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85 [라노벨외전] 창천의 데스디나스 2권 002
<설화공주> 석하랑
출생 : 2000.10.13. (26세)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국적 : 대한민국
소속 : 히어로 협회 한국 지부
신체조건 : 164cm, 46kg, O형
포지션 : 딜러, 얼음술사
마력 패턴 : 화 01수 99풍 33지 24.
광 50암 32환 48.
종합 평가 : S (2024년 기준)
<부산의 수호신> - 히어로 위키
# 초기각성 S급 - 2012년 각성하여 지금까지 활동중인 S급 히어로.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수속성 성장 한계치 99를 가진 나라의 보배. 첫 각성부터 S급 스타트를 한 희대의 재능러.
# 얼음술사 - 괴수를 얼려버리거나 얼음창을 쏘아 적을 꿰뚫는다. 필살기 <설화접>은 얼음으로 된 나비 날개를 등 뒤로 펼쳐 주변에 얼음 가루를 뿌려 눈보라를 일으킨다.
# 광검의 제자? 원수? - 본래 고아원에서 자라다가 광검에 의해 발굴되어 이능력 각성을 자각하고 그의 제자가 되었으나, 2022년 <대격변> 당시 심각한 의견 차이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갈라섰다. 3년간 단 한 번도 신서울에 올라간 적이 없을 정도.
* * *
설화공주 석하랑.
눈이 내린듯한 순백의 머리칼과 연회색 눈동자를 가진 미인. 겨울의 정령이 현신한 듯한 그 이국적인 외모에 뭇 많은 이들의 마음이 혹했고, 협회는 그에게 '설화공주'라는 이명을 붙였다.
반도의 남동쪽에 피어오른 한 송이 얼음꽃.
성인이 된 2019년 이후로 SS급을 목전에 두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SS급으로 올라가지는 못하고 있다. 시안은 팀원들에게 설화공주의 프로필을 읊으며 설화공주의 등급을 가리켰다.
"S급이랑 SS급을 가르는 기준이 뭔지 아니?"
"필살기랑 궁극기 차이잖아요."
"...맞아."
누리의 정답에 시안이 화면을 두 개 올렸다.
"일단 필살기부터 보자."
하나는 설화공주의 시그니쳐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필살기, <설화접>. 나비 날개를 펼친 설화공주를 중심으로 수천마리 얼음 나비 때가 하늘을 수놓는 장관에 팀원들이 감탄했다.
"저게 부산에서 있었던...."
"<모비딕 공략작전>이에요. 2022년에 대마도를 수장시킨 S급 괴수, 모비딕을 한일 양국이 힘을 합쳐서 해상에서 공략했죠."
과거 오키나와를 바닷속에 잠기게 했던 괴수는 10년간 성장하여 전장 100m에 달하는 초거대 괴수가 되었다. 유나가 아카데미에서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간략히 설명했다.
"거의 SS급에 이른게 아니냐는 말은 있기는 했지만, 다행히 설화공주님 필살기 덕분에 움직임을 억제하는 데 성공했죠."
"막타는 원탁에서 마무리했지만."
시안이 턱을 괸 채 빈정거렸다. 셋은 투덜거리는 시안의 태도가 영 탐탁찮았지만, 적어도 그가 설화공주에 대해 상당히 고까운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시안은 얼음의 나비들이 해수면에 내려앉는 장면을 일시정지했다.
"단순히 마력을 제 의지로 움직여 발현시키는 게 '필살기'지. 그에 비해...."
시안은 영 만족스럽지 못한 눈빛으로 설화공주의 필살기를 바라보다가 영상을 종료했다.
"SS급은 달라. 한 번 볼래?"
U튜브의 원탁 공식 채널에 들어간 시안은 전세계 최강이자 최초의 SS등급으로 알려진 <가웨인> 경의 영상을 재생했다.
"인류사상 마지막 '차원문'이었던 멘체스터 게이트. 여기서 가웨인은 SS등급으로 각성하고 '궁극기'를 사용했지. 자, 봐봐."
시안은 가웨인이 하늘 높이 검을 치켜든 장면을 반복 재생했다. 가웨인이 여왕으로부터 하사받은 대검을 하늘로 치켜들자, 검끝에서 황금빛 열기가 피어올라 거대한 구를 만들어냈다. 시안은 구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소태양'. 한낱 인간의 마력으로 유사 핵융합을 일으켰지. 결과야 어떻게 되는지 뻔히 알테고. 그래서 뭐가 차이일까?"
"자연의 마력을 동원하느냐 못하냐 그 차이로 들었어요. 도 교수님 강의에서."
"...또 정답."
유나의 시원한 답에 시안은 아쉬운 듯 혀를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안이 설화공주에게 95, 가웨인에 96이라는 숫자를 표시했다.
"원래 성장 한계치 90이상은 전부 S급이었어. 그게 2022년, 가웨인이 96을 넘기면서 SS라는 구분이 생긴 거야. 한낱 인간이 자연의 마력을 빌려 사용하는 경지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으니까. 지금이야 어느정도 늘었다만."
