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909화 (909/1,497)

EP.909 [라노벨외전] 창천의 데스디나스 2권 026

돈지랄, 돈다발 싸다구, 다이아 공기 놀이, 지폐 비행기 등.

돈 아까운 줄 모르고 펑펑 써대는 한국 최대의 또라이라고 불리는 여자를 두고 세간은 이렇게 불렀다.

유성가 개망나니.

유성의 회장인 은하수의 금지옥엽이며, 1년에 어지간한 지자체 예산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사용하는 소비의 신.

은유하(銀流河).

그가 시안의 앞에 건물주로 모습을 드러냈다.

* * *

"...그러니까 커피 맛이 떨어졌으니까, 그 원흉인 저보고 이 건물에 들어오라?"

"네. 어디서 그런 원두 구하기 쉬운 줄 알아요?"

유성가 개망나니, 은유하는 다리를 꼰 채 부채를 펼쳤다.

S급 괴수로 알려진 푸른 불사조의 깃털을 주워다 만든 부채는 시가로 수백억에 달하는 보물이었다.

"기껏 좋은 원두 생겨서 자주 가고는 했는데, 지난 달부터 급격히 원두의 질이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그 이유는 말 안해도 알죠?"

"......사장님이 바쁘셔서?"

"맞아요!"

착! 은유하가 부채를 접었다.

"전세계 적으로 내노라하는 바리스타의 실력을 바래게 만들었다고요! 당신이! 당신이 거기에 사무실 차리고 사람들이 늘어나서!"

"죄송합니다."

시안은 고개를 숙여야 했다. 은유하는 그걸로 끝이 아니라는 듯 시안을 더욱 쏘아붙였다.

"브라질 세하도 농장이 던전화되면서 베이스 원두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워졌는지 알아요? 자메이카는 나라 자체가 괴수한테 멸망당하면서 블루 마운틴 원종을 이제 지구 상에서 더는 구할 수가 없게 됐다고요! 아무리 던전 클리어 보상으로 커피콩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원두는 전문가가 최적의 환경에서 씨를 뿌려 농사지은 최고의 콩으로 볶아야 제 맛이 난다고요. 코어 블렌딩? 인스턴트 커피 메이킹 스킬? 수속성 마력으로 우려내는 콜드 브루? 그건 커피 마실 줄 모르는 멍청이들이나 하는 짓이죠! 어떻게 커피를 마시는 데 그런 참담한 짓을 저지를 수 있죠?! 그에 비해 후안 바리스타 님께서는 해외에서 힘들게 직접 원두를 수입해서 한 알 한 알 원두를 고르시고는 그걸 기계를 안 쓰고 손으로 직접 빻아서 곱게 가시는, 오랜 시간 수작업으로 정성을 담아 귀신같은 밸런스를 잡아내시는 분이란 말이예요! 그런 분이 커피 맛도 음미할 줄 모르고 얼음물 목구멍에 처붓는 사람들 상대로 고작 인스턴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팔고 계시다고요! 으으! 세계 최고의 바리스타를 겨루는 월드컵이 아직까지 이어졌다면 시그니쳐 블렌딩으로 전세계 커피 매니아들의 혀를 희롱하실 세계 최고의 바리스타가! 이봐요! 듣고 있어요?!"

"저, 실례입니다만."

시안이 손을 들어 은유하의 말을 끊었다. 하유준이 은유하의 것만 가져온 바람에, 둘은 마실 물도 없이 은유하의 커피 예찬을 들어야 했다.

"저희도 좀 마실 거 챙겨와도 됩니까?"

"당연하죠. 야, 하유.... 참, 디저트 사오라고 했지."

은유하는 헛기침을 하며 턱으로 탕비실을 가리켰다. 건물주는 그였지만 '갑' 답게 을에게 마실 걸 직접 가져오라 명령하는 갑질의 전형이었다.

시안은 적당히 따뜻한 물을 종이컵에 부으며 유나에게 물었다.

"유나야, 뭐 마실래?"

유나가 은유하를 눈으로 흘기더니 손을 들었다.

"전 믹스 커피요."

"호오."

선전포고였다. 유나는 은유하를 향해 싱긋 웃었다.

