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65 [라노벨외전] 창천의 데스디나스 1권 012
"그래서 보스룸 앞에 왔습니다."
시안은 가운데 피운 모닥불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팀원들을 둘러보며 각자의 앞에 마도기어에서 꺼낸 스크린을 띄웠다.
"보스룸을 앞에 두고 해야할 일이 뭐죠?"
"보스에 대한 정보 파악입니다. 길드장님."
라온의 침착한 대답에 시안은 손가락을 튕기고는 스크린 속 괴수도감을 펼쳤다. 시안의 스크린과 연동된 각자의 스크린에 부정형의 거대 슬라임이 나타났다.
"<킹 슬라임> 보시는 바와 같이 왕관을 쓴 슬라임들의 왕이죠. 던전마다 어떤 속성으로 등장할 지는 랜덤이지만, 마력 출력-그러니까 레벨은 다 똑같습니다. 유나야, 그게 얼마지?"
"10이요. 적색이면 화속성 레벨 10, 금색이면 광속성 레벨 10이죠. E급이에요."
"그래. 괜히 튜토리얼 던전이 아니지. 그러면 뉴비 김누리 양."
시안의 손가락이 누리를 향했다.
"우리 전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한 번 말해볼래?"
"......일단 아저씨는 성인 남자니까 한 7쯤 된다 쳐. 그 이상한 총으로 슬라임 때려 잡는 것 정도는 내가 인정."
"인정...?"
라온의 표정이 괴상해졌다.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어디서 감히 길드장을 인정하니 마니 말한단 말인가.
"김누리 양, 아무리 당신이 S급 포텐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런 말씀은...."
"언니, 그거 아니야."
유나가 황급히 라온을 제지했다. 시안도 아는 걸 모르는 라온의 눈치에 누리는 키득거리며 검지를 맞은편의 유나에게 돌렸다.
"유나 언니는 광속성이지? 현재 출력 10?"
"응."
유나가 시안을 흘겼고, 시안은 어깨를 으쓱였다. 누리는 그게 꼭 둘만 아는 비밀이 있는 것 같아 잠시 입술을 삐죽거렸지만, 곧 오른쪽의 라온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쪽은 레벨이 어떻게 됨?"
"...제 현재 마력은 풍속성과 수속성 모두 20정도가 끝입니다. D등급 중간입니다."
시안은 각자의 스크린에 이능력자 협회에서 공인한 성장 한계에 따른 등급 분류표를 꺼냈다.
01~10: E등급
11~25: D등급
26~50: C등급
51~75: B등급
76~90: A등급
90~95: S등급
96~99: SS등급
"그러니까 지금 전력을 정리해보면 E급 힐러, D급 탱커, C급 딜러가 있는 거죠."
순서대로 유나, 라온, 누리였다. 누리는 자신이 가장 급이 높다는 것에 고취감이 들었다.
"아저씨, 나 S급 딜러 아님?"
"S급 되려면 너 암속성 마력도 각성해야해. 수속성만 각성하고 암속성은 각성 못했으니까, 아직 C급인 거지."
"뭐야. 더럽게 복잡하고 귀찮네."
누리는 툴툴거리다가 시안이 아래에 붙여둔 슬라임 처치 기록을 보고 더 침울해했다.
"유나 언니도 세 마리나 잡았는데...."
좋게 들으면 자조하는 말이었고, 고깝게 들으면 유나를 무시하는 말이었다. 방정맞은 누리의 언사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있던 라온은 후자로 이해했고, 유나 또한 후자로 인식했다. 라온이 선수를 쳤다.
"그런 표현은 옳지 않습니다. 남이 얼마나 잡았는가가 아니라, 당신이 얼마나 잡았는 지를 봐야 합니다."
"나야 히어로 아카데미 학부생이잖니. 코어웨폰 들고 슬라임도 못 잡으면 아카데미에서 쫓겨날 거야."
둘의 차이점이 있다면 라온은 그걸 대놓고 지적하고, 유나는 속으로 이해하며 상대를 보듬어주는 타입이라는 것이다. 묵묵히 있던 시안이 입을 열었다.
"김누리. 분명 넌 지금까지 고작 한 마리 밖에 못 잡았어. 그건 인정하지?"
"...인정."
"하지만 오늘 막 각성자인 걸 자각하고 마력을 쓰는 것 치고는 상당히 고무적인 성과야. 저마다 성장하는 길은 제각각일 테니까."
시안은 채찍으로 때리고 당근을 쥐어주는 식으로 누리를 북돋았다. 동시에 누리의 동기를 부여하는 말도 덧붙였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네 공격력이 지금 예상보다 상당하다는 거야. 아까 슬라임 죽일 때 느꼈지?"
"어, 응."
