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20 2부 8장 05 언더 커버 보스
<6월 21일 밤, 신서울 마법소녀 매지컬 큥큥스 사무실.>
게임마다 구성이 다양하기는 하지만, 이 게임은 플레이를 하면서 열리는 기능이 정말 수도 없이 많아진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2층의 사무실을 집중적으로 개조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플레이를 하면 2층 사무실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곳이며, 이곳에서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는 만큼 설비도 최신식 설비를 들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게임은 다른 곳에도 투자를 할 수 있다.
어떤 특정 지역에 막대한 후원금을 지급하면 이 욕망이 얽혀 던전과 같은 곳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주인공의 숙소인 가온누리에 투자를 하면 누리와의 아주 특별한 플레이를 할 수 있게 되는가 하면.
1층 카페에 투자를 하면 가장 예쁘고 귀엽고 아름다운 히로인 루트가 열리는가 하면.
"이렇게 만들면 되나?"
"완벽합니다."
이렇게 청송특별교도소에서 아키택트를 구출하냐 하지못하느냐에 따라 '지하' 시설이 개방되냐 마냐가 갈리게 된다.
그를 살려서 탈출시키는데 성공하면 바로 '지하'가 개방되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지만, 그를 살리지 못한다면 지하는 영영 개발되지 못한다.
그리고 게임오버된다.
다회차 플레이어들은 게임오버되지 않는 방법을 알고 있지만, 아키택트를 통해 지하로 들어가는 비밀 입구를 알아내지 못한 이들은 대부분 본인이 메인 스토리의 플롯을 꺾어버렸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배드 엔딩을 맞이하게 된다.
프로페서 H를 구하지 못하고.
다른 단서를 찾지 못하고.
그대로 큐브의 힘을 손에 넣어 S급으로, 그리고 진정한 세뇌술사로서 각성한 문신사에 의해 한국은 끝나버리고 만다.
아키택트는 이를 막기 위한 가장 빠른 길이며, 쉬운 길이며, 기능적으로 큰 도움을 주니 제발 구하라고 설계해놓은 중요 NPC다.
1층의 후안이 미연시적으로 큰 도움을 준다면, 지하의 아키택트는 시설적으로 큰 도움을 준다.
아키택트의 능력은 건축이다.
처음에는 무너진 건물을 재건하는 수준이었지만, 서울에서 지하를 오랫동안 파낸 결과 그는 지하에 마음대로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내가 서울 사람들 살려볼려고 진짜 발악을 다했지. 그러다가 딱 각성했다 이거야. 사람들 살리라는 조상신의 계시였는지, 아니면 그 땅에 서려있는 호국 영령들의 뜻이었는지. 캬, 내가 능력을 각성했던 곳이 현충원이었다 이거야."
"그, 그렇군요."
그가 마음만 먹으면 지하가 없던 곳도 특별한 공사 없이 지하실을 마구잡이로 만들어낼 수 있다.
"아마도 후자일 거야. 외국에서 태어난 사람이지만, 진정으로 나라를 생각하는 이의 마음을 호국 선열들께서 알아주신 거지. 덕분에 나는 지하를 파내서 괴수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길을 막고, 사람들이 들어오게 만들었어. 그리고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은 게…."
아키택트는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는 선겨울을 가리켰다.
"이 공주님이지."
"...저는 돌아가신 줄 알았어요."
"하하, 미안. 내가 명줄이 좀 길어서 그 정도로는 안 죽어."
아키택트트는 소나무부대에 의해 붙잡혔다.
다행이라면 다행스럽게도 DLC 업데이트로 선겨울이 지하에 안전체계를 만든 덕분에 지하에서 마구잡이로 죽는 사람은 없었지만, DLC가 업데이트 되지 않은 바닐라에서는….
-아키택트가 없어진 결과, 괴수들이 서울 주민들을 습격했지. 결국 그들 또한 살아남기 위해 괴인이 되었어.
서울에 살아남은 사람은 없게 되었다.
빌런들은 3월의 서울 수복 작전으로 모조리 붙잡히거나 살해당했다.