"아메리카노니 에스프레소니 해봐야, 그냥 볶은 콩일 뿐이잖아요. 단 맛으로 마시는 거지 풍미나 향이 무슨 의미가 있어요? 쓰기만 한데."

"지금 그 볶은 콩이 홍차나 녹차 싹 다 밀어내고 전세계 후식 1등 먹은 건요?

은유하가 입꼬리를 부들부들 떨며 따지고 들었다.

"수능 시험에서 하나 틀렸다 하시더니 카페인 도움 한 번 도 안 받으셨어요?"

유나가 입을 손으로 가리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어머. 죄송해요. 평소라면 만 점이었는데 들어갈 때 커피 얻어마셔서 언어 듣기 첫 문제 틀렸거든요. 그 커피 진짜 맛없어서 뱉었는데."

"후후, 그건 다 원두가 싸구려라서 그래요. 좋은 원두에 적절한 코어 공정이 도입되면 맛도 맛이지만,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카페인의 요소를 최소화 할 수 있죠. 개인적으로는 옛 방식을 선호하지만, 그 믹스가 어떤 쓰레기 회사 제품인지 몰라도-"

"유성식품 믹스였는데요."

"......."

"......."

침묵. 은유하는 커피를 살짝 마시며 물었다.

"......이유나 씨 수능 언제 보셨죠?"

"2년 전 11월이요."

시점을 빠르게 계산한 은유하는 여유로운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유성식품 재민 오빠한테 넘긴 시점으로부터 딱 한달 뒤네요, 그러면. 아, 안타까워라. 제가 관장했던 시기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무슨 소리에요?"

유나가 말을 잘랐다.

"그 때 유성에서 기존 커피믹스 재고 처리한다고 그 이벤트 해서 한창 이슈됐는데. '유성 믹스 커피 테러 사건'으로 전국 수험생들 시위하자고 난리였던거 기억 안나세요? 수험장에 있던 학생들 1교시 언어 끝나고 전부 양치하러 간거 모르세요?"

"......."

"......."

유나와 은유하가 휙 고개를 돌렸다.

"시안 님, 나가요. 아무래도 여기는 튼 것 같아요."

유나의 말을 들은 은유하가 곧장 하유준에게 전화를 걸어 소리쳤다.

"야, 하유준. 네가 책임지고 사무실 구해줘. 아빠고 나발이고 여긴 내 건물이야."

[예?!]

고작 커피 때문에 수 십억 짜리 임대 계약이 날아가게 생기자, 시안과 하유준은 각자의 파트너를 달래기 위해 진땀을 뺐다.

"유, 유나야. 여기 진짜 위치는 좋거든? 아, 너희 집이랑도 가깝다! 유나 출근하기 진짜 편하겠네!"

[아가씨. 비단 회장님 지시 때문이 아니더라도, 시안은 저희 유성에 있어 상당한 우량 고객입니다. 지난 번에 아가씨께서 경적 소리가 마음에 안 든다고 창고에 넣으셨던 트럭도 이 친구가 구매했던 겁니다.]

"아, 그 장난감 산 호구가 댁이었어요?"

시안의 고개가 훽 돌아갔다.

"뭐요? 자, 잠시만요! 형님 저한테 사기 친겁니까?! 도로 한 번 안 나간 신삥이라며요?!"

[......시안, 아가씨께서 운전석에 딱 한 번 앉아보고 창고로 들어간 물건이다. 아가씨 말고는 그 누구도 그 자리에 앉은 적 없어.]

유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시안의 허벅지를 잡고 시선을 맞췄다.

"시안 님. 이참에 트럭 팔아버리는 건 어때요? 감가상각 별로 안 될 것 같은데."

"야. 그거 다시 사들여. 팔아치운 값 세 배 쳐서 사와. 그리고 폐차해버려."

치지직. 유나와 은유하가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시안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신세를 한탄했다.

'이름도 비슷한 애들끼리 이게 무슨....'

"애들 아니에요. 저분 시안 님보다 한 살 더 많아요."

"드, 들었니?"

시안은 식겁했다. 또 저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왔고, 유나는 그걸 귀신같이 들어 시안의 오해를 정정했다.

"그보나 나보다 한 살 많다는 건...."

"......흐흐흐."

은유하의 입꼬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은유하.

1999년생.

