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921화 (921/1,497)

EP.921 2부 8장 06 그 사람 내 눈에만 보여요

아키택트의 합류.이를 통해 우리는 마법소녀들을 위한 보지시설, 아니 복지시설을 만들어냈다.

개인 휴게실이라고 해봐야 당장은 일반적인 투룸의 내부 공간 크기였지만, 직장 내에 자신만의 다른 공간이 있다는 것이 이들에게는 정말 큰 기쁨과 도움이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섹스방이지만.'

이 방들의 목적은 휴게실이지만, 마법소녀와 지휘관의 휴식이 다른 방에서 따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전부일까?

결코 아니다.

"아니, 샤워실이 왜 필요해?"

"꼭 필요해요. 모든 방에서 이어진 공동샤워실을 만들우주시든, 아니면 개인별로 샤워실을 만들어주시든 샤워실은 꼭 필요해요."

"그렇습니다. 괴수들 상대하고 나서 얼마나 더러워지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여자라고 깔끔 떠는 거 아님. 혹시 돈이 부족하거나 그런 거면 우리가 돈 보태주면 되는 거 아님?"

"어휴, 이것 참…."

아키택트는 마법소녀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바닐라 판에서 그는 우리에게 서울 사람들을 구해주고 그들이 신서울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조건을 내걸었지만, 지금은 흔쾌히 우리의 부탁을 들어줬다.

"여기를 이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주는 대신, 나 진짜 서울을 네오 한양으로 만듭니다?"

"얼마든지."

피닉스였던 그를 상대할 때도 마구잡이로 말했던 그가 지휘관인 나를 상대할 때는 깍듯이 대한다.

그만큼 지휘관이 대단하다는 것이며, 나도 그가 충분히 수긍할만한 거래를 제안했기에 그는 나를 믿고 내 팀원이 되었다.

농담으로 복지시설, 네오 한양 이야기를 하지만, 우리는 엄연한 지구를 지키는 영웅들이다.

"혹시나 전장에 나설 상황이 생기면 다른 이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전장, 필드를 만들 것.

건물 외벽을 단단히 만들어서 혹시나 괴수나 괴물이 덮치거나 빌런이 난동을 부릴 때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내진 보강 공사를 할 것.

지하를 통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긴급대피통로나 패닉룸같은 시설을 만들 것.

그 외에도 혹시 뭐 요청할 것 있습니까?"

"일단 공적인 일은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는 사적인 이야기로 들어가자는 이야기지?"

"예."

"하여튼, 흐흐흐."

역시, 아키택트도 남자다.

"지휘관도 남자는 남자구만?"

"여자 좋아하는 건 똑같죠. 푸흐흐."

"푸흐흐? 자네 웃음소리 한 번 참 희안하구만. 뭔가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야. 그래, 마치 엄청 부려먹힐 것 같은 그런 느낌."

"설마요."

이스터에그도 아닐텐데, 왜 저러는 걸까.

아키택트는 사적인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나를 편안하게 대했다.

"아무리 그대가 지휘관이고 내가 그대의 팀에 소속되어있다고 한들, 장유유서의 법도에 따라 사석에서는 내가 말을 놓겠네. 알겠나?"

"...편한대로 하시길."

"그럼 나야 좋지."

아무리 나라고 한들, 위화감이 없을 수는 없다.

무슨 '사이완 맥클리스터'같은 이름을 가진 외국인 모습이면서 생활한복에 부채를 흔들고 있다니.

말세다, 말세.

그리고 세상은 진짜로 말세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래도 내가 만드는 지구를 지키는 히어로들을 위한 멘탈케어 시설일세. 섹스방이니 뭐니 하는 건 내 의도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거야."

"노벨의 다이너마이트 같은 거죠. 이해합니다."

"크흠, 내가 노벨같은 위인 정도는 아니고."

한국인이든 명예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사람은 기본적으로 칭찬받기를 좋아한다.

아키택트도 아닌 척 하지만 자신의 이능력에 대해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나쁜 것 같지는 않았다.

"약속은 잊지 말게. 내가 만들 네오 한양 계획을 철회하기 없음이야."

"걱정마시길. 나중에 당신의 계획을 적극적으로 밀어줄 정치인도 한 명 섭외하겠습니다."

"뭐? 정치인? 크하하! 이 나라에서 그런 짓을 하자고 하면 나라가 뒤집어질 걸? 아무리 대통령이라고 해도 그건 안 돼. 서울이잖나?"

"그건 해봐야 아는 법이지요. 대원군이 광화문 다시 지으라고 했을 때 사람들이 찍소리 하기나 했습니까?"

