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88 [라노벨외전] 창천의 데스디나스 2권 005
"저 남자는 눈빛이 음흉해. 그러니까 기각."
"운전수라도 좋으니 제발 잡역부라도 굴려달라고? 당신 음주운전 전과있던데? 탈락."
"뭐? 하렘이라고 욕 먹어도 좋으니 제발 넣어달라고? 흠, 그러면, 윽! ......탈락."
"이보세요. 지금 누리 양 호위할 사람 찾는 거지, 누리양이 들어갈 길드 찾는 거 아니거든요? 어디서 영업을 뛰어? 협회에 신고하겠습니다."
"네? 저를 원하신다고요? 누, 누리야! 진정해!"
"어디서 많이 본 분 같은데.... 아, 풍마님이시구나! 반갑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은 해보겠습니다. 나가주세요."
* * *
면접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다만 그 일사천리가 면접 희망자와 1분 남짓한 이야기를 하고 곧장 바깥으로 내쫓는 신속함에 서서히 시안와 누리는 지쳐갔다.
"거 목숨도 구해줬는데 너무하네, 진짜!"
씩씩대는 풍마가 나간 뒤, 둘만 남게된 누리가 연기를 멈추고 책상에 얼굴을 박았다. 하고싶은 말은 엄청나게 많았지만 굳은 얼굴로 다음 면접 대상자의 목록을 확인하는 시안의 분위기에 섣불리 말을 걸기가 어려웠다.
"벌써 27명이나 깠네."
시안은 하품을 하고는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4시 43분. 그들이 협회에 들어와 면접을 보기 시작한지 두시간이 훨씬 지난 상태였고, 아직도 면접을 희망하는 이능력자들은 족히 한트럭 가까이 남아있었다.
시안이 테이블 위에 올려진 커피를 마시는 틈을 타 누리가 질문했다.
"아저씨 진짜 호위 뽑을 생각 있어?"
"당연하지. 겸사겸사 우리 스튜디오 식구도 뽑으려고 하는 거잖아."
"식구라."
누리는 잠시 스튜디오-라는 이름의 길드원들이 가진 면면을 살폈다. 히어로 아카데미 자퇴생, 은퇴 직전에 번복한 퇴물 히어로, 대학도 못간 9등급 고졸 급식.
"또 어디서 하자있는 사람 찾는 거면 에반데."
"하자라니. 너 왜 갑자기 자폭이야?"
"아저씨 하자있는 골동품 가져와서 명품으로 바꾸는 거 전문이잖아."
"아하. 지가 명품이라고 자랑하려고 그랬구나. ...명품이 맞기는 하지."
누리는 고개만 시안에게 돌린 채 키득거렸다. 시안도 따라 웃으며 지친 심신을 잠시 위로했다. 잠시 밖에다 이야기를 하여 10분간 휴식을 가진 시안은 누리에게 이번에 뽑을 인재에 대해 다시금 설명했다.
"꼭 하자가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잠재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알아볼 수 있어."
"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정말 감이 특별한 거 맞음? 왠지 아닌 것 같은데."
"너도 사람 많이 만나고 다녀봐. 눈썰미가 생겨. 관상 모르냐? 얼굴만 봐도 대충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어."
"풉. 아저씨가 관상이라니까 개 웃기네."
누리가 허리을 세워 시안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저씨, 그럼 내 관상은 어떰? 개쩔?"
"......미인박명이라 단명할 상이나 귀인을 만나면 영생을 누릴 상이니, 귀인과 평생을 백년해로 할 상이로다."
근엄한 얼굴로 뜬금없는 말을 내뱉는 시안에 누리가 콧방귀를 뀌었다가, 그 말뜻을 깨닫고 얼굴을 살짝 붉혔다.
"그, 아저씨가 그럼 귀인이라는 거야?"
"...? 뭔 방구같은 소리야. 내가 너랑 백년해로를 왜 해. 나는 그냥 지나가다가 만난 동네 아저씨고, 진짜 귀인이 있을 거야. 뭐 관상이니까 별로 신경은 쓰지 말고."
"부으으."
누리는 입으로 소리까지 내며 입술을 부루퉁 내밀었다. 명백히 불만을 표하는 눈치에 시안은 또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나 속으로 짜증이 일었다.
'하나같이 감수성이 풍부해서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카페 사장인 후안이나 오라클과 상담을 해도 '네가 등신'이라는 식의 말만 돌려서 할 뿐, 별다른 조언은 없었다. 어느덧 휴식시간은 끝났고, 시안은 다음 면접자를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끼이이익.
"어?"
코를 간질이는 커피향이 익숙하다. 시안은 이 향기를 어디서 맡았나 고민했지만, 천장에 머리가 닿을 정도의 거구를 가진 남자에 숨이 턱 막혔다.
"반갑습니다."
남자는 중후한 목소리로 인사하도는 자리에 앉았다. 누리와 똑같은 의자임에도 남자가 앉으니 유치원생 의자마냥 작아보였다.
"C급 이능력자, <북극성> 하유준이라고 합니다."
"합격."
