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76 [라노벨외전] 창천의 데스디나스 1권 023
길드 <오월>.
인천에 뿌리를 내려 활동하는 오월은 한국 헌터 협회에 등록된 길드이나 최대 투자자가 중국의 길드인 <중화>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광활한 평야에서 벌어들이는 코어의 자금력을 바탕으로 중화는 전세계에 자신들의 산하 길드들을 퍼뜨렸고, 한국처럼 폐쇄적인 나라의 경우에는 대리인을 내세워 영향력을 행세하고자 했다.
중화는 인재에 대한 욕심이 상당했고, 그런만큼 김누리의 부모를 헌신짝처럼 버린 오월에 대해 막대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오월은 살아남기위해 선택을 해야했다. 이대로 길드 자체를 해체당하거나, 아니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누리를 중화의 품으로 들이거나. 혹은 제 3의 길을 선택하거나.
회유나 설득을 두고 굳이 납치라는 강경수단을 선택한 이유는 다른 게 없었다.
과거 인천 등지에서 불법을 자행하던 이들이 길드를 만들고 중화의 지원을 받아 만든게 오월이었다. 자금력은 상당했지만 뿌리부터 썩은 이 집단은 더이상 한국에서 지내기 어렵게 되었다.
- 마지막으로 크게 한탕을 하고 해외로 도망쳐버리자.
남자와 김상아의 강변에 설득당한 오월의 길드원들은 계획에 따라 김누리의 부모에게 '사과'라는 명목으로 인천까지 와달라고 부탁했고, 김누리의 부모는 순순히 인천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들은 저녁이 되어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 * *
<2월 8일 오후 8시, 시안의 사무실.>
"누리야! 연락은?!"
"안 돼, 전혀 받지를 않아!"
누리는 근심걱정으로 안절부절 못했다. 부부는 누리가 들어갈만한 길드를 알아보겠다는 말을 끝으로 더이상 연락이 없었다. 아무리 누리가 호출을 해도 그들은 전화는 커녕 문자조차 받지 않았다.
"그냥 단순히 대화가 길어질 가능성은요?"
"아닐겁니다. 그랬다면 최소한 중간에 연락이라도 했을 거예요. 한 분이라도."
유나가 누리를 진정시키려 긍정적인 가정을 했지만, 라온은 냉정하게 반박하며 정황을 다시 살폈다.
"신서울을 벗어난 이상 협회의 보호도 분산되었을 겁니다. 어쩌면 누리의 양친에 대한 보호는 없을 수도 있죠. 누리 양, 마지막으로 간다고 한 곳이 인천 맞습니까? 짐작가는 곳은요?"
"몰라.... 알면 내가 이러고 있겠어?!"
누리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성질을 부렸다. 시안은 손을 뻗어 화를 가라앉히라는 듯 손짓하며 누리를 진정시켰다.
"누리야. 부모님께서 평소에 모르는 사람이랑 거리낌없이 대하니?"
"...아니."
"그럼 보통 아는 지인의 연락을 받고 갔을 거란 말이지."
시안이 잠시 턱을 손으로 쓸었다.
"누리 부모님께서도 누리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아실 거야. 그런데도 길드와 접촉하러 간다고 하셨으니, 무언가 거부하기 힘든 요소가 있었겠지."
"너무 비관적으로 보는 것 같은데."
벽에 서있던 가온은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누리가 가온을 쏘아보자, 가온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부모님 두 분이서 데이트 나가신 걸 수도 있잖아. 아니면 진짜로 누리 쟤 길드 찾아주러 간 거거나. 왜 이렇게 다들 호들갑이야? 누가 들으면 진짜로 납치된 줄 알겠다."
"언니는 지금 걱정도 안 돼?!"
"걱정도 팔자다. 얘. 잠깐 연락 안 될 수도 있지, 그거 가지고 그렇게 성을 내니? 엄빠 연락 잘 안되던게 어디 한 두 번이야?"
"잠깐이 아니잖아! 벌써 전화만 스무 번 넘게 했다고!"
누리가 얼굴을 붉히며 성을 냈지만, 가온은 대수롭지 않은 양 어깨를 으쓱였다.
"너 그거 부모님께 민폐다. 너 자꾸 그러면-"
"김가온 씨."
시안이 나긋나긋한 못소리로 가온의 말을 끊었다.