대원군.

나는 훗날 대원군이라 들릴 여자를 지칭했지만, 아키택트는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다르게 알아들었다.

"크흐흐, 하긴. 뭐 서울을 재건할 방법이 네오 한양이 아니면 불가능하기는 하지. 내가 서울 전체 규모 단위를 빠르게 복구하려면 내 생각대로 다시 만드는 게 더 빠르니까."

"나중에 전통문화 복원가들만 따로 모아서 팀을 꾸리게 해드리겠습니다. 현대식 건축가들의 도움도 받게 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아키택트가 주축이 될 겁니다."

"맡겨만 주시게. 서울이라는 도시가 1925년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2125년의 미래로 나아가도록 하는 모습이 될 테니. 흐흐, 이 나라가 세계를 지배한 미래사회의 모습이 네오 한양이 될 것이야. 하하하. 어디, 63빌딩을 '영등포구 63층 목탑'으로 만들어볼까? 으하하하!"

"......."

이 남자.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지만, 나는 20년의 지구에서 이미 엄청난 짓을 저지른 걸 눈으로 확인했다.

만약 최종결전 이후.

내가 한 달만 더 그곳에서 지냈더라도, 나는 여의도가 하늘로 떠오르는 것을 직접 목격했을 것이다.

동시에 지하에는 테라에서 본 가이아나 왕국을 본딴 듯한 모습이 펼쳐져 있는 것을 눈으로 봤을 것이다.

A급인 아키택트는 건물을 있는 그대로 복구하는 게 한계지만, S급인 아키택트는 건물을 자신의 공상대로 '재구축'할 수 있으니까.

"자네는 코어를 최대한 많이 모아주시게. 알았나? 아파트 한 동을 다시 세우려면 최소한 B급, 아니 A급의 코어가 필요해."

"그렇게 재건축한 아파트가 2012년 전의 아파트잖아요?"

"그렇지."

"그럼 코어만 모아두도록 하죠. 차라리 공동가옥 형식의 한옥으로 만들어지는 게 더 좋을 겁니다. 층층이 한옥을 쌓아올리는 식으로."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닌데. 그건 중국 스타일이지. 우리 나라 건물 중에 관의 건물 말고 사람 사는 집을 층 쌓아올리는 걸 본 적이 있나?"

아키택트는 우리 나라라고 말했다.

"다 양놈들 건축방식을 따온 거지. 이 땅의 정서에 맞지 않는 구조야. 쯧쯧."

"......."

위화감은 어디에.

"그래도 서울의 상황을 아시지 않습니까. 밀집된 인구가 한 곳에 모이려고 하는 걸."

"그렇지. 그래서 많이 죽었어. 한강 다리가 폭파되는 바람에 강북에 있는 사람들은 강 너머로 넘어가지도 못하고 살아야만 했지. 그래도 나는 말일세, 이왕 네오 한양을 만들 거라면-"

"네오 한양은 최대한 현실과 타협해주세요. 당신이 원하는 이상의 땅은 저기 비어있는 곳에 해드릴테니까."

"비어있는 곳이라니, 이 땅에 그런 곳이…."

순간.

아키택트의 눈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네, 설마…?"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이 나라의 헌법 중 바뀌지 않는 것이 하나 있더군요."

게임 속 세상이지만, 선의철이 헌법까지 건드리거나 하는 경우는 없었을 것이다.

10번째 히로인 백희아.

그녀의 '10'번에 담긴 의미는, 10차 개헌을 의미하기도 한다.

"헌법 제 3조. 한반도의 영토는-"

"한반도의 영토는 한반도 전체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

"...헌법을 외우십니까? 저는 인터넷 보고 찾은 건데."

"아니, 이 사람아. 그 나라의 헌법 정도 앞에 것 세 개 정도는 외워야지."

아키택트의 말에 나는 더이상 대화할 기력이 없어졌다.

"정말. 결혼 귀화한 저도 기가 찰 정도로 애국심이 넘치는 군요."

"응? 자네, 결혼 귀화를 했나?"

"...아, 실례."

실수로 현실 이야기를 꺼냈다.

"마음은 이미 결혼으로 귀화했습니다. 어차피 지휘관으로서의 삶이 끝나면 한 명의 인간으로 살아야 하니까요."

"미국인으로 사는 게 더 좋을텐데?"

"그거라면…."

게임 중이지만, 진심을 담아.

"저는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서 함께 살겠습니다."

나는 이 나라 국적을 가진 국민이다.

"제 파랑새가 한국인이라서요. 푸흐흐."

* * *

잠시 뒤.

