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884화 (884/1,497)

EP.884 [라노벨외전] 창천의 데스디나스 2권 001

<오월 사태>가 일어난지 2주가 흘렀다.

비극의 주인공, 김누리는 부모의 간병을 하는 짬짜미 D급 던전을 돌아다녔다.

- 김누리 던전 들어가서 죽기라도 하면 어쩔 거냐?

암속성 S, 어쩌면 SS급이 될 수 있는 인재가 수속성 C급으로 던전을 돌다가 위험에 빠지면 어쩌나 사람들은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오라클 스튜디오>.

스튜디오라는 이름만 달고 있지 그 실상은 오라클이 한국에 만든 양성소나 다름없었고, 그 첫 고객은 현지의 매니저 '시안.w.히비스커스'가 발굴해낸 김누리였다.

- 그래도 나중에 키워서 미국 데려가려고 하는 거 아냐?

혹자는 '저 외국인 길드 만든다고 하던데?'하던 의견도 내놓았다. 실제로 몇몇 증인들은 시안이 길드를 모집하던 과정을 증거로 내세웠다. 거기에 시안의 병문안에 '오라클'이 다녀갔다는 소식도 들리면서, 오월 사태의 후유증-국부유출에 대한 우려가 재발하는 것 같았다.

- 모두 오해입니다.

이에 시안은 마침 연락해온 'US투데이'와 인터뷰를 통해 스튜디오 개설의 이유를 밝혔다.

- 미래의 인재가 될 법한 이능력자를 각성시키고 길러내는게 우리의 목표. 김누리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다른 길드와 접촉하도록 할 것.

시안은 "공항에서의 인연으로 알게된 '히어로 아카데미 학부생' 이유나의 도움을 받아 언어의 차이로 발생한 오해를 풀었다."고 해명을 했고, 김누리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이능력자 양성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 협회에서 우리 스튜디오의 던전 진입을 허가해준다면 김누리의 첫 길드는 이 나라의 길드가 될 것.

시안은 인터뷰를 통해 못을 박았고, 김누리 또한 그에 마찬가지로 확답을 했다.

다만 다른 길드가 아닌 스튜디오를 선택한 것을 두고 이견이 있었으나, 누리가 자신의 이능력 각성을 최초로 알아본 사람은 시안이라고 언급하면서 논란은 가라앉았다.

- 일단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기로 하자.

막대한 자본이 들어갔으니 최소한 해외로 도망치지는 않겠지. 온 나라가 누리의 행보를 주시하는 가운데, 그들은 그 스튜디오의 실상에 대해 꿈에도 눈치채지 못했다.

스튜디오라는 이름만 달고 그 운영은 사실상 '길드'에 가깝다는 진실을. 그리고 비밀리에 운영되는 '팀 데스디나스'의 존재를.

* * *

<2월 26일 오전 11시, 오라클 스튜디오.>

"볼 때마다 기분은 더럽단 말야."

시안은 편의점에서 나오며 보인 간판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건물 위에 멋드러지게 걸린 간판은 본래 자신이 생각했던 간판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그래도 덕분에 수월하게 활동하게 됐지 않습니까?"

라온은 한산한 건물 주변을 가리켰다.

아직 몇몇 기자들이나 협회에서 보낸 사람들이 건물 주변을 기웃거리거나 카페에 자리를 잡고 있지만, 사무실 간판이 올라간 첫 날보다는 훨씬 적었다. 시안은 봉지 안에 든 물건을 확인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가 예쁘다고 떡을 돌렸는지. 죄다 우리한테서 뭐 건질 거 없나 노리는 승냥이들이잖아."

"그 승냥이들 상대로 안 그러면 물어뜯깁니다. 몸은 전혀 다치지 않겠지만 옷은 상하겠죠. 오라클 님 덕분에 돈 많은 스튜디오로 소문났거든요. 거기에 시안 님의 행동도 한 몫 했고요."

"뭐가?"