"......예?"
시안은 자리에서 일어서 근육질의 남자, 하유준에게 왼손을 내밀며 미소를 지었다.
"안 그래도 듬직한 남자가 필요했는데, 지금까지 들어오신 분 중에 가장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이거로 면접 끝입니까?"
"네. 협회 측에는 제가 이야기해두겠습니다. 혹시 기존에 길드 가입되어있으신가요?"
"...아닙니다. 길드는 없습니다."
시안이 손뼉을 치며 반색했다.
"잘됐네요! 그러면 좀있다 저녁 식사라도 같이 하시겠습니까?"
"...예?"
워낙에 적극적인 시안의 언행에 하유준은 무언가 정조의 위협이라도 느낀 마냥 몸을 오들오들 떨며 바싹 얼어붙었다. 시안은 아랑곳없이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하유준의 어깨에 왼손을 올리고 두드렸다.
"괜찮아요. 전혀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으흐흐. 내가 얼마나 남자가 고팠...."
"실례했습니다!"
하유준은 사색이 되어 면접실을 부리나케 떠났다. 시안은 허공을 짚은 손을 멍하니 움직이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법 괜찮아보였는데."
"......."
누리는 사색이 되다 못해 창백해지기까지 했다. 얼굴에 핏기가 가신 누리의 안색에 시안이 걱정어린 표정으로 상태를 물었다.
"어디 안 좋아?"
"아, 아냐. 나 잠깐만 화장실 좀요."
누리는 그 말을 하고는 곧장 화장실로 달렸다. 무어라 말을 붙일 새도 없이 사라진 누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시안은 하유준이 떠나간 빈 자리에 시선을 돌리다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짐 나르기 딱 좋은 몸이던데...."
은근히 잡역부 일을 하기 싫어하는 시안이었다.
* * *
잠시 뒤. 화장실을 다녀온 누리는 시안에게 엄포를 놓았다.
"남자는 안 돼. 여자로 해줘요."
"...뭐? 갑자기 왜?"
"...내가 불편해서 그래요!"
누리는 빽 소리를 지르고 자리에 다시 앉았다. 이제 연기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는지 평소대로의 기질을 유감없이 드러냈고, 시안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런데 그건 있다? 하유준 씨가 오면 나 적극적으로 영입할 생각이야."
"싫어요!"
"...아니, 도대체 왜?"
"그거야 남자 들어오면 아저씨랑 그, 그, 그...."
누리의 얼굴은 벌게지다 못해 폭발할 것만 같았다. 아직까지는 순수한, 그러면서도 그쪽 세계에 대해서는 내성이 없는 누리에게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아저씨랑 둘이 친해질까봐 그렇죠!"
"아, 그런 거였어? 크크, 우리 고졸 급식이한테 질투도 다 받네. 괜찮아. 그보다 네가 정 불편하면 호위도 여자로 새로 뽑아야겠다."
시안은 면접자의 리스트를 쭉 내리며 성별을 확인했다. 이미 바깥에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는지 면접자 중 남자 태반이 면접을 포기하고 떠나버렸다.
"아직 남자 뽑았다고 말도 안 했는데?"
"......."
"잘 됐다. 어차피 유준 씨 말고는 다 별로였어. 일할 시간 반으로 줄어서 다행이다."
"아저씨."
누리가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곧 다음 참가자가 들어왔다.
"지금부터 이 면접은 내가 주도할 거임."
* * *
"언니 D급이시네요.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서울까지 가는데 저희 다 지켜주실 분이어야 할 것 같아요."
"...아카데미 학부생? 학부생은 안 돼요. 아무리 B급이라도."
"아니, 저 길드 들어갈 생각 없다니까요? 영업 뛰시려면...네? 이 아저씨를 영입하러 왔다고요? 야 이 ㅆ-"
"저기요. 면접인데 그렇게 얼굴 가리고 오면.... 아, 지혜냐? 나 대학 다 떨어지고 뒤에서 덜떨어진 년이라고 호박씨 까던 절친? 야, 꺼져."
"아 그러니까 이 아저씨 안 판다고!!!"
* * *
어느덧 시간은 오후 6시. 저녁 식사 시간에 이르렀으나 일행은 만족할만한 호위를 찾지 못했다.
이제 남은 사람은 딱 한 명. 지칠대로 지친 시안이 하품을 하며 볼을 긁적였다.
"어떻게 쓸만한 인재가 하나도 없지."
"아저씨가 눈이 높아서 그래요."
누리는 퉁명스러운 얼굴로 남은 콜라를 쭉 들이켰다. 누리가 거절의사를 밝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시안이 발로 신호를 보내 돌려보내라 명령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냥 한 명 대충 하면 되지 않아요?"
"너 때문에 눈 높아진 거니까 책임져."
"......쓰불르므흐르스끼."
"방금 뭐라고 했니?"
"18롬의 호로새기요. 아까 제 친구."
시안은 쌍욕을 퍼붓고 떠난 누리의 친구를 떠올렸다. 염치는 있었는지 얼굴은 가리고 들어왔지만, 곧 누리에게 정체가 발각되고 누리에게 쫓겨났다.