DLC는 잡힐 악당들만 잡히고, 살아남은 이들은 선겨울에 의해 분류된 '선한 자'들 이었다.
아키택트는 이전에 붙잡혔다.
DLC업데이트로도 어떻게 아키택트를 도와줄 수 없었던 게, 그는 DLC 히로인에 불과한 선겨울과 달리 메인 이벤트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남자다.
"그래서 지휘관. 정말로 그 미친 여자를 붙잡을 수 있다 이거지?"
"물론입니다. 세계구급 빌런들도 붙잡았는데 설마 한국에서 노는 빌런을 잡지 못하겠습니까?"
나는 내 허벅지에 머리를 이고 누운 두 여자를 가리켰다.
그리고 또 한 명, 내 뒤에서 목을 백허그하며 얼굴을 비비고 있는 여자도 가리켰다.
"이미 저는 다크 레기온의 세 명을 설득해서 지구편으로 만들었습니다."
"좆으로?"
"세계를 구하는 좆이죠. 보지로 구하고 싶었는데, 태어난 게 이 몸으로 태어난데다가 유감스럽게도 좆이 더 효율적이어서."
"...하긴. 초능력으로 세계를 구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좆으로 세계를 구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금발벽안으로 외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으로 귀향한 남자답게, 역시 생각이 유연하다.
"일단, 설명해도 되지?"
"물론입니다."
인게임 플레이.
그는 자신이 문신사에게 붙잡혀 대전의 지하 연구 시설에 무엇을 만들었는지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허공에 손을 뻗었다.
"스킵인 거시에요."
설명을 하는 건 해도 내가 한다.
그리고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를 굳이 또 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금방 공략될 지하실, 뭐가 어디에 있고 하는 건 인게임에서 다 듣고 있으니까. 푸흐흐."
다시, 현실.
나는 헤드기어를 내려놓고 내 옆에 누워있는 그의 상태를 살폈다.
"어때요? 게임은 잘 되어가고 있어요?"
"응. 그냥 적당히 오토로 돌려놓고 왔어. 너처럼."
그는, 어쩌면 진짜 '지휘관'이라고 해야할 그는 스마트폰이 아니라 나의 게임 플레이를 보고 있었다.
"너는 아키택트로 뭐 만드는 게 처음이잖아."
그는, 심지어 위키에 정리된 아키택트의 지하실 목록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렇네요. 생각해보니 아키택트에게 뭘 만들 수 있는지 들을 필요가 없네요."
나는 그에게 안겨 물었다.
"말해주세요. 아키택트가 만들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 * *
<인게임, 6월 22일. 매지컬 큥큥스 사무실.>
"소개할게. 우리 팀의 시설 정비로 새롭게 일하게 된 <아키택트>, 제임스 리 라고 하는 분이야."
"만나서 반갑네, 마법소녀 제군."
"......."
마법소녀들은 혼란에 빠졌다!
그도 그럴 것이, 슈리와 동향 사람이라고 생각될 정도의 히스패닉계 사람이 갓에 도포차림을 하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저기, 혹시 신서울에서 외국인이 살아가기 위한 어떤 방책으로 입고 계신 겁니까?"
"아니. 취향일세. 생활한복보다는 도포와 갓이 더 좋아서."
"아니, 제 질문 의도는 선의철의 외국인 배척 주의자들을 피해서 그런 옷을 입었느냐는 말이었습니다만."
"취향일세. 그리고 외국인이라니? 비록 지금은 주민등록이 말소되었겠지만, 나는 엄연히 이 나라 사람이야. 한국 이름으로 '이강산'과 '이강토'를 고민하다가 결정했지. 그런 이름은 한자 이름이잖나? 그래서 내 한국 이름도 '이땅별'이라고…."
"예, 예. 알겠습니다."
아키택트의 자기소개는 마법소녀들이 금방 그에 대해 파악하는 계기가 되었다.
[와패니즈 캐릭터 알지? 미국인인데도 캐릭터 산업을 바탕으로 '일본 좋아요'하는 캐릭터들. '위아부'라고 하는 거, 그게 대상이 일본이 한국이 되었을 뿐이지.]
