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902화 (902/1,497)

EP.902 [라노벨외전] 창천의 데스디나스 2권 019

수는 절대적으로 불리.

시안의 팀은 고작 이능력자가 셋밖에 없었지만, 적은 괴인의 수만 열 셋에 달했다.

하지만 개개인의 전투력과 장비는 이쪽이 압도적. 비록 시안이 천봄이의 육체를 터뜨렸던 총-'썬더'는 지형의 특성상 사용이 불가능했지만, 셋의 전투력은 능히 괴인들으 상대할만큼 강해졌다.

"라온이는 좌! 누리는 우! 유나는 견제!"

시안의 지휘에 따라 라온은 공터의 왼쪽을 틀어막았고, 누리는 오른쪽으로 뛰어 검을 휘둘렀다. 5m 너비의 공터를 반씩 맡아 괴인들의 진격을 저지하고자 했다.

캬아악!

이성을 빼앗긴 괴인들이 짐승 마냥 달려들었다. 팔이 창대에 후려맞아 꺾이면 꺾인대로 팔꿈치로 찌르려들고, 다리가 잘리면 깡총뜀으로 다가와 팔을 휘둘렀다.

앞의 한 명이 누리의 검에 찔려 소멸되면, 바로 뒤에 있던 괴인이 달려와 검을 두 팔로 안았다. 그어어, 하는 괴성만 내며 조종당하는 괴인들의 공격에 누리가 뒷걸음질치며 검을 휘둘렀다.

"좀비 개에바!!"

키에에엑!

괴인들은 어떻게든 누리와 라온을 붙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전위에 해당하는 둘의 발을 묶고 그 뒤에 있는 다른 둘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파지직. 천장에 걸려있던 광탄이 꺼질 것 처럼 점멸했다. 서서히 통로를 밝히던 빛이 사그라들고, 괴인들의 모습이 어둠속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시안이 유나를 황급히 불렀다.

"유나야!!"

"네!"

이미 유나도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지팡이 끝에서 어둠을 밝히는 구체가 피어올랐다. 천장의 광탄이 마력이 다해 사드라들고, 유나가 다시 동굴의 어둠을 밝히려 했다.

"어딜!"

당연히 상대는 그걸 가만히 두고 볼 자가 아니었다.

새애액-!

빛이 퍼지기 직전, 날카로운 파공성이 들렸다. 시안은 본능적으로 총을 들어 투사체를 튕겨냈다.

카앙! 금속 부딪히는 소리. 시안은 투사체가 상당히 무겁다는 것을 깨닫고 어쩔 수 없이 궤도를 최대한 바꾸는 쪽으로 마음먹었다. 유나는 지팡이를 들어올려 광탄을 천장으로 쏘아올렸다.

그리고 시안은 정체불명의 투사체를 눈으로 확인했다. 흐르는 물로 코팅된 검의 끝은 유나의 심장을 향해 있었다.

"저 ㅆ...!"

시안은 혼신의 힘을 다해 던져진 검을 위로 쳐냈다. 튕겨나간 검은 유나는 귓불을 스치고, 유나는 이를 악물며 지팡이를 높이 들었다.

"다시 올릴게요!"

팟! 유나가 다시 피어올린 광탄에 의해 동굴은 다시 밝아졌다. 라온은 창대를 횡으로 휘둘러 괴인의 정수리를 찍어 소멸시켰고, 누리는 그보다 뒤에서 화들짝 놀라 시안에게 손을 뻗었다.

"아저씨! 위험!"

"칫!"

누리가 괴인 하나를 놓치고 경고했다. 시안이 유나를 노리고 달려드는 괴인을 보고 총을 들었고, 누리는 자리르 벗어나 그 뒤를 쫓아 검을 들었다.

"어딜!"

퍽! 시안의 총이 괴인의 관자놀이를 때렸다. 탄환이 비었어도 어지간한 망치 수준의 무게를 자랑하는 총은 괴인을 그대로 바닥에 메다꽂았다.

"아저씨! 마무리는 내가!"

시안이 괴인을 향해 검을 휘두르려는 누리를 발견하고 전방을 가리켰다.