2025년 현재, 올해 나이 27-

"만으로 26세 거든요?! 아직 젊거든요? 충분히 현역이거든요?"

"커피 자주 마시면 빨리 늙는다고 하던데."

탁! 은유하가 불사조 깃털 부채로 손잡이를 탕 내리쳤다.

"과학적 근거를 대세요! 국내, 해외 그 어떤 학술지의 연구에서도 커피가 피부 노화를 촉진시킨다거나 신체 나이를 가속화 한다거나 하는 연구 결과는 1 건도 없었어요! 출처가 어디입니까?! 히어로 위키죠? 헌터 위키 인가요? 분명 거기일 거예요!"

"유성일보요."

은유하는 고개를 훽 돌렸다. 유나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오늘 아빠가 읽어주시면서 말씀 해주시더라고요. 커피 자주 마시면 빨리 늙는다고."

"......."

"......."

은유하는 우아한 손길로 조용히 커피를 마셨다. 시안과 유나도 덩달아 커피로 목을 축였다. 노화가 어찌됐든 당장 눈앞에 있는 차는 커피였다.

"시안 씨."

은유하가 시안에게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이번 거래는 없었던 거로 하죠."

"아, 예. ....예."

시안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지만 감히 계약을 강행할 수 없었다. 제 왼쪽 허벅지 위에 올려진 유나의 오른손이 천근처럼 무거워, 계약서를 향해 도저히 손을 뻗을 수가 없었다.

하필 팔이 왼팔 뿐이라, 시안이 왼팔을 뻗으려면 유나의 겨드랑이 사이를 지나가야 했다. 시안은 차마 그런 짓을 저지를 용기가 없었다.

착! 은유하가 잔을 입에 대고 고개를 살짝 들었다. 홍옥같은 입술이 살포시 열리며 커피가 은유하의 입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꿀꺽.

시안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고, 오른쪽 허벅지의 무게에 눈을 살짝 찡그렸다.

"시안 님?"

"......하아, 어쩔 수 없네. 그러면. 여긴 인연이 아닌 가보다."

시안은 땅이 꺼저라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은유하는 마도기어를 두드려 계약서를 집어넣었다.

"다른 사무실은 알아서 구하세요. 뭣하면 하유준 데려다가 써먹어도 좋아요. 아빠 명령이기는 하지만, 하유준은 당분간 그쪽 소속이니까."

"역시...."

죽어라 유성 유성 거릴 때부터 눈치는 챘어야 했는데, 진짜로 유성맨일 줄이야. 시안은 자신의 안목이 부족했음에 탄복하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아가씨, 늦어서 죄송합니다!"

하유준이 헐레벌떡 뛰어들어와, 테이블 위에 비닐을 내려놓았다. 은유하가 눈썹을 찌푸리며 불쾌감을 드러내자, 하유준은 사색이 되어 벌벌 떨리는 손으로 내용물을 꺼냈다.

"말씀하신 Padre Juan의 삼단 초콜릿 무스 케이크 입니다!"

"......어?"

시안이 종이 상자 포장에서 꺼내진 조각케이크를 보며 눈에 이채를 띠었다. 유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뭐에요. 질 좋은 커피에 디저트는 곁들이는 게 상식 아니에요?"

은유하는 포크를 수직으로 세워 3층으로 구성된 초콜릿 무스 케이크를 세로로 길게 잘라 한 입에 삼켰다.

"흐으응!"

눈까지 감고 신음소리까지 내며 맛을 즐기는 모습에 시안이 허허 웃었다. 은유하가 그걸 눈치채고 검지를 들어 좌우로 흔들었다.

"아, 이거 드시고 싶으신가? 후후, 안타깝네요. 이걸로 말하자면 바리스타 후안께서 일주일에 딱 일곱 조각만 판매한다는 예약제 상품. 그 중에서도 추첨을 통해 선택된 7명만이 먹을 수 있다는 한정 디저트, -"

"그거 제가 만든 건데."

"시안 님!"

툭. 은유하가 들어올린 포크가 탁자에 부딪혀 바닥에 박혔다. 유나는 시안의 입을 막아버리고 싶어 눈치를 줬지만, 시안은 눈치채지 못하고 제 자랑을 시작했다.

