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907화 (907/1,497)

EP.907 [라노벨외전] 창천의 데스디나스 2권 024

- 아. 그런데 저 길드 가입은 해도 부산에서 당장은 못 나가요. 아무리 그래도 6백만 시민들 지킬 히어로 한 분은 있어야 마음이 놓여서.

"사기 당한 느낌이야."

시안은 석하랑이 떠나며 남긴 전언을 되새기며 이를 갈았다. 가입을 받아들이고 지장까지 찍은 석하랑은 곧장 태도가 돌변해 부산으로 부리나케 도망쳤다.

"부산 한정 치트키라고 생각하면 안 됨?"

"부산까지 내려가야 써먹잖아. 쳇."

시안은 툴툴거리며 부산 근처에 있는 던전들을 훑었다. 다행히 부산 외곽을 중심으로 던전은 많았고, 시안은 어떻게 하면 석하랑으로 뽕을 뽑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역시 S급 하나를 더 키워야 할 것 같아."

"그게 말처럼 쉽습니까?"

라온은 허탈한 얼굴로 시안의 꿈을 지적했다. 그가 유나와 누리를 발견한 것은 어디까지나 우연에 불과했고, 그나마 호위를 핑계로 좋은 인재를 구했던 면접도 하유준을 발굴한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고보니 유준 형님은 어떻게 됐지. 혹시 따로 이유 들은 사람 있어?"

"아저씨가 제일 친한데 우리가 어떻게 앎?"

하유준은 '오늘 급한 일이 있다'는 문자만 남기고 잠적했다. 중간중간 메세지를 넣으면 금방 답장은 했지만, 왜 오늘 오지 못하는 지 특별한 이유는 남기지 않았다.

"나중에 물어보기로 하지 뭐. 그럼 석하랑 자유롭게 써먹으려면 부산에 상주시킬 이능력자를 길러야 하는데...."

누리와 마찬가지로 잠재 S급에 해당하는 인재는 몇 있었지만, 이미 그들은 전부 다른 길드에 소속되어 육성되고 있었다. 시안이 오라클 스튜디오라는 명목으로 육성하려면 새로운 얼굴이 필요했다.

"아저씨.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음."

누리가 손을 들어 아이디어를 냈다. 시큰둥하게 듣던 시안은 생각보다 그럴듯한 누리의 아이디어를 수용했고, 그들은 협회의 도움을 받아 작은 장소를 하나 빌렸다.

- 그런 짓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다음 날 점심의 시안이 이 날의 시안에게 소리쳤지만, 들릴 리가 없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냥저냥 잘 되리라 생각했으므로.

* * *

<오후 2시, 히어로 협회 신서울 본부 1층 소회의실.>

☆ 스튜디오 직원 절찬리 모집 중 ☆

누리의 제안은 특별한 게 아니었다.

이유나, 박라온, 김누리, 하유준.

거기에 특정 조건 하에서만 기용이 가능한 김가온, 석하랑. 심지어 유나도 대외적으로는 E급 힐러를 자처해야 했다.

겨우 네 명으로 던전을 공략하며 실적을 쌓고 성장해나가기에는 D급 까지는 괜찮았으나, 그 이상은 좀 더 다수의 인원이 필요했다.

특히 시안이 오른팔이 날아가면서 일격필살기 같았던 '썬더'도 봉인되었으니, 전력의 공백을 상시 메우기 위한 뉴페이스가 절실한 순간이었다.

"유준 오빠 영입한 것 처럼 그냥 면접 보고 뽑자. 직원 확충한다는 핑계로."

"아예 던전 진입이 가능한 자로 모집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배우들 매니저가 배우 지망생인 경우처럼, 누리의 서포터로 들어온 이도 언젠가 또 새로운 육성 대상이 될 선순환이 이루어지리라 생각됩니다."

누리의 제안에 라온이 거들었고, 시안은 머릿속으로 스쿼드를 그리며 전력 충원 및 새로운 인재 영입에 대한 필요성을 인지했다.

"그러면 눈을 최대한 낮춰서 영입하는 거로 하자."

그렇게 시안의 팀은 협회의 작은 회의실 하나를 빌려 스튜디오 직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내걸었다.

네트워크 상의 구인 공고와는 달리 현장에서 직접 모집하는 거나 다름 없어, 유나는 먼저 전지를 빌려와 큼지막하게 글씨를 써서 벽에 붙였다.

"유나는 의외로 이런 쪽으로는 재능이 없구나."

"효율을 따지는 거예요. 꾸밀려면 얼마든지 꾸밀 수 있는데, 그게 목적이 아니잖아요."

"그렇긴 하지. 그래도 유나 새로운 면을 보게 돼서 좋네."

"칭찬하는 척 말 돌려도 아무 소용 없거든요?"

라고 말하는 유나는 책상 아래에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라온은 아예 시선을 돌리고, 누리는 마도기어를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때웠다.

"아무도 안 오네."

"저녁 먹기 전까지만 하고 갈까?"

시안의 제안에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팀원 모집도 중요하기는 했지만, 그게 그렇게까지 급한 일은 아니었다.

