뱉었다.

연구소의 정문 앞에서 계속 두드리는 터라 기우는 이에 응대를 해야했지만, 시간이 시간이다보니 대응을 할 수는 없었다.

-정규 시간을 제외하면 연구소에 아무도 들이지 말 것.

-대통령이 와도 문을 열어주지 말 것.

근로수칙 첫 번째.

결코, 문을 열어줘서는 안 된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에 누가 들어온다고…!"

기우는 급히 마도기어를 통해 연구소에 사는 이들의 얼굴을 훑었다.

혹시나 뭔가 야밤에 물건을 놓고가거나, 얼마전에 대학원을 졸업하고 연구실로 들어온 막내가 카드키를 놓고 나갔다가 짐을 한껏 들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연구원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청소 용역일까?

기우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쾅쾅쾅!

여인의 주먹은 더욱 거칠어졌다.

CCTV를 향해 욕을 하는 듯 했고, 뭔가 꼬였다는 듯 머리를 마구 헝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비닐 봉지를 바닥에 내려놓은 뒤, 마도기어를 누르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예, 예. 아니, 주문한 대로 왔는데 지금 문이 잠겨있다고요.]

기우는 배달원으로 보이는 이의 말을 들으며 무슨 상황이 벌어진 건지 깨달았다.

[네? 뭐라고요? 여기 대전XX연구소로 되어있잖아요. 무슨 큥큥아파트예요. 배달 주소 확인하셨어요?]

주소를 잘못 입력한 것이다.

누군가 직장 주소를 설정한 상태로 야식을 시켜버린 것이다.

[하 씨, 뭐라고요? 그러면 안에 일하는 분이라도 주라고요? 저 진짜 책임 못 집니다? ...씨, 왜 성질이야. 아, 씨발.]

저 여자 배달부는 지금 소리가 다 들린다는 걸 알고 있을까.

기우는 웃음을 참으며 모른척 외부 스피커를 눌렀다.

"누구십니까."

[아, 죄송합니다. 배달을 왔는데 착오가 있어서요. 그, 상황이 어떻게 된 거냐면….]

"알겠습니다. 금방 나갈게요."

여인의 설명을 대충 흘려들은 기우는 CCTV를 마지막으로 슥 확인한 뒤, 외투를 챙겨입고 밖으로 나갔다.

경비실에서 불과 1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를 따라 내려온 그는 날카로운 인상의 여인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예…."

코를 자극하는 매운 냄새에 기우는 이것이 떡볶이와 튀김 세트, 즉 분식류라는 것을 바로 눈치챘다.

심지어 떡볶이는 두 개로 각각 나뉘어 있더라.

위에 '로제'라고 적혀있는 걸 봐서는 요즘 유행한다던 그 떡볶이가 분명했다.

"영수증 드릴테니까, 나중에 혹시 전화하면 그 영수증 주시면 됩니다."

"아, 저기. 혹시 어디서 배달왔는지…."

"거기 적혀있어요."

여인은 몸을 돌리며 사라졌다.

헬맷 아래로 살짝 비친 머리카락은 밤이라서 그런지, 보라색처럼 보이는 것 같았다.

"......뭐야. 이능력자가 딸배를 하나?"

기우는 헛웃음을 지으며 분식 세트를 챙겨 경비실로 향했다.

"흐흐, 이거 먹으면 내일 점심까지 버틸 수 있겠다. 남은 돈은…."

기우는 주머니 속 사정을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주일만 더 일하게 해주세요. 그러면 이 좆같은 나라 떠날 수 있으니까…!"

기우는 두 손을 꼭 모아 모니터를 향해 기도했다.

자신이 배달 음식을 받는 사이, 네 명의 인영이 CCTV 사각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 * *

"음, 작전 성공이야."

역시 천가을이다.

배달원으로 변장을 시키고 떡튀순으로 경비원을 홀린 다음, 그 사이 침입자들이 침입한다는 작전은 역시 완벽하게 성공했다.

"경비가 저래도 됨?"

"야근하는데 식대를 따로 안 주는 거 아닐까."

어차피 목적은 천가을이 경비를 잠시 끌어내는 것 자체에 있었지만, 다행히 경비는 배달음식을 받고 자리로 돌아갔다.

아마 그것이 그가 이 대전XX연구소에서 먹는 최후의 만찬이 될 것이다.

죽지는 않지만, 아마 경비 일에서 짤리게 되겠지.

이곳, 연구소는 오늘 폭발할 예정이니까.

"다들 모여봐."

나는 나와 함께 들어온 세사람을 모았다.

누리, 라온, 유나.

각각 라텍스 슈트와 같은 몸에 착 달라붙는 옷을 입고 있었고, 나는 어두운 밤임에도 그들의 몸 윤곽이 한 눈에 보이는 것에 만족감을 느꼈다.

"그, 오빠."

"응."

"오빠 하드게이임?"

