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870화 (870/1,497)

EP.870 [라노벨외전] 창천의 데스디나스 1권 017

키에엑!

고블린 한 마리가 어둠 속에서 기습을 걸었다. 그러나 지능이 높은 개체가 아닌걸 자랑이라도 하듯, 고블린은 괴성을 지르며 녹슨 칼을 내질렀다.

"...!"

막 모퉁이를 돌던 라온이 창을 내질러 고블린을 막으려 했으나, 고블린이 들어올린 칼끝의 방향에 몸이 굳어버렸다.

고블린의 칼은 라온의 심장을 향했다. 뒤따르던 누리가 놀라 황급히 앞으로 뛰었다.

"위험-"

카앙!

고블린의 칼은 라온의 슈트의 흉갑에 부딪혀 옆으로 빗겨나갔다. 퍼뜩 정신을 차린 라온이 그대로 겨드랑이 사이에 녹슨칼을 끼우고는 발을 들어올려 고블린을 걷어찼다.

키에엑?!

퍽! 퍽! 라온이 미친 사람처럼 넘어진 고블린을 향해 발길질을 했다. 원수라도 된 것 마냥 라온은 고블린을 차댔고, 고블린은 각혈을 하며 사망했다.

꾸륵, 꾸르륵. 고블린의 사체는 던전에 녹아들어가고, 바닥에는 보라색과 검은색이 섞인 코어 하나만 달랑 남았다. 라온은 거친 숨을 내쉬며 제 슈트를 만지작거렸다.

"하아, 하아. 휴우."

날카로운 칼자국이 남기는 했지만 몸에 상처는 없다. 라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벽에 몸을 기댔고, 유나가 급히 다가와 손을 뻗었다.

"괜찮아요?"

"네. 다행히 몸은 멀쩡합니다."

라온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유나는 슈트의 겉에 난 칼자국을 엄지로 쓸었다.

"걱정마요. 이 정도면 슈트가 알아서 복구할 거예요."

"후우, 후우."

유나가 라온을 진정시키는 사이, 시안은 고블린의 코어를 회수했다. 검은 암속성 코어에 보라색 장기가 들어간 것을 확인한 시안이 혀를 찼다.

"아무래도 '마족'도 있는 모양이야."

"'이계'의 괴물들?"

누리의 말에 시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코어를 주머니속에 넣은 시안이 코트 안주머니에서 총을 꺼냈다.

"보스인지 아니면 배회마족인지는 몰라. 하지만 이런 잡몹의 코어까지 영향을 주는 걸 봐선...."

"최악의 경우, C등급이 될 수도 있습니다."

라온의 말에 유나와 누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시안도 굳은 표정으로 총기의 덮개를 열었다.

"유나야."

"길드장님."

"보험이야. 보험. 걱정 안해도 돼."

유나는 라온과 누리의 눈치를 보며 셔츠 앞주머니에 넣어둔 탄환을 꺼냈다. 회색이 섞인 거대한 탄환에 라온이 눈에 이채를 띄었다. 누리가 우람한 탄환의 길이에 흥미를 보였다.

"아저씨. 이게 아저씨 총알이야?"

"보험같은 거야. 그냥 호신용이니까 앞에서 잘 막아줘."

"호오."

라온도 관심을 보였다. 시안은 부담스러운 라온과 누리의 눈빛에 모퉁이 너머를 턱으로 가리켰다.

"일단 계속 가자. 너무 슈트의 방어력을 믿지는 말고, 피할 수 있는 건 피해. 알겠지?"

"예."

일행은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시안은 슬쩍 유나를 제 앞에 세우고 최후미에서 혹시나 뒤에서 나타날 무언가를 경계했다.

캬아악!

"어딜!"

바닥에서 튀어나온 고블린에 누리가 곧장 칼을 찔러넣었다. 라온이 공격을 당한 것을 마치 자신이 받은양 누리는 고블린의 어깻죽지에 칼을 쑤셨다.

"지금!"

누리에 의해 저지당한 고블린은 라온이 찌른 창에 의해 그대로 절명했다. 둘은 동시에 날을 고블린의 시체에서 뽑았고, 시체는 곧 던전에 먹혀 코어만 남았다.

"슬슬 합이 맞는 것 같은데요?"

"아직까지는 마력이랑 장비로 찍어누를 수 있으니까."

시안의 목소리는 긴장으로 가라앉아있었다. 유나도 스태프를 꽉 움켜쥐며 절로 긴장이 되었다.