"김누리! 이쪽 말고 앞-"

"그거 짭이야!!!"

날카로운 누리의 비명이 들렸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에는 검을 들고 달려오는 누리의 뒤쪽, 좀비 괴인들에게 붙잡혀 탈출에 안간힘을 쓰는 누리가 있었다.

좀비 괴인들에게 붙들린 누리와 자신을 향해 검을 들고 달려오는 누리.

시안은 경악하며 달려드는 누리의 정체를 깨달았지만, 이미 누리-로 변신한 괴인 천봄이는 시안을 향해 지척까지 다가왔다.

"죽어!"

"시안 님!!"

괴인 천봄이는 시안의 목을 향해 검을 내려쳤고, 유나가 지팡이를 뻗으며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시안은 두 눈을 부릅뜬 채 오른팔을 들어 검을 막았다.

서걱!

괴인 천봄이의 검이, 시안의 오른팔을 베었다.

* * *

<그 시각, 구로 베이스 캠프 괴인 수용소.>

[성북, 서초, 서대문! 세 곳 지하도에서 펜릴의 괴인 발견! 헌터들이 요격 중입니다!]

"주변 헌터들에게 알리세요. 히어로들은 지하도 봉쇄. 섵부르게 나서서 헌터들을 자극하지 마세요."

[여의도에 숨어있던 펜릴의 괴인 둘을 발견했습니다! 체포하여 코어화! 지상을 통해 구로로 오고 있습니다!]

"히어로 분들은 뒤따라 오시고, 헌터들이 바로 이쪽으로 오실 수 있도록 제어해주세요. 중간에 사고나지 않도록 경계 철저히 해주시고."

[우사 님께서 남산 타워의 A급 빌런 하늘성과 대치 중! 중상자 여섯! 경상자 열일곱! 전부 헌터들입니다!]

"...구조 팀 파견하고, 주변에 있는 히어로들은 최대한 빨리 남산타워로 가세요. 하늘성은 우사 선배님께 맡기고, 히어로들은 부상자들의 구조에 집중합니다."

석하랑은 구로의 베이스 캠프, 찢겨진 컨테이너 위에서 초조한 얼굴로 전황을 살폈다.

"명심하세요. 히어로들은 인명 구조와 헌터들의 지원을 최우선합니다. ...헌터들이 무사히 괴인을 체포해서 올 수 있도록 옆에서 도우세요."

체포한 괴인들의 코어는 나오는 즉시 시시각각 석하랑이 자리잡은 구로로 보내졌다. 100억이라는 현상금이 걸린 코어는 석하랑의 보증하에 구로로 모였고, 헌터들은 석하랑을 믿고 컨테이너에 맡긴 뒤 다시 괴인을 사냥하러 떠났다.

석하랑이 펼친 결계는 괴인들이 서울을 빠져나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지만, 동시에 헌터들의 어두운 욕망을 원천봉쇄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휴우."

석하랑은 체포된 펜릴의 괴인들이 하나 둘 체포되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전부 그 남자 덕분이긴 한데....'

시안이 자본으로 간신히 구축한 포위망 덕분에 서울은 봉쇄되었고, 그 덕에 석하랑 자신도 마력을 쏟아부어 결계를 칠 시간을 벌었다.

"그럼 다음은...?"

석하랑은 시안이 남기고 간 메모를 확인하며 히어로들을 재배치했다.

펜릴의 괴인들이 지하도를 따라 움직일 것으로 예상한 시안은 석하랑에게 미리 예측 경로를 메모로 남겼고, 그 덕분에 석하랑은 그 메모를 따라 무려 아홉이나 되는 펜릴의 괴인들을 체포할 수 있었다.

'거의 95%는 맞았어.'

헌터들이 체포한 넷을 제외하면 앞으로 남은 괴인의 수는 일곱.

그 중 행방이 묘연한 둘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이미 히어로나 헌터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둘...."

최초의 반응 이후 사라진 두 괴인의 반응은 아직까지도 나타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석하랑은 머뭇거리는 손길로 시안을 호출하려다 고개를 흔들었다.

