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22 2부 8장 07 방의 의미
<6월 23일 밤, 신서울 마법소녀 매지컬 큥큥스 사무실 지하.>
아키택트의 힘을 이용하면 방을 만드는 것은 하루 아침에도 만들 수 있다.
'괜히 인게임의 시설 컨텐츠를 담당하는 이능력자가 아니지.'
아키택트의 능력은 이 분야에 있어서 정점에 도달해있으며, 그의 한계인 마력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수히 많은 코어를 이용해 해결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유성에서도 아키택트를 적극적으로 돕기로 했다.
방 안에 들어올 침대나 기타물품들을 유성에서 들이기로 했고, 그 대가로 은유하는 카페에 항상 상주시킬 수 있는 커피 음용 전용 X로이드를 이 건물에 배치시켰다.
덕분에 우리는 예산의 문제에서 벗어나 우리가 원하는 대로 방을 꾸밀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다른 이들은 어떻게 방을 꾸몄을까 기대하던 찰나.
"제 방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이라는 겁니까?"
"예."
아키택트는 나의 휴게실을 어떻게 꾸밀 지에 대해 논의를 하고자 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야기가 끝났습니까?"
"아직입니다. 가장 먼저 지휘관 님을 찾아왔습니다."
"왜 하필 지휘관을?"
"아무래도 가장 높으신 분의 방을 먼저 하는 게 순리에 맞는 게 아닐까 싶어서."
"흠."
아키택트의 말도 일리가 있다.
원래 가장 높은 사람을 챙기지 않으면 뭔가 순서가 애매해지는 법이다.
딱히 우리 길드는 그런 걸 신경쓰지는 않고, 나도 게임에서 그런 걸 따지고 싶지는 않지만, 그들에게 있어서는 이 게임 속 세상이 현실이다.
'유교인이잖아. 내가 이해해야지.'
내가 꼰대가 되고 싶지 않아도 꼰대가 되어야 하는 순간이 존재하기 마련.
아키택트는 나를 꼰대로 만들려고 했다.
"요청하면 원하는 대로 해줄 겁니까?"
"물론입니다."
원하는 대로.
나는 머릿속에서 구상한 것을 바로 전했다.
"그럼 세 가지 종류의 방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는데."
"...세 가지나요?"
설마 내가 세 가지나 요구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 아키택트는 난처한 얼굴로 마도기어를 만지작거렸다.
'뭔가 있다.'
분명 아키택트를 통해 뭔가가 진행되고 있다.
다른 히로인들 없이 아키택트 혼자 나를 찾아왔다는 것이 분명 이상하다.
'지금 나를 혹시 떠보는 건가?'
히로인들이 내 취향에 맞는 방을 만들고 싶어서 아키택트를 보낸 것이 틀림없다.
'그건 안 되는데.'
히로인들은 히로인들만의 컨셉을 가진 방이 만들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내가 방 전체를 딸기로 도배한다면, 지하실의 큥큥룸은 모두 딸기딸기한 디자인으로 도배될 것이다.
그건 사양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미리 선수를 쳐야한다.
"혹시 애들이 내 취향 알아오라고 했습니까?"
"아니, 그, 그게."
"그런 거라면 안심하시고 걔들 하고 싶은 대로 만들어주세요. 저는 제 취향을 강요받은 그들이 아니라, 그들의 본 모습 그대로를 보고 있는 사람이니까."
히로인에게는 히로인만의 감성이 있다.
내가 그걸 일부러 깨뜨릴 이유는 없다.
누리에게는 누리의 방이 있고, 하랑에게는 하랑의 방이 있다.
그게 나의 개인실 디자인으로 유행이 번지면 다른 이들의 개성이 사라지게 된다.
섹스를 위한 방이라면 따로 용도를 정해서 하나 만들면 된다.
고로, 희생하는 건 나의 방 중 하나.
난교방.
"대신 내가 휴게실을 만들면 내 휴게실에 자주 찾아오라고 해주세요. 알겠죠?"