"사실상 이번 공략은 둘에게 모든 걸 맡기는 거야. 보스가 원래대로 '고블린 주술사'가 나오면 아주 수월하게 공략할테지만......."

갓 슬라임의 경우처럼, 좀 더 높은 난이도의 '상위종' 보스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최악의 경우-

"아냐. 그건 아니겠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시안에 유나는 절로 불안해졌다.

과연 괜찮은 걸까. 하지만 유나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 *

<그 시각, 가온누리 501호.>

"엄마!"

"귀 찢어져, 이것아."

서향은 과일을 깎으며 TV를 가린 가온에게 과도로 비키라는 손짓을 했다. 이능력의 경지야 가온이 가장 높지만, 집안의 권력은 여전히 서향에게 있었다.

어머니와는 말이 통하지 않자, 가온은 곧장 눈을 돌려 아버지-김도윤을 향해 소리쳤다.

"아빠, 아빠는 누리가 걱정도 안 돼?!"

"걱정 되지."

소파에 앉은 도윤은 한쪽팔을 깁스한 상태로 중얼거렸다. 가온은 도윤이 제 말에 공감하는 것에 반색했다. 도윤이 다른 한손으로 서향이 내미는 포크를 잡았다. 끝에는 예쁘게 잘린 사과가 걸려있었다.

"우리 누리가 그 청년한테 괜히 사고칠까봐."

"아빠!"

반대였다. 가온은 제 머리카락을 쥐어뜯어며 발을 굴렀다.

"그게 아빠가 할 소리야?! 딸이 누군지도 모를 남자랑 같이 다른 도시에 가서 벌써 이틀을 외박했는데 지금 사과가 넘어가?!"

"누군지도 모르다니. 적어도 집에 들어오지도 않는 딸년보다 낫지."

서향의 날선 말에 도윤이 그를 제지했다. 그러나 한 번 뚜껑이 열린 서향은 가온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너네 아빠 치료비 누구 덕분에 마련했는지 아니? 시안 군 덕분이야."

"그러니까 그 때는 내가 연락할 수 없던 상황이었다니까!"

"믿을 수가 있어야지. 외국계 길드라면서 어딘지 소개도 안하고 알려주지도 않는 딸이랑 비교하면 시안 군은 양반이야."

"오라클 스튜디오였지. 분명."

도윤은 서향에게 전해들은 시안의 신분을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이능력을 잃고 일반인이 되었지만 전직 '원탁 히어로' 오라클의 명성이 사라진 건 아니다. 오히려 예언가로서의 이능력이 사라졌음에도 그는 제 재산을 이용해 세계 평화를 추구하며 갖은 노력을 하는 명사였다.

"그거 분명 거짓말이야."

가온이 이를 갈며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서향은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만하렴. 네 동생 지금 천안에 가있는게 훨씬 나아. 지금 신서울 돌아오면 온갖 길드에서 영입하려고 난리칠 걸?"

"그러니까 차라리 그게 더 낫다니까!"

가온이 마도기어를 조작해 서향에게 요 이틀간 찾은 데이터를 넘겼다.

"좀 적당히-"

서향의 표정이 굳었다. 뒤에서 그를 지켜보던 도윤도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남자, 한국에 길드 만들러 온 거라고!!"

가온이 넘긴 링크에는 시안이 모집하는 길드 공고문이 올라와 있었다.

* * *

파앙! 라온의 창대가 파공성을 내며 횡으로 휘둘러졌다. 은은한 마력을 띤 창날에 놀란 고블린이 급히 제자리에 멈춰섰다. 그 찰나의 순간, 라온의 오른쪽에서 숨어있던 누리가 앞으로 뛰쳐나갔다.

푸직. 누리가 크게 앞으로 한발자국 내딛으며 멈춘 고블린을 찔렀다.

누리는 이제 고블린의 체력을 일격에 날려버릴만한 '효율적인 마력 출력'을 찾아냈고, 아주 수월하게 고블린을 처치하고 코어를 주웠다.

누리는 제 뺨에 튄 고블린의 피를 손등으로 닦으며 코어를 던졌다.

"아저씨, 득템."

"그래."

시안은 오른손으로 코어를 낚아채고 주머니에 넣었다. 비정상적으로 빠른 움직임에 라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안, 혹시 야구했습니까?"

"아니. 그냥 코어 아까워서 나도 모르게 손이 가더라고."