"저희 지금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눠봐야할 것 같으니, 도와주시지 않으실 거면 좀 나가주시겠습니까?"
"......허, 야. 지금 저걸 믿으란 말이야?"
가온이 누리를 가리키며 콧방귀를 뀌었다.
"부모님이 다른 길드에 납치당한 것 같다는 말을?"
"네. 믿습니다."
"근거는?"
"누리가 그렇게 느꼈다는 거?"
가온은 진지한 시안의 모습에 기가 차고 코가 막혔다. 가온의 시선이 곧 누리를 향했다.
"야, 김누리. 넌 도대체 무슨 근거로 엄빠가 납치당했다고 주장하는 거야?"
"...그냥. 그런 불안한 느낌이 들어서."
누리는 스스로도 긴가민가한 눈치로 말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런저런 근거를 들이미느니, 그냥 제 생각을 곧이곧대로 말하는게 더 진정성이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가온은 두 팔을 벌리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그 불안한 느낌만 믿고 경찰이든 협회든 신고하자? 허. 이게 내가 잘못한 거야?"
가온은 시안을 노려보며 물었다. 시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잘못한 건 아니죠. 하지만 김가온 씨. 만약 1%의 가능성이라도 누리의 말이 사실이되었고, 정말로 두분이 납치당했다고 한다면 가온 씨는 그 일을 감당 하실 수 있겠습니까?"
"...부모님 납치당하게 내버려둔 썅년으로 살 바에는 착각으로 신고하고 그 다음에 개쪽당해라?"
"격한 말씀입니다만 맥락은 비슷합니다. 그리고...."
시안은 누리의 앞에 서서 가온과 대치했다.
"누리는 제 길드원입니다. 길드원의 가족이 위험에 빠졌을 수도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죠."
"......칫. 누구는 가족 아닌 줄아나. 맘대로 하시던가."
가온은 팔짱을 끼고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차마 쿨하게 사무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건 누리 때문에 피어오른 불안감이 가온의 발을 묶었기 때문이었다. 시안은 의자에 앉으며 툴툴거렸다.
"부모님 위험할 수도 있다는데 엄청 태평하네."
"상식적으로는 저게 맞아요. 길드장님."
시안의 혼잣말을 유나가 캐치했다. 라온도 고개를 끄덕이며 유나의 의견에 긍정했다.
"겨우 반나절 정도 연락이 끊겼을 뿐이잖아요. 평소에 이런 일도 제법 잦았다고 하고. 이걸로 납치당했다고 보기에는 비약이 있죠.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시각일테고...."
유나는 누리의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저도 그다지 생각하고 싶지는 않은데, 납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연락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건 맞는 것 같아요."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러면 누리야. 지금 전화를 다시-"
삐비빗. 누리의 마도기어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다름아닌 이서향의 전화였다.
"엄마!"
[응. 엄마야. ...너 지금 어디에 있니?]
추궁하는 말투에 누리는 머쓱한 듯 웃었다. 집을 나서기 전과 똑같은 서향의 모습에 근심이 내려갔다.
"나 아저씨 사무실에 있어. 같이 저녁 먹는다고."
[뭐? 너 대체- ...아니다. 잘했어. 누리야. 엄마랑 아빠 지금 인천 쪽에 아는 분 만나러 왔다가 지금 길드 소개 받았거든?]
"뭐? 2월 말까지 컨택 금지잖아."
[그건 길드 쪽에서 너한테 접근하는 걸 금지하는 거지, 네가 길드 알아보고 다니는 걸 막는 것은 아니잖아. 우리도 마찬가지야. 그래서 지금부터가 본론인데.]
서향이 잠시 뜸을 들였다. 저녁이라 그런지 잠시 목이 잠긴 것 같은 행동에 누리가 의아해하던 찰나, 서향이 바로 입을 열었다.
[아빠 전에 다니던 길드에서 너 한 번 보고싶어 하더라. 자기들 잘못이 크니까 다시는 이런 일 없을거라고. 오월이 중국 쪽이기는 해도 자금이 엄청나잖아? 그리고 뭣보다 너를 위해 길드도 새로 재편한다더라. 오직 너만을 위한 길드로.]
"...나참. 엄마, 그거 주책이야."
누리는 머쓱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벽에 붙어있던 가온은 그 보라는 양 어깨를 으쓱였다.
