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96 [라노벨외전] 창천의 데스디나스 2권 013
학부생들이 신서울로 내려온 것과는 별개로, 서울에 있던 이능력자들은 곧장 서울로 올라가는 짐을 쌌다.
- 아직 서울 지하에 괴인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설화공주 석하랑이 꾸린 임시 히어로 팀이 체포한 빌런의 수만 무려 500여명에 달하는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효율의 '장사'가 아닐 수 없었다.
빌런은 현상금 두 당 1억. 괴인은 현상금 두 당 10억.
범국가 세계 평화 기구-'원탁'은 코어로 벌어들인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빌런과 괴인에게 현상금을 내걸었고, 빌런과 괴인들은 가격표가 걸린 상태로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다.
혹자는 원탁이 드디어 이능력자들을 돈으로 매수하려고 든다고 비난했지만, 대표인 가웨인 경은 당당한 목소리로 외쳤다.
- 돈으로라도 평화를 살 수 있다면 억만금을 내놓겠다.
높은 등급의 빌런, 괴인일수록 현상금은 더욱 높아졌고, 원탁 히어로들이 던전을 돌면서 수급한 코어로 채워놓은 현상금 창고는 마를 기미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설화공주 석하랑의 소탕 작전은 일견 대견해보였으나, 한편으로는 미련하다는 평가를 듣고 있었다.
- 아니 자기가 괴인을 잡았으면 그걸 원탁에다가 팔아야지, 그냥 체포해버리면 어쩌냐??
- 괴인이 200명! 와! 2000억 증발!
- 이래서,,,히어로들이,,,호구라는,,,,겁니다,,,,
석하랑과 히어로들은 서울의 죄인들을 원탁에 넘기지 않고 정부에 맡겼다.
이미 코어가 된 괴인들은 대전의 수용소에서 삼엄한 경계를 받으며 갇히게 되고, 일반 빌런은 구치소에 수감되어 형을 사게 될 것이다.
신서울에서 서울 수복 작전을 멀찍이 지켜보던 헌터 길드의 이능력자들은 순순히 구치소에 수감되는 악당들-정확히는 그들을 통해 얻을 현상금-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 야 근데 서울에 숨은 빌런들이 고작 500명은 안 될 거 아냐?
- 학부생들 다 내려보낸 거 사실은 서울의 빌런들 독식하려고 그런 거 아님?
- 먼저 가서 빌런 캐는 사람이 장땡이네ㅋㅋㅋ 완전 노다지ㅋㅋㅋㅋ
길드들은 하나같이 '우리도 서울 수복 작전을 거들겠다'는 명목하에 서울로 달려갔다.
이른바, '두더지 잡기'가 시작된 것이다.
* * *
"응, 싫어."
"아 왜에에에에에에!!"
누리가 또 빽 소리를 질렀다. 소파에서 몸을 마구잡이로 흔드는 통에 하유준은 들고있던 커피를 흘릴 뻔 해 인상을 찌푸렸다.
"좀 가만히 있어라."
"오빠! 지금 아저씨가 또 헛소리 하잖아!"
누리는 씩씩거리며 시안에게 삿대질했고, 이번에는 시안도 짜증을 감추지 않고 지도를 두드렸다.
"지금 가봐야 늦었어. 벌써 오후 두 시잖아. 이미 오전에 헌터 길드들 다 올라갔다고."
"한 명이라고 잡자! 우리 어떻게 들어가는 지 잘 알잖아! 두 당 1억이라고!"
"......저는 서울에 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잠자코있던 라온이 입을 열자, 누리는 분을 삭이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본인은 담담하게 있어도 라온이 납치 당한지 하루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미안. 내가 너무 흥분했어."
"이해합니다. 빌런을 다섯만 잡아도 최소 5억을 버니, 현상금으로 충분한 수익을 낼 수 있을 겁니다."