일뽕이 국뽕이 되었다.
피닉스의 평가가 그랬고, 20년의 지구에서 내가 본 그도 그랬으며, 지금 게임에서 보는 모습은 더 심해졌다.
"이건 결코 내가 선의철이 만든 한국 최고의 이미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입은 그런 거짓된 변장이 아니야. 나의 몸에는 김칫국물이 흐르고, 아침으로 베이컨과 계란 대신 간장계란밥과 삼겹살을 먹고 사는 사람이다 이거지!"
모두가 깨달았다.
이 남자, 국뽕이라는 것을.
'청송이 기겁을 했을 정도였으니까.'
피닉스에게 들은 게임 속 이벤트로, 아키택트가 처음 문신사에게 붙잡혔을 때 빵과 스프를 제공받았다가 사흘 동안 단식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고 하더라.
그 뒤로 그의 식사는 오곡밥과 겉절이, 그리고 오신채가 되었다나 뭐라나.
"흠흠. 아무튼 이분께서 정식으로 우리 팀에 합류하게 되었어. 비전투원이지만 땅속성 A급이야."
"능력 쓰는 것 보면 S급 뺨치는 수준이지."
땅속성 간부, 히드라가 첨언하자 모두의 눈이 달라졌다.
"매일 매일 마력을 한계까지 쥐어짜며 능력을 사용한 결과, 이미 능력을 활용하는 기능은 S급에 도달했어."
"어떻게 그렇게 된 건가요?"
"아, 그거? 별 거 없고, 사람 살리느라 고생 좀 했지. 하하."
나는 아키택트가 서울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자세히 알려줬다.
수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매일매일 피를 토하며 지하에 토굴을 만들고, 괴수들이 지하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땅길을 허물고 다시 재건하기를 반복했다는 이야기에 모두가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감동하여 눈물을 질끔 흘릴 정도였다.
국뽕만 아니었다면, 정말 히어로 그 자체인 양반이었다.
"하여튼 나한테 땅에 관련된 일이라면 뭐든지 말해. 건물주인 후안 씨한테 허락도 받았으니까."
"사장님이 허락하셨어요?"
"신음소리 허공에 울리는 것보다는 땅으로 퍼지는 게 더 좋지 않겠냐고 하시더라."
모두의 얼굴이 붉어졌다.
특히 라온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농담이고, 지하에 따로 공간 하나 만들어드리기로 했어."
"내키지는 않지만 외국인이 한국에서 느끼는 향수병 같은 건 나도 잘 아니까. 그의 고향처럼 하나 만들어주기로 했지."
불법증축이기는 하지만 건물주의 허가도 받았다.
이제 남은 건 '어떤 방'을 만드느냐 하는 문제.
"아, 엘레베이터는 안 되는 거 알지? 그 정도까지는 안 되더라도, 얼마든지 방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 말씀."
"공사는 유성의 협조를 구하기로 했어. 전선 문제는 신경쓰지말고, 원하는 대로 해."
[만약 공사가 어려울 경우, 어디 전기를 뿜어내는 괴수를 붙잡아 괴인으로 만들어 발전기로 쓰면 되지. 말 그대로 뭐든지 가능하니까, 마음껏 방을 만들어달라고 해.]
넝담.
그나 나나 청화단 시절이면 진짜로 그렇게 했겠지만, 지금은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돈 걱정은 하지마. 지하라는 것만 빼면 정말 최선을 다해 만들어줄테니."
"그, 사장님. 혹시 용도는…."
"당연히 그거지."
큥큥.
"개인별 휴게실이야."
마법소녀들을 위한 보-옥-지 정책의 일환이다.
"나만 믿으라고. 뭐든지 말만 해."
아키택트는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장담했다.
"아주 대궐 같은 방으로 만들어줄테니까."
훗날.
아키택트에게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한 누리가 받은 방은 진짜 조선시대 사극에서나 나올 법한 방이 되었고, 누리는 이후 누구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방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래.
지하의 섹스방을.
우리는 이것을 '큥큥방'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DB61-39UCTG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