"설화공주는 아직 그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 그 말씀이십니까?"
라온의 물음에 시안은 손가락을 튕겼다.
"그래.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성장 한계치가 분명 99인데 95에서 막힌 셈이지. 어쩌면 처음 각성한 2012년부터 지금까지 쭉 95일지도 모르고. 어디까지나 내 예상이야. 본인이나 추종자들은 SS급이라고 주장할 지 몰라도."
"와, 그럼 십몇년 동안 정체되어 있었다는 거임?"
누리가 겁에 질린 얼굴로 제 무릎을 만지작거렸다. 처음부터 S급이었던 설화공주도 SS급의 벽에서 무려 13년 가까이 막혔는데, 과연 자신이 SS급에 오를 수 있을까 절로 두려워졌다.
"걱정마."
시안이 누리를 향해 살포시 웃으며 기운을 북돋았다.
"내가 너 무조건 SS급 만들어 준다. 내 말만 잘 들으면."
"막 이상한 거 시키려고 밑밥까는 것 같은데."
누리가 눈을 샐쭉하며 시안을 노려보자, 시안도 마찬가지 표정으로 누리에게 맞받아쳤다.
"얘가 졸업한 지 얼마 안 되서 그러나. 머릿속에 이상한 생각만 가득하네."
"이거 성희롱 맞지? 신고각?"
"우리 대화에 성희롱이라고 할만한 요소가 단 1%라도 있었나?"
시안이 콧방귀를 뀌며 유나와 라온에게 의견을 구했다. 인정을 해버리면 사고회로의 방향이 음란하다고 스스로 밝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상하차를 시키려고 하는 겁니다." 라온은 비상식으로 화제를 빠져나갔다.
"그래서 설화공주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유나는 화제를 되돌려 함정에서 빠져나갔다.
"와, 나만 개변태 되는 거임? 실화?" 누리는 배신감에 치를 떨며 둘을 노려봤지만, 둘다 누리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일단 만나긴 할 거야." 시안이 볼을 긁적이며 답했다.
"애초에 만남을 거부할 이유가 없으니까. S급 히어로가 굳이 이 스튜디오에 오겠다는 이유도 궁금하잖아. 막말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인데."
넷은 설화공주가 보낸 공문의 문구를 하나하나 분석하며 스튜디오에 접촉한 이유를 찾고자 했다.
먼저 누리가 의견을 펼쳤다.
"'개인적'으로 방문한다고 했잖아. 그럼 역시 아는 사이네. 아저씨 우리한테 구라치면 죽어?"
"내가 설화공주랑 아는 사이면 평생 네 노예한다."
"시안, 또 말실수를...."
"아니, 진짜 모른다니까? 어떻게 각서라도 써줘?"
"흐응, 킵은 해둘게."
확신에 찬 시안의 부정에 누리의 의견, '지인으로서의 방문' 의견은 기각되었다.
"그럼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라온이 제 의견을 내세웠다.
"굳이 저녁에 방문하고자 하면서 저희 측의 일정을 최대한 맞추고자 한 흔적이 엿보입니다. 먼저 약속시간을 잡기는 했지만, 갑을관계에서 설화공주가 '을'에 해당하는 행동을 하는 거죠. 제가 또 계약만 십 수번 넘게 해보지 않았습니까. 그간의 경험을 되살려보자면 아마 설화공주님도-"
"결론만 말하자."
"저희 스튜디오에 들어오고 싶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건 좀 가능성 있네."
시안이 턱을 쓸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리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이딴 곳에 설화공주가 뭐가 아쉬워서 들어온다고 그래?"
"......야. 이딴 곳이 너 SS급으로 키워줄 스튜디오야, 임마."
"추해. 아저씨 팩폭 당하니까 반박 못하죠? 말 돌리죠? 솔직히 여기 대외적으로 이미지 개박살 난 거 모름? 지난번에 인터뷰 댓글 베댓 알려줘?"
"스튜디오에 대한 반응은 일부러 안보고 있습니다. 시안은."
라온의 추가타에 시안은 불쾌한 기억이 떠올라 이를 꽉 깨물었다.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금발서양남의 하렘 스튜디오'는 너무한 거 아니야? 내가 여기 하렘 차리려고 온 것도 아닌데."
"......뭐, 그렇다 치죠."
"본인이 그러시다면야. 흐흐."
라온과 누리가 자기들만 아는 눈신호로 시선은 주고받으며 키득거렸다. 소외감을 느끼며 억울해진 시안이 둘에게 역공을 펼쳤다.
"야, 그래서 설화공주 진짜로 영입하면 하렘 멤버에 한 명 더 추가되는 셈인데?"
"......와, 이거 신고 각이다. 정조관념 개쓰레기 오졌죠?"
"아주 당당하게 문어발 걸치겠다고 선언하시는 군요. 시안."
오히려 반격을 당했다. 시안은 식은땀을 삐질 흘리며 자신을 노려보는 두 쌍, 아니 세 쌍의 시선에 입이 바싹 말랐다.