벌집을 건드렸으니 벌들이 튀어나올 것이고, 헌터들은 양봉업자처럼 빌런이라는 벌들을 잡을 것이다. 그 중에는 괴인이라는 장수말벌도 있어, 잡으면 큰 돈이 될 것이다.
"다만...."
라온은 시안의 눈치를 보며 뒷말을 흘렸다. 라온이 가진 사적인 생각은 분명 괴인을 싫어하는 시안과 상충되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라온은 분명히 제 의지를 관철했다.
"빌런이나 괴인들 모두 이 땅에서 살던 이들인 만큼, 적어도 우리 나라의 법률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원탁에 현상금 받아서 넘기면 국제 수용소로 잡혀가니까."
시안이 원탁에 팔려간 빌런과 괴인들의 말로를 간단히 읊었다.
"원탁 자체 기준에 의해 평생 마력을 뱉어내는 건전지가 되지. 그 코어는 각국의 에너지 자원이나 연구 자료로 활용되고. 인권 단체에서 눈에 불을 켜고 허구한날 부르짖잖아. 인권 유린이라고."
"범죄자들 아님? 특히 괴인들은 싹 다 코어 깨버리는 각 나온 것들이잖아."
누리가 어깨를 으쓱이자, 유나가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까지 코어가 된 괴인이 죽은 건지 산 건지에 관해서는 연구가 덜 됐어. 당장 코어를 부수는 건 사형이나 다름 없어. ...어쩌면 코어가 된 순간부터 인간으로써 죽은 걸 수도 있고."
"유나 언니. 그래도 괴인들 가만히 놔두면 사람 죽이는 거 예사로 보잖아. 오빠는 어때?"
누리가 잠자코 있던 하유준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졸지에 제 생각을 밝히게 된 하유준이 당황하면서도 목을 가다듬었다.
"크흠. 나도 죽이는 건 그렇지만 체포에는 동의해. 범죄자를 신고하고 감옥에 가두는 건 당연하니까. 물론 이왕 감옥에 잡아 넣을 거 나도 돈 받으면 좋고."
"그럼 이제 2:2네?"
"뭔 2:2야. 지금 투표로 정하는 것도 아닌데."
시안은 양손으로 V를 그린 누리의 손가락을 접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당장 문제가 그 문제의 '두더지 잡기'를 참가 하느냐 안 하냐 그건데, 대충 유나랑 라온이는 반대하는 입장이고 누리랑 유준 형님은 찬성하는 입장이지?"
"올, 아저씨 정리 감사."
누리가 손가락을 튕기며 윙크했다. 시안은 역겨운 것을 본 것처럼 헛구역질을 하고는 팔짱을 꼈다.
"확실히 올라가서 빌런들 잡으면 그게 실적이기는 한데...."
"그치그치? 그러니까 서울 가자."
"하지만 빌런들 원탁에 팔아먹는 건 좀 아닌 것 같고."
"역시 시안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그래도 괴인같은 쓰레기들은 다 잡아넣어야겠죠?"
"당연하지."
"그치만 빌런들이나 괴인들이 사람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마력 쥐여짜이는 젖소로 만드는 건 또 맘에 걸리고."
"괜히 인권단체에서 인권 유린을 부르짖는게 아니긴 하죠. 그만큼 원탁에서 괴인들을 다루는 방식이 비인간적인 면이 없잖아 있으니까요."
"끄응."
시안은 애매모호한 태도를 고수하며 갈팡질팡했다. 각자의 의견을 경청하면서도 종종 질문을 던지는 바람에 어느새 회의는 토론에 가까워졌고, 팀원들 간의 설전으로 번지며 시간이 흘렀다.
"...술사님. 지금 무슨 얘기 하고 계세요?"
"으악!"
시안은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그곳에는 누리와 똑같은 얼굴로 카페 아르바이트 복장을 입은 김가온이 있었다.
"어? 언니 오늘 왠 일?"
"히어로 때려치고 먹고 살게 없어서 사장님이 정직원으로 채용해줬어. 지금은 배달 왔고."