시안이 제 오른팔을 붕붕 돌리며 웃었다. 그러고는 곧장 누리를 향해 엄한 표정으로 삿대질을 했다.

"코어 안 깨지도록 조심해. 손상도가 높을수록 돈도 그만큼 못 받으니까."

"네, 네. 근데 어차피 고블린 코어라고 해봐야 몇만원 안 되잖아?"

"몇만원은 돈이 아니니? 이거 코어 하나면 우리 넷이 사장님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씩 마실 수 있어."

"아, 예. 잘 알겠습니다."

이제는 제법 여유가 생겼는지 누리는 평소처럼 장난스러운 얼굴로 답했다. 라온도 함께 고블린을 처치하면서 전우애가 생기기라도 했는지, 누리의 태도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두 분 상처는 없죠?"

유나가 슬쩍 끼어들어 물었고, 둘은 제 바디슈트를 점검했다. 중간중간 흠은 생기기는 했어도 문제가 될만한 상처는 없었다.

"괜찮습니다. 아직까지는 충분히 싸울만 합니다."

"이러다 데미지 1도 없이 클리어하겠다. 으흐흐."

유나는 살짝 울컥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힐러로서 힐을 할 일이 없다는 건 좋은 일이다. 그만큼 안정적인 공략이 가능하다는 얘기니까.

"클리어...."

유나가 말을 곱씹으며 지금까지 사냥한 고블린의 마릿수를 계산했다. 약 서른 마리. 아카데미에서 배운 내용에 따르면-

"길드장님. 이제 슬슬...."

"응. 맞아."

시안은 기록을 재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 잡았어. 이제 보스룸이야."

아니나다를까. 시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일행의 눈앞에는 악마의 형상이 그려진 철문이 나타났다. 누리가 조금 더 흉해진 철문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슬라임 던전이랑 모양이 다른 것 같은데."

"던전 난이도가 올라갈 수록 이런 저런 요소가 달라지는 거죠."

"그저 더 강한 적이 나올 거라는 주의사항일 뿐입니다. ...시안?"

철문을 노려보던 시안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

"젠장. 운수 한 번 더럽게 없네. 모두, 오늘은 여기서 퇴각-"

"뭘 그렇게 꾸물거려?"

끼이익. 누리가 철문의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시안이 화들짝 놀라 앞으로 손을 뻗었지만, 이미 누리는 보스룸의 문을 열어젖혔다.

고오오오----

음습한 바람이 일행의 볼을 스쳤다. 누리는 보스룸을 반쯤 열다가 그대로 굳었고, 다른 셋은 이 기이한 현상의 정체를 깨닫고 사색이 되었다.

"말도 안 돼요, D급 던전에서 왜 '폭주'가 일어나요?"

"이유를 생각할 시간은 없습니다! 누리 양, 당장 발을 떼십시오!"

"아냐. 돌입한다."

시안이 총에 든 탄환을 다시금 확인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들의 마도기어에는 '시스템'이 친절하게 현상을 알려주고 있었다.

<경고> 던전에 '차원문'이 열렸습니다! 광마룡 (光魔龍) 등장까지 앞으로 00:30.

"큭!"

시안의 시선이 잠시 유나를 스쳤다. 하지만 무언가 말할 틈도 없이 시안은 앞으로 달려가 문을 박차고 보스룸으로 뛰어들었고, 라온과 누리도 돌출하듯 앞으로 나간 시안의 옆에 서서 무기를 들었다.

키에에에엑!!

보스룸에는 마기에 영향을 받은 고블린들이 날뛰고 있었다. 안그래도 차원문이 열렸는데 보스마저 '상위종'에 '마족'까지 튀어나온 최악의 상황.

"엎친데 덮쳐도 정도가 있지...!"

시안은 빠르게 눈으로 훑어 적들의 전력을 분석하고 전술을 가다듬었다.

"나와 박라온이 전위에 선다! 김누리! 코어웨폰 박스에서 총 꺼내서 원거리에 쏴! 견제해!"

"뭐?!"

"잔말말고 시키는 대로 해!"

추상같은 시안의 호령에 누리는 겁을 먹은 얼굴로 시안이 옆에 둔 코어웨폰 박스를 향해 달렸다.

"박라온! 왼쪽을 맡아! 내가 오른쪽을 맡는다!"

"...라져!"