"방문하는 사람들한테 족족 사장님네 커피 내어주셨잖습니까. 그거 벌써 '미제 자본의 위엄'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굳이 인터넷에 오른 평판을 보여주는 라온의 행동에 시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도 모르게 지낼 때가 훨씬 좋았어."

"이제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들 그럴듯한 명함 박았지 않습니까?"

라온은 제 명함을 꺼내들며 웃었다. 오라클 스튜디오의 사원이자 헬스 트레이너. 그게 대외적으로 알려진 라온의 직업이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이능력자라는게 잘 먹혀들었지. 어제도 고생하셨습니다, 김누리 코치님."

"누리 양보다 전투 경험이 훨씬 많으니까요. 제가 S급은 아니지만, A급부터 D급까지는 전부 왔다갔다 해본 사람입니다."

라온이 가슴을 탕 치며 자부심을 보였다. 시안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사무실을 가리켰다.

"그럼 이제 던전 가야지?"

"......또 말입니까?"

노골적인 라온의 질색에 시안도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았다.

"너까지 그러면 어떡해?"

요 2주간 제법 친해진 덕분에 시안은 라온에게도 상당히 편하게 대했다. 실제 나이는 라온이 두 살 더 많았지만, 라온은 다른 이들의 앞에서 굳이 '누나'라는 표현을 듣기 싫어했다.

애초에 시안이 저보다 훨씬 윗사람이니 그냥 편하게 상급자로서 대하라고 라온은 말했고, 시안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래서 라온은 시안의 반말을 오히려 반겼다. 하지만 시안이 이번에 말한 내용은 반기지 못했다. 라온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요 이주일간 저희가 무엇을 했는지 아십니까?"

"당연히 알지. 던전 돌았잖아."

"던전'만' 돌았습니다. 어제까지 한국에 생성된 '모든 D급 던전'을 공략했습니다."

라온이 서서히 목소리의 속도를 빠르게 올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전투 경험이 중요하다고는 해도, 시안의 강박관념은 훈련을 중시하는 라온조차도 심하다고 여겼다.

"그것도 5번씩. 원래 시안이 10번을 하자고 했던 걸 저희 셋이 반대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여수에서 뺑이 치고 있었을 겁니다."

"너 누리랑 붙어다니더니 급식이 좀 옮았다?"

"말 돌리지 마십시오. 어제까지 저희가 던전을 공략한 횟수가 몇 번이나 되는지 아십니까?"

"당연히 알지."

시안은 심드렁한 얼굴로 마도기어를 두드려 자신이 정리한 공략 내역을 쭉 읊었다.

"신서울 인근 던전 세개, 충남이랑 전북 쪽에 있는 던전 일곱개, 그리고 경상권에 있는 열개. 어제 마무리한 제주도 D급까지 총 23개네."

라온조차도 제대로 세지 못하고 있던 정확한 데이터의 폭격에 라온은 발을 구르며 성을 냈다.

"12일간 던전만 돌았습니다! 제주도 간다고 해서 바람 좀 쐬나 싶었는데, 관광은 커녕 던전만 돌았습니다! 심지어 쉬지도 않고 배를 타야 했습니다!"

"용건 끝났으면 당연히 돌아와야지. 집놔두고 밖에 나가서 뭘 해. 일하러 갔는데."

라온은 답답함에 숨이 턱 막혔다. 분명 옷 아래에 입은 바디슈트는 통기성이 뛰어난데도 불구하고 숨쉬기가 너무 어려웠다. 열기를 띤 숨을 거칠게 쉬는 라온의 모습에 시안이 슬쩍 꼬리를 내렸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뭐야?"

"당연히 휴식 아닙니까. 2주 가까이 휴일도 없이 일했습니다."

시안은 셋을 한계까지 쥐어짰다. 정말 '쥐어짜다'라는 표현이 옳을 정도로, 시안은 세 이능력자의 마력 한계를 귀신같이 파악해내 극한까지 굴렸다.

"주 5일은 커녕 주말도 중간에 빼앗아 가셨잖습니까."