"아무리 슬라임이 약해도 칼끝에 괴사할 정도로 약하지는 않아. 그 말인 즉슨."
시안은 누리의 한계 성장치를 가리키며 씩 웃었다.
"너, 지금 '최초 각성'으로 바로 수속성 한계치 찍은 것 같다."
"......쩐다, 대박."
누리는 숨을 삼키며 제 손을 바라봤다.
이능력자로서 최초로 각성하는 마력의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A급 포텐을 가지고 E급 마력을 각성하는 이도 있고, C급 포텐을 가지고 C급 마력을 각성하는 이도 있다. 심지어 그 마저도 속성이 달라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발생했다.
"저같은 경우에는 풍속성 D급으로 시작했습니다. 그 때가 15였죠."
"...난 광속성 1로 시작했어, 누리야."
누리는 지금 그 중에서도 수속성 37이라는 한계치를 다이렉트로 각성한 것이다. 그게 비록 C급을 간신히 넘기는 수준이라고 하더라도.
시안이 괴수 도감 속 킹 슬라임을 가리켰다.
"만약에 네 현재 능력치가 37이고 그게 그대로 마력량으로 이어진다면, 킹 슬라임도 일격에 처치가 가능할 거야."
"어디까지나 제대로 검을 휘두를 수 있을 때 이야기입니다만."
라온은 굳이 딴지를 걸었고, 누리는 볼을 부루퉁 내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흥! 그럼 어디 킹 슬라임 데려와봐! 킹이든 엠페러든 내가 배때지에 칼빵 제대로 놓아줄 테니까!"
"기개는 좋습니다. 길드장 님. 어디 한 번 김누리 양에게 맡겨보시죠. 제대로 싸울 수 있을라나 모르겠지만."
누리와 라온의 반목은 계속되었다. 시안이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서고, 유나도 지팡이를 들고 헐레벌떡 일어났다.
"일단 계획대로 싸우도록 하죠. 라온 씨가 시선을 끌고, 누리가 공격하는 거로. 혹시나 모르잖습니까. 저도 이번 전투로 '여러모로' 테스트를 하고 싶은게 많아서."
시안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라온을 노려다봤고, 라온은 눈꼬리를 미미하게 떨며 시선을 피했다.
누리와 유나가 무어라 하기 직전, 시안은 손뼉을 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면 오늘 킹 슬라임 잡으면, 첫 던전 클리어 기념으로 회식이나 합시다!"
"뭘로 회식할까요?"
유나의 질문에 라온과 누리가 곧장 대답했다.
"그냥 간단하게 티타임을 하며 반성을-"
"술! 고기!"
라온과 누리의 시선이 또 부딪혔다. 시안은 마도기어를 가리키며 둘을 중재했다.
"좋습니다. 그러면 이걸로 결론을 내리기로 하죠."
"던전 공략 지분으로 회식 메뉴 결정이라...좋습니다."
라온은 제법 경험이 많은지, 시안의 행동만으로도 곧장 뒷말을 눈치챘다. 전혀 경험없는 누리만 설명없는 둘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 소리임?"
"누가 더 성적 좋냐 그걸로 내기하자는 거야."
유나의 설명에 누리가 활짝 웃으며 반색했다가, 곧 제 지분을 깨닫고 성질을 부렸다.
"나 지금까지 고작 1마리밖에 못잡았잖아! 다시 해! 무효!"
"그러길래 누가 허공에다 칼질하랍니까."
"라온 씨.... 크흠, 누리야. 보스를 죽이기만 하면 아마 네 지분이 제일 많이 올라갈 걸?"
"아, 그래?! 그럼 내가 죽이면 되겠네. 흐흐흐, 딱 한 방, 한 방만 칼질하면 이기는 거잖아."
술! 고기! 누리는 종종걸음으로 뛰어가 곧장 보스방의 문을 열었다. 라온은 느긋한 발걸음으로 창대를 휘휘 돌리다, 킹 슬라임의 위용에 순간적으로 멈칫거렸다.
"......저게 '킹'이야?"
누리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라온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킹 슬라임은 고작 맷돼지 수준의 크기라고 말했잖습니까."
"그럼 저건 뭔데?"
"일단 킹은 아니지."
시안의 시선이 잠시 유나에게 머물렀다가 제 총을 꺼내들었다.
"E급 던전에도 가끔 '특별한 개체'가 나타나기도 해. 그게 보스인 경우에는 조금 힘들어지지만...."
"보상은 몇 배나 되죠."
시안이 주머니에서 납으로 된 일반 탄환을 장전하며 소리쳤다.
"산개! 탱커는 먼저 어그로를 끌고, 딜러는 상대의 공격을 보다가 경직 타이밍에 공격하러 가! 힐러는 여기서 대기!"