누리와 교차하듯 앞으로 튀어나간 시안은 일행의 오른쪽에 서서 자세를 잡았다. 라온은 걱정어린 얼굴로 시안을 흘끗 쳐다봤지만, 이미 마기를 머금은 고블린들이 일행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김누리는 이유나를 지키면서 뒤에 오는 놈들을 저격! 이유나는-"

켸에엑!!

고블린이 보라색 안광을 흘리며 뛰었다. 시안은 혀를 차며 오른손에 든 총을 손도끼처럼 쥐고 고블린의 칼을 쳐냈다.

카앙!

마력이 조금도 실리지 않은 총이 고블린의 검을 깨부쉈다. 고블린은 마기에 잠식되어있으면서도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고, 시안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시 총을 휘둘렀다.

퍽! 고블린의 후두부를 총으로 찍어 바닥에 내다꽂은 시안은 그대로 왼발을 뒤로 당겨 고블린의 몸을 축구공 차듯 찼다. 갈비뼈가 으스러진 고블린은 그대로 바닥을 굴렀고, 곧 던전은 고블린의 시체를 먹어치웠다.

그 과정이 불과 2초. 칼을 옆구리에 차고 총을 집어든 누리가 얼떨떨해 하는 사이, 막 고블린의 진격을 저지한 라온이 소리쳤다.

"정신차리십시오! 지금은 차원문을 닫는데 집중해야합니다!"

"차원문을 닫다니, 우리가 어떻게-"

"이유나!"

시안이 유나를 불렀다. 유나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네, 네!"

"'우리'가 길을 연다! 그리고-"

시안이 보스름 끝의 차원문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네가 저걸 닫는다! 알겠지?!"

드디어 역할이 정해졌다. 유나는 스태프를 꾹 쥐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알겠습니다!"

"좋아!"

시안이 뒤를 흘기며 앞으로 달렸다. 어느새 일행의 뒤에는 보스룸 밖에서 부활한 고블린 좀비들이 흐느적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뭐, 뭐야?!"

"달려!"

유나가 앞으로 달리며 얼타는 누리의 손목을 잡아 이끌었고, 누리는 뒤에서 다가오는 고블린 좀비들을 향해 워터건을 쐈다.

푹! 푹! 압축된 물줄기가 고블린 좀비의 다리를 터뜨렸다. 겨우 진정한 누리가 유나를 불렀고, 유나는 곧장 손을 놓고 계속 앞으로 달렸다.

"하아아!"

라온이 왼쪽을, 시안이 오른쪽을, 그리고 누리가 후방을. 삼각형을 구축하고 차원문을 향해 달리던 유나가 마도기어로 시간을 확인했다.

남은 시간, 앞으로 15초.

"어, 어쩌려고?!"

"생각할 시간은 없습니다! 일단 달려요!"

누리와 라온이 말을 주고받는 사이, 유나는 시안의 등을 바라보며 스태프를 꽉 쥐었다.

'믿을 거야.'

분명 닫을 방법이 있기에 차원문에서 S급 괴수가 튀어나오는 것을 두고 도망치지 않으려 한 것이다. 유나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마력을 일으켜 더욱 빠르게 달렸다.

그 순간, 숨어있던 보스가 차원문 앞을 가로막으며 나타났다.

키히히히히히히!

나무로 된 지팡이를 흔들며 일행을 비웃는 고블린 주술사는 땅에서 고블린들을 생성하며 길을 막았다. 앞을 가로막는 고블린 무리에 라온이 입술을 깨물며 제자리에 멈춰버렸다.

"크윽?!"

강화복을 입었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고블린에 두려움을 느낀 게 아니라, 차원문 너머에서 느껴지는 광폭한 마력에 몸이 절로 굳어버린 것이다.

"어, 어어."

누리도 별반 다를게 없는지 총구가 벌벌 떨렸다.

앞으로 남은 시간, 10초.

"유나!"

시안이 소리쳤다. 유나는 여전히 앞으로 달리고 있었다.

"유나 양?!"

"언니?!"

라온과 누리가 놀랐다. 유나는 앞을 가로막은 고블린 무리가 보이지 않기라도 한 듯 그저 앞으로 달렸다.

철컥. 격철 소리와 함께 시안이 앞으로 총구를 내밀었다. 그게 꼭 유나의 뒤에다가 총을 쏘려는 것 같아, 라온과 누리가 시안에게 달려들었다.

"지금 뭐하는-"

"미쳤-"

콰---앙!!

천둥소리와 함게 회색 탄환이 허공을 달렸다. 빙글빙글 돌던 탄환은 유나의 귓불을 스치며 앞으로 나아갔고, 고블린 무리의 앞에서 거센 마력의 폭풍을 일으키며 고블린을 소멸시켰다.