"...아냐, 계속 신세질 수는 없어."

석하랑 개인이 시안과 겪은 갈등과는 별개로, 자꾸만 외국인의 도움을 받기에는 염치가 없었다. 한국에서 일어난 일은 한국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방침-

짝! 석하랑이 두 뺨을 손으로 쳤다.

"멍청이. 염치나 방침 같은 거 따질 때가 아니잖아."

지금은 괴인을 체포하는데 전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석하랑은 잠시 갈등을 일으킨 자신의 속내를 마음 속 깊이 접어두고, 마도기어를 조작해 한창 구로 지하도에서 괴인들을 수색하고 있을 시안을 호출했다.

"......?"

연락이 닿지 않는다. 아예 전화가 걸리지 않는다. 석하랑이 의문을 표하기도 잠시, 시안의 팀과 함께 구로로 내려갔던 <메그레즈>의 길드원 하나가 황급히 석하랑에게 달려왔다.

"설화공주 님! 큰일입니다!"

"진정하세요. ...뭔가요?"

길드원은 다급한 얼굴로 자신의 길드장에게 전해들은 내용을 석하랑에게 다시 전달했다.

"메그레즈 길드장 LP 서예성 님 대신 보고합니다! 지하도 안에 괴인들이 파놓은 걸로 추정되는 또다른 비밀통로를 발견! 오라클 스튜디오에서 발견 직후 곧장 그 통로를 탐색하러 갔다고 합니다!"

"...네?!"

석하랑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여전히 전화는 걸리지 않았다.

쩌적! 컨테이너를 채우고 있던 얼음의 벽에 아주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

왠지, 꼭 무슨 일이 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 * *

혈향이 일었다.

코를 찌르는 짙은 피냄새에 유나는 정신이 아뜩해졌다. 지금만큼은 천장에 띄워둔 구체가 밝히는 광경이 너무나도 보기 싫었다. 흰 도화지에 선홍색 물감이 뿌려지듯, 시안의 백색 코트가 피로 물들었다.

그 피는 시안 본인의 것이었다.

"크흐, 하아."

시안은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묵직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졌다. 시안의 총이 먼저 바닥에 닿고, 그 뒤를 이어 시안의 팔이 옆으로 굴렀다.

오른팔이 잘린 시안은 팔을 부여잡으며 신음을 흘렸다.

"아오...."

"멍청이."

시안의 팔을 자른 누리-괴인 천봄이는 한껏 비웃는 얼굴로 다시 검을 들어올렸다.

"흐흐흐, 낚였네?"

"아저씨!"

"젠장!"

누리와 라온이 엉겨붙는 좀비 괴인을 뿌리치고 시안에게 다가왔다. 천봄이는 뒤에서 달려드는 둘에 유유히 몸을 피하며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전열 유지해. 아직 전투 끝난 거 아냐."

"시안 님! 하지만!"

"진정해. 나 아직 죽은 거 아냐."

시안은 담담한 얼굴로 잘린 팔에서 총을 빼내 왼손으로 들었다. 시안은 힘겹게 한 손으로 들어올린 총을 유나에게 건넸다.

"이제 나는 못 쏘니까 네가 쏴."

"네?"

"......이거 의수야."

시안은 복화술을 하듯 아주 작게 속삭였다. 옆에 있던 누리나 라온조차도 듣지 못할 정도의 작은 목소리였으나, 유나만이 그 소리를 정확히 들었다.

"......하."

유나는 허탈함과 짜증과 안도감이 섞인 한숨을 내쉬며 시안으 총을 두손으로 집어들었다. 시안은 멎쩍은 미소로 웃다가 얼굴을 찡그렸고, 여전히 잘려나간 팔의 단면에서는 선홍색 피가 흐르고 있었다.

"진짜에요?"

"그럼 거짓말이겠니."

유나는 의심스러운 얼굴로 지팡이를 팔뚝으로 지탱한 채 안주머니에서 탄환을 꺼냈다.

"......진짜죠?"

"유나야, 내가 거짓말쳤으면 평생 네 수발 들고 산다. 농담 아니고....큭."

