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26 2부 8장 11 합당한 배신 사유
<6월 24일 밤, 사무실.>
아키택트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진 지하실에서 즐거운 섹스를 한 이후.
"우리 너무 섹스에만 집중했던 것 같아. 이제 슬슬 사람 구할 때가 되었어."
나는 마법소녀들을 모아 '프로페서'를 구출하기 위한 팀을 모았다.
"아키택트, 혹시 모형 하나 만들어줄 수 있습니까?"
"모형이라고 하면, 그 지하로 진입하는 공간을 말씀하시는 거죠? 금방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아키택트는 눈앞의 거대한 점토 덩어리를 이용해 뭔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자신이 이능력으로 만든 건축물을 작은 모형으로 만드는 것은 그에게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나는 아키택트가 만든 구조 속 지하를 가리켰다.
"장소는 대전에 있는 이 연구 단지로 판명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두 팀으로 나뉠 겁니다. 한 팀은 프로페서를 지키기 위해 내려갈 구조팀. 그리고 다른 팀은 밖에서 몰려드는 적들을 제압할 전투팀."
"질문있습니다, 지휘관."
라온이 가장 먼저 손을 들었다.
"구조팀의 규모는 어떻게 됩니까?"
"세 명이야."
구조팀, 단 세 명.
세 명이라는 말에 라온과 누리와 유나가 서로를 슬쩍 쳐다봤다.
"맞아. 나는 너희 셋을 구조팀으로 쓸 생각이야."
"괜찮겠습니까? 그,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문신사라고 하는 적은 A급으로 추정되는 자가 아닙니까."
"라온이가 있는데 뭘 걱정하겠어."
"...아, 그렇군요."
구조팀은 3명이 아니다.
3명 + 1마리다.
"김펜릴이 깃들게 할 거야. 유사시에는 전력을 끌어내도 좋아."
"......우린 들러리인가."
빙고.
라온을 주력으로 삼으니 누리가 자신도 모르게 불만을 드러냈다.
말을 하고도 놀란 기색이 가득했고, 너무나 조용해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야, 김누리. 뭐라고?"
그런데 이걸 악담에 민감한 슈리가 들었다.
서로 싸가지없기로 유명한 둘은 눈을 부라리며 눈으로 욕을 하기 시작했다.
"사장님이 너를 구조팀으로 선정했으면 감사히 생각할 것이지,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아?"
"말 다했음? 자기 이제 S급이라고 말 막해도 되는 거임?"
"말을 막 한 건 너지!"
아아, 스토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누리는 속에 가득한 불만을 어떻게 풀어낼지 몰라했고, 이걸 팀원들이 급발진으로 들이받아버렸다.
'사실 불만이 안 생기는 게 이상하긴 해.'
게임이지만 현실에서도 충분히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누구는 나한테 질싸 몇 번 받고 바로 s급을 달았는데, 자기는 나한테 질싸를 10번 넘게 받고도 아직 B급도 올라가지 못했으니까.
한 명만 집중적으로 하면 1개월 안에 S급을 찍을 수 있겠지만, 우리 팀에 여자가 누리 한 명만 있는 것도 아니니 불안할 것이다.
일주일에 레벨 1 상승.
99가 만렙인 걸 아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다 조급함을 느낄 터.
'이게 누리 S급 이벤트의 분기점이 되는 거지.'
열등감으로 자극을 받은 누리가 멋지게 아군과 화해를 하고 자신의 어둠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누리를 구조팀에서 빼서 그냥 평범하게 성장하게 하느냐.
그녀의 재능, 봉인된 암속성 S급의 재능을 개화하느냐 마느냐의 분기가 바로 이곳인 셈이다!
"솔직히 라온 언니한테 펜릴 붙으면 라온 언니 혼자서 다 해결할 수 있는 거 아님? 아니면 네가 내려가든가."
"너, 너…?! 야, 언니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뭐래. 모습은 덩어리 치즈 통째로 씹어먹게 생겼으면서."
"김누리."
나는 누리에게 다가갔다.
싸움을 중재하기 위함인 동시에, 지휘관이었던 피닉스가 김누리의 불평 불만으로 떨어지는 팀의 사기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을 사용하기 위함이다.