분위기가 갑작스레 바뀐 시안의 태도에 셋이 당황하던 찰나, 시안이 총구를 들어올리며 소리쳤다.
"뭘 어리숙하게 있어! 상대는 <갓 슬라임>! 고작해야 E급 10이야!"
"그, 그래도-"
"저거 잡으면 보상만 천만원이다!"
라온과 누리가 걸음을 박차고 달렸다.
* * *
<오후 7시, Padre Juan.>
"그러니까 역할을 다시 배분할 것을 제안합니다."
"기각."
시안은 단호한 얼굴로 라온의 주장을 거절했다.
"김누리가 우리 팀 딜러입니다. 아까도 봤잖아요?"
시안은 뒤에서 마도기어로 녹화한 전투 영상을 재생했다.
[꺄아아악?!]
하이톤의 비명에 시안은 주변을 훑으며 황급히 소리를 낮췄다. 저녁 시간, 제법 자리를 차지한 손님들이 시안의 테이블에서 들려온 시끄러운 영상 소리에 눈살을 찌푸렸고, 시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방으로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앉아요, 아저씨. 내가 더 부끄러우니까."
비명의 주인, 누리는 두 손으로 눈을 가린 채 고개를 숙였다. 누리의 얼굴은 토마토처럼 벌겋게 익어있었다.
"부끄러운 지 알아야합니다. 누리 양은."
"...아니까 좀 입 다물래요? 누가 그걸 몰라? 아니까 이러잖아."
라온의 빈정거림에 누리는 으르렁거리며 맞받아쳤다. 합이 가장 잘 맞아야 할 탱커와 딜러의 반목은 나아질 기미가 없이 심해졌고, 그를 중재해야 할 시안은 쉽사리 끼어들지 못했다.
"아. 마카롱 맛있다."
시안은 해탈한 얼굴로 마카롱을 반으로 쪼개 입에 넣은 뒤, 남은 반쪽을 유나에게 건넸다. 유나는 그걸 받아 입에 넣었다. 입안을 가득 채우는 산딸기 향기에 유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메뉴판에 없던 거 아녜요?"
"사장님이 개발중인 신메뉴래."
유리 진열대에 갓 구워낸 파이를 집어넣던 사장, 후안이 눈을 찡긋였다. 유나는 살포시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시안은 다른 마카롱을 반으로 쪼개 싸우던 둘에게 내밀었다.
"일단 드시죠."
"감사히 먹겠습니다."
"흥."
라온은 마카롱을 한입에 털어넣었고, 누리는 그걸 제 앞에 두고 반으로 쪼갰다. 마카롱을 먹는 사소한 방식마저 다른 둘의 습관을 보며 시안은 유나에게 조심스레 얘기했다.
"둘이 중국집 같이 가서 탕수육 시키면 난리나겠다."
"길드장님. 지금 장난치실 때가 아니잖아요."
유나의 핀잔에 시안은 다시 영상을 재생하려다 멈칫거렸다. 재생 버튼을 누르려던 시안은 그 손으로 볼을 긁적거리다 테이블을 두드렸다.
"크흠. 집중."
세 팀원의 시선이 시안에게 집중됐다. 시안은 영상을 재생시켰다.
[피하지만 말고 좀 막아봐요!]
[돌진 공격을 그대로 맞받아치는 자가 어딨습니까! 누리 양은 칼질이나 좀 제대로 해보십시오!]
[그럼 움직이지 않게라도 해보시던가! 어, 쟤 지금 나 보는 거임?]
[어그로 튀었, 크윽!]
"유나양. 아카데미 학부생으로서 이번 <갓 슬라임> 전투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내리자면?"
"낙제점이죠. 분석할 가치도 없어요."
촌철살인같은 유나의 말에 라온과 누리가 절로 기운이 꺼졌다. 울컥한 누리가 주먹을 불끈 쥐며 성을 냈다.
"언니는-"
"서포터는 0.1인분도 못하는 병풍. 원거리에서 견제도 못하고 힐 밖에 사용 못하지만, 그 치유 능력도 쓰레기죠. 애초에 다치지도 않았으니까 사실상 쓸모가 없었네요."
심장에 비수를 찌르는 평가 잣대는 유나 본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유나는 마치 타인의 결과 레포트를 두고 피드백을 하는 것처럼 냉철히 판단했다.
"일단 누리부터. 누리의 공격력은 충분히 입증되었어요. 갓 슬라임도 일격에 처치한 것만으로도 최소 C급 공격력은 인증한 셈이죠."
"업적까지 얻었지. <일격에 보스를 잡은>."
유나의 설명에 시안이 말을 덧붙였다. 누리는 자신의 전공과 업적에 상당히 들뜬 눈치였다.
"칼 질 한 방에 보스도 죽였어. 그러면 된 거 아냐?"