[주책 좀 부리면 어떠니. 그래서 말인데, 너 좀 있다...아니 지금 바로 인천으로 올라오렴.]
"지금? 이 시간에?"
[지금 길드장님도 오셨는데, 내일 일찍 본국으로 떠나신다고 하시네. 지금 아니면 시간이 없나봐. 우리가 어떻게든 못 떠나게 묶어둘테니까 최대한 빨리 올라오렴. 알겠지?]
"어, 응. 알았어."
누리가 당황하며 시간을 보는 사니, 시안이 옆에서 급하게 끼어들었다.
"누리 어머님! 저 301호에 계약했던 사람입니다!"
"아저씨 뭐하-"
쉿. 시안이 스크린에 비치지 않는 각도에서 검지를 들어 누리의 입술을 눌렀다. 명백히 조용히하라는 제스쳐에 넷은 숨을 삼켰다. 그건 스크린 너머의 서향도 마찬가지였다. 시안은 순박한 얼굴로 베시시 웃었다.
"아, 혹시 기억 안나시나요? 그 왜 야밤에 누리 양 소개로 계약했었는데. 밤늦게."
[......물론이죠.]
서향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시안이 누리의 입술에서 손을 떼고 누리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저 얼마전에 차 한 대 구했는데, 제가 누리 태워줘도 될까요? 아, 절대 잘보이려는 수작 아닙니다! 밤늦게 올라가면 위험하잖아요! 그쵸?"
[.......]
서향은 다시금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다소 과장된 제스쳐를 취하는 시안의 모습에 누리가 뭘 잘못 먹었나 쳐다보는 사이, 스크린 맞은편의 유나가 급히 스크린 하나를 띄웠다.
- 너도 적당히 맞장구쳐서 전화 끊어. 빨리.
"......엄마. 이 아저씨 나랑 그런 사이 아니니까 오해하면 안 된다?"
[당연하지. 그럼 잘 부탁해요.]
전화는 끊어졌다. 누리는 제 어깨를 붙잡은 시안의 오른손이 차갑게 굳어있는 것을 느끼고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저씨? 이제 이 손 놓지?"
"......부자연스러웠어."
"뭐?"
"네 어머님, 말투부터 행동 하나하나가 부자연스러웠다고.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것 마냥."
"뭔 소리를-"
누리는 숨을 헛들이켰다. 시안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제 어머니는 자신이 상상한 최악의 상황에 놓여있다는 말이나 다름 없었다.
"그럼-"
"아무래도 그 낮은 가능성이 또 일어난 것 같다. 라온 씨, 슈트 입어요. 유나야, 누리 슈트 입는 거 도와줘. 그리고 가온 씨는 빨리 누리 교복으로 갈아입고 와요."
시안은 당황하는 일행들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당장! 준비 끝나면 바로 주자창으로 모입니다!"
부연 설명조차 않고 밀어붙이는 시안의 기세에 일행은 당황하면서도 그의 명령을 따라 움직였다. 졸지에 누리의 옷을 입게된 가온이 성이 나서 시안의 왼쪽 손목을 붙잡았다.
"야! 제대로 설명 안 해?"
"가면서 설명할테니까 놓으세요."
철컥. 시안은 코트 안에 숨겨둔 총을 꺼냈다. 가온이 흠칫 놀라 절로 힘이 빠졌고, 시안은 총의 상태를 점검하며 벽에 들여놓은 캐비넷을 가리켰다.
"상황이 지금 위급하니까 잘 들어요. 일단 내 명령 들으세요."
"명령? 허,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나를-"
" "
시안이 가온의 귀에 아주 작게 속삭였다. 가온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경악했다.
"어, 어떻게?"
"빨리 갈아입고 주차장으로 내려와요."
시안은 가온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황급히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막 사무실의 옷장에서 누리의 교복을 꺼내온 유나가 가온에게 교복을 건네며 물었다.
"방금 길드장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아, 아무것도 아닙니.... 아무것도 아니야."
가온은 얼이 빠진 상태에도 빠릿한 움직임으로 환복했다. 라온과 누리는 히어로 슈트를 착용하고, 유나는 그들의 위에 위장용으로 산 코트를 덧입히고는 비상계단을 통해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끼이익.
흰색의 3.5톤짜리 탑차에 오른 시안이 뒤를 가리켰다.