"누리야, 잠시만."
"응? 오빠, 지금 뭐하는-"
나는 누리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그녀를 번쩍 들어올린 다음, 치마를 팬티와 함께 벗겨 바로 자지를 안에 박아넣었다.
"히익?!"
모두가-심지어 아키택트도 있는데도-보는 앞에서, 나는 누리를 들박했다.
갑작스러운 들박에 누리는 놀라면서도 내게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너보다 언니한테 그게 무슨 말이니. 여기는 동방예의지국이란다."
"아, 아니! 지금 다른 사람들 다 보는데, 지금 뭐하는…!"
"체벌."
찰싹.
나는 누리의 엉덩이를 아래에서 받치듯 때렸다.
찰싹거리는 소리가 사무실 안을 가득 울렸고, 나는 소파로 걸어가 누리를 안은 채 소파에 주저앉았다.
"라온이는 보험이지, 주력은 너란 말이야. 알겠어? 네가 이번 작전의 주역이라고."
"나…?"
"그래. 내가 괜히 너희 셋을 뽑았겠니. 다 적재적소에 믿고 맡길 수 있는 이들이라서 그런 거야."
나는 아키택트가 만든 구조물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지하 중에서도 가장 최하층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었고, 그곳 안에는 온갖 쓰레기 모형이 가득차있었다.
"저기로 들어가기 싫지?"
"으, 응."
"그래서 우리는 전투팀이 밖에 있는 동안, 땅굴을 파서 내려갈 거야."
나는 아키택트의 점토 옆으로 플라스틱 관을 쑤셔넣었다.
투명한 관은 마치 땅굴처럼 아래로 파고들었고, 기어이 가장 낮은 층에 도착했다.
"아키택트가 만들어준 구멍을 따라서 내려갈 거야. 네가 선두에 서서 내려가면, 그 뒤를 유나랑 라온이랑 내가 뒤따라 갈게."
"내, 내가 먼저 가야하는 이유가 뭔데?"
"내가 너를 선봉으로 쓰기로 결정했으니까. 만약에 라온이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면 라온이가 가장 앞에 섰겠지."
누리는 그다지 납득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게 누리가 선봉에 선다는 이유에 대해 논리적인 이유로 접근한 게 아니기 때문.
"잘 들어, 누리야. 네가 앞에 서는 이유는…."
인게임에서는 여기서 몇 가지 제시되는 힌트가 있다.
하나는 라온이 가슴이 너무 커서 누리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거나.
환풍구를 기어가서 문을 열고 조작하는 게 누리밖에 할 수 없는 곳이 있다거나.
밖으로 빠져나갔을 때 레이더가 딱 누리의 정수리에 닿을 위치에 있어 적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다거나.
도중에 걸린 적 빌런이 누리의 활약을 알아본 팬이라서 문신사를 배신한다거나.
도중에 나타난 적 중간 보스가 어린 아이인 누리도 나라를 위해 열심히 싸우는데 자신은 노예가 된 것에 한탄하며 무기를 내려놓는다거나.
"...때문이야. 그런데, 이런 거 아니더라도 네가 앞장서야 할 이유가 있어."
정말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사실 게임에서 제시되는 조건들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누리가 열심히 집어넣은 범죄자들, 그 여자가 전부 다 자기 노예로 만들었어."
"...뭐?"
"빌런들 있잖아. 그 여자 주특기가 세뇌거든. 누리가 애써 살려서 구금했던 자들을 죽이거나 노예로 만들었대."
누리의 의지를 불타게 하는 방법 중 하나.
"아니, 그 미친년은 내가 기껏 잡아넣은 빌런들을 왜 지가 멋대로 죽이는 거임? 지가 판사임?"
"어떻게 할래?"
"...그 년, 존나게 패도 됨?"
누리의 마음 속, '다크 히어로' 기질을 살리는 것.
"착하다, 착해. 그러면 버프 받고 가야지?"
"...어?"
찌걱.
"아으앙…!! 모, 모두의 앞에서 큥큥하면, 흐끅, 안 되는데…!!"
나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강제절정이라는 체벌을 내렸다.
* * *
"흐아, 살 것 같다."