"혹시 그게 이 얘기입니까?"
탁탁.
아키택트의 손짓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다섯 명은 거뜬히 누울 수 있는 침대를 만들어야겠군요. 침대도 들어가고, 방도 분위기가 있게 만들어야겠습니다. 좋습니다, 지휘관. 어떤 구조로 만들면 좋겠습니까?"
"일단 하나는 아키택트가 잘 만드는 구조로."
나는 마도기어를 통해 모형 하나를 꺼냈다.
"이건…?"
"전통 한옥 구조. 궁궐 안쪽의 느낌이 나도록 하나 만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이거라면...제 전문이지요. 맡겨만 주십시오. 조선의 군왕이 된 기분을 만끽하게 해드리겠습니다."
하나의 방은 궁궐 컨셉이다.
이는 후에 들어올 히로인을 설득하고자 하는 요소이자, 내가 옛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였다.
백영도.
백희아의 가문에서 관리하는 섬에는 궁궐과도 같은 숙소가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그와 하룻밤을 보냈다.
그는 모르지만, 솔직히 자고 있는 그를 존나게 따먹-
"...넓은 공간 안에 두터운 이불 하나 두고 있으면 될 그런 공간이면 됩니다. 첫째는."
그 날의 기억이 되살아나도록, 게임 속 창염의 피닉스를 잡아다가 가둔다음 그에게 매직스틱을 넘겨줄 것이다.
그러면 나와 큥큥했던 기억이 다시 돌아오겠지. 아마도.
"둘째는 그냥 일반 가정집 느낌으로 해주십시오."
"일반 가정집? 너무 심심하지 않습니까?"
"휴식을 위한 공간이니 과한 것보다는 낫습니다. 그냥 침대 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면 충분합니다."
한옥 구조가 내 추억을 되살리게 하는 구조라면, 둘째는 히로인 여럿을 초대하여 즐기는 섹스방이다.
이른바, 난교룸.
이제 지휘관으로서 1:1 섹스는 존재할 수 없다.
무조건 두 명 이상과 서로 살을 섞게 될 것이며, 넓은 침대가 있는 공간은 여럿이서 섹스를 하는데 최적화 된 공간이 되리라.
그리고 마지막.
"마지막은 이것대로 해주시길."
"이건…?"
"펜트하우스의 구조입니다."
이는 내게 있어 정말 의미 깊은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다른 곳도 아닌 '그'가 20년의 지구에서 집처럼 생활하던 여의도 C 호텔의 펜트하우스를 그대로 옮겨둔 구도다.
사실상 난교룸을 제외하면 20년의 지구에서 가장 많이 기거했던 장소를 그대로 구현해낸 것이나 마찬가지.
조금 부끄럽기는 하지만, 게임 속에서나마 예전의 기억을 되살려 보기에는 충분했다.
그에게 다시 알려줄 것이다.
인게임 속 창염의 피닉스를 붙잡아 지휘관으로서 강간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면 그는 20년의 지구에서 상당히 짜증을 일으켰던 창염을 무참히 대리 강간하는 느낌을 받을 것이고, 나는 내 아래에 깔린 게임 속 창염과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러면 그도 기억이 나겠지.
사실은 그로부터 빼앗은 기억 중에는 겉으로는 자는 것 같았지만, 정신 세계 속에서는 몇 번이고 섹스를 했다는 것.
"이 정도면 됐습니까? 푸흐흐."
그와의 추억이 깃든 장소를 게임에서 구현하여 다른 히로인들을 마구잡이로 따먹는다.
20년의 지구에서 그렇게 내가 다른 여자들과 섹스 좀 하라고 해도 안 했다.
하지만 내가 상황을 만들고나면, 인게임의 몸으로라도 섹스를 하지 않을까?
이게 다 아키택트 덕분이다.
* * *
잠시 뒤.
지휘관이 아키택트가 만들어낸 한 방에서 유성이 보낸 침대 등을 움직이며 인테리어를 하는 사이, 아키택트는 다시 위로 불려와 취조 아닌 취조를 받게 되었다.