"얘가 미쳤나."

나는 누리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레즈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게이는 아니야!"

"...오빠가 미친 거 아님?"

"따지고 보면 바이 아니에요?"

"아니지. 나는 여자를 좋아하니까. 내가 남자이든 여자이든 상관없이, 나는 여자가 좋을 뿐이야!"

"그럼 역바이 아닙니까?"

"리버스바이는 어때요?"

"일단 뭐든 상관없는데, 진짜 이거 너무한 거 아님??"

긴장감이 없는 것 같지만, 다행히 우리는 이미 긴장감을 놓을 수 있는 곳에 들어온 지 오래.

"자지 모양 다 드러나는 타이즈를 입으면 어쩌자는 건데!"

"내 피닉스 자랑. 어때? 끼요옷."

"발기한 상태로 서있지 마!"

"발기한 거 아니야. 디폴트야."

"......."

이곳은 CCTV가 존재하지 않는 곳, 여직원 휴게실이다.

"원래 어디 잠입하는 사람들 실루엣만 나오려면 몸의 면적을 최대한 줄여야 하는 거 몰라?"

"씨이, 남들한테 물어보면 백 명 중에 아흔아홉 명은 하드게이라고 할텐데 무슨!"

"한 명은 뭐라고 하는데?"

"씹게이."

"하."

나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가리켰다.

"잘났기만 하구만."

"아니, 굳이 그런 라택스 차림이어야 하냐고!"

"물론. 지금 우리는 아주 은밀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니까."

거울 속 나는 검은 라택스의 실루엣 남자였다.

얼굴까지 검은색으로 뒤집어 쓰고 있고, 얼굴 밖으로는 삼백안의 눈동자가 흰색으로 짝 찢어져 있었다.

무엇을 숨기랴.

나는 '범인'이다.

"나를 한자와 씨라고 불러주겠어?"

"하아, 오빠. 진짜…."

"아니면 해녀 어때?"

"해남 아닌가요?"

"그런가?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까 대충 넘어가고."

똑똑.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셋은 급히 몸을 숨겼고, 나는 라텍스 슈트 안에 있던 물건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끼이익.

"흐아암."

하품과 함께 여자 연구원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은 그녀는 주변을 살필 기색도 없이 휴게실에 있는 소파에 주저앉았다.

"하...이 놈의 야근. ...응?"

연구원은 그대로 굳었다.

그녀의 마도기어에는 당연하게도, 내가 비쳤다.

"무슨, 읍! 으읍!!"

나는 미리 준비한 손수건을 그녀의 입에 붙였다.

숨을 쉬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입을 꽉 눌렀다.

이미, 문은 닫혔다.

비명이 밖으로 새어나갈 일도 없다.

"쉬이잇…."

나는 연구원을 재웠다.

그리고는 빠르게 그녀의 옷을 벗겼다.

"오, 오빠!"

"왜."

"옷 벗기는 건 저희가 할 게요."

"걱정마. 얘 빌런이야."

여자를 상대로 예의를 갖추지만, 빌런을 상대로는 예의를 갖출 필요 없다.

"여기 연구소에 있는 애들 모두 빌런이야."

"...정말요?"

"응."

빅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정규직들은 다 빌런이고, 비정규직은 그냥 보통 사람들이야."

"...세상에."

"정규직이랑 비정규직을 어떻게 구분함?"

"이 늦은 밤에 남아서 일하는 사람 연구원 중에 비정규직이 누가 있겠어?"

시간은 새벽 2시.

나는 연구원의 가운 속에 있던 공무원증을 꺼냈다.

"이게 여기 카드키니까 잘 가지고 있어."

"...6급? 저보다 어려보입니다만…?"

"어. 되게 젊어보이는 나이인데 6급이지? 여기 사람들, 죄다 선의철 낙하산이라서 그래."

나는 쓰러진 여인의 옆에 손수건을 놓은 뒤, 휴게실에 걸려있던 옷걸이를 하나 내려놓았다.

"이능력자 특채야."

"......."

"여기서 하는 실험은 인체실험이지."

인간의 몸에서 마력을 뽑아낼 수 있는가 하는 실험.

그 외에도 온갖 불법적인 실험이 자행되고 있지만, 여기서 일어나는 실험은 밖으로 누설되지 않는다.

누설되는 즉시 다음 실험의 모르모트가 될 테니까.

"여기는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인체실험실이야."

"........"

"원래는 누군가로부터 마력을 뽑아내기 위한 시설이었지. 거기 지하를 청송이 아키택트를 불러 더 개조를 했고."

"...누구로부터 마력을 뽑아낸다는 거죠?"

"있어. 폭주하는 마력을 뽑아내야만 하는 존재가."

이 시설.

실은 광검의 오염된 마력을 뽑아내는 시설이다.

"광검, 허윤환의 마력을 뽑아내서 신서울의 가로등을 빛내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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