라온의 볼멘 소리에 시안이 엄한 표정을 지으며 반론했다.

"그건 누리 잘못이야. 누리가 거짓말만 안 했어도 그냥 넘어갔어."

"......."

라온은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인내심의 심지가 가장 짧은 누리가 먼저 폭발해 몸이 안좋다는 핑계를 댔지만, 시안은 몇 번 맥을 짚더니 곧장 누리의 거짓말을 파악해냈다.

"그러길래 사람 오해하게 만들지 말았어야지. 솔직히 너희도 누리 거짓말에 동참한 거잖아."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라온은 누리의 거짓말에 합세하여 변명했고, 유나는 침묵으로 누리의 거짓말에 동조했다.

그리고 누리가 선택한 거짓말의 내용 때문에 시안은 화를 냈고, 셋은 침울해진 상태로 시안의 지시를 따라야했다.

"그렇잖아. 나도 '그 날'이 얼마나 중요하고 위험한지 잘 알고 있는데, 그거 가지고 거짓말을 하면 내가 뭐가 돼. 아픈 것도 모르고 던전 무자비하게 돌린 사람이 되잖아."

하필이면, 정말 하필이면 누리는 몸이 안좋다는 핑계로 한 달에 한 번씩 있는 '마법의 날'을 핑곗거리로 걸었다.

- 뭐? 어디 아픈데 없어? 아픈데 왜 말 안했어! 미안, 내가 진짜 미안해. 유나야, 당장 힐 걸어! 병원부터 가서 정밀검사 받자. 라온 씨는 당장 검사 가능한 병원 찾아줘요. 나는 자율주행차를, 아니다. 구급차 부를 게요. 잠시만....

- 미안, 아저씨. ......거짓말이야.

- 야이##%@#$%@#%@

라온은 그 날 외국인의 입에서 그렇게까지 다채로운 한국어 욕이 튀어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죄송합니다."

"됐어. 서로 실수하고 그러는 거지. 나도 적당히 요령 피우면서 했어야하는데, 너무 효율만 생각하며 돌렸나봐."

"그래서 오늘은 어디로 갑니까?"

라온은 이미 체념한 얼굴로 사무실 계단을 오르는 시안의 뒤를 따랐다. 막 사무실 문을 열려던 시안의 손이 멈췄다.

"안 갈건데?"

"네?"

"던전 공략한 거 결산도 해야하고, 뭣보다 오늘이 '그 날'이거든.

라온이 얼굴이 붉어졌다. 자신은 아닌데, 분명 둘 중 한 명이리라. 시안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직 3인 스쿼드에서 한 명 빠지면 불안하니까. 그리고 아픈데 계속 던전 돌아다닐 수 없잖아. 던전안에서 용품을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러니까 최소 이틀은 휴식. 아, 아니다. 너까지 포함하면-"

"입 닥치십시오."

"......."

라온은 과거의 자신과 누리가 너무나도 미워졌다. 머쓱해진 시안은 사무실 문을 열었고, 안에는 미리 기다리고 있던 유나와 누리가 그들을 반겼다.

"오셨어요? 아직 추울텐데 죄송해요."

"아저씨 왜 이렇게 늦어?! 호빵 다 식겠다!"

"내가 사온 호빵인데 네가 왜 호들갑이야. 자, 유나는 야채라고 했지?"

유나가 녹색의 야채호빵을 받아들고, 누리는 주황색 피자호빵을 냅다 집어 크게 앙 물었다.

"역시 JMT."

"......?"

"......."

연장자 2인은 묵묵히 제 몫의 팥호빵 포장을 벗기며 말을 삼켰다. 야채호빵의 포장지를 벗기던 유나가 빨갛게 익은 시안의 손을 보고 걱정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밖에 안 추웠어요?"

"춥지. 근데 괜찮아. 얼마 안 걸리더라고."