가온이 커피박스를 들어보이며 탁자에 놓았다. 시안과 팀원들은 저마다 주문한 음료를 챙기며 휴식을 취했다. 이미 파르페를 먹고 또 파르페를 주문한 누리가 가온에게 질문했다.
"근데 언니. 아저씨가 왜 술사님이야?"
"...너한테 술 사준다고 말실수 한 거 항상 기억하면서 말실수 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술사님이라고 부른다, 왜?"
"......아직 한 번도 제대로 안 얻어먹었거든?!"
가온과 누리 자매가 티격태격하는 사이, 가온을 오묘한 눈으로 바라보던 시안이 쯧 혀를 차며 시선을 돌렸다.
"......."
유나가 빨대를 입에 문 채 시안을 물끄러미 처다보고 있었다. 시안은 당황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든 컵을 들며 얼음째 입에 털어넣었다.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온 김에 하나 질문 해봐도 되겠습니까?"
라온이 녹차라떼를 한 모금 마시며 가온에게 묻자, 가온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온 씨는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떤 입장이십니까?"
라온은 방금 전까지의 설전을 간략히 정리해 설명했고, 잠시 고민에 빠진 가온이 명쾌한 얼굴로 대답했다.
"범죄자들은 체포하는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아...."
하유준이 가온과 누리의 배경을 떠올리고 탄식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괴인이 안좋게 보일 수 밖에 없는 명백한 사정이 있었다. 하유준이 오해하는 기색에 가온이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꼭 저희 부모님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번 두더지 잡기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요. 벌레 소굴을 들쑤셔놨으니, 그 벌레들이 다른 집으로 도망치기 전에 다 잡는 게 속이 시원하겠죠."
"이열, 가차없는 벌레취급. 역시 김가온 다운 발언 오졌죠?"
"김누리 너 뒤질래? 크흠. 서울에서 도망친 빌런들이 경기나 강원 일대로 도망쳐서 난리를 피우면 그게 더 문제가 커지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체포한 악당들을 나라에 넘기느냐 원탁에 파느냐 하는 문제는 부차적인 거라고 0생각해요."
제 의견을 피력한 가온은 꾸벅 인사하고 곧장 1층 카페로 내려갔다. 이름만 올려놓기는 했지만 가온도 길드원인만큼, 그의 의견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짝! 시안이 제 뺨을 때리며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 소리에 넷-아니 테이블에 누워있던 고양이까지 다섯이 시안에게로 눈이 돌아갔다.
"그렇네. 이것 저것 따지지 말고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면 되는 일이었어."
시안은 확신에 찬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범죄자들 잡으러 가자. 다시 서울까지 가려면 다들 피곤하겠지만 괜찮지?"
"우리야 마력 돌리면 몰라도, 아저씨가 제일 체력 딸리는 거 아님?"
누리의 지적대로 네 이능력자는 마력을 활력삼아 태우며 피로를 씻어낼 수 있었지만, 무능력자인 시안은 서울을 오다니는 피로가 고스란히 몸에 쌓였다.
"나? 멀쩡해. 나 이래뵈도 철인인 걸?"
시안은 오른팔을 들어올리며 팔근육을 힘껏 자랑했다. 그 고전적인 제스쳐에 팀원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가막혀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도 난리 통이라 다행히 우리 감시하거나 하는 사람들은 없는 것 같으니까 바로 서울로 올라가자. 나도 정비 끝나서 준비만전으로-"
"시안. 차 렌트 끝났지 않습니까?"
"아."
시안은 창백한 얼굴로 하유준에게 고개가 돌아갔고, 하유준은 멎쩍은 얼굴로 눈가를 만지작거리다가 가장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팔을 벌렸다.
"시안 매니저님, 유성 차 한 대 뽑으실?"
하유준의 행동은 빛처럼 빨랐다.