문신사는 반신욕을 즐기고 몸단장을 한 뒤, 검은 로브를 챙겨 입고 연구실로 향했다.
연구실에는 마찬가지로 반신욕을 하고 나온 히카리가 몸단장을 마치고 문신사와 함께 연구실로 나왔다.
"후후, 이 언니랑 이렇게 같이 목욕하는 건 처음이지?"
"예, 예…."
히카리는 노골적으로 불편함을 내비쳤지만, 문신사는 히카리가 어떤 기색을 보이는 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신경쓰지 않는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네 덕분에 '그것'에 접속하는 실마리가 보였어. 덕분에 내가 이제...S급이 될 수 있다 이거야."
문신사의 눈에는 어둠이 흘러넘쳤다.
그녀에게는 자신감이 가득해보였고, 손에 쥔 작은 붓펜은 이제 허공에서 홀로 춤을 추기 시작할 정도였다.
"이제...진짜 S급이야. 후후, 이거 봐라?"
휘, 휘휘-
문신사는 휘파람을 불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허공에 뜬 붓펜이 자유자재로 허공에서 춤을 추기 시작핶고, 문신사는 검지를 뻗어 악곡을 지휘하듯 붓펜을 움직였다.
"이제 각성만 남았어. S급이 되면 이걸 내가 몰래 움직인 다음, 목 뒤에 선 하나만 그어도 상대의 목이 날아가는 거야. 어때? 짜릿하지?"
"예, 예…."
히카리는 우울했다.
문신사가 이제 엄청난 능력을 가지게 되면 이 나라는 겉잡을 수 없을만큼 타락하게 된다.
어쩌면 대통령마저도 문신사에 의해 꼭두각시가 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이 되기 일보직전.
히카리는 희망을 밖으로 내보냈다.
바깥에서의 움직임이 전혀 전해지지 않는 이곳에서, 히카리는 그저 희망이 자신의 신호를 눈치채고 부디 도착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히카리. 이번에 내가 S급이 되어 이 나라를 지배하면 말이야, 가장 먼저 일본을 공격할 생각이야."
"네…?"
"국뽕에 그것만큼 좋은 게 또 없지. 네 가설, S급이 되면 사람 뿐만 아니라 괴수도 이제 조종할 수 있게 되면 사람을 굳이 보낼 필요가 없잖아? 고지이라 같은 걸 조종해서 바다를 헤엄친다음 대마도부터 습격하는 거지. 그렇게 일본 본토에 상륙하게 한 다음…."
딸칵.
문신사는 붓펜을 수직으로 세워 바닥을 향해 겨눴다.
"도쿄 총리가 직접 핵을 괴수에게 빵! 후후, 어때? 이왕이면 그 장소는 네가 괴롭힘 당했다는 그 학교로 해줄게."
"...고맙네요."
"그렇지? 언니가 이래뵈도 너를 챙긴다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내 정체도 너한테 알려줬지."
문신사는, 한국 히어로 협회의 부회장 강소연은 히카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니까 나랑 같이 잘하자. 응?"
"......."
"솔직히 내가 너한테 뭐 나쁘게 대한 건 없잖아. 그렇지? 강간 당할 뻔 한 것도 내가 구해주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키워줬는데."
"그건...그렇죠."
"그래. 다 네가 내 동생 같아서 하는 말이야. 알겠지?"
악의 조직 간부의 길인가, 아니면 국가와 인류를 구할 히어로의 길인가.
히카리는 두 갈래 길에서 고뇌하게 되었다.
만약 밖에서 자신의 신호를 눈치채지 못하고 이 여자가 S급이 된다면, 자신이 이 여자의 오른팔이 되어 세계를 멸망시키는 것도-
"아, 슬슬 끝. 후후, 이거 데스 코믹스에 괜히 저작권 걸리는 거 아닐까 몰라. 그럼 히카리. 언니 먼저 잔다. 휘, 휘히-"
문신사는 휘파람을 불며 허공에 떠도는 붓펜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연구실을 떠나는 그녀의 뒤를 바라보며, 히카리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DC...아니라고…."
히카리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정의의 편이 최고야."
삐빅, 삐빅.
감시카메라가 뭔가를 포착했다.
급히 화면을 살펴본 히카리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감시카메라의 전원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