"재능은 있어보이는게 애가 싸가지가 없더라."
"...? 아저씨 맨날 나한테 철들라고 하면서 걔한테는 왜 그럼?"
"너랑 걔랑 같냐?"
시안은 컵에 남아있는 커피를 모두 들이켰다.
"넌 주변에서 자꾸 삐둘어지게 만드니까 잠깐 엇나간 거고, 걘 인성부터가 못되처먹어서 그런 거야."
"...흐흐, 으히히."
누리는 싱글벙글 웃으며 마지막 면접자를 불렀다. 쑥쓰러운 듯 문을 소심하게 열고 들어온 검회색 머리칼의 여인에 누리가 손뼉을 치며 반겼다.
"어!"
"안녕하세요오...."
제법 큰 키의 여인이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갈색 정장 차림에도 드러나는 압도적인 중량감에 누리가 왠지 불편해졌다.
"...반갑습니다. 연예인 맞으시죠?"
"네. ...지금은 헌터 병행하고 있어요."
"흠. 아저씨, 이 아줌...언니 어떻게 할 거야?"
누리의 호위를 통해 오라클 스튜디오에 적을 두고 헐리우드에 진출하려고 하는 의도가 다분히 엿보인다. 시안은 슬쩍 여인의 위아래를 훑어보고는 프로필을 찾았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저는...."
검회색 머리 여인은 제 가슴위에 손을 올리며 살포시 고개를 숙였다.
"C급 헌터 <페르소나>이자 영화배우, '천봄이'라고 합니다."
* * *
두시간 뒤.
면접을 모두 끝내고 귀가한 시안은 일행을 소집했다.
이유나, 박라온, 김누리 세 명. 아쉽게도 가온은 부모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병원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간호를 도맡아 오지 못했다.
셋은 소파에 나란히 몸을 붙여 앉았고, 시안은 따로 1인용 소파에 앉아 오른쪽에 앉은 이들에게 물었다.
등산복 차림의 거한과 캐주얼한 복장의 여인.
면접을 통해 긍정적인 이야기를 나눈 하유준과 천봄이, 두 명이었다. 긍정적인 대화를 마친 천봄이는 곧장 시안과 누리를 따라 사무실로 왔고, 조금 마음에 진정을 하게 된 하유준도 다시 협회를 통해 시안에게 연락을 하여 사무실로 합류했다.
"오늘 여기에 왔다는 건 저희 스튜디오에 가입하실 의향도 있다는 말씀이시죠?"
"......저는 어디까지나 김누리 양의 호위로 면접을 보기는 했습니다만."
하유준은 시안을 쳐다보다가 주먹으로 입을 가리고 헛기침을 했다. 태양빛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가 살짝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쪽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하신다면 들어갈 의향은 있습니다. 아니, 그 때는 제가 입사 지원서를 내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유준 씨는 누리 양의 호위 겸 인턴이라 치고, 봄이 님은...."
"편하게 부르세요."
천봄이는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차고 넘치는 모성에 시안 왼편의 세 여성진이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연예인이라고 해봐야 이능력자 등급처럼 C급이나 B급 수준이라 그렇게 큰 부담이 되지는 않을 거니까."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당장은 인력이 부족해서 김누리 양에게 집중하기에, 봄이 씨에게는 집중을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괜찮아요. 받아주신 것 만으로도 감사한 걸요."
시안은 새롭게 합류한 두 남녀를 반기며 기존의 일행에게 서로를 소개했다. 유나나 라온, 누리는 천봄이를 반기면서도 은근히 하유준을 견제했고, 시안은 행여나 하유준이 떠난다고 할까봐 더욱 잘 챙겨줬다.
짝. 시안이 손뼉을 쳐 이목을 끌었다.
"그러면 오늘이 2월 28일 금요일. 2월의 마지막날이죠? 마음같아서는 오늘 술이라도 한 잔 하고 싶지만...."
"당장 내일이 작전 결행일이잖아요."
3월 1일.
오전 9시에 신서울에서 제 13차 서울수복작전이 시작된다. 시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팀원들에게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그 자리를 파했다.
"내일부터 잘 부탁드립니다. 다섯 명 모두."
달이 떠올랐다.
* * *
<북극성> 하유준
출생 : 1999.07.07.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적 : 대한민국
소속 : 무소속
신체조건 : 195cm, 121kg, AB형
포지션 : 근접 탱커
마력 패턴 : 화 07 수 21 풍 35 지 49
광 42 암 14 환 28
각성 마력 : 지속성
종합 평가 : C (2024년 기준)
* * *
<페르소나> 천봄이
출생 : 1992.9.30.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적 : 대한민국
소속 : US 엔터테이먼트
신체조건 : 168cm, ##kg(프로필 삭제 요청), B형
포지션 : 원거리 딜러, 서포터
마력 패턴 : 화 2 수 17 풍 34 지 31
광 8 암 37 환 44
각성 마력 : 풍속성, 환속성
종합 평가 : C (2024년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