"사장님한테 부엌 빌려서 가끔 만들거든요. 참고로 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총기의 이름인 Tripple Action Thunder의 줄임말...."

"계약하죠."

"네?"

은유하가 시안의 앞에 계약서를 다시 꺼내들었다.

"계약해요. 아니, 계약 해. 당장 여기다가 이름 싸인 해. 두 번 말하지 않아."

"저, 자, 잠시만요. 그러니까 지금-"

"죄송합니다."

유나가 시안의 왼손을 오른손으로 붙잡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래도 저희 새 보금자리는 여기보다 다른 곳이 더 좋을 것 같아요. 다른 사무실 알아볼테니까...."

"어머. 신서울 밖으로 가시려고요?"

"네?"

은유하가 부채를 팟 펼치며 얼굴 아래를 가렸다. 하지만 유나는 그 부챗살 너머 은유하가 웃고 있는게 명백히 느껴졌다.

"신서울에 있는 부동산 90%, 제 건데."

"......."

* * *

임대인 : 은유하

임차인 : 시안.w.히비스커스

임대인은 아래 부동산을 임대차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 * *

<잠시 뒤, 인근 스테이크 하우스.>

"돈은 굳었네요. 흥."

"......유나야, 케이크 바치고 이런 사무실 얻은 거면 누리 말로 '이득' 아닐까?"

시안은 입을 벌렸다. 유나는 잘라놓은 스테이크 조각을 시안의 입에 넣었다.

"시안 님 레시피 만든다고 시간 빼앗길 수도 있잖아요."

"아, 그건 괜찮아."

시안은 스테이크를 우물거리며 유나에게 손목을 뻗었다. 유나는 시안의 마도기어를 톡톡 건드리며 시안이 눈으로 가리키는 앱을 열었다.

"레시피는 차고 넘치거든."

"...이게 다?"

끄덕끄덕. 시안은 유나가 다시 집어준 아스파라거스를 베어 물었다. 유나는 시안이 수기로 작성한 온갖 디저트의 레시피를 보며 슬쩍 웃었다.

"시안 님."

"왜?"

"이거 만드실 때마다 시식은...."

"당연히 유나지."

나이스. 유나는 테이블 아래에서 조용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매번 만들 때마다 시식 부탁해서 미안해."

"그럴리가요. 덕분에 저도 잘 먹고 있는 걸요."

그 누가 케이크를 일곱 조각으로 정확히 나누겠는가. 시안이 자른 여덟 조각 중 하나는 항상 누군가의 뱃속으로 들어가고는 했다.

유나의 눈이 시안의 오른팔을 스쳤다. 유나는 합장하듯 박수를 치며 말했다.

"시안 님. 다음에 하나 만드실 때 제가 시안 님의 오른팔이 되어도 될까요? 시안 님 명령대로 움직일 게요. ...그거 하실 때도."

"커흑, 커헉!"

시안은 마시려던 물을 뿜었다. 유나는 여전히 생글생글 웃으며 시안이 흘린 물을 휴지로 닦았다.

"그, 그게 뭐야?"

"네? 반죽이요. 그보다 시안 님, 저 이거 만들어 보고 싶어요. 크림 파이!"

"......하아, 됐다. 그보다 내 팔 말인데."

시안은 자세를 바로잡으며, 비어버린 오른팔을 가리켰다. 유나도 장난기를 지우고 진지한 얼굴로 경청했다.

"...미국에서 '물건' 도착하면 금방 고칠 수 있을 거야."

"...? 뭔가 특별한 의수 같았는데, 그게 그렇게 금방 고쳐져요?"

"'교체만 하면' 되거든. 그러니까 너무 신경쓰지마. ...대신 그 때 까지 부탁 좀 할게. 아니, 앞으로도 잘 부탁해."

"얼마든지요~ 후후."

시안은 쑥쓰러움에 왼손으로 뒷목을 긁적였다. 유나도 주먹으로 입을 가리며 쿡쿡 웃었다.

"...슬슬 자리에서 일어날까?"

"디저트는 어때요? 유성 베이커리 가서 맛 평가나 해볼까요?"

"나도 그 생각했는데!"

"후후. 척하면 척이죠. ...후후."

행복이 있다면, 이런 걸까.

시안과 유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바보처럼 웃기만 했다.

제발, 이 시간이 영원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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