"하지만 누리야. 공격력만 C급이야. 나머지는 아직 많이 손봐야 해."
유나가 누리를 좋게 타일렀다. 시안은 유나에게 전력 분석, 약점 파악, 상황 지시와 같은 '팀장'의 역할을 부여했고, 라온과 누리는 잠자코 팀장 이유나의 피드백을 경청했다.
"갓 슬라임이 그때 막 멈춰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너 그대로 돌진에 당해서 타박상 입을 뻔 했어."
"다리도 굳어서 피할 생각도 못했지."
시안이 영상을 일시정지시켰다. 구간 반복으로 설정해둔 5초의 시간 동안 갓 슬라임은 누리를 향해 달려들었고, 누리는 검을 앞으로 겨눈채 그대로 얼어있었다. 누리는 차마 제 치부를 보지 못했다.
"제대로 보십시오. 지금은 반성할 시간입니다."
라온의 질책에 누리가 고개를 돌렸다. 유나나 시안의 말에 순순히 귀를 기울이던 때와는 달리, 라온을 노려보는 날카로운 시선에는 명백한 짜증이 담겨있었다.
"반성은 그 쪽이 해야하는 거 아님?"
"......누리야."
유나가 목소리를 깔며 누리를 다그쳤지만, 누리는 제 분을 못이기며 포크로 조각 케이크를 푹 쑤셨다.
"탱커 잘 할 수 있다며. 예전에 A급 히어로였다며? 그런데 왜 쫄보처럼 튄건데? 언니 때문에 나한테 어그로 튄 거잖아. 언니가 갓 슬라임한테 맞고 바로 나가떨어져서."
"......."
라온은 죄인처럼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비록 표현은 과격하고 천박하기 짝이 없으나, 누리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누리가 포크로 푹 케이크를 떠서 입에 한가득 넣어 분을 삭히는 사이, 시안이 영상을 10초 전으로 돌렸다.
"라온 씨."
"......네."
"역할 재분배를 얘기하신 건 본인이 딜러가 되기를 바라서인가요?"
라온은 죄인처럼 숙이던 고개를 들고 가로저었다.
"제가 탱커보다 딜러에 배치되는 게 '효율적'으로 적절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효율은 그렇죠. 라온 씨, 몸 사리니까."
시안은 녹화한 영상들을 더 띄웠다. 갓 슬라임과의 전투뿐만 아니라, 보스룸까지 가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반 슬라임과의 전투에서도 라온은 상대의 공격을 모두 흘리며 반격을 취하려 했다.
"슬라임의 공격을 상대로 한 번도 받아낸 적은 없죠. 갓 슬라임을 상대로도 무리하게 회피하려다 반격당했고요."
"흥, 그게 다 겉멋 들어서-"
"예전에 빌런과 싸우다 상처를 입어서 그렇죠? 빌런 <땅강아지> 상대로 사람 구하려다 코어 깨져서."
시안이 누리의 말을 끊으며 누리에게 시선을 보냈다. 누리는 안색이 창백해지며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라온의 눈가가 희미하게 떨렸지만 시안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PTSD라고 하죠. 코어까지 깨질 정도로 강한 충격을 받았으니, 몸을 아끼면서 전투를 하시려는 건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면 바꿔주십시오. 아니면 제가 김누리 양을 설득하면 되겠습니까?"
라온은 결연한 눈빛으로 누리를 향해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저를 쫄보든 뭐든 뭐라고 말씀하셔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저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라온의 두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유나는 오른 손등에 난 흉한 상처를 보며 침음성을 흘렸다. 누리는 아예 사색이 되어 어쩔 줄 몰라했고, 시안은 묵묵히 라온의 말을 기다렸다.
"저는........"
뚝. 라온이 눈물을 한 방울 흘렸다. 수도꼭지에 맺힌 굵은 물방울이 떨어지듯, 아주 조금씩 라온의 눈동자에 눈물방울이 그렁그렁 맺혔다.
"아직까지....적을 맞상대하기가 무섭습니다. 그러니 제발 저를 탱커에서 바꿔주십시오."
"라온 씨."
시안이 아주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고 딜러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아요? 라온 씨 원거리에서 공격 못하시잖아요."
"길드장님!"
퍽! 유나가 시안의 등을 메섭게 후려치고, 누리는 티슈를 들고 황급히 라온을 다독였다.
"괘, 괜찮아요. 저 아저씨 생각없는 사람이니까. 그, 어, 언니? 울지마요. 다 방법이 있을 거예요."
"......."
라온은 한 마디도 하지 않은채 눈물만 뚝뚝 흘렸다.
결국 회식은 없었고, 서로의 마음에 상처만 입힌 반성회는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하루를 쉬고 이틀 뒤에 모이자는 약속과 함께.