시안은 호빵을 손난로처럼 움켜쥐었다. 유나는 슬쩍 제 호빵을 시안의 손에 붙이려 움직이다, 음료를 향해 뻗은 누리와 눈이 마주쳐 그대로 입으로 호빵을 넣었다.

"어, 갑자기 왜 이렇게 춥지. 히터 고장났나?"

"......."

호들갑을 떨며 히터가 켜져있는지 확인하고 온 시안이 호빵을 베어물며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간식 좀 먹으면서 얘기하자. '현재 능력치' 좀 파악하자고."

"...? 그에 뎀?"

누리가 호빵을 입에 문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안은 볼이 터질듯한 누리의 얼굴에 터지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고 테이블 아래에 놓아둔 물건을 꺼냈다.

"짜잔!"

"지난 번 검사기랑 비슷한 것 같은데요."

유나는 자신의 성장 한계치를 찾아낸 검사기를 가리키며 외형을 비교했다. 겉모습은 비슷했지만, 마력을 분석하는 검사기 부분이 달랐다.

"역시 눈썰미가 좋아."

시안이 접시처럼 생긴 검사기 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각자 '현재' 낼 수 있는 마력을 구체화하는 거야. 그럼 이 검사기가 그 마력을 '수치화'하는 거지."

"그러면 그게 우리 레벨임?"

"......그래. 너희 현재 레벨. 참고로 최대 레벨은 성장 한계치인 거, 알지?"

"당근 빳다죠, 그럼 나부터."

호빵을 입에 욱여넣은 누리가 검사기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곧 검지 끝에서 파란색의 마력이 일렁거리더니, 작은 물방울 하나가 톡 하고 떨어졌다.

"...아직 전원도 안 켰는데."

"그럼 빨리 켜."

재촉하는 누리의 말에 시안은 혀를 한 번 차고는 검사기의 전원을 켰다. 곧 검사기의 안에 있던 코어에서 마력이 서서히 돌기 시작하며 접시가 흔들렸다.

"아, 참고로 얘기하자면 이 검사기의 원리는 일곱 마력의 패턴을 분석하여 그 패턴의 파장에 따른 진동수를-"

"네, 설명충 오졌고요. 이거 결과 어떻게 봐?"

"......똑같이 수치로 나와."

시안이 툴툴거리며 투입구를 가리켰고, 얼마 지나지 않아 투입구에서 결과가 프린트되었다. 누리가 그걸 낚아채고 종이가 뚫어져라 살폈다.

"수속성 33? 아저씨, 암속성은? 이거 하나밖에 안 나오는 거임? 개 꼬물이네. 나 수속성 37인데."

"......네가 각성한 마력이 하나밖에 없는 거다. 그리고 4만큼 컨디션 안 좋아서 못 낸 거야. 네 몸 속 마력은 37인데 컨디션 불량인 거지."

"뭐?! ...그럼 내 암속성은?!"

"아직도 혈관에 누워서 태업하는 거지. 라온아, 한 번 해볼래?"

누리의 물방울을 휴지로 닦아낸 시안은 장비 옆에 있던 새로운 접시를 꺼내 교체했다. 라온은 단전 내의 마력을 끌어올려 단추같은 형태로 마력을 구체화했다.

"역시. 진짜 잘한다니까."

보석같은 모습에 시안이 감탄사를 내뱉으며 검사 버튼을 눌렀다. 곧 결과가 나오자 시안은 라온의 검사지를 보며 눈에 이채를 띠었다.

"수속성 19에 풍속성 21. 어, 광속성이랑 암속성도 쌓였네?"

"예?!"

라온이 새된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시안이 곧장 검사지를 라온에게 건네며 미소를 지었다.

"광속성이랑 암속성이 10이랑 7이기는 한데, 역시 주변인 덕분인가?"

시안이 유나와 누리를 번갈아보며 킥킥 웃었다. 누리가 라온의 검사지를 받아보더니 대놓고 짜증을 부렸다.

"와, 언니 머임? 왜 언니가 암속성 각성하고 나는 아직도 각성 못하는 거지?"