지휘관과 이야기를 마치고 홀로 임시 숙소로 향하던 아키택트는 의문의 이들로부터 납치를 당했다.

"......."

생기라고는 도저히 느껴지지 않는 이들에 의해 붙잡힌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무리 지휘관이라고 한들 주변인에게 신경을 많이 쓸 리는 없었으리라.

그래, 자신에게 S급 이능력자를 붙여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 S급 이능력자에게 붙잡히게 되는….

"킁킁…?"

아키택트는 기시감을 느꼈다.

자신을 납치한 자로부터 풍겨오는 향수는 정말 기이한, 사무실의 구석에서나 느낄 수 있었던 정말 희안한 냄새였다.

마치 치약과도 같은-

"민트초코?"

"후냥?! 걸렸다냥?!"

익숙한 목소리다.

아키택트는 진심으로 소름이 돋았다.

"...절풍의 펜릴?"

"내 이름을 알고 있냥?"

"모르고 자시고…."

서울에서 제법 오랜 기간을 살았지만, 그는 문신사의 아래에 있는 동안 13년 동안의 지식을 전수받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가장 주의해야할 자들인 다크 레기온에 대해서도 전달 받았다.

그리고 그들이 이미 지휘관의 마수에 떨어졌다는 것 또한 더더욱.

"어떡하냥? 눈치챘는데."

"그러니까 먹고 나서 양치하라고 했지."

"눈치 못채면 바보지. 그 인간이 직접 팀원으로 들이겠다고 한 '남자'야.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마암룡 아지다하카에 지륜의 히드라까지…?"

"저기."

아키택트의 눈을 가리고 있던 어둠이 사라졌다.

아키택트는 운전대를 잡은 히드라와 조수석에서 고개만 돌린 아지다하카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냥 '다하카'나 '아지', 그리고 얘는 '히드라'라고 불러."

"이 몸은 김펜릴이다냥."

"긴장 풀어. 우리가 너 잡아먹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호, 혹시…."

아키택트는 공포에 질렸다.

"서, 설마 저를 죽이려고 하는 겁니까? 당신들이 지휘관과 하는 걸 봐서…?"

아무리 아키택트라고 한들, 죽음의 공포 앞에서는 두려워질 수 밖에 없는 노릇.

"아니. 전혀. 죽일 거면 우리들 방 만들어달라고 하지도 않았지."

"그, 그럼…?"

"따라와."

끼이익.

아키택트는 어떤 건물에 들어갔다.

제법 넓은 창고처럼 보이는 그곳에는 이미 다른 이들도 있었다.

"...겨울 공주? 그리고 저 여자는 혹시...헉…!!"

선겨울.

거기에 부산에 있어야 할 여자까지.

사실상 마법소녀 매지컬 큥큥스에 소속된 '모든' 여자들이 모인 곳에 불려온 그는 죽음과는 또다른 공포심이 느껴졌다.

"저기."

또각, 또각.

정면에서 걸어오는 가벼운 가디건 차림의 단발 여인은 아키택트와 시선을 맞추며 옅게 웃었다.

"사장님이랑 이야기하셨잖아요."

"그, 그렇지. 유나...양?"

"사장님이 하신 말씀, 정확하게 기억하시죠?"

유나는 뭔가를 꺼냈다.

그의 앞에는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치즈케이크가 조각으로 잘려있었다.

"그, 그만둬! 나에게 한반도 이국에서 나온 음식을 먹이려고 하는 거지?!"

그것은, 이미 식습관이 한식으로 정형화된 그에게 있어 고문이었다.

"뭘 원하는 지는 모르지만 내가 잘못한 건 없어!"

"네. 맞아요. 순순히 말하면 잘못은 아니죠."

"뭘 말하라는 거야?!"

"저희가 궁금한 건 그냥 그거예요."

유나는, 그리고 유나의 뒤에 선 모두가 웃었다.

"사장님이 누구를 좋아하나."

"뭐, 뭐…?"

"결혼을 여럿과 한다면, 누구를 가장 첫 번째로 할 것인가."

유나가 치즈케이크 조각을 포크로 찍어 아키택트의 앞에 놓았다.

"아저씨는 남자니까, 사장님이랑 남자 대 남자로 이야기할 수 있죠? 그러니까 물어봐줘요. 사장님이 '사랑'한다고 하는 '파랑새'가 누군지."

"......."

아키택트.

시설전문가인 그는 마법소녀들의 사랑 스파이가 되어야했다.

"당신, 테라로 출근 안 해요?"

"너 게임하는 동안 나 테라 가는 거 안 볼 거잖아. 그럼 안 가지."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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