"하나는 궁궐, 하나는 섹스방, 하나는 호텔 펜트하우스라고요?"
"그, 그래."
아키택트는 사실대로 전했다.
아니, 이미 이들은 이 사실을 아키택트의 마도기어를 통해 도청하여 전해들었다.
"섹스방은 그렇다 치고, 궁궐같은 방도 아키택트의 취향을 생각해서 만들어달라고 한 걸 수도 있어요."
"그럼 사실상 오빠가 바라는 진짜 방은 펜트하우스라 이거야?"
모두가 혼란에 빠졌다.
지휘관이 바라는 구조가 호텔의 펜트하우스라니, 뭔가 생각하기 어려웠다.
"혹시 그거 아니겠습니까? 미국에 계셨을 때 지냈던 공간인 겁니다."
"일리가 있네. 지휘관이니까 따로 집을 구하거나 하지는 않았을 지도 몰라. 언제 어디서든 습격을 받을 수 있고, 또 아는 부호의 지원 덕분에 호텔에서 지냈을 가능성이 있어."
모두가 결론에 다다랐다.
지휘관은 과거에 지냈던 펜트하우스의 모습을 구현해내려고 한다는 것을.
"난 또. 신혼집이라도 만드는 줄 알았네."
누군가 안도하는 한숨을 내쉬자, 모든 마법소녀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며 겸연쩍게 웃기 시작했다.
"신혼집이라니. 설마 지하에 집을 짓겠음?"
"그러니까요. 어디 뭐 다른 곳에 짓기 전에 예행 연습을 하는 것도 아니고…."
꿀꺽.
설마. 아니겠지.
모두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고, 이는 결국 시선의 화살이 아키택트에게로 모일 수밖에 없었다.
"아키택트?"
"모, 몰라! 그냥 만들어달라고 했지, 내가 왜 이렇게 만들어달라고 하니까 적당히 얼버무렸다고!"
"얼버무렸어도 그걸 알아와야죠!"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아키택트는 진심으로 억울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대답할 수도 없는 부분이었다.
"펜트하우스 구조는 전부 지휘관 머릿속에서 나온 건데, 내가 어떻게 그걸 아…."
삐비비비.
아키택트의 마도기어가 울리기 시작했다.
마법소녀들은 모두 입을 꾹 다물었고, 아키택트는 조심스럽게 마도기어의 연락을 받았다.
"예, 지휘관."
[지금 '파티룸'에 와있습니다. 여기, 생각보다 더 좋네요.]
"그, 그렇습니까?"
파티룸.
무슨 파티인지는 마법소녀들 사이에 굳이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지휘관?"
[뭡니까?]
"펜트하우스에 뭐 결혼할 여자를 안고 같이 산다거나 그런 건 아니죠?"
저질렀다.
아키택트를 향한 압박이 너무 거셌기 때문일까?
아키택트는 냅다 저지르고 말았다.
"혹시 나중에 결혼했을 때를 대비하기 위함입니까?"
[펜트 하우스는 제 추억이 깃든 곳입니다.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추억이요? 어떤…?"
[사랑하는 사람과의 기억이 남아있는 곳입니다.]
순간.
모두가 굳었다.
마도기어를 통해 들려오는 지휘관의 목소리에는 그리움과 사랑, 그리고 애틋함이 묻어있었다.
[물론 이제는 더이상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도 제 가슴에서 나온 지 오래고요.]
"아…."
어지간해서는 그런 표현을 하지 않는 지휘관이 가슴에서 떠났다고 표현했다.
"혹시…?"
[영영 이별했습니다. 이제 이 세상에서는 못 봅니다.]
"그런…."
[뭐, 그건 그렇고. 좀 불러주시겠습니까? 여기 침대 좀 테스트해봐야하는데.]
지휘관의 목소리가 능글맞아졌다.
[아무나 세 명 좀 파티룸으로 불러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