"조급해하지마, 누리야."

유나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누리를 진정시켰다. 다행히 누리는 곧 진정할 수 있었지만, 누리 스스로 새 접시를 집어들어 유나에게 내밀었다.

"언니도!"

접시를 내민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마 유나마저 암속성을 각성했다면 누리는 울어버리리라.

"......알겠어."

유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접시 위에 마력을 구체화시켰다. 유나가 접시 위에서 엄지와 검지를 비비자, 금빛의 가루가 살포시 접시 위에 떨어졌다.

"어? 라온 언니처럼 보석이 아니네?"

"......일단 올려볼래?"

시안이 침을 꿀꺽 삼키며 라온의 마력 구슬이 있는 접시를 치웠다. 누리가 곧장 금가루가 올라간 접시를 올렸고, 검사기는 접시 위의 마력을 빠르게 분석해냈다.

지이잉. 검사기가 프린트된 종이를 토해냈다. 유나가 담담히 결과를 읽었다.

"광속성 29."

"......와, 언니 뭔데."

그야말로 '잠재력이 폭발'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유나의 마력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심각했던 시안의 표정이 살짝은 풀렸다.

"잠자고 있던 마력이 '자각'과 함께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한 건데, 그래도 갑자기 50이고 90이고 오르지는 않네."

"전 이 속도도 빠르다고 생각해요. 왠지 딱 D급 던전들 다 공략해서, 승급을 앞둔 그런 느낌? 후후후."

유나의 입에서 튀어나온 전문 용어에 누리가 새침한 얼굴로 물었다.

"유나 언니 게임 잘 모르지 않음?"

"시안 님이 설명 이해하기 쉬울 거라고 공부 좀 했어."

"...'공부'? 허."

누리가 코웃음을 쳤다. 유나는 머쓱한 듯 볼을 긁적였고, 라온은 침묵하다가 화제를 돌렸다.

"시안, 그래서 아까 하던 얘기는...."

"아, 던전 얘기? 까먹을 뻔 했네."

던전이라는 말에 유나는 얼굴이 창백해졌고, 누리는 귓볼까지 붉어지며 성을 내려했다. 시안이 손사레를 치며 재빨리 말을 이었다.

"안 갈 거야. 오늘이랑 내일은 쉬는 날."

"뭐? 안 가? 내일까지? ......아."

누리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여전히 얼굴은 붉어져 있었다.

"오늘이 26일 수요일이니까, 목요일까지는 쉬자. 그리고 금요일에 다시 모이는 게 어때? 그 날 신서울에 엄청 중요한 일이 있을 것 같거든."

"중요한 일요?"

유나의 물음에 시안이 얼음이 담긴 아메리카노를 가리켰다.

"부산의 공주님이 신서울 행차하신다더라. 그 분이랑 저녁 데이트 약속도 잡혔거든."

"......영입하겠다는 말인가요?"

유나의 목소리는 제법 날카로웠다. 시안은 볼을 긁적이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뭔진 모르겠지만 그쪽에서 여기 온대. 28일에. 이거 봐봐."

시안은 제 마도기어에 도착한 공문을 셋에게 보였다. 공손한 방문 예정 일자와 시간까지 적힌 협조 공문에 셋은 너무나도 놀라 입을 닫지 못했다.

"이, 이 분이 여기 오신다고요?"

"미친. 에반데. 아저씨, 무슨 수를 쓴 거야?"

"...아무 것도 안 했어."

부산의 수호신, 한국 최강의 물속성 이능력자, 얼음 여왕 등으로 불리는 S급 히어로.

- 2월 28일 금요일 20시 오라클 스튜디오에 개인적으로 방문하고자 합니다. 사전 약속이 있으시거나 일정 변경이 불가피한 경우, 방문 예정 시각을 조정하고자 하오니 아래 마력 코드로 연락 주시길 바랍니다.

<설화공주> 석하랑 드림.

그가 오라클 스튜디오에 비밀리에 방문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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