"아, 아니. 그냥 너희가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비유하는 거 아냐."
"아주 틀린말은 아닐지도 몰라요."
잠자코 있던 유나가 차분히 목소리를 높였다. 셋의 이목이 유나에게 집중되었다.
"시안 님은 대외적으로 '누리를 발굴한 스카우터' 정도로 알려져 있죠. 어쩌면 말예요, 설화공주가 시안 님에게 바라는 건 그런 거 아닐까요?"
유나가 설화공주의 스크린 위에 표시된 S에 S를 하나 더 붙이며 말을 이었다.
"어쩌면 SS등급에 오를 수 있는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절박한 심정일 것 같아요."
"...과연. 13년 동안 막혀있던 벽을 넘기 위해 새로운 접근 방법을 도입한다는 겁니까? 한국에서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으니까 외국인의 조언을 들으려고 하는 걸지도 모르겠군요."
"하긴. 설화공주 한 번도 외국 나간 적 없잖아. 맨날 협회 때문에 부산에 처박혀있었지, 외국인이랑 만날 일이라고 해봐야 얼마나 있겠어? 이 기회에 다른 방법이라도 시도해보려고 하겠다."
"그런가?"
유나의 주장에 라온과 누리가 근거를 덧붙였다. 제법 설득력을 갖춘 'SS등급 각성에 대한 자문' 의견에 시안도 구미가 당겼다.
"그러면 설화공주가 내 정ㅊ...."
시안이 뒷말을 삼켰다. 셋의 눈이 귀신같이 제 입술에 향하는 것을 보고 시안은 또 말실수를 할까봐 식겁했다.
하지만 이미 셋은 그 정도의 단서만으로 시안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한 건지 대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설화공주가 SS등급 오르는 거랑 아저씨 정체가 무슨 관계가 있는데?"
"정말 일면식도 없는 것 맞습니까?"
"시안 님?"
셋의 추궁에 시안은 식은 땀을 흘리며 시선을 피했다.
"꼬, 꼭 알려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우리 서로에 대해 어차피 잘 모르는 것도 얼마나 많은데."
"지랄. 히어로 위키 들어가면 우리 작년 몸무게까지 다 알고, 아저씨 이제는 우리 생ㄹ- 크흠! 아무튼 주기까지 다 알고 있잖아! 그럼 서로 비밀을 숨기지 말자고!"
"좋아! 알려주지! 대신 조건이 있어. 이건 양보 못해."
시안은 눈을 질끈 감았다. 셋은 침을 꿀꺽 삼키며 시안의 폭로를 기다렸다. 무언가 특별한 조건이라도 있을까 셋은 두근두근 했지만, 시안은 미소조차 없이 굳은 얼굴로 무게를 잡았다.
"최소한 나랑 끝까지 갈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해. 그냥 말만 그런게 아니라, 무덤까지 함께 들어갈 각오가. 아니...."
너무나도 진지한 시안의 분위기에 셋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공기가 착 가라앉았고, 시안은 슬며시 처연한 미소를 지었다.
"세계가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도."
* * *
저녁.
시안은 휑한 사무실 소파에 홀로 앉아 컵라면의 뚜껑을 열었다. 보통은 사무실에서 함께 저녁을 시켜먹거나 인근 식당으로 갔지만, 시안은 세 여성진에게 버림받았다.
- 우와, 개노답. 존나 재수없어. 언니한테는 얘기해놓고.
- 그냥 솔직하게 이야기하기 싫으면 싫다고 하십시오.
- ...몸이 좀 안 좋은데 먼저 들어가봐도 될까요?
유나가 조퇴를 신청한 것을 계기로 라온과 누리도 함께 사무실을 떠나버렸다. 홀로 사무실에 남게된 시안은 전기포트에 끓여둔 물을 컵라면에 부으며 툴툴댔다.
"거짓말은 아닌데."
컵라면이 불기까지 3분. 시안은 고뇌에 잠겼다.
"......언젠가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
시안은 정신을 번쩍 차리기 위해 두 손으로 뺨을 쳤다. 볼이 얼얼해지고 통각에 눈이 확 뜨였다.
"밥 먹고 생각해야지."
어느덧 시간은 저녁 7시. 딱 배가 고픈 시간에 적절히 컵라면이 익었다. 인스턴트 제품은 몸에 안 좋다고 유나가 하도 잔소리를 해대는 바람에 먹지 못한 유성식품 컵라면의 신제품.
매콤하고 자극적인 냄새가 코를 간질여 군침이 절로 돌았다. 시안이 나무젓가락을 뜯는 그 순간.
똑똑똑.
청명한 노크 소리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시안은 컵라면의 뚜껑을 덮고는 소파에서 일어나 사무실 문을 열었다.
"저기요, 저희 오늘 영업 끝났-"
"안녕하세요...?"
문밖에는 동화 속에서 현실에 튀어나온 것 같은 겨울 나라의 공주가 시안을 올려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