시안은 왼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게 꼭 현기증을 일으켜 쓰러지려고 하는 것만 같아, 라온이 시안의 허리를 붙잡고 부축했다.

"야 이 개 새 야 아!"

누리가 칼을 앞으로 겨누며 소리 질렀다. 저보다 훨씬 어린 아이가 반말을 찍찍 내뱉는 것에 천봄이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후후후, 좀 있으면 과다출혈로 죽겠는 걸?"

"곱게는 못 죽을 줄 알아라, 노쳐녀!"

"...젖살도 안 빠진 꼬맹이가?!"

천봄이가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 누리도 열이 끝까지 올라 응전했다.

"시안, 정신을 잃으면 안 됩니다! 지상으로 올라가면 분명 치료할-"

"소리지르지 마. 머리아파. 그보다...."

시안은 흐릿해지는 시야 속에서 칼부림을 하는 두 누리를 확인했다. 외형도 똑같고 목서리도 똑같고 심지어 이능력마저 같다. 검이 부딪힐 때마다 둘은 서로를 향해 쌍욕을 해대고 있었다.

"존나 나이만 처먹은 년이! 그냥 좀 뒤져!"

"야! 나인척 하지마, 이 쓰레기야!"

"...누가 누리지?"

시안은 헐렁거리는 코트로 팔을 여미며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천봄이는 생김새, 이능력, 목소리에 나아가 상대의 '말투'까지 모사하기 시작했다.

"노땅이 급식인 척 하면 안 부끄럽냐, 이 미친년아!!"

"지 살라고 남 미친년으로 모는 인성 오졌죠!"

"......큰일이야. 둘다 수준이 비슷해서 구분을 못하겠어."

시안이 둘의 전투에 질색하며 혀를 찼다. 천봄이는 아예 좀비 괴인들을 시안쪽으로만 배치하며 혼란을 가중시켰다. 라온은 기어오는 좀비 괴인의 얼굴을 걷어 차며 소리질렀다.

"지금 이 상황에 농담이 나옵니까?!"

"미, 미안."

라온이 그답지 않게 울먹이며 소리치자, 시안은 미안한 마음에 고개 숙여 사과했다. 유나는 묵묵히 총을 돌격소총 잡듯 파지하며 좀비 괴인들에게 총구를 겨눴다.

"쏩니다."

"응? 뭐? 자, 잠깐!"

시안이 제지할 틈도 없이, 유나는 검지로 걸어둔 방아쇠를 당겼다.

□□□□□□!!

천둥소리가 공터를 가득 메우고, 탄환이 일렬에 가까이 기어오는 좀비 괴인들을 일거에 쓸어버렸다. 가장 앞에 있던 괴인부터 마지막에 달려들던 괴인까지 육체를 잃고 코어만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

"어, 언니?!"

한 쪽 누리는 할 말을 잃은 채 그대로 굳었고, 다른 쪽 누리는 유나의 과격함에 기가 팍 죽었다. 유나를 언니라고 불렀던 누리-괴인 천봄이가 누리를 걷어차고 빽 소리를 질렀다.

"너, 너 미쳤어?! 그거 쓰면 이 통로 다 무너진-"

"시끄러워요."

유나는 엄한 얼굴로 탄환을 바닥에 떨어뜨린 뒤, 곧장 새로운 탄환을 총에 끼워넣었다.

"통로 무너지는 것보다 이 사람 과다출혈로 죽게 생겼는데, 지금 그딴 게 뭐가 중요해요?"

총구가 괴인 천봄이를 향했다. 천봄이가 놀라는 것 이상으로, 시안도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한 통로에 불안감을 내비쳤다.

"유, 유나야! 나 괜찮으니까-"

"시안 님."

유나가 누리로 분한 천봄이를 향해 싱긋 웃었다. 총구와 시선은 괴인을 향해 있지만, 분명 그 말은 혼절하기 직전인 시안을 향해있었다.

"죽기 직전이라도 그런 농담 하는 거 아녜요. ...오해하니까."

□□□□□□□□!!

굉음이 지하 통로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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