하유준의 집념에 기가 막힌 시안이 아무거나 한 대 부탁한다고 말하기가 무섭게, 하유준은 어딘가로 전화를 하더니 곧장 고속버스보다 더 큰 대형트럭을 공수해왔다.
"하유준 씨 혹시 유성모터스 차장급이라도 되십니까?"
"에이, 설마. 흐흐흐."
질린 시안이 저도 모르게 존대를 할 정도로 하유준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자 고객님, 잘 들어봐. 이번에 유성모터스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길드전용 트럭 '알타이르 2026년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전장이 18m라느니, 엔진이 코어 에너지를 동력으로 하는 V8이라느니, 대괴수시대에 갈맞게 개정된 도로교통법의 운행 제한 규정에 걸리지 않게 최대 규격에 아슬아슬하게 닿는 스펙이라느니 하는 말을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시안 님. 여기 앉아보세요. 렌트했던 거보다 훨씬 편한 것 같아요."
시안은 운전석에 앉아 자기 옆자리 시트를 팡팡 두드리는 유나를 보고는 아무 망설임없이 하유준에게 카드를 넘겼다.
"살게요."
넋이 나간 시안 몰래 이미 풀옵션으로 세팅을 맞춰둔 하유준이 일시불로 긁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시안은 그대로 트레일러에 유나를 제외한 다른 인원들을 트럭 뒤 트레일러에 탑승시켰다.
시안은 백미러에 이미 준비되어있는 선글라스를 끼며 조수석에 앉은 유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유나야. 새 차 샀는데 서울까지 드라이브나 갈까?"
"......."
유나는 조수석에 앉아 손으로 시트를 팡팡 두드리며 시안에게 뻗었다. 안전벨트를 멘 상태로 시안의 허벅지 끝에 간신히 손가락이 닿자, 유나는 울상을 지었다.
"전에 건 운전석이랑 조수석이 가까웠는데, 이건 막상 타보니까 엄청 머네요...."
"......."
신서울에서 재정비를 마친 시안의 팀은 그 누구도 모르게, 서울로 올라가는 수많은 트럭의 행렬에 끼어들었다.
* * *
냐아앙.
사무실 책상을 점거하고 있던 고양이가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켰다.
냐앙?
한 숨 푹 자고 일어난 사이, 금발의 남자를 비롯한 인간들은 사무실에 자신만 놔두고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고양이는 잠시 녹색의 눈을 껌뻑거리다가 황급히 창가로 뛰었다.
"......아, 젠장."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빈 사무실에서 낯선 소녀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의 발원지는 틀림없이 고양이의 입이었다.
"배불러서 잠깐 졸았는데 그새 나갔네."
고양이(?)는 능숙하게 인간의 언어로 말하며 유리창의 틈에 발톱을 끼워넣었다.
끼이익.
문이 살짝 열리고, 그는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며 코를 킁킁거렸다. 아주 멀리서 흐르는 익숙한 냄새에 그는 이빨을 번쩍이며 열린 문틈 사이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낑, 끄응. 끄으응."
앓는 소리를 내며 좁은 틈을 빠져나간 그는 밖에서 앞발을 뻗어 유리창을 닫았다.
허공에 세 다리를 디딘 채.
팟!
그가 허공을 박차고 하늘높이 뛰어올랐다. 사무실 옥상보다 더 높은 7층짜리 건물의 옥상 난간에 걸터 선 그의 몸이 조금씩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부우웅---!
녹색의 바람이 고양이의 몸을 뒤덮었다. 곧 눈 깜짝할 새 고양이는 김누리와 비슷한 키의 녹발 소녀가 되어 난간에서 서울을 빠져나가는 시안의 트럭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서울에 괴인들이 그렇게 많다는 말이지."
소녀는 입맛을 다시며 손을 비볐다.
"그럼 여기까지 온 김에 이몸께서 권속으로 써먹어 줘야겠네!"
소녀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바람에 몸을 실었다.
곧 소녀의 몸이 난간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