"유나는 여기 앉고, 다른 사람들은 뒤에 타세요."
"...알았어."
평소라면 불만을 토로했을 누리도 가타부타 없이 탑차의 뒤에 올라탔다. 언니인 가온은 시안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탑차 안으로 뛰어들었고, 막 코어웨폰 박스를 챙겨든 라온이 슬며시 운전석으로 다가가 물었다.
"어떻게 한 겁니까?"
시선은 혼이 나간 가온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인 찬스를 좀 썼어요. 자세한 건 비밀."
시안은 짧게 윙크하고는 뒤를 가리켰다. 라온도 탑차의 옆문으로 탑승하고 유나가 조수석에 올라탄 때, 시안이 스위치를 올려 탑차 안의 조명을 밝혔다.
팟.
[시안. 이, 이건?!]
작은 컨테이너 안에는 세네명 정도가 앉는 공간과 정비 기구, 간이 침대와 작은 샤워부스가 갖춰져 있었다. 시안은 후방 컨테이너와 연결된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던전 오다닐 때 정비용으로 구입한 건데 이렇게 소개할 줄은 몰랐네요. 아무튼 소개합니다."
시안은 스마트락에 제 지문을 찍고 시동을 걸었다. 코어 엔진이 부르르 떨며 차에 미약한 진동이 울렸다.
"장거리 출장용 캠핑카입니다. 우리 길드 전용."
"...렌트잖아요."
유나의 지적에 시안은 말없이 엑셀러레이터를 밟았다.
* * *
<그 시각, 인천 모 사무실.>
"좋았어. 아줌마 연기 잘 하네? 큭큭."
"......."
"하긴, 남편이 지금 죽을 상황인데 무슨 수라도 써야지. 안 그래?"
남자는 도윤의 목에 칼을 들이밀며 낄낄거렸고, 서향은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상황이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남편을 살리기 위해 딸을 팔아넘긴 꼴이 된 이상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남자는 클클거리며 의자에 묶어놓은 도윤을 가리켰다.
"걱정 마. 일만 다 잘 되면 아무 문제 없을테니까."
"......도대체 왜 이런 짓을 저지르는 건데요? 누리를 영입하고 싶으면 신사적으로 하면 되잖아! 오월에서 뭐가 부족해서 이런 범죄를 저지르는데?!"
"뭐 그렇기는 한데, 나도 딱히 오월을 위해서 일하는 건 아니거든."
서향과 시선을 마주한 남자의 눈동자에는 보라색 귀기가 흐르고 있었다. 서향이 너무나도 놀라서 숨이 턱 막혔다.
"괴ㅇ-"
푹. 서향은 그대로 기절하듯 잠들었다. 등뒤에 있던 김상아는 얼굴에 묻은 피를 소매로 닦으며 남자를 비웃었다.
"괜히 계획 떠벌리려하지 말고, 그냥 닥치고 작전이나 제대로 해. 배는? 연락했어?"
"...당연하지. 12시에 이쪽으로 오기로 했어."
남자가 건넨 좌표에 김상아는 만족한 얼굴로 서향을 들어올렸다. 중년 여성을 한손으로 들어올리는 괴력은 인간의 것이라고는 보기 어려웠다. 남자가 볼을 긁적이며 몸을 일으켰다.
"너 내 부하들 다 죽였냐? 야, 그래도 내가 나름 챙겨주면서 본진 데려가려 한 애들인데 너무한다."
"어차피 데려가봐야 강시로 가지고 놀 거면서. 쓸모도 없는 인간들 데리고 뭐해? 그냥 얌전히 내 이거나 되는 게 낫지."
김상아는 제 심장을 가리키고는 손으로 무언가를 마시는 제스쳐를 취했다. 남자는 눈썹을 으쓱이며 의자에 묶인 도윤을 의자째로 들어올렸다.
"흠흠. 자, 그러면 우리 게으른 주군을 위해 오늘도 열일하는 괴인 <채문희>님의 활약을 볼까?"
"너 자꾸 정보 흘릴래?"
남자는 그저 장난기가득한 얼굴로 웃을 뿐이었다. 김상아, 괴인 채문희는 서향의 마도기어를 집어들며 짜증을 부렸다.
* * *
<오후 10시, 인천 인근 도로.>
덜커덩. 차가 도로에 굴러다니는 괴수의 시체를 밟았다. 유나는 시트 아래에서 전해지는 그 끔찍한 충격에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시안에게 물었다.