"얘들아. 혹시 주변에 추천할만한 사람 있어?"

기약없는 기다림에 지친 시안이 지인 찬스를 사용했다. 유나와 라온, 누리는 생각에 잠겨 추천인을 떠올렸다.

"저 한 명 있어요."

먼저 유나가 마도기어로 사진을 띄웠다. 유나가 아카데미 학부생일 때 찍은 사진들에 시안이 집중하는 사이, 라온은 유나가 가리킨 여학생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외국인?"

"염색에 태닝한 친구에요. 좀 특이하죠?"

특이하단 말로 넘어가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피를 머금은 듯한 적발에 구릿빛 피부는 한국에서 쉬이 보기 힘든 조합이었다.

"아, 시안 님. 얘가 걔에요."

"응? 걔 누구?"

"...지난 번에 차에서 시안님이 남자로 오해했던 그 친구요."

유나의 말에 시안은 기억을 떠올렸다. 석하랑의 학부생 전원 조기 귀가 조치에 학부생의 진실된 반응을 알려주던 아카데미 학부생. 그는 이제 학부생도 아닌 유나와도 연락을 주고받으며 친분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지금 무슨 등급인데?"

"마지막에 측정했을 때가 C...? D였나요? 잘 기억은 안 나요."

유나가 겸연쩍은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성장 한계치가 화속성 A급이라는 게 장점이라고 해야하나?"

"헐. 그 언니 최소 혼혈각이네. 한국인이 화속성 성장 한계가 무슨 A급이야?"

잠자코 있던 누리가 충격을 받은 얼굴로 유나의 지인이 가진 배경과 정체에 대해 파헤치기 시작했다.

물가촉천민이라고 할 정도로 수속성 마력을 깨우친 이들이 많은 반대급부라도 되는 듯, 이상하게 한국 땅의 이능력자들은 하나같이 화속성 성장 한계가 낮았다.

"토종 한국인 맞아. 걔도 일단 수속성부터 각성했거든."

"...안됐다. 상극 속성이라서 각성 더 빡실 것 같은데."

누리가 안타까움에 혀를 찼다. 수속성과 암속성이라는 서로 영향이 없는-오히려 음의 기운으로 비슷한 성질을 가진-자신의 경우와는 달리, 유나의 지인은 화속성에 막대한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필 수속성을 각성하고 말았다.

"1년 동안 노력했는데 화속성을 각성 못하더라고요."

"괜찮네. 나중에 연락 한 번 해보자."

시안은 유나의 눈치를 보며 마도기어에 메모했다. 잠재 화속성 A급의 아카데미 학생. 각성 마력은 수속성.

"그 친구 이름이 뭐야?"

"슈리예요."

"슈리예?"

"슈.리. ...진짜 본명이고 성은 정 씨니까, 그냥 만나면 슈리라고 부르시면 돼요."

"......? ...아, 으응."

시안은 메모에 별표를 쳤다. 성은 무시. 바로 이름으로 부를 것.

"혹시 다른 사람은 없어?"

"...아카데미에는 슈리 말고 다른 사람은 딱히 없어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라온은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제 지인들은 이미 다 은퇴했거나 길드 중진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느쪽이든 이미 자리를 잡아서 쉬이 저희 쪽에 들어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언니 그 '우사'라고 하는 아저씨랑 아는 사이 아니였음?"

마도기어를 만지던 누리의 질문에 라온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안이 턱을 쓰다듬으며 라온의 프로필과 우사의 관계를 추측했다.

"그 사람이 아마 천군의...."

"예. 제 옛 길드의 동료 히어로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설명은 하지만 라온은 어딘가 언급을 꺼리는 눈치였다.

"흠. 그런가?"

시안은 일부러 시큰둥한 얼굴로 히어로 위키를 슥슥 넘겼다.

이유를 캐묻지 않아도 라온이 코어가 깨진 이후의 행보를 생각하면, 그가 옛 길드원들과 사이가 좋지 않은 이유에 대해 약간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 누리 너는?"

"......아저씨 나 한 달 전까지 고딩이었거든?"

"아, 급식이었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아는 사람이나 추천할 만한 사람 있어?"

"......씨이, 아저씨 일부러 나 놀리는 거지?"

누리가 툴툴거리며 마도기어를 빠르게 조작했다.

"흥, 추천이 뭐 필요해? 자기들 알아서 오게 하면 되지. 기다려봐. 내가 아주 여기 여름방학 PC방보다 더 시끄럽게 만들어줄테니."

"그러셔?"

시안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마도기어를 조작하는 누리를 대수롭지 않게 넘긴 뒤, 하유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냐?]

다행이 이번에는 그와 연결이 되었다. 방금 샤워를 하고 나온 모양인지, 하유준의 머리에는 물기가 가득했다.

"방금 씻고 나오셨어요?"

[아니? ...어, 응. 그런 셈이지.]

이상하게 얼버무리는 눈치에, 시안은 눈을 게슴츠레 뜨며 하유준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는 흰 가운을 입고 있었고, 시안은 아무 말 없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길드원 좀 더 모집하려고 하는데, 혹시 주변에 괜찮은 사람 있어요?"