키에에엑?!

고블린 주술사도 놀라 몸을 돌려 도망치려했지만, 포격에 가까운 위력에 휩쓸려 그대로 하반신이 터져버렸다.

유나는 탄환이 휩쓸고 간 자리를 달렸다. 앞으로 세 발자국만 더 가까이가면 차원문의 지처까지 닿을 수 있었다.

남은 시간, 5초.

키에에!

상반신만 남은 고블린 주술사가 유나를 습격하려 했지만, 물줄기 하나가 주술사의 지팡이와 머리를 날렸다.

"하아, 하아."

넘어진 누리는 총구만 간신히 들어 고블린 주술사를 저격했다. 시안이 누리를 부축해 일으켜 세우는 사이, 라온은 좀비들을 창으로 견제하며 유나를 향해 소리쳤다.

"파괴하십시오!"

유나는 숨이 턱 막혔다. 어떻게? 차원문을 파괴하는 방법은 아직 배우지도 못했는데.

유나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2초가 흘렀다. 남은 시간 3초.

그르르.

차원문의 너머에서 세로로 길게 찢어진 금빛 눈이 유나를 노려다봤다. 유나는 순간 겁을 먹고 뒷걸음질쳤다

"후려쳐!"

가, 시안의 목소리를 듣고 본능적으로 지팡이를 높이 치켜들었다.

퍽.

유나의 스태프가 차원문의 코어를 가격했다.

심연 속 마룡의 눈이 더욱 가늘게 찢어지고, 차원문의 코어는 격하게 떨리더니 곧 안개처럼 흩어졌다.

남은 시간, 1초.

[<알림> D급 고블린 던전에 열린 차원문은 이유나 님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친절한 시스템의 알림을 확인한 누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차원문은 닫-"

"라온!"

시안이 누리를 황급히 챙겨 들고는 유나를 향해 달렸다. 손이 엄한 곳을 스치는 바람에 누리가 화를 내려했지만, 뒤에서 들린 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키에에엑!

고블린 좀비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뭐, 뭐야?!"

"차원문이랑 던전 클리어랑은 별개니까요!"

라온이 창을 꼬나쥐어 투창 자세를 취했다. 달려가던 그대로 던진 단창은 고블린 주술사의 상체에 꽂혔다.

키에엑!

[던전 내 괴수 전멸 확인. D급 고블린 던전 클리어.]

파사삭. 고블린 주술사의 절명과 동시에, 고블린 좀비들도 안개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긴장이 풀린 넷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골랐다.

[30초 뒤, 지상으로 돌아갑니다.]

"하아, 하아, 하아."

"끄, 끝난 거죠?"

누리의 말에 시안이 화들짝 놀라 누리의 입을 막았다.

"그 말을 하면 안 돼...!"

"......아무 일도 없군요. 다행입니다."

라온은 피식 웃으며 땅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유나도 긴장이 풀린듯 스태프를 잡은 상태로 주저앉아 있었다.

"하, 하하, 하."

갑작스레 열릴뻔한 차원문을 닫았다. 유나는 제 손으로 인류의 재앙을 막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 진짜 돌겠네."

몸부림을 쳐서 시안에게서 떨어진 누리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차원문은 갑자기 왜 나온 거에요! 왜 닫는 시간은 고작 1분밖에 없고! 그게 왜 D급 고블린 던전에 나오고! 아저씨 그 총은 또 무슨 위력이고! 으아아아ㅏ아아아ㅏ아아ㅏㅇ!!"

누리는 사고회로가 터져버린듯 바닥에 그대로 쓰러져 아둥바둥거렸다. 시안은 그에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낸들 알겠어? 그래도 우리 이제 D급 던전 클리어했으니까 이제 길드 등록...."

[던전 클리어 지분 : □▣■ 43%, 김누리 32%, 박라온 24%, 이유나 1%.]

"...못 하겠네. 젠장."

시안은 제 총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굳어진 일행의 표정에 시안이 잠시 멍하니 있다가 볼을 긁적이며 웃었다.

"미안. 내 총이 너무 쎘어."

던전이 무너지고, 일행은 의식이 깜깜해졌다.

이유나, ['업적' 달성! <광속성 차원문을 파괴한> <최초로 D급 던전을 클리어 한>]

김누리, ['업적' 달성! <최초로 D급 던전을 클리어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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