"길드장님. 역시 설레발 아닐까요?"
"설레발이어서 나쁠 건 없지."
시안은 무덤덤한 얼굴로 최대한 괴수의 시체를 피하며 차를 몰았다. 헌터들이 정기적으로 괴수를 처리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간혹 괴수들이 도로로 뛰쳐들어와 로드킬을 당하고는 했다.
"길드장님은 무슨 확신이 있어서 이렇게 대대적으로 인천으로 가자고 하신 거예요?"
시안이 운전대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답했다.
"잠재력이 뛰어난 이능력자일수록 감각이 발달하지. 이른바 '육감'같은 건데, 특히 이능력자들은 자신이나 제 주변인에 대해 민감하단 말야. 누리도 그래."
"누리가 그렇게 느끼니까 분명 그럴 것이다? S급 잠재력이라서?"
"대충 그런 셈이지. 유나는 어떻게 생각해? 유나 느끼는대로 말해도 좋아."
시안은 정면을 응시하면서도 유나를 향해 온 신경을 보내고 있었다. 라온도, 누리도, 가온도 아닌 자신을 일부러 조수석에 앉힌 이유가 뭘까 유나는 고뇌에 빠졌지만, 당장은 시안의 질문에 자신이 '느낀대로'답하기로 했다.
"여러 가지 생각은 들지만 저는 말이에요."
유나가 정면을 응시하며 굳은 얼굴로 말했다.
"누리를 어떻게 하려로 가족을 인질로 잡은 거 아닐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시안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피식 웃었다.
"히어로 가족 건드리는 건 삼류 악당이나 하는 짓인데."
어느덧 차는 목적지를 향해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시안이 마이크를 다시 켜고 컨테이너 안에다 말했다.
"아아. 상황은 두 가지. 만약 가온 씨 예상대로 단순한 길드 영입 제안이다, 그러면 우리는 철수합니다. 부모님이 자녀를 위해 길드 알아보시는데 제가 뭐라 할 수 없죠. 하지만...."
삑. 마도기어의 화상 지도가 서서히 목적지가 가까워졌음을 알리고 있었다. 시안은 바싹 마른 입술을 혀로 훔치며 말을 이었다.
"만에 하나, 그럴리도 없지만, 혹시나 정말로 두 분을 인질로 잡고 누리 양을 해코지하려고 하는 거라면-"
끼이익. 시안은 아주 천천히 차를 몰며 목을 가다듬었다.
"곧장 엎어버리고 두 분을 구출합니다. 알겠죠?"
"...정말 이 전력으로 괜찮을까요? 길드 하나를 상대하는 건데?"
유나의 딴지에 시안은 차를 주차하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괜찮아요. 여차하면 다 쓸어버릴테니. 그러니까."
시안은 손을 뻗어 유나가 안전벨트를 풀려는 것을 손으로 제지했다. 유나가 눈살을 찌푸리며 시안의 손을 떼려고 하자, 시안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유나는 여기서 대기하고 있다가 신호가 들리면 경찰에 신고해줘요. 알겠죠?"
"신호요?"
"'천둥'."
"아. 네, 알겠습니다."
유나는 안전벨트를 꽉 쥐며 고개를 끄덕였고, 시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가 트럭 안을 살폈다.
"...방탄유리라 안전할 겁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기서 나오지 마요. 알겠죠?"
"길드장님."
"약속."
시안은 왼손 새끼손가락을 펼쳤다. 유나는 잠시 그 손을 바라보다가 왼손을 들어올려 약지를 걸었다.
"절대로 안 나올게요. 길드장님 말고는 문 안 열어줄테니까, 걱정말고 다녀오세요."
"...네. 그러면 다녀오겠습니다."
시안은 유나와 엄지도장을 찍고 운전석에서 나왔다. 이미 밖에는 히어로 슈트 위에 검은 우비로 위장한 라온과 누리, 그리고 누리의 교복을 어떻게든 착용한 가온이 대기하고 있었다.
시안이 가온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그러면 출발하죠."
"...예, 아니, 응."
가온은 굳은 얼굴로 시안의 손을 잡았다. 서향이 좌표를 보낸 사무실에는 아직까지 불이 켜져 있었다.
"......."
시안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사무실 건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