[괜찮은 사람? 흐음.... 꼭 이능력자가 아니어도 괜찮냐?]

"일반인이면 진짜로 스튜디오 일을 부탁하게 될 것 같구요, 이능력자면 아무래도 운전이나 던전 따라가게 되겠죠? 형님 정도 전투원이면 더 좋고."

[그럼 이 사람 어떠냐.]

하유준이 시안에게 프로필 하나를 보냈다. 시안은 눈에 익은 얼굴을 보고 반가워했다가, 그의 소속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구로에서 저희 근처에 캠프차렸던 <메그레즈> 길드장이네요? LP? 서예성?"

[나이가 너보다 훨씬 어리긴 한데 사람은 좋아. 착하고. 아, LP는 본인 희망으로 줄여서 부르기는 한데-]

"Little Prince. <어린 왕자> 말씀하시는 거죠?"

유나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하유준은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은 엄청 부끄러워하는 이명이긴 한데, 엄청 어울리는 이명이긴 하잖냐.]

"형님 서예성 씨랑 아는 사이에요?"

[......유성에서 일하는 아는 형님 밑에 있던 인턴이었어. 나랑은 그냥 면식만 있는 사이였는데, 그 형님이 이번에 그 친구 사고 난 거 듣고 되게 안타까워 하시더라고.]

"사고?"

하유준은 서예성의 상태를 간략히 읊었다. 시안은 턱을 왼손으로 쓸며 고개를 끄덕였다.

"코어 깨져서 이제 재기가 어렵지만, 본인은 히어로 업계나 관련 직종에서 일하기를 희망한다?"

[예전부터 히어로가 꿈이었던 놈이 이능력 얻고 신나게 노력해서 유성 산하 길드의 대장까지 올라갔어. 근성이랑 실력은 충분한 놈이니까 데려다가 써도 좋을 거야. ...라고 그 형님이 말했어.]

"알겠습니다. 또 없나요?"

시안은 <어린 왕자> 서예성에 대한 프로필을 히어로 위키에서 찾아 스크랩한 뒤, 하유준이 추천하는 몇몇 인선을 추천받아 다시 엄선했다.

"감사합니다. 오늘 저희 여기서 바로 해산할 것 같아요."

[알았다. 나 내일까지 일이 있어서 그런데, 내일 모래 출근해도 되지?]

"...? 네, 알겠습니다. 당장은 급한 일 없으니까 괜찮아요."

뚝. 하유준과의 통화가 끝난 뒤, 기지개를 켜려던 시안은 옆구리를 찌르는 유나의 손가락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가, 갑자기 무슨 일이야?"

"시안 님. 밖에...."

유리창을 가리키는 유나의 얼굴을 핏기가 가셔있었다.

시안의 고개가 유나의 손가락을 따라 벽으로 향했고, 그곳에는 수많은 이능력자들의 눈동자가 옹기종기 모여 그들을 유리창 너머로 염탐하고 있었다.

"뭐, 뭐야?"

"아저씨...."

누리가 울상을 지으며 울먹였다. 시안은 그 모습에서 '뭔가 해보려다가 큰 사고를 친 어린 아이'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침을 꿀꺽 삼켰다.

"누리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그, 그냥 SNS에다가 글 좀 올렸는데...."

시안은 전광석화의 속도로 누리의 SNS를 뽑아냈다. 그가 하유준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누리는 온갖 글귀로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 혹시 저랑 이 스튜디오에서 같이 일하실 분?

- 초보 가능, 경력자 우대, 이능력자 환영, 근성 있는 사람만

- 저랑 같이 길드 하실 분~~

- 아 오타

- 길드가아니고요그냥잘못쓴거에요오해하지마세요저아직길드들어갈생각없어요

- 길 드 아 니 라 고

최근으로 올라올수록 절박해지는 누리의 변명에 시안이 피식 웃으며 누리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기특한 녀석. 근데 꼴을 봐선 그냥 자승자박이네. 이걸로 사람들이 저렇게까지 몰리나?"

"그게...."

누리는 눈을 질끈 감으며 댓글 창을 열었다. 올린 지 몇 분이나 됐다고 벌써 수백에 달하는 댓글이 달려있었고, 그 중 가장 위에는 시안도 익히 알고 있는 이의 댓글이 달려있었다.

- 설화공주 석하랑 : 시안 씨 길드지? 언니도 같이하자^^ 우리 누리, 언니랑 함께 하기로 약속 한 거다? 언니도 누리도 우리 SS길만 걷자ㅎㅎ!

"씁----"

시안은 숨을 참았다. 라온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절망에 빠졌다.

"설마 스포를 당할 줄은...."

"저희는 뭘 그렇게 아둥바둥하며 숨기려 한 걸까요...?"

"그러게."

유나와 시안은 자조섞인 웃음을 지으며 한탄했다.

"누리야."

"으, 응."

시안은 벽에 걸어둔 전지를 가리키며 체념했다.

"일단